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나의 인간적인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벌여서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용히 차분하게 해 나가는 사람이다. 부산에서 살 때도, 서울에서 살 때도, 강원도 홍천에서 군 복무를 할 때도,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았고 그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글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 군대, 직장 등은 내가 사회적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그 모든 사회적 조직에서 나는 평균적인 수준으로 일했으며 남들의 눈에 띄게 특출한 역량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내가 공부 혹은 연구에서 특출나지 않다는 사실은 내 삶의 이력을 보면 잘 드러난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 나의 성적은 평균 또는 그 이하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제법 잘 보긴 했지만, 수능시험은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 학습하고 문제 풀이하는 연습을 기계적으로 계속하면 잘 치를 수 있는 시험이다. 나의 대학 학부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물론 졸업 기준은 충분히 넘겼다). 다만 예외적으로 나의 대학원 석사 시절의 성적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군 복무 직후 잔뜩 군기가 든 채로 전투적으로 학업에 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시적 효과는 군대에 다녀온 많은 남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현상이다. 직장 업무와 병행한 내 대학원 박사 시절 성적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나는 오래전부터 일이든 연구이든 그것을 ‘남들과 비교해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나는 늘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나의 일에 임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의 일을 시작해, 밤늦게까지 나의 일을 했다. 나는 나의 스타일과 방식에 맞춰 일을 했고, 그 일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순순히 수용했다. 이런 식의 삶은 지금껏 나에게 늘 평균 혹은 평균보다 약간 웃도는 성과를 주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직장 모두에서 나는 ‘아예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래도 나의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결코 내가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능력을 알고 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에 맞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도록 과도하게 높은 기준을 부여해서 나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내가 올해 3월부터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된 것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 볼 때 너무나 과분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교수 또한 매일 먹고 살기 위한 현실적인 직업이다. 목포대학교의 교수로서,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의 교육 공무원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공식적인 일들이 있고, 이 일들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나는 철저히 내가 속한 조직의 전통과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도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의 방식과 스타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
현재로서는 매년 1권의 책을 번역하고 1권의 연구 논문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나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자로서(과학사 및 과학철학은 내 학위 명칭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학문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추진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과학사 강의, 과학철학 강의 개설은 기본이며, 이 과목들을 거듭 강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책을 집필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항상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며 나의 일에 임하고자 한다. 물론 성실함은 기본이며 그게 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나의 일들에 매우 성실하게 임하되, 굳이 남들에 비해 월등하게 그 일을 잘하려고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렇게 욕심 없이 성실하게 일하면,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평균 이상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통해서 아주 잘 경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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