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한스 라이헨바흐, [원자와 우주] 08: 빛의 전기적 특성

강형구 2016. 5. 24. 06:54

 

8. 빛의 전기적 특성

 

   파동 이론과 입자 이론이 경쟁하고 점차적으로 실험 결과들이 축적되면서 파동 이론이 승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파동 이론만이 이론적인 개념들을 사용하여 거울, 격자(grating), 망원경, 현미경 등을 이용한 복잡한 실험 장치들로부터 얻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이 이와 같은 상태의 지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에테르 이론을 통해 파동 관념에 대한 정당화를 추구했던 것은,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안된 이론을 좀 더 포괄적인 이론으로 설명함으로써 설명을 좀 더 심오하게 만들고자 했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설명하는 것, 이해하는 것은 다양한 사실들을 하나의 일반적이고 통합된 개념으로 종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파동 이론의 설명은 그 시대의 가장 일반적인 물리적 지식인 역학 안으로 파동 개념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역학은 뉴턴, 오일러, 라그랑주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역학은 질점의 역학이자 연속체의 역학, 다시 말해 질량이 매끄럽게 퍼져 나가는 것의 역학이었다. 실제로 프레넬이나 윌리엄 톰슨의 에테르 이론은, 이미 알려진 역학적 법칙들을 따르는 미세한 기초 물질들의 탄성적 떨림으로 빛의 파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수학과 실험들을 고안하면서(exertion) 몇 세대에 걸쳐서 이러한 시도를 추구하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역학적 물리학의 장대한 계획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고 있다. 우리는 에테르의 역학이, 거시세계의 물질에 대한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법칙들을 미시세계의 물질에로 적용하고자 했던, 허용할 수 없는 시도를 의미함을 알고 있다. 우리는 미시적 세계는 그 고유의 개념 체계를 필요로 하며, 이 체계는 중간 차원에 적합한 체계와는 아주 다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미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 개념은 이전 세대의 탐구자들에 의해서 아주 어렵게 얻어진 것이다. 이들의 초기 시도들이 실패했기에 우리가 개념들의 좀 더 일반적인 체계를 가지고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 체계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연의 시험에 더 잘 견딜 수 있는 새로운 개념 체계를 찾는 것이 진정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빛의 이론이 발전하는 가운데, 이 문제를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완전히 다른 문제들을 따라 풀이하는 것이 더 성과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빛의 파동 이론과 관계된 새로운 지식 영역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전기 이론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대개 전기라는 단어가 전선 안에서 흐르는 이상한 물질을 의미한다. 전기 이론이 발전하던 초기에도 이 새로운 물질에 대한 그와 비슷한 상이 수립되었다. 패러데이의 천재성 덕택에 이후 전기에 대한 훨씬 더 일반적인 개념이 발견될 수 있었다. 차폐된 금속 구가 높은 전압을 가진 물체와 연결되면 전기적인 물질이 구 쪽으로 흘러들어간다. 이는 전기에 대한 옛 개념과 상당히 부합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패러데이는 금속 구 뿐만 아니라 구 주변의 공간 역시 전기적인 물질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왜냐하면 구와는 전혀 금속적인 접촉이 없는 경우에도 구 근처에서 전기적인 효과가 탐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한번 쯤 종이로 된 작은 공들이 대전된 금속 구에 끌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현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전기력이 자유로운 공간을 통과해서 우리가 끌림을 관측하는 지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패러데이는 자유 공간에서 전기력이 작용하는 상태를 전기장이라고 불렀다. 패러데이에 따르면 전기는 전적으로 다른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전도체 안에서는 전기적 물질로 존재하며 자유 공간에서는 전기장으로 존재한다.

 

