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한스 라이헨바흐, [원자와 우주] 10: 열적 과정의 기본 입자, 분자

강형구 2016. 5. 26. 06:26

 

 

. 물질

 

10. 열적 과정의 기본 입자: 분자

 

   우리 눈에 매끄럽고 단단하게 비친다고 하더라도 모든 물체는 내부적으로 무수히 많은 작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 즉 물체는 알갱이들로 구성되고 알갱이들 사이에는 틈이 있다는 생각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우리는 이러한 생각이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서 충분히 발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그 이후의 과학 발전 과정에서도 살아남아, 19세기 초에 이르면 이 생각은 완전히 새롭고 더 심오한 방식으로 정당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믿음은 분명 뿌리 깊고 강한 근원을 가질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사실 물질의 원자 이론으로 이끄는 개념들은 가장 기본적인 현상들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원자론적 개념들을 필요로 한다.

  

   원자 이론에 이르게 하는 두 가지 종류의 현상들이 있는데, 이 두 종류의 현상들은 조심스럽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첫째 현상은 물질의 압축성(compressibility) 및 유연성(pliability)과 같은 속성들에서 드러나는 탄성 변화로서, 이 속성들은 액체와 기체의 경우에는 완전한 유동성(fluidity)으로 퇴화된다. 이는 물리적 변화로서, 물질의 겉보기 형식의 변화이다. 둘째 현상은 물질의 내부적 변환과 관련이 되며, 그렇기 때문에 화학에 속한다. 이러한 두 종류의 현상은 물체들이 단단하고 미세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로 이끄는데, 이 미세한 부분들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가분자라는 뜻을 가진 원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최근의 탐구에 따르면 이보다 더 추가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물리적 변화에서 작용하는 것은 실제로 원자들이 아니라 원자들의 복합체인 분자들이다. 그리고 원자라는 이름은 화학 변환의 기본이 되는 입자들을 일컫는다. 따라서 원자는 분자의 일부를 구성한다. 또한 원자가 분리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 원자 역시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원자의 구조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 특정한 단계에서 물질의 혼합 단위 즉 기본적인 복합체가 등장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자 또는 분자는 여전히 상대적 단위로서의 특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비록 원자나 분자가 절대적 단위로서의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이제 문제는 분할가능성이 끝없이 적용되느냐, 아니면 결국에는 궁극적인 절대 단위가 있느냐의 문제가 되지만, 이 문제는 우리가 원자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 검토하는 이후의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제 우리는 앞서 언급한 순서대로 우리의 고찰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그에 따라 가장 먼저 우리는 분자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이 장에서 우리는 원자 이론의 물리적 측면만을 고찰하고, 이 이론이 탄성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고체 물체를 빽빽하고(compact) 완벽하게 밀집된 물질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물체가 갖는 유연성과 압축성을 믿기 어렵게 된다. 하나의 금속 조각의 경우에도 압축되어 더 작게 변해 더 좁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이 물질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 및 질량 보존의 법칙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편견 없이 판단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가능성을 믿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고, 이는 과학자가 그러한 사례에 대한 설명을 발명할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과학자조차도 항상 원자 구조에 대한 더 단순한 개념을 선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 이론은 설명을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고체의 원자 및 원자들 사이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체 원자는 변하지 않고 늘 단단하며, 물질이 줄어들 때 함께 줄어드는 것은 오직 원자들 사이의 간극(interstice)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물질의 유연성은 이러한 간극의 속성이 된다. 유연성이 큰지 작은지에 따라서 우리는 부드러운 물질 또는 단단한 물질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물질의 실재적인 핵심(kernel)인 원자는 이상적으로 단단한 물체로서, 원자 그 자체는 완벽히 변화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고찰은 오늘날까지도 원자 개념의 근원을 구성하지만, 오늘날에는 원자 개념이 근본적으로 그 형식을 변화시켰다. 우선 원자가 이상적으로 단단한 물체라는 기술은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원자가 물리적 변화와 관련하여 고정된 채로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원자의 내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미 우리는 물리적 변환에서 고정된 핵 역할을 하는 것은 원자가 아니라 복합적 구조물인 분자임을 지적한 바 있다. 다른 한편, 물질 내에는 핵 말고도 핵들 사이를 연결하고 결속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실제로 고대인들은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취급해서 원자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갈고리를 달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물질의 내부는 그렇게 투박한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사고는, 설명되어야 하는 성기고(coarse) 가시적인 물질의 현상을 미시적인 차원으로 단순히 전이(transference)하는 것이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원자들 사이에는 행성들의 운동에서 작용하는 것과 유사한 힘이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때 행성들과 관련된 힘은 자유 공간을 통과하며 탄성 변형을 일으키는, 밀고 끌어당기는 힘이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은 고려들마저도, 고대 원자론자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근원으로부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물리적인 원자 이론을 수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의 원자 이론은 물리학의 영역에서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두 번째 종류의 현상들이 탄성 현상과 결합하여 원자론적 설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종류의 현상들이란 열 현상들이다. 지난 세기에 열 이론이 발전함에 따라 물리학은 원자 이론을 위한 장대한 기초를 놓게 되었으며, 이제 원자 이론은 물리학의 본질적인 기초가 되었다.

