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예배, 차례, 관용

강형구 2023. 10. 8. 20:04

   추석 전 성묘를 하지 못해서 어제(10월 7일) 오전에 경상북도 성주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에 다녀왔다. 묘소 바로 아래에는 예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던, 이제는 큰아버지께서 관리하는 집이 있다. 그로부터 차를 타고 5분 정도 내려오면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작은 농막이 있다. 나는 아버지 농막에 들러 마른 멸치 조금과 소주 한 병을 챙겨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갔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소주를 참 좋아하셨다. 할머니께서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절을 하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에게서는 선비의 느낌이 났지만, 술과 육회를 좋아하셨고 욱하는 성미도 있으셨다. 할머니께서는 늘 부지런히 일하셔서 등이 구부러져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없을 때 다른 사람 흉을 보시기도 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었다. 이후 묘소 근처를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서 떠오른 것은, 내가 퍽 실용주의적인 사람이란 거였다. 나는 어릴 때 제사나 차례를 지내면서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절에 자주 다니셨는데, 나는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드리며 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캠퍼스에서 가끔 나에게 함께 교회에 가자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몇 번 교회를 따라갔다. 내게는 교회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꾸준히 다니지는 않았다. 사관후보생으로서 경북 영천에 있는 3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는 일요일에 교회와 법당 둘 다 갔다. 예배와 법회에 참여하는 게 나쁘지 않았고,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대개 맛있는 음식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할 때는 일요일에 법당에 자주 갔고 그곳에 계신 법사님과도 친하게 지냈다. 법당은 우리 부대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법회가 끝나고 식사를 한 후 두루 모여 차를 마시던 시간이 떠오른다.

 

   지금 나는 교회를 다닌다. 아내는 모태신앙으로 계속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교회에 가서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것도 계속 가다 보니 익숙해졌다. 나는 세례를 받았고, 우리 아이들 모두 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열성적인 신자인 것은 아니다. 물론 다른 일이 없으면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만, 제사와 차례도 지내고, 가정에 중요한 일이 있거나 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시면 교회에 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유교의 의식(제사, 차례)를 경멸하지 않고, 불교를 미신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나는 제사와 차례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불교의 마음 다스림이 참으로 심오하다고도 생각한다. 또한 나는 기독교, 특히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의식이 인간에게 강렬한 감동과 희망을 준다고도 믿는다. 이와 동시에, 나는 과학 문명이 강력함을 인정하지만, 과학을 완벽하고 절대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종류의 철학을 하는 것인가? 어떤 종류의 철학을 옹호하는 것인가?

 

   여기서 나는 소크라테스로 돌아간다. 철학이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우리가 실제로는 얼마나 잘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성찰적인 활동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기쁨 또한 주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얼마나 잘 모르는지를 다름이 아닌 우리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크라테스에서 그의 제자 플라톤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플라톤에 이르면 철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오히려 플라톤보다는 생물학자이자 경험주의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선호한다. 늘 내 밖의 경험 세계를 향해 있는 성찰적 활동,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철학의 의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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