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철학자일까? 박사학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물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껏 나름 고생을 해서 학위를 취득했지만, 나 자신이 확고한 과학철학자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다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명칭이 나에게는 더 편안하고 마음에 든다. 다만 나에게 제법 확실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나라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삶의 핵심적인 에너지원이다.
내가 글 쓰는 습관을 들인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일 일기쓰기를 의무적으로 시켰다! 약간 특이한 학교이긴 했다. 교실 바닥이 마루였는데 여름에는 점심 식사 후 교실에 있는 책상들을 일괄 마루 뒤로 민 다음 오후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교실 바닥에서 학생들 모두 낮잠을 잤다. 불교 재단에서 운영했던 중학교여서 그런지 도덕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면 항상 5분 정도 학생들에게 ‘명상’을 시켰다. 사실 우리 중학교가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학교(예를 들어, 동래중학교)에 비해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중학교 시절에 매일 의무적으로 일기를 쓰며 글쓰기 습관을 들였다.
매일 의무적으로 글쓰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기장에 시도 쓰고 소설도 썼다. 당연히 매일 착실하게 쓴 건 아니고 대개 1주일 단위로 글을 몰아서 썼다. 그렇지만 안 그래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글도 쓰다 보니까 점차 익숙해졌다. 그래서 나는 교내 문예지에 시도 제출하고 소설도 제출했다. 물론 내가 정말 수준이 높은 멋진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나는 그냥 솔직하게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썼다. 그렇게 글쓰기에 조금씩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내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는 책을 읽을 때 책 옆에 노트를 펴서 좋은 문구가 있으면 따라 적었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쓰기도 했다.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대한 책도 읽었지만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니체의 전집도 읽었고 과 선배님의 소개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재미있게 읽었다. 칸트의 책 [순수이성비판]은 분명 심오했지만 읽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통찰력이 있으면서도 감성적인 글들(니체, 쇼펜하우어)이 좋았다. 과학철학은 대개 다소 딱딱하게 여겨지는 종류의 글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소설과 시도 즐겨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장 폴 사르트르가 쓴 [자유의 길], 알베르 까뮈 전집도 내가 좋아했던 책들 중 하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은 말할 것도 없다.
군대에 있을 때는 [수양록]을 열심히 썼다. 대학원에서는 에세이 쓰기로 바빴지만 틈틈이 개인적인 글을 계속 썼다. 이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글쓰기는 이어졌고, 이제는 개인적인 글을 블로그에 규칙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분명 내 글이 크게 가치가 있고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 글을 써서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더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무엇인가 대단한 의미가 있을 때만 글을 쓰고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글쓰기를 멀리하도록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인가 특별하고 비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리고 평범한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그들이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힘이 될 수 있다.
내가 언어를 발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문장으로 된 글을 쓰며 내가 사는 이 세계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주체적으로 그린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언어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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