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목포대학교에서 오후 수업을 끝내고 곧장 전북대학교에 가서 과학학과 구성원들을 위한 강연을 했다. 까마득한 선배 교수님들께서도 강연에 참여하셔서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게 한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광주에 있는 숙소 근처로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는 투룸에 들어가기가 다소 적적해서 그냥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마침 저녁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은 상태여서 카페에 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다.
이제 다소 익숙해진 카페라 늘 내가 앉는 자리가 있다.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약간 지친 느낌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나는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그냥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싶었다. 아이들이 그리웠다. 특히 셋째인 막내는 늘 나와 같이 잠이 들었기에 마음이 더 안타까웠다. 영상 통화가 끝나고도 그냥 멍하게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이런 게 인생이지, 하고 생각한다. 삶이란 예측하기 어렵고, 삶 가운데 의지를 가지고 버티며 계속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실 누구나 다 버티면서 살아가지만, 역설적으로 삶이란 누구에게나 다 힘든 법이다.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밤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동질감과 애정이 느껴진다. 교수도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그저 한 명의 사람이기에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그린다. 둘째 아이는 아빠가 교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좋아서 아빠를 보고 “예! 예! 교수님!”이라고 했다. 둘째는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참 귀엽다.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둘째의 그 뒷모습을 그린다.
연합 수업 시간에 기꺼이 내 옆자리에 앉던 학생,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수줍게 질문하던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과연 나에게 학생들 앞에 설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일이 즐겁다. 내게 학생들은 삶의 동지들이다. 내가 학생들보다 우월한가? 내가 교수라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 중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대학에서의 시간을 겪은 후 사회에 나가 부대끼며 인생을 제대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이던가?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일종의 운명 공동체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내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음악이다. 자기 전에 음악을 듣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음악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한다. 연구실에서도 음악을 틀어 놓고 작업한다. 나의 취향은 비교적 소박하다. 유튜브에서 국내 뮤지션들 위주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 최근 내가 자주 듣는 채널은 이무진이 진행하는 “리무진 서비스”인데, 특히 김범수와 김민석의 라이브 음악을 거듭 듣고 있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좋은 음악을 특별한 비용 없이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학교에서 수업하기 전에도 여유 시간이 있으면 유튜브에 접속해서 학생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다.
때때로 나는 가스통 바슐라르를 상상한다. 사실 바슐라르는 내가 직장에 다닐 때부터 선망하던 과학철학자였다. 직장 생활을 하다 늦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된 과학철학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왠지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앉아 몽상에 빠져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을 것만 같은 과학철학자. 이건 나의 환상이지만 바슐라르는 그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했을 것 같다. 세상의 온갖 것들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 고요하고 어둑한 밤에 촛불 하나를 켜 놓고 침묵 속에서 글을 써 내려갔을 것 같다.
카페 점원이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어느덧 밤의 어둠은 더 짙어졌다. 나는 음악을 입으로 흥얼거리며 점원에게 인사한다. 점원이 조금 더 친숙해진 만큼, 카페에 대한 나의 애정도 조금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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