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8

교수의 삶은 여유롭지 않다!

나의 경우 아직 교수로 정식 발령을 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약간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판단할 때 교수의 삶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나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비교를 해보자. 교수의 하루 일과는 내가 한국장학재단이나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할 때와 비교할 때 결코 더 여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더 일정이 빡빡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이번 학기에 나는 9학점을 담당하며, 수업은 화-수-목요일에 있다. 월요일에 화요일 수업을 준비하고, 화요일에 수요일 수업을 준비하며, 수요일에 목요일 수업을 준비한다. 모두 처음 담당하는 과목들이라 월, 화, 수요일을 온전히 수업 준비에 바쳐도 시간이 모자란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연구자..

일상 이야기 2024.03.28

교육자의 집안

내가 올해 3월부터 국립대학교의 교원이 되면서 우리 가족의 정체성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나의 친가 및 외가 친척 중에는 박사학위 소지자를 찾기가 어려운데(먼 친척 중에는 당연히 박사학위 소지자가 있겠지만), 작년 2월에 내가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우리 집안에도 박사가 배출되었다. 내가 교수가 되기 전까지 우리 집의 주된 정체성은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누나가 초등 교사(교육 공무원), 매형이 국립대학교 직원, 나와 아내가 국립과학관의 연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교수가 되었으니 우리 가족은 교육자의 집안이 되었다. 나와 누나 모두 교육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사실 내가 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교육 공무원이 되면서부터 좀 더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공공기관 직..

일상 이야기 2024.03.24

카페에서 멍하게 있는 시간

오늘은 목포대학교에서 오후 수업을 끝내고 곧장 전북대학교에 가서 과학학과 구성원들을 위한 강연을 했다. 까마득한 선배 교수님들께서도 강연에 참여하셔서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게 한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광주에 있는 숙소 근처로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는 투룸에 들어가기가 다소 적적해서 그냥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마침 저녁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은 상태여서 카페에 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다. 이제 다소 익숙해진 카페라 늘 내가 앉는 자리가 있다.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약간 지친 느낌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나는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그냥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과 영상 통화..

일상 이야기 2024.03.21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2/2)

고대 그리스에서 경험주의와 이성주의를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대표한다면, 근대 이후 경험주의와 이성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는 영국의 흄과 독일의 칸트이다. 흄과 칸트가 등장한 맥락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등장했던 맥락과는 사뭇 달랐다. 두 사람은 뉴턴 역학의 눈부신 성공이라는 배경 속에서 등장했으며, 뉴턴 역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흄은 뉴턴 역학의 ‘방법론’을 인식론에 도입하고자 했다.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데카르트의 이론과 대조하며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뉴턴에 따르면, 그는 케플러의 3가지 행성 법칙을 일종의 ‘현상적 법칙’으로 수용한 후, 귀납의 절차를 통해 이러한 현상적 법칙들을 더 높은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일반 법칙을 추론했다. 이때 그는 현상적 법칙을 일종의 ..

욕심 없음의 묘미

생각하면 할수록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나의 경우 결과적으로 보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더 나에게 이로웠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실 나도 왜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욕심을 버리는 것이 나의 성격 혹은 기질에 더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곧장 대입 입시학원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한동안(거의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부산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주로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만약 내가 대입 입시만을 목표로 했었다면 그런 정신 나간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행위는 퍽 소박한 것이었다. 책들은 공공시설인..

일상 이야기 2024.03.13

시행착오를 겪으며

국립목포대학교 임용 확정 통보를 받은 후 가장 걱정했던 문제가 살 집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처음에 나는 목포대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방을 하나 얻으려고 했다. 사실 우리 가족 전체가 이동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내가 여전히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아이들 역시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포대학교 근처에는 원룸 전세가 없고 모두 월세였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광주 또는 목포였다. 그런데 목포로 집을 얻으면 주말에 대구로 왕복 이동하는 거리가 광주보다 더 멀어질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광주의 원룸 전세를 알아보았는데, 다행히 두세 건 정도 매물이 있었다. 광주송정역 근처의 원룸은 시설이 제법 좋았지만,..

일상 이야기 2024.03.09

교수라는 정체성에 적응하기

국립목포대학교로부터 내가 교수가 될 것이란 통보를 받은 이후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2주 동안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3월 4일인 어제 총장님으로부터 교수 임명장을 받았고, 오늘은 내 연구실(정보전산원 A10동 319호)에 책상과 책장이 들어왔다. 대학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시스템에는 대략 모두 가입했고 이제 조금씩 시스템을 이용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목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강의했다. 오늘의 출근과 퇴근 모두 목포대학교 통학 버스를 이용했다. 학교 내부 건물들의 위치에도 조금 더 적응한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

교육 공무원인 과학철학자로서의 마음가짐

어제인 2024. 3. 1.부터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 공무원으로서 일하게 되었다. 내 나이 마흔 셋(연 나이로는 42세)의 일이다. 물론 나는 국립대학교에 소속된 교수이긴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교수’라는 이름보다는 ‘교육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은 초․중․고등학교(중등 교육)가 아닌 대학교이며, 그중에서도 나는 사립대학교가 아닌 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행정’ 업무가 아닌 ‘교수’ 업무를 하게 된 것이다. 우선 나는 나의 행운에 너무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박사과정을 거쳐 계속 대학에서 강의 및 연구 경력을 이어오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