  

   이 관계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물질 입자들이 연속적인 운동 상태에 있으며, 이 운동이 열과 관계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물체가 더 따뜻할수록 물체 입자들의 운동은 더 격렬해진다. 따라서 이 이론은 운동학(kinetic) 이론 또는 운동 이론이라고 불린다. 우선 이 이론은 물질의 세 가지 서로 다른 기본적 상태들(고체, 액체, 기체 상태)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단순한 설명을 제공한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모든 물질들은 이러한 상태의 계열을 통과하게 된다. 운동학 이론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상태들은 다음과 같이 분리된다. 기체 상태에서 분자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기체 분자들은 마치 벌떼처럼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며, 연속적으로 충돌하고 튕겨나간다. 액체 상태는 벌집 내부와 대응한다. 액체 안에서 분자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액체를 떠날 수는 없다. 간혹 가다 분자가 벌집으로부터 떠나는 벌처럼 액체 질량으로부터 벗어나곤 하며, 이는 우리가 증발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낳는다. 마지막으로 고체 상태에서는 입자들의 자유로운 유동성이 사라진다. 입자들은 앞뒤로 진동하기는 하지만, 각각의 입자들은 자기 고유의 위치 근처에서만 움직인다. 이는 마치 숲 속의 나무들이 자신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움직이지 않으면서 바람에 의해서 계속 흔들리는 모양새와 흡사하다.

  

   물리학자들은 그와 같은 개념들로 고체, 액체, 기체 물질들의 법칙들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설명은 기체와 관련하여 가장 단순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와 같은 설명의 예로, 움직이는 분자들에 대한 가정으로부터 이미 알려져 있는 거시적인 기체 물질의 법칙들을 연역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기체의 압력은 분자 무리들의 충돌로 단순하게 설명된다. 단일 입자의 충격은 너무 작아 그 자체로는 지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1초 내에 일어나는 충돌들의 수가 막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수히 많은 분리된 충돌 대신 이 충돌들을 합했을 때 나타나는 균일한 압력을 느낀다. 우리의 지각이 갖는 정확도는 부득이하게 제한되기 때문에 분자 무리들의 진정한 특성과 관련해서 우리를 기만하며, 우리로 하여금 연속적이고 균일하게 압력을 가하는 물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동시에, 수많이 분리된 충돌들에 의한 압력의 형성은 기체의 압력과 부피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는 법칙을 설명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부피가 두 배로 줄어들었을 때 압력은 두 배로 들어난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체를 그 이전 부피의 절반으로 줄이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는 분자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보다 두 배는 더 자주 벽에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두 배의 충돌 빈도는 현상적 압력이 두 배 증가함을 뜻한다. 더 나아가 이 법칙이 온도의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서 확장될 경우, 이러한 확장 역시 운동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체의 온도가 올라갈 때 분자들의 속도 역시 올라가며, 따라서 각각의 충돌 역시 더 격렬해진다. 따라서 일정한 부피에서 온도가 증가할 때 압력이 증가하는 것은 충돌수의 증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충돌이 갖는 힘의 증가로써 설명된다. 이와 같은 개념의 수학적 귀결들 역시 철저하게 탐구되었다. 따라서 운동학 이론은 물질의 법칙을 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운동학 이론이 물리학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이며, 오늘날 그 어떤 물리학자도 이 이론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론의 정량적인 내용을 적용하는 것은 우리가 앞서 기술했던 단순한 사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체와 액체 내부의 복잡한 과정들, 끊임없이 서로 부딪치며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분자들의 운동 역시도 정량적으로 연구되었으며, 이러한 연구에 따라 액체와 기체의 내부 마찰에 대해 수치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내부 마찰은 연속적인 충돌에 의해 분자들의 운동이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자들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는 점을 덧붙이자. 일상적인 온도에서 분자는 초당 1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데, 이는 매우 빠른 속도이며 지구상의 그 어떤 운송수단보다도 더 빠르다.

