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교수라는 정체성에 적응하기

강형구 2024. 3. 5. 22:06

   국립목포대학교로부터 내가 교수가 될 것이란 통보를 받은 이후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2주 동안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3월 4일인 어제 총장님으로부터 교수 임명장을 받았고, 오늘은 내 연구실(정보전산원 A10동 319호)에 책상과 책장이 들어왔다. 대학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시스템에는 대략 모두 가입했고 이제 조금씩 시스템을 이용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목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강의했다. 오늘의 출근과 퇴근 모두 목포대학교 통학 버스를 이용했다. 학교 내부 건물들의 위치에도 조금 더 적응한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 혼자서 있는 시간에는 최대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기로 한다. 교수가 되었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하던 것에 비해 더 한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바빠졌는지도 모른다.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 출판을 위해서 교정 작업을 해야 하며, 한국연구재단에서 공고한 2024년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에도 지원할 예정이다. 곁에 가족들이 있다면 큰 힘이 되겠지만, 그저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열심히 생각하면서 버틸 수밖에 없다. 나는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주말을 간절히 기다린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상당한 자율성을 누린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감당해야 하는 의무 사항보다는 훨씬 적은 의무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인해 더 힘들 수도 있다. 어떤 연구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은 특정한 조직 내에 소속되어 직장 상사 및 조직 내의 동료들과 협업하며 업무를 진행해 나가지만, 대학교의 교수는 대개 독립적인 방식으로 연구하며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나는 이와 같은 독립적인 삶의 형태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반적인 직장 생활에 익숙해진 상황이라 새롭게 변화된 삶의 양식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확실히 교수의 책임감은 강사 혹은 일반적인 연구자의 책임감과는 다르다. 예전에 내가 과학철학 애호가였을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과학철학을 읽고 생각했는데, 국립대학교의 정식 교수가 된 지금은 과학철학과 관련해서 좀 더 책임감 있게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더군다나 목포대학교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나 혼자이기 때문에 더욱더 큰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전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실행력, 추진력, 지구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된 이제는 내가 깨어 있는 모든 시간 동안 연구와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제 내가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오롯이 과학(기술)철학을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에서 과학철학 전공 박사학위 소지자를 채용했고, 나는 과학철학을 연구하고 교육하기 위한 그 직위에 채용된 것이다. 10년도 더 지난 나의 대학원생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도 나는 하루 대부분을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긴 했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와 교육에 할애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아직 잘 믿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 지난 42년을 준비해 온 것이 아닐까. 철학 교수, 특히 과학철학 교수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은사이신 조인래 교수님을 생각한다. 과연 내가 조인래 교수님처럼 훌륭한 교수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마냥 교수님의 제자로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이제 나는 교수로서 나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