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욕심 없음의 묘미

강형구 2024. 3. 13. 09:30

   생각하면 할수록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나의 경우 결과적으로 보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더 나에게 이로웠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실 나도 왜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욕심을 버리는 것이 나의 성격 혹은 기질에 더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곧장 대입 입시학원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한동안(거의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부산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들(주로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만약 내가 대입 입시만을 목표로 했었다면 그런 정신 나간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행위는 퍽 소박한 것이었다. 책들은 공공시설인 도서관에 있고, 나는 그냥 공책 한 권과 필기도구를 들고 가서 공공시설인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대부분 시립도서관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식당이 운영되기에 나는 매 끼니도 도서관에서 해결했다. 나는 그런 소박한 삶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비한다면 대입 입시학원에서의 공부는 철저히 ‘노동’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반사회적인 성향을 나타내지는 않았고,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나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으므로,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성실히 임한다는 생각으로 입시학원에 다녔다. 모의고사를 봐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보다는 그저 나 스스로 성적을 꾸준히 올린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나보다 수능 성적이 약간 낮은 형이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 합격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철학과가 있는 인문대학을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철학을 전공하면 훗날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만류했지만 말이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다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바빠 보였다. 그런데 나는 좋은 성적을 얻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으므로 대부분 학교 도서관에서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는 때도 많았다. 그리고 관악산 산책을 참 자주 했다. 그래서 나의 대학 시절 대부분의 기억은 도서관과 관악산으로 차 있다. 그렇다고 내가 관악산의 지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내가 늘 다니는 학교 내의 산책로를 조용히 걸어 다녔을 뿐이다. 결국 나의 대학 학부 학점은 좋지 않다. 그래도 최하위권의 성적은 아니었다. 나는 수업에서 내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이다.

 

   학점이 낮은 내가 대학원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의 연구 분야에 대한 주관을 뚜렷하게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의 어떤 분야를 어떻게 연구할지에 대한 내 생각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던 까닭에 대학원의 교수님들께서 나를 받아주셨던 것 같다. 비슷하게, 나의 주관이 뚜렷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번 치렀던 입사 면접에서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잘하고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나 스스로 더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욕심을 버리고 진솔하게 나를 드러냈을 뿐이다.

 

   최근 내 블로그의 방문객들이 많아졌다. 아마 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어서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 국립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 잘 믿어지지 않고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나일 뿐이며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달라진 것도 아니다. 나는 욕심 없이 나의 일을 성실히 해 나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운이 좋았다.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행운을 굳이 나 스스로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 모든 일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나는 그저 지금까지 내가 해왔고 해야 하는 일들을 욕심 없이 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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