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해 3월부터 국립대학교의 교원이 되면서 우리 가족의 정체성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나의 친가 및 외가 친척 중에는 박사학위 소지자를 찾기가 어려운데(먼 친척 중에는 당연히 박사학위 소지자가 있겠지만), 작년 2월에 내가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우리 집안에도 박사가 배출되었다. 내가 교수가 되기 전까지 우리 집의 주된 정체성은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누나가 초등 교사(교육 공무원), 매형이 국립대학교 직원, 나와 아내가 국립과학관의 연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교수가 되었으니 우리 가족은 교육자의 집안이 되었다. 나와 누나 모두 교육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사실 내가 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교육 공무원이 되면서부터 좀 더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공공기관 직원(국립과학관 연구원) 신분일 때보다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지난번에 한 번 이야기한 바 있듯, 나는 ‘교수’라는 명칭보다는 대학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 공무원’이라는 명칭을 더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2개의 공공기관에 재직한 후 국가 기관인 국립대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3개의 기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들이다. 군 복무도 장교로 3년 4개월 동안 했으니, 아마도 나의 운명은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고등교육 담당 공무원’이라는 개념은 서양적인 ‘철학 교수’ 개념과 좀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은 철저히 한국적인 것이다. 사실 나의 이력 자체가 굉장히 한국적이긴 하다. 나는 학사, 석사, 박사 모두 한국에서 마쳤고, 군대도 정식으로 다녀왔으며, 지금까지 계속 한국에 소재한 공공기관에서 일했다. 국립목포대학교는 내가 고등교육 담당 공무원으로서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장소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은 일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출산율 저하와 더불어 학령인구의 급감 현상이 실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생이 줄어들면서 대학 구조조정, 대학 간 통폐합이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철학 교수’라는 개념에서는 상당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반면에, ‘교육 공무원’이라는 개념은 약간 경직되고 그 속에서 일종의 의무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그러한 의무감이 느껴지는 개념을 더 선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철학 교수는 자신의 역할 모형으로 ‘비트겐슈타인’ 혹은 ‘러셀’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한국전쟁 이후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기관에서 치열하게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님들을 생각한다. 그 교수님들은(예를 들어, 내가 알게 된 경북대학교 수학과의 기우항 교수님 혹은 경북대학교 물리학과의 이상윤 교수님) 애국심과 의무감을 가진 채 교직에 임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의식을 갖고 나의 직무에 임한다.
또한 나는 ‘교양학부’ 소속으로 임명되었다. 별도의 상급 학과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철학 교수이지만 문학 박사가 아닌 이학 박사이다. 나는 여러 학과와 연계하여 교양 과목을 개설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협력하는 학과는 윤리교육과일 수도, 환경교육과일 수도, 수학교육과일 수도, 물리학과일 수도, 문화콘텐츠학과일 수도 있다. 나는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전담하기 위해 임용되었으므로, 앞으로도 이 분야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 및 교육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나의 소속이 ‘철학과’가 아닌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은 나 스스로 자처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석사와 박사학위를 ‘철학과’가 아니라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받았다. 교양교육 전담 교수가 된 것은 나의 선택이기도 한 것이다.
어쨌든 이제 우리 집안은 교육자의 집안이 되었다. 이는 참으로 예전에 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부모님의 자녀인 누나와 내가 모두 대한민국의 교육 공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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