   패러데이의 동포였던 클럭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개념에 수학적 이론의 형태를 부여했다. 맥스웰의 이론에 따르면 전기장은 교류 전류의 경우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기장은 전도체의 판과 판 사이를 변위 전류의 형태로 이동하며, 판 사이의 공간을 통과하여 전기 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맥스웰은 장의 개념을 사용하여 전기에 대한 근본적인 법칙들을 소수의 방정식들로 공식화했는데, 이는 패러데이의 실험 탐구를 일반화함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 맥스웰 방정식은 지금까지도 전기에 대한 체계적 연구의 으뜸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모든 종류의 보이지 않는 전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맥스웰은 자신이 개발한 수학적 도구들로 이미 알려져 있는 현상들만을 정당화하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계산에 기초해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을 예측해낼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는 순수하게 수학적 형태를 띠고 있는 자신의 근본적인 전기 법칙들이 전기 파동의 존재를 함축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맥스웰의 계산은 처음에는 그저 수학적인 연역에 지나지 않았다. 맥스웰은 독창적인 계산을 통해, 자신의 근본 공식들로부터 파동의 형태로 공간을 통과하는 전기적 상태의 전파를 입증할 수 있는 다른 공식들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맥스웰의 시대에는 실제로 그와 같은 파동을 생산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부재했다. 더 놀라운 것은 맥스웰 이론의 기반이 되는 수학적 도구에 대한 맥스웰 본인의 자신감이었다. 실제로 맥스웰은 자신의 이론이 빛의 파동 이론에 적용될 것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빛의 파동이 전기적 파동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독일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는 실험적으로 그와 같은 전기적 파동을 생성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짧게 불꽃이 이는 동안 라이덴 병을 방전시켜 파동을 생성해냈는데, 이 파동은 더 이상 금속 전도체에 제한되지 않고 공간을 통해서 자유롭게 이동했다. 헤르츠의 이러한 발견은 무선전신과 전화통신의 시작점이 되었고, 오늘날 모든 사람은 라디오를 통해 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진 두 점 사이에서 소리와 소식들이 전송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우리는 한때 전기적 파동의 존재 자체가 의심된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백 킬로와트의 방송국, 증폭관이 달린 우리의 민감한 전파 수신기는 초기 탐구자들에 의해 뿌려진 씨를 수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에 헤르츠는 아주 원시적인 도구들을 이용해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의 전송 기구는 주기적으로 불꽃이 이는 원형 전선이었으며, 그의 수신기 역시 비슷한 원형 전선이었다. 그는 전기 공명 현상을 이용하여 불꽃이 전송기와 수신기 사이를 움직이도록 했다.

 

   이제 우리는 라디오로부터 친숙한 개념인 파장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파장이란 파동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때의 길이로서, 파동의 마루와 골을 합친 거리라고 할 수 있다(그림 12). 그와 같은 파동이 계속되면 파동의 행렬이 이루어진다. 물 위에 있는 배가 해변까지 움직이는 파동을 만들 경우, 배로부터 해변까지의 거리는 파장이 아니라 파동 행렬의 길이 또는 파동의 범위라고 한다. 수면파의 파장, 즉 마루의 시작점에서 다음 마루의 시작점까지의 길이는 수 미터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라디오의 전자기파는 200~2000미터의 파장을 가지는데, 이는 전송국의 전기적 동조(tuning)에 의한 것이다. 파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주파수 또는 진동수다. 전송 안테나에 있는 전류가 앞뒤로 매우 빠르게 움직일 때, 1초에 아주 많은 마루와 골들이 서로 교차하는 경로로 서로를 뒤따르기 때문에 짧은 파동들이 유도된다. 따라서 우리는 파동을 그것의 파장 또는 진동수로 특성화할 수 있고, 대개 두 개념을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라디오 전파에서조차 진동수는 초당 수백만에 이르며, 더 짧은 파동의 경우에는 진동수가 활씬 더 높아진다.

 

   하인리히 헤르츠가 작업할 때 사용했던 파동은 오늘날의 라디오 파동에 비해서 짧아서 그 길이가 수 미터 정도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헤르츠의 작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빛 이론과 관련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전기적 파동이 빛과 비슷한 속성들을 갖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울을 가지고 전기적 파동을 반사시킬 수 있었으며, 포물선 형태의 거울에서 전기적 파동을 모을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전기적 파동의 마디와 마디 사이를 탐지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거울로 라디오 파동을 반사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라디오 파동만큼의 크기를 갖는 거울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예외적으로 짧은 파동을 사용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파동을 전송하는 전송기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원리상 헤르츠의 거울과 유사한 것이다. 이러한 거울이 겉보기에 광학 거울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거울은 단순한 전선들의 연결망에 지나지 않는다.

 

