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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라이헨바흐의 자기소개서 02

1936년 이스탄불대학 철학과 재직 중에 쓴 자기소개서 철학자로서 나는 처음에는 칸트주의를 옹호했다. 하지만 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칸트적인 체계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나의 책 『상대성이론과 선험적 지식』에서 나는 칸트가 선험적이라고 여겼던 시간과 공간의 특성들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이 특성들은 상대성이론에 의해서 오류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이 책에서 나는 지식의 필연적 전제들을 수립하고자 하는 칸트의 계획이 실패하게 된 근거를 제시했다. 인간의 알 수 있는 능력과 자연 사이의 일치는 칸트의 생각처럼 공준화 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인간이 수립한 개념 체계와 자연 사이의 불일치 가능성은 원리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게 불일치하는 경우에..

한스 라이헨바흐의 자기소개서 01

1932년 베를린에서 학술적인 목적으로 쓴 자기소개서 나는 1891년 9월 26일에 함부르크에서 태어났고, 17살 때까지 함부르크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의 아버지는 함부르크의 도매상인이셨다. 나의 가족들 중에 과학자는 없었고 공학자들만이 몇몇 있었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공학자가 되고자 했고, 나는 1910년과 1911년 사이의 두 학기 동안 슈트트가르트의 공과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배웠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나는 나의 관심이 매우 이론적인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나는 베를린 대학, 뮌헨 대학, 괴팅겐 대학을 돌아다니며 수학, 물리학, 철학을 공부했다. 나의 스승들 중에는 플랑크, 좀머펠트, 힐베르트, 보른이 있었다. 수학과 물리학 공부와는 달리 철학 공부는 전혀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위기를 대비하는 것

오늘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미국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다룬 영화인 “빅 쇼트”를 보았다. 이 영화의 주제는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2011년 가을 즈음에 나는 한국장학재단 입사를 위한 필기시험과 논술시험을 치렀는데, 그때 논술시험 주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는 것”이었다. 나는 논술문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기만하는 거품금융을 비판하고, 자본으로 자본을 생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산업을 통해 자본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장학재단은 우리나라의 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대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

일상 이야기 2016.02.03

작업장에서

올해로 내 나이 서른다섯이다. 서른다섯이 많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이 정도 나이라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다섯은 삶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이것저것 생긴 나이이기도 하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에, 왜 내가 수학과나 물리학과가 아닌 철학과로 진학했는지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왜 나는 공군장교가 아닌 육군장교의 길을 택했을까? 왜 나는 곧장 취업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했을까? 대학원 시절, 대체 무엇을 바라고 나는 매일 필사적으로 책들에 매달렸을까? 지나간 나의 삶은 돌이킬 수 없게끔 흘러가버렸고, 그 과거의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서른다섯이면 누구든 한창 일을 할 나이다. 이제 공부하거나 준비하거나 연습..

일상 이야기 2016.01.30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하여

대학 시절에 나는 생활을 위해 꾸준히 돈을 벌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대학 학비를 냈고 생활비를 충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참 후회된다. 나는 너무 편안하게 대학 생활을 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학교에 다녔다는 것, 그리고 졸업을 늦추지 않고 4년 만에 졸업했다는 것은 내게 하나의 위안이 된다. 나는 국립대학에서 인문학인 철학을 전공해 어중간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육군 장교가 되어 군 복무를 했다. 장교로 복무를 한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장교가 되면 매월 봉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는 마땅히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부의 길을 택했다.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았다. 휴일..

일상 이야기 2016.01.24

글 쓰는 사람 03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 편에는 나라는 사람의 삶과 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있다.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어떤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 그러한 표현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고민들에 계속 빠져 있으면 쓰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래서 글쓰기의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일단 무엇이든 써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글쓰기가 원활히 시작될 수 있다. 직장에서 행정업무를 하다 보면 글을 쓸 때가 많다. 행정업무용 글은 업무처리..

일상 이야기 2016.01.23

글 쓰는 사람 02

철학 역시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전문화된 학문 분과이며, 철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현대의 철학자들, 특히 20세기 이후 영미 분석철학자들이 내놓는 작업을 보면 아주 전문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는 내가 학창시절 철학에서 바라던 바와는 사뭇 달랐다. 과학도였던 나는 수학과 과학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철학을 찾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세기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를 들 수 있다. 표준적인 양자역학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인물들과 풍부한 대화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이 책은 플라톤이 쓴 [대화편] 이래의 전통을 따라 등장인물들 사이에서의 대화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

일상 이야기 2016.01.19

글 쓰는 사람 01

나의 기억으로는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 약 4,5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45년 광복 직후에 한반도 전체에 약 2,0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면, 남한만 따져도 총 인구 규모는 두 배가 넘도록 커진 셈이다. 나는 한반도 남단에 거주하는 4,500만 명 중의 한 명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의 한 조직에서 일하면서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이후인 1982년에 태어나 나의 아버지 세대에 비해 월등하게 풍부한 문화적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나는 서양식 교육제도 아래에서 초중등 교육과정을 거쳐 고등교육 과정을 마쳤다. 내가 거쳐 온 교육과정은 일반적인 성격이 강했다. 나는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시험문제를 푸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였지만,..

일상 이야기 2016.01.17

이런저런 생각들

오늘은 서울에 출장을 다녀왔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우리나라의 공공기관들은 경영실적평가를 받는다. 오늘 오후에 ’15년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보고서 작성에 관한 설명회가 서울지방조달청 3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나는 팀장님과 과장님을 모시고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혼자서 고속열차를 타고 동대구로 돌아왔다. 팀장님은 서울에 계신 부모님 집에 하룻밤 머무신다고 했다. 과장님은 아내와 아이가 서울에서 지내고 있어, 재단이 서울에서 대구로 이전한 이후 계속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계신다. 설명회가 끝나고 혼자서 동대구로 돌아오며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올해 나는 서른다섯이다. 직장생활 5년차다. 선배들이 많아서 대리(5급)에서 과장(4급)으로 승진하는데 꽤 시간이..

일상 이야기 201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