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물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

강형구 2023. 10. 1. 23:01

   의외로 사람들은 물을 쉽게 혹은 우습게 본다. 대개 “나를 물로 보나?”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나를 쉽게 혹은 우습게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물 흐르듯 살아라.”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물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나는 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는 물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필요한 만큼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을 선호한다.

 

   삶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물의 흐름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우선 물에서 살기 위해서는 물에서 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마음대로 발버둥 친다고 해서 물에 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린 다음 물의 흐름에 맞춰 적절히 손과 발을 움직여야 물에 뜬다. 또한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물론 때로는 흐름을 거슬러서 올라가야 할 때도 있지만, 항상 흐름을 거스르다 보면 지치고 위험해진다. 대부분 흐름을 따라 조금씩 방향을 틀며 움직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만 물의 흐름을 거스르며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오늘날 삶과 대면하는 것은 맹수와 대면하여 싸우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기를 들고 맹수와 맞서면 싸움은 직접적이고 격렬하며 승패가 명확하다. 대개 맹수가 죽든지 인간이 죽는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의 삶의 투쟁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승패도 단시간에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맹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과 싸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물이 잔잔하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잔잔한 것은 아니며, 갑자기 느닷없이 강렬한 물줄기가 뒤덮을 수 있다. 또한 물은 무기로 찔러도 소용이 없다. 물은 이길 수 없으며 오직 다스릴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온갖 다양한 물의 흐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의 흐름은 일정하지 않으며 수시로 그 세기와 방향이 변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가까운 것 또한 아니다. 평생을 가야만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동안 그곳에 도착할 수 있는지는 상당 부분 운 또는 우연에 의존한다. 그렇기에 도착했다고 해서 자만할 이유가 없다. 운이 좋아서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이유도 없다. 그저 운이 없어서 도착할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의 최종적인 결과를 결정하는 것에서 개인은 퍽 무력하다.

 

   삶을 걷는 것과, 혹은 마라톤과 비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걷는 것과 뛰는 일은 인간의 의지에 상당 부분 좌우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실제의 삶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개인은 걷거나 뛰는 개인보다 훨씬 더 무력하고, 그런 의미에서 물의 흐름 속에서 떠다니며 살아가는 사람의 비유가 더 적절하다. 물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그 흐름에 나 자신을 맡겨야 하고, 혼자서는 물의 흐름을 단시간에 바꿀 수 없다. 물의 흐름은 아주 잘 준비해야 바뀌며, 아주 천천히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물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사람들 중 거의 없다. 대부분 사람은 그저 그 흐름에 순응하며 떠내려간다.

 

   물론 연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자신의 특출한 능력으로 물의 흐름을 거스르며 자신이 원하는 곳에 기어코 도달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볼 때, 대개 물의 흐름을 거스르기보다는 그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따금 아주 중요한 순간에만 아주 잠시 물의 흐름을 거슬러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의 흐름을 타려 했을 뿐이다. 물은 내가 힘으로 이기거나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큰 흐름을 타면서 오로지 그것을 다스릴 수 있을 뿐이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 차례, 관용  (2) 2023.10.08
글 쓰는 시간  (2) 2023.10.05
아버지와의 목욕  (0) 2023.09.28
블로그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0) 2023.09.23
차분한 나날들  (2) 2023.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