   빛의 파장은 실제로 헤르츠 파동의 파장과는 아주 다른 수준의 크기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빛 파동의 길이는 400~800만분의 1밀리미터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빛의 진동수가 수십억에 이름을 의미한다. 광학 파동과 전기 파동 사이의 긴 틈은 실험 작업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좁혀졌다. 최초의 성공은 일반적인 광원으로부터 방출된, 800만분의 1밀리미터보다 더 큰 파장을 가진 파동을 탐지한 데 있었다. 이 파동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은 이른바 광학 영역 밖에 있는 파동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파동은 적외선이라고 불린다. 이를 시작으로 물리학자들은 헤르츠 파동과 빛 파동 사이에 있는 모든 가능한 진동수를 가진 파동들을 생산해내는 방법을 점차적으로 습득해나갔고, 오늘날에는 이 틈이 완전히 메워졌다. 이상하게도 특정한 파장 영역에서 서로 다른 생리학적 효과들이 드러났다. 3~5미터 정도의 파장을 가진 파동들은 쥐나 곤충들처럼 작은 생명체에게 치명적이었고 인간의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라디오 파동은 인간의 신체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라디오 파동과 광학 파동 사이 영역에 있는 파동이 기술적으로 응용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중요한 가능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광학 스펙트럼에서 더 짧은 파장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자외선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자외선 역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은 이 광선들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외선은 사진 건판에 강하게 작용한다. 자외선은 태양빛에 포함되어 있으며, 대기에 의해서 흡수되지 않는 높은 진동수 영역에 있다. 자외선이 의학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 역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좀 더 짧은 파동을 살펴보고자 하면 아주 큰 틈을 지나 뢴트겐 광선 또는 X선에 이르게 되는데, 광선의 명칭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X선에서 파장은 수천만 분의 1밀리미터에서 수백만 분의 1밀리미터까지 이른다. X선의 강력한 투과력 때문에 X선은 인간의 몸 내부를 조명하는 의학적 용도로 사용된다. 이는 X선의 짧은 파장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뢴트겐 파동이 갖고 있는 동일한 속성 때문에 이 광선이 파동적인 본성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 하인리히 헤르츠가 사용한 증명 방법에서는 파동의 마디와 마디 사이가 직접적으로 탐지될 수 있었지만, 자연히 이 방법은 짧은 파동에 대해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빛 파동과 관련하여 사용한 굴절하는 속성 역시 적용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술적으로 만들 수 있는 틈새는 너무나 큰 까닭에 X선의 짧은 파장에 관련해서는 회절 현상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분의 1밀리미터 크기의 틈새를 통과하는 뢴트겐선은, 빛 광선이 열린 문을 통과할 때 휘어지는 정도로 아주 미약하기 휘어질 따름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는 아주 독창적인 생각을 해서 뢴트겐선의 회절상을 최초로 얻을 수 있었다. 그는 틈새를 이용하는 대신 규칙적인 배열을 가지고 있는 분자들로 구성된 결정체를 이용하여 기술적으로 만들어진 틈새를 대체했다. 라우에는 뢴트겐선이 결정체를 통과하여 사진 건판에 도달하도록 하였으며, 건판 위에서는 검은 점들이 특정한 규칙적 패턴을 보여주었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라우에는 건판의 패턴으로부터 뢴트겐선의 파장을 추론할 수 있었다. (131쪽을 보라.)

 

