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목포대학교 교양학부 과학기술철학 전공 교수 합격 통보를 받은 지난 2월 20일 저녁 이후, 나는 일주일 동안 실로 참 바쁘게 지냈다. 국립대구과학관에 퇴직 의사를 밝히고, 국립목포대학교에서 요구하는 여러 행정적인 서류들을 준비했다. 공무원 채용 신체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특이 사항은 없었고, 마약류 중독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지난 2월 26일 월요일에는 아내와 함께 휴가를 써서 광주에 있는 한 투룸을 숙소로 구했다. 목포대에서도 다른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제 정말로 대학교의 교수가 될 것임을 조금씩 실감한다.
나는 나 자신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느꼈다. 아마도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재미있었고, 나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것에 대한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그런 사명감을 붙잡고 계속 공부를 이어왔다. 이것은 나라는 개인을 넘어서는 것이었기에 개인의 부족함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분위기를 살펴보니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학문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처럼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더욱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면 먹고살기가 힘들다? 나는 그런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보이고 싶었다. 한국장학재단과 국립대구과학관을 거쳐 국립목포대학교에 임용된 나의 사례가 그 편견에 대한 하나의 반증 사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나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내가 ‘국내에서의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라는 좀 더 큰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성취라고 믿는다. 이 대의를 생각하면 나라는 개인은 사소한 한 명의 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 개인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나를 넘어서는 대의를 중심에 둠으로써 어려움들을 극복해 왔다.
나는 이번에 내가 국립목포대학교에 임용된 것 역시 나 개인의 관점에서보다는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라는 좀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 우리나라의 국립대학교에 과학사와 과학철학 전공 교수가 한 명 더 늘어난 것은 참으로 바람직 한 일이다. 앞으로 국립대학교가 설립한 교양학부에서 좀 더 많이 과학사와 과학철학 전공자가 채용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 또한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할 것이다. 내가 모범사례가 아니라 나쁜 사례가 된다면 향후 과학사와 과학철학 전공자를 대학에서 채용하는 것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늘 나의 전공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함께 한다. 나의 전공은 나와 그 운명을 늘 함께하는 것이다.
“큰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대의를 위한 삶을 추구함으로써 자잘한 개인적인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것”으로 읽는다. 실제로 학생 시절부터 나는 이런 해석을 통해 내 개인의 부족함을 이겨낼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겨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 개인의 성공과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의 유지와 발전이라는 좀 더 큰 뜻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한 큰 뜻 아래에서 나는 그저 한 명의 사소한 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그와 같은 대의의 추구가 개인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대의 아래에서 개인적으로는 힘들 수 있는 여러 일들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교수 부임 초기에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의 적응과 같은 난관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런 난관들을 무난하게 겪어낼 수 있을 것이리라 믿는다.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이라는 대의 아래에 있고, 앞으로 이 커다란 길을 걸어가게 될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중간 디딤돌로서의 역할을 다부지게 잘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