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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에서의 주말근무

국립대구과학관의 선임연구원으로서 나는 2달에 한 번 정도 휴일근무를 한다. 근무의 정식 명칭은 ‘휴일관장’이다. 휴일에는 일반직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으므로 일반직 직원 중 선임급 이상이 관장을 대리해서 근무를 한다. 어제인 2023년 11월 26일에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의 휴일관장 업무를 수행했다. 일을 하다보면 때로 내가 속한 조직을 벗어나 외부인의 관점에서 나의 조직을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고 어제의 경우 내가 휴일근무를 했기 때문에 아내가 아이 셋을 혼자서 봐야했다. 어차피 점심식사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간단하게 식빵에 잼을 발라 우유와 함께 도시락을 싸오려 했다. 그런데 아내가 그냥 같이 과학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집은 과학관과 가까운 곳에 ..

과학관 이야기 2023.11.27

명상하는 시간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의 인지 및 성찰 능력이 과학기술 발달 이전과 크게 달라졌을까? 오늘날의 사람은 이미 과학기술의 발전 이전에 진화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서양의 과학기술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조선시대 이후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미개한 삶을 살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이 사람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믿는 것은 일종의 신화일 수 있다. 물론 나는 매일 노트북 컴퓨터를 쓰고, 휴대전화를 쓰며, 이것이 과학기술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과학기술문명의 이기들 없이도 나는 잘 살 수 있다. 삼국, 고려, 조선 사람들 역시 나름 잘 살았기 때문..

일상 이야기 2023.11.24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는 식사하고 난 뒤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며칠 동안 무리해서 그랬던 것 같다. 초저녁에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다음 날 새벽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이었고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나는 동네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피로가 상당히 풀렸다.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내린 결론이 있다. 나의 공부를 열심히 하되,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자.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한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일상 이야기 2023.11.21

인공지능이 ‘낯선 지능’임을 이해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것

2023년 11월 현재, ChatGPT가 등장했던 초기에 인간 사회에 던져주었던 충격은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나의 경우 인터넷 즐겨찾기에 ChatGPT 홈페이지를 등록시켜 놓았고, 가끔 로그인하여 ChatGPT에게 이런 저런 주제들에 대한 의견을 묻곤 한다. ChatGPT는 상당히 똑똑하며, 나로서는 심사숙고하고 이런 저런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아야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비교적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는다. 나는 처음에 ChatGPT를 시험해보면서 이질감과 당혹스러움을 강하게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ChatGPT를 의인화시켜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는 은연중의 전제를 갖고 ChatGPT에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지고 ..

21세기의 갈릴레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갈릴레오(1564-1642)가 최초로 망원경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미 갈릴레오보다 먼저 망원경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왜 오늘날 우리는 망원경 하면 갈릴레오를 떠올릴까? 갈릴레오가 자신의 물리학적, 공학적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서 망원경을 상당히 개량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대개 적군의 동태를 관찰하기 위해 혹은 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보기 위해 망원경을 활용했다면, 갈릴레오는 그런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그는 달, 금성, 태양, 목성을 보고 그런 천체들이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과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있는 요즘, 나는 이와 같은 갈릴레오의 이야기가 21세기인 오늘날..

APPSA, PSA around the World 참여 후기

나는 한국의 과학철학 연구자이다. 나는 2016년 8월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졸업해야겠다고 결심한 2020년부터 매년 여름 개최되는 한국과학철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매번 발표하고 있다. 나는 올해인 2023년 2월에 박사과정에서 졸업하면서, 한국의 과학철학 유지 및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한국과학철학회가 올해 회원들에게 소개한 두 개의 국제 학술대회인 2023년 APPSA(아시아태평양 과학철학회 학술대회, 2년에 한 번씩 이루어짐)와 2023년 PSA around the World(동아시아 지역에 초점을 맞춘 국제 과학철학회의 온라인 학술대회)에 참여하기로 신청했다. 2023년 APPSA는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빈 대학(Vin Univer..

내가 아닌 철학을 위해

나는 자신을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낭만주의를 일종의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환상 아닌 것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고등학생 시절, 과학철학을 하고 싶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을 전전할 때부터 나는 과학철학에 대한 환상을 가진 낭만주의자였다. 비록 현실과 타협하여 시험을 잘 준비하기 위해 대입 입시학원에 등록했지만, 입시학원에 다닐 때도 나를 지켜준 것은 ‘과학철학’이라는 이상적인 목표였다. 그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목표가 지극히 평범한 능력을 갖춘 나를 계속하게 해 준 결정적인 동기였다. 대학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졸업할 때까지 계속 ‘과학철학’을 이야기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변한 적이 없다. 아내를 만나 ..

독립적이면서도 겸손한 삶

나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의 사람은 아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나이 때 다니던 대입 재수학원에는 과학고 자퇴생들의 반뿐만 아니라 국제고 자퇴생들의 반도 있었다. 당시 부산과학고와 부산국제고는 위치상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학생들도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보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검정고시에서 수석을 했다고 자랑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의 경우 검정고시 공부를 따로 한 것이 전혀 없이 시험을 치러 합격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범생, 전액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학점을 더 잘 받기 위해서 재수강을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정말로 우리 학과의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서관에 ..

일상 이야기 2023.11.04

삶을 위한 철학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체 철학을 왜 하는가? 왜 우리는 나 혹은 나 이외의 존재 혹은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의미를 밝히려고 하는가? 왜 우리는 굳이 지식 혹은 기술이 아닌 ‘지혜(sophia)’를 얻으려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퍽 단순하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철학이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 더 구체적으로 말해, 철학이 우리에게 먹을 것 혹은 입을 것을 주는가? 아니면 철학이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재화를 제공해 주는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만약 철학이라는 과목이 고등학교의 필수 과목이라면 철학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겠지만, 대부분 철학은 선..

실천과 멀리 있지 않은 철학

나는 최근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요즘은 많은 경우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의 철학, 빅데이터의 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반적인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으며 옳지도 않다고 본다. 대세는 세속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대세에는 대세가 되게 된 상당히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대세를 따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공부하며 나는 퍽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출간한 책인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이해와 활용]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천되는 학문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철학이란 무엇이고 빅데이터의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학철학이란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