   좀 더 짧은 파장은 라듐의 감마선과 다른 방사 물질로부터 발견되었다. 이 파동들은 수십 억분의 1밀리미터의 파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측정되었고, 그렇기에 아주 높은 투과력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관측된 파장들 중에서 가장 짧은 파장을 갖고 있는 광선은 이른바 우주선이다. 우주선이란 우주 깊숙한 곳에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광선으로, 이 광선의 근원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물리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우주선은 광대한 영역에서의 우주적인 과정에 의해 생성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하는 전기적 힘은 실험실에서는 생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수십 억 분의 1밀리미터의 극도로 짧은 파장을 갖고 있으므로, 우주선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9억 볼트 정도의 장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측된다. 헤스(Hess)에 의해서 최초로 발견된 우주선은 미국의 학자 밀리컨(Millikan)과 독일의 학자 콜회르스터(Kohlhoerster)에 의해 철저하게 연구되었다. 우주선은 극도로 강력한 투과력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한 예로, 레게너(Regener)는 콘스탄스 호수 표면으로부터 244미터 아래에서 우주선을 탐지한 바 있다. 많은 학자들은 우주선이 파동이라기보다는 입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 추측은 밀리컨에 의해서 반박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방사선이 지구의 자기장과는 상당한 정도로 독립적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상이 전기적 파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며, 우리는 빛의 전기 이론을 이러한 지식을 기초로 수립했다. 빛의 전기 이론에 따르면 빛은 전기적 파동의 스펙트럼 영역 중에서 작은 부분을 나타내고 있다(그림 13). 우리의 눈은 특별히 이 부분의 파동에 민감하다. 우리는 오직 중개 도구의 도움을 받음으로써만 다른 영역의 파동이 전달하는 정보를 수신할 수 있다. 인간의 망막이 이러한 주파수 영역에 적응하게 된 이유는, 모든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게는 햇빛이 가장 중요한 광선 방사의 근원이며 광학 스펙트럼 중에서 최대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광학 영역에 있는 전기적 파동을 수신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춘 생명체는 생존을 위한 준비를 잘 갖춘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빛에게 특별한 논리적 또는 철학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눈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언젠가 복잡한 도구를 사용하여 촉각과 청각을 통해 빛의 존재를 증명할 것이다. 이는, 비록 라디오 파동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몸을 통과하지만, 우리가 라디오 파동을 소리 파동으로 번역하여 들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록 우리보다도 더 시력이 약한 존재에게는 자연 탐구가 훨씬 더 힘들지라도, 그와 같은 존재 역시 동일한 물리적 사물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존재에게 별의 존재는 단순한 관측에 의해서 증명될 수 없을지라도, 탐구를 통해 그 존재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빛은 망원경에 의해서 수집된 후, 들을 수 있는 음조를 생산할 수 있고 빛에 민감한 세포 위에 쪼여질 것이다. 만약 그와 같은 도구가 점차적으로 회전하여 우주의 모든 방향을 탐색할 경우, 특정한 방향에서 소리가 들릴 수 있다. 이 소리는 아마도 별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대전된 전위계(electrometer)를 산 위로 가져가거나 수면 밑으로 가져가서 우주선을 탐지하는 것은, 전위계가 점차로 방전되는 것과 동일한 종류의 현상이다. 오직 인간만이 이와 같은 우회적인 증명에 제한되어 있는 반면, 짧은 파장 영역에 민감한 눈을 갖고 있는 생명체는 우주선 방사를 하늘의 특정 영역에서 일어나는 빛 쬐임 현상으로 인식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광학적 스펙트럼 영역에 있는 색깔에 대한 감각만을 갖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종류의 파동에 대해서 우리는 색깔과 비견할 만한 감각을 부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색깔은 물리적인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경험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눈으로 우주선을 지각할 수 있는 생명체는 아마 우리에게는 전혀 지각되지 않는 색깔 감각을 우주선에 부여할 것이다. 이러한 색깔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색깔이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낯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낯설 것이다. 이와 같은 고찰은 빛에 대한 우리의 논의 초기에 도입했던 구분, 즉 빛에 대한 감각과 물리적 행위자로서의 “빛”의 구분을 더 명료하게 해준다. 인간인 우리에게 “빛” 감각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눈 감각이 400~800 백만분의 1밀리미터 파장의 스펙트럼 영역에 대응한다는 것은 하나의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왜 물리학자가 빛 감각에 대한 심리학적 본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분명한 이유가 된다. 만약 우리가 물리적 행위자인 빛의 본질을 색깔과 밝기 감각 안에서 찾고자 한다면 이는 결코 전기적 파동 스펙트럼 안에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적 경험 중 그 어떤 것도 이러한 종류의 파동에는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물리적 지식을 배제시키는 셈이 된다. 다른 한편, 우리가 전기적 파동의 계열 속에 빛을 자리매김하게 되면 물리학자가 빛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해진다. 그가 빛에 대해서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라디오 파동과 같은 기묘한 전기적 진동이다. 이 진동과 관련되어 있는 법칙들과 이 진동의 속성들이 물리학자의 광학 도구들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물리학자에게는 가시적 스펙트럼과 비가시적 스펙트럼 사이의 경계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학자에게 빛 파동은 라디오 파동과 같이 자연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가 특정한 좁은 영역대의 전기적 파동과 매우 개인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인간 존재로서의 우리에게는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이러한 파동의 내재적 본성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전기적 파동들 사이에 빛을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는, 빛의 파동 이론과 동반되었던 최초의 복잡한 물음 및 이 물음이 초래한 막대한 개념적 어려움들에 대해서 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에테르의 문제다. 만약 빛이 전기적 파동의 특별한 형태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빛을 위한 특별한 에테르의 문제는 없어진다. 대신 우리가 대전된 금속 물체들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는, 진동하는 전기장 자체가 문제가 된다.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문제가 바뀐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전기장이 에테르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에테르의 문제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전기장에 에테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름을 옮긴다고 해서 예전의 에테르 문제를 그토록 복잡하게 했던, 에테르의 역학적이고 물질적인 속성들에 대한 물음들 역시도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에테르가 그저 전기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는 에테르가 거시적 물체의 속성들을 가져야 함을 요구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전기장의 본성을 위해 발전시켜 온 근본적인 개념들을 사용해서 실체의 새로운 개념을 구성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는 에테르 개념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정의를 하게 된다.

