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아버지와의 목욕

강형구 2023. 9. 28. 13:13

   추석이라 어제 오후 반차를 써서 대구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차가 좀 막히긴 했지만, 저녁 6시 30분쯤 부모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한창 아시안 게임이 유행이라 다른 가족들은 열심히 텔레비전으로 각종 스포츠 경기들을 시청했고, 나는 며칠 전에 주문한 인공지능 관련 책을 틈틈이 읽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필수 소양이고, 특히 과학관에서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중인 나로서도 꼭 익혀야 하는 지식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아버지께서 목욕탕에 가자고 하셨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셋째 아이인 아들 태현이도 같이 데려가려 했으나, 오늘 아침에 아이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데리고 가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께서는 등산과 목욕을 즐기시고 나 또한 그러한 아버지의 취미를 물려받았다. 나는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부터 아버지와 목욕탕에 다녔다. 아버지께서는 한창 열심히 일하실 때 매일 이른 아침에 목욕탕에 가서 4~50분 정도 짧게 목욕하고 오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버지의 건강 관리 비법이었다.

 

   내가 목욕을 좋아하는 이유는 몸이 노곤해지기도 하고 아무 걱정 없이 생각에 잠길 수 있어서다. 따뜻한 물에 있다가 차가운 물에 들어가고, 다시 뜨거운 물에 있다가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온도 차가 생기면서 몸에서 피가 순환한다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건식 사우나에 앉아 있으면 땀이 흐르면서 몸에 있던 노폐물이 빠지는 느낌도 든다. 습식 사우나의 경우 한방 향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런 한방 향을 즐기는 편이다. 어쨌든, 나는 목욕탕에 한 번 가면 오랫동안 느긋하게 즐기다가 나온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꼭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린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님과 목욕탕에 잘 가지 않는다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좀 민망한 것일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왜 그런 민망함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서 목욕을 일종의 ‘소통 창구’로 삼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는 건식 사우나에서 함께 땀을 흘리며 평소에 잘 나누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었다. 명절 전에 목욕탕에 가서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면, 아버지께서는 왠지 모르게 뿌듯하신 것 같았다. 요즘 목욕탕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1953년생인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건장하셔서, 매주 1회씩 등산을 가시고, 목욕탕에서는 부지런히 운동하신다. 맨손 체조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런 간단한 운동을 냉탕에서 부지런히 하신다. 그에 비해 나는 조용히 목욕을 즐기는 편이다. 온탕, 열탕, 냉탕, 급냉탕 등을 계속 돌아다니고, 건식 사우나와 습식 사우나도 최소한 한 번씩은 챙긴다. 목욕 갈 때마다 꼭 때도 민다. 나는 목욕탕에 대개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만 가기 때문이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면 상쾌하면서도 노곤하다. 그래서 대개 목욕을 다녀온 날 오후에는 낮잠을 즐긴다.

 

   과연 아버지와 나의 이런 목욕 습관이 내 아들 태현이에게도 이어질까? 잘 모르겠다. 요즘 집들에 너무 샤워 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어, 앞으로 점점 목욕탕 수가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나는 최소한 시도는 해보려 한다. 아들이 크면 꼬박꼬박 목욕탕에 데려가려 한다. 그러면서 아빠도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자주 다녔다고 말해줄 생각이다. 아버지와의 목욕은 내가 아버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추억이다. 먼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다면, 나는 혼자 혹은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서 목욕하며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등산과 목욕의 습관은 내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 중 하나다. 당연히 아버지와 나는 서로 다르다. 아버지는 철저히 상인인 사람이고, 나는 책 읽고 글 쓰기를 좋아하는 서생과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나와 다른 아버지로부터 실로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