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삶에 충실하기

강형구 2024. 4. 28. 08:01

 

   오늘 아침에 일어나, 나는 문득 이 세상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을 이미 거의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일은 내 삶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리고 내 삶의 궁극적인 지향은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열심히 연구하며 사는 것일 뿐이다. 오직 그것 밖에는 없다.

 

   당연히 나에게는 가족이 중요하지만, 이미 가족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우리 집은 다섯 식구가 지내기 넉넉할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고, 대출금도 퍽 많이 갚아서 3, 4년 정도 지나면 빚을 모두 청산하게 된다. 아내는 직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고, 아이들도 이제 제법 커서 조만간 나의 도움 없이도 매일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연구 및 교육 실적을 착실하게 쌓아나가고 있어, 어떤 상황에 닥쳐도 나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나는 더 욕심 없이 나의 삶에 충실하면서 나의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나는 평소 소소한 것들에 만족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단련했다. 나는 허기를 채울 정도의 음식이면 만족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옷이면 만족한다. 성공? 물론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이미 내가 이룬 것들만으로도 나에게는 과분한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추가적인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 아내나 아이들에 대한 별도의 욕심도 없다. 이미 아내는 자신이 바라던 직장에서 자신이 바라던 일을 하며 잘 지내고 있으니 됐고, 아이들은 가급적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놓아둘 생각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발전? 나는 그것까지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당연히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열심히 연구할 것이지만, 이 연구가 나라는 사람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러한 발전은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나의 뜻을 이어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연구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내 남은 삶 동안에 나 자신이 계속 꾸준하고 온전하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연구하기를, 내 삶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의 작업이 우리 사회에서 소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까지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 바람을 가지면 괜한 욕심과 집착 또한 갖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연구? 나는 그에 대해서도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나는 오히려 더 철저히 나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세계적 수준 혹은 기준에 나를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이른바 세계적 수준의 훌륭한 논문을 쓰는 것은 정말 멋지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필수 혹은 의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신만의 능력과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작업을 할 자유를 갖는다. 나는 나의 스타일과 방식대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연구할 뿐이다. 나는 국제적인 수준의 뛰어난 역량을 가진 우수한 학자를 존경할 것이고, 나의 연구자로서의 소박한 역량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갖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 나는 나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일을 할 뿐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직업을 갖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것만을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진실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 이상의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바랐던 일들을 대부분 다 이루었으니, 사실상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으로 내게 남은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잠에서 깨어 있는 동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충만하게 살면 된다. 지금에 비해 딱히 더 바라는 것이 없으니 집착하거나 두려워할 일도 없다.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면 될 일이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르는 게 약  (0) 2024.05.12
교수-되기  (0) 2024.05.05
블로그 글쓰기 12년  (2) 2024.04.20
상황과 스타일에 맞게 사는 것  (2) 2024.04.13
교수의 삶은 여유롭지 않다!  (4) 202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