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교수의 삶은 여유롭지 않다!

강형구 2024. 3. 28. 10:39

   나의 경우 아직 교수로 정식 발령을 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약간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판단할 때 교수의 삶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나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비교를 해보자. 교수의 하루 일과는 내가 한국장학재단이나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할 때와 비교할 때 결코 더 여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더 일정이 빡빡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이번 학기에 나는 9학점을 담당하며, 수업은 화-수-목요일에 있다. 월요일에 화요일 수업을 준비하고, 화요일에 수요일 수업을 준비하며, 수요일에 목요일 수업을 준비한다. 모두 처음 담당하는 과목들이라 월, 화, 수요일을 온전히 수업 준비에 바쳐도 시간이 모자란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연구자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학술지 논문 심사, 번역 원고 정리, 내 연구 분야와 관련된 책 및 논문 공부)을 한다. 특히 목요일까지는 수업이 있으므로 더 일정이 빡빡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2시간 또는 3시간 강의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는 노동이다. 이는 사무실에서의 행정업무와 비교할 수 없다.

 

   사실 9학점 강의는 최소한의 의무 강의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경우 앞으로 12학점, 15학점 등 더 많은 학점의 강의를 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며,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진다. 게다가 학교 외적인 연구과제를 하거나 외부 특강을 하게 되면 더 일이 늘어날 것이다. 만약 학교에서 보직을 맡게 되면 연구 및 교육 업무에 더해 행정업무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교수라는 직업은 일반적인 정부 조직 혹은 공공기관 조직에서의 업무에 비해 결코 여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더 바쁘고 힘들 수 있다. 지금도 나는 교수가 된 이후 전 직장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왜 교수에게 방학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있다. 방학이야말로 교수가 온전히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연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학이 길지 않느냐고? 천만에! 예를 들어 여름방학은 7, 8월일 텐데, 나와 같은 철학 연구자에게 2달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다. 2달은 책과 논문을 합쳐 10편 정도 제대로 읽은 후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대개 교수들은 1년에 연구 논문을 1, 2편 정도 써야 하는데, 방학은 교수가 그와 같은 연구 논문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연구년 또한 교수에게는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수도권의 대학에 재직 중이지 않은 이상 내가 전공한 학문의 최신 경향을 접하기 힘들 가능성이 높고, 설령 수도권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학문 흐름에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로서 연구 역량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연구년 동안 세계의 우수한 대학 혹은 연구 기관에 방문하여 외국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자신만의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내가 속한 대학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나의 입장에서 더 편할 수도 있다. 그러니 교수 입장에서는 상당한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 외국에서 연구하고 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학문의 내용과 경향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으므로 이제 더 이상 대학에서 예전의 방식대로 같은 과목을 같은 내용으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 새로운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며, 필요한 과목들 또한 꾸준히 발생하기 때문에 매번 새롭게 과목을 개설하고 그에 따라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한 과목을 신규로 개설하여 강의를 준비하는 것은 고도의 노동을 요구한다. 내 생각에 이상과 같은 내용을 고려할 때 교수를 일종의 ‘전문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다른 직업보다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더 여유로운’ 직업이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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