 

   전기장이 역학적 물체와 다르게 하는 근본적인 속성이 있다. 역학적 물체는 확정된 운동 상태를 갖는다. 즉, 어떤 물체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이 물체가 다른 물체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확정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배가 물 위에 떠 있을 경우 우리는 배가 물에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비행기의 경우에도 비행기가 비행기를 둘러싼 공기에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때는 모터가 회전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면 된다. 그러나 전기장의 경우, 이에 대응하는 확실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물체 위에 있는 두 관찰자를 상상할 수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균일하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전기장을 통과하고 있다. 이 경우, 둘 중 그 누구도 자신만이 전기장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전기장의 결정된 운동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전기장이 하나의 특정한 물질적 계를 그 장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다고 식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전기장을 역학적 물체와 차별화시키는 두 번째 특성이 있다. 거시적 물체의 근본적인 특징은 그것의 침투불가능성(impenetrability)이다. 즉, 하나의 물체가 존재하면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 다른 물체가 존재할 수 없다. 물체는 반드시 이러한 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합당해 보인다. 원자 이론은 기체 혹은 액체의 상호 침투를 설명할 때 이러한 침투불가능성 원리를 위배하지 않는다. 원자 이론에 따르면 상호 침투란 가장 작은 입자들이 서로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전기장의 경우에는 상황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왜냐하면 두 개의 전기장은 완전한 연속성을 유지하며 서로 중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두 전기장은 상호 침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실체 개념을 새롭게 변화시킴으로써 현대 물리학은 에테르의 문제만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현대 물리학은 문제의 공식화가 성과 없는 논의만을 불러일으켰을 경우, 이에 관련된 개념들을 혹독하게(rigorous) 검토하여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만약 누군가가 에테르가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을 경우, 그는 기만적인(illusory) 용어 싸움에 휘말려 탈출하지 못할 것이고, 이 문제에 둘러싸여 빠져나가지 못한 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dilettanism) 문제를 다룰 것이다. 우리가 공간 속을 채우는 것의 이름이 아니라 그것의 속성들에 대해서 물을 때에만 문제는 명확하고 논리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장 물질은 명확한 운동 상태를 갖지 않으며 서로 중첩된다는 속성들을 갖는다.

 

   이와 동시에 이상과 같은 고찰은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 문제에 관해 제시한 근본적인 변화를 설명해준다. 마이컬슨의 실험이 지구가 우주 속을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빛의 속도가 모든 방향에서 동일함을 보여주었을 당시에 에테르의 역학적 이론은 비일관성의 문제에 직면했다. 에테르 이론에 따르면 에테르에 상대적으로 정지한 상태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적인 에테르에 관해서는 그와 같은 정지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와 같은 움직이는 계는 “에테르에 상대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테르에 상대적인 운동에 대한 모든 측정은, 측정이 이루어지는 계가 어떤 운동 상태에 있는지와 관계없이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 따라서 빛의 속도는 다양한 운동을 하는 계에서 일정한 상수로 측정되었다. 좀 더 철저한 수학적 연구는 이와 같은 진술이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동시성 정의의 변화와 관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3장에서 이러한 가능성의 개념적 기초를 제시한 바 있다. 빛의 속도 일정의 원리에 대한 좀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해당 주제에 대해서 필자가 쓴 다른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우리는 속도의 측정이 독립적인 자료의 확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형태가 없는 전기적 장의 흐름에 대해 하나의 구조를 수립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는 것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붙박이(built-in) 구조는 특정한 범위에서 임의적이며, 서로 다른 운동 상태에 있는 계에 대해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동일하도록 배열될 수 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왜 빛의 속도가 모든 속도의 한계 속도 역할을 하는지, 왜 이러한 두드러지는 특성을 가지는지도 분명하다. 우리가 가장 빠른 형태의 영향 전달이 빛이라고 말할 때는 단지 빛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라디오 파동, 광 파동, 뢴트겐 파동 등 모든 전기적 파동들은 이와 같은 예외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기적 장이 모든 물질의 내부를 관통한다면, 또한 전기적 장이 물체 안에 있는 원자와 원자 사이에서 힘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힘의 역학적․열적․광학적 본성은 기본적으로 힘의 전기적 전달이며 전기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 물론 힘의 전달은 더 느려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전기적 힘은 우선 역학적 전동을 할 수 있도록 원자들을 준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체의 한 끝을 잡은 뒤 흔들어 이 운동이 탄성력에 의해 다른 쪽 끝으로 전파된다고 하자. 그러나 탄성력은 결코 전기적인 힘보다 더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 전기적 파동은 모든 인과적 전달의 기본적인 형태이다. 이것이 바로 전기적 파동이 자연에서 예외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