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

강형구 2024. 1. 19. 10:39

   내 블로그(blog)의 제목은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이다. 오늘은 문득 내 블로그 제목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예전 블로그 제목은 “凡人日記(범인일기)”였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적인 기록’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말 평범한 사람이란 없다. 사람이란 아주 희귀하고 독특한 동물이다. 모든 사람이 독특한 생각과 개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다. 나 또한 한 명의 사람이며 내 고유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 제목을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라고 바꿨다.

 

   내 블로그를 몇 번 들어오신 분들은 아마 이 말을 지겹도록 읽으셨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좋아했고 지금까지 계속 공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블로그 제목에 ‘과학철학’이라는 개념을 포함시켰다. 만약 내가 대학에서 자연과학 혹은 공학 혹은 역사를 전공했다면 ‘과학사’라는 개념을 포함시켰겠지만, 나는 대학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도 세부전공을 ‘과학철학’으로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개념을 단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과학철학’일 것이다.

 

   왜 ‘성실한’이라는 수식어를 넣었을까? 더 구체적으로 말해, 왜 ‘뛰어난’이라는 수식어를 대신 넣지 않았을까? 그것은 말 그대로 나는 과학철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실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나는 성실하다는 평가는 가끔 들었지만 나를 뛰어난 연구자라고 평가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냉엄한 현실인 것 같다. 물론 나는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성실하게 노력해서 얻은 결과일 뿐이다.

 

   여러 가지 운도 따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제법 잘 봤고, 대학원에도 운이 좋아 무탈하게 진학했다. 박사과정에서도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객관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훌륭하고 뛰어난 과학철학 연구자는 못된다. 그래도 과학철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성실하게’ 되는 것 같다. 뛰어남 혹은 탁월함은 의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성실함’은 내가 의지만 갖고 있으면 얻을 수 있고 실행할 수도 있다.

 

   이제 ‘연구자’라는 표현을 설명할 차례이다. 이때도 ‘애호가(amateur)’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단지 ‘애호가’로 남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 역시 애호가 수준이 아니라 좀 더 전문적인 수준의 연구 성과(논문, 저서 등)를 내 이름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교수’가 될 정도의 시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교수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 중 진정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낸 사람만이 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 나는 성실하지만 뛰어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애호가’도 아니고 ‘교수’도 아닌 ‘연구자’이다.

 

   그래도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직장인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연구원’이지 ‘행정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계속 나의 전공을 살려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표현은 내 개인적 측면뿐만 아니라 나의 사회적 측면과도 부합한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싶다. 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글들을 읽으시면 된다. 이때 다시 한 번 명심하셔야 할 것은 내가 ‘성실한 과학철학 연구자’이지 ‘뛰어난 과학철학 교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다소 진솔한 글들에 호감을 가지실 수 있겠지만 그런 호감을 토대로 나의 ‘뛰어남’을 추론하시면 곤란하다. 물론 그런 추론을 내가 억지로 막을 수 없겠지만, 이 글은 그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