  

   이제 우리는 현대 물리학적 사고의 특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수정에 대해서 살펴보자. 지금까지 우리는 입자들의 운동이 빨라짐에 따라 열이 증가한다고, 즉 열과 분자 운동이 서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열과 분자 운동이 서로 동일한 하나의 것이라는 진술에 대해서 검토해보겠다. 내부 운동 상태와 구분되는 열의 특별한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 운동 상태는 열적 상태의 귀결이 아니다. 내부 운동 상태는 열적 상태 그 자체, 열은 분자들의 운동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불필요한 구분들을 거부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적용했다. 라이프니츠는 이미 이 원리를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로 공식화했고, 우리는 물리학의 아주 다양한 부분들에서 이 원리의 영향을 추적해볼 수 있다. 이 원리는 오늘날의 물리학자에게는 너무나 친숙해서, 물리학자는 본인이 이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 일반인이 볼 때는 이 원리를 믿기 힘들 것이다. 일반인은 열이 분자들의 운동을 유발하지만, 열이 분자들의 운동이라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에게 열에 대해서 말해주는 모든 것들과 상치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열이 하나의 상태이며, 열에 대해 우리가 갖는 느낌이 독특하기 때문에 이 느낌은 우리가 운동에 대해 갖는 느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 개의 상이한 느낌을 제공하는 열과 운동이 서로 같다고 보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와 같은 반대는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감각과 느낌을 외부 세계, 객관적 사물들의 세계로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운동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의 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과는 독립적이며 우리의 존재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근육이 잡아당겨짐을 느낌으로써 힘을 경험하지만, 사실 힘이란 우리에게 낯설며 만질 수 없고 우리의 의식 바깥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그리고 열 역시도 우리에게 낯설고 객관적이며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따뜻함의 느낌을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따뜻함의 느낌은 우리가 피부에 갖고 있는 특별한 신경이 분자들의 떨림 충격에 반응할 때 일어난다. 이때 촉각 신경은 이러한 충격들을 압력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특성을 갖는 감각으로서 등록한다. 이러한 감각질이 우리가 따뜻함의 느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이미 우리가 빛의 경우에 기술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빛 역시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사물들의 진동이지만, 우리의 신경은 빛을 특별한 질을 갖는 감각, 즉 빛의 감각으로 등록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느낌이 갖는 특성을 외부의 자연에게 전이한다면, 이는 물리적 사건과 감각질 사이의 근본적인 연관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은 전적으로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인식론은 물리적 현상인 열을 역학적 운동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서 조금의 제약도 될 수가 없다. 열과 역학적 운동을 동일하게 봄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이해를 더욱 더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양한 현상들의 공통 근원을 찾고, 자연적인 힘들의 다양한 상호작용 뒤에 있는 통일성을 찾는 것이 물리적 이해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운동학 이론에서 이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겉보기에 서로 다른 두 사물들인 열과 운동이 서로 같다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궁극적인 원인들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식론적 고찰은 열과 운동의 동일화와 같은 절치를 결코 정당화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정당화는 확고한 기반을 제공하는 구체적인 물리적 고찰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고찰이 없다면 인식론은 무익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두 현상이 식별불가능한 조건에 있을 경우 두 현상이 동일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사용했다. 열과 운동의 경우에 물리학은 이 조건이 만족함을 높은 정도의 정확성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적으로 다른 측면에서의 입증도 추가되었다. 자연에 대한 원자론적 가설들과는 낯섦에도 불구하고 분자 이론에 우호적인 최종적 결정을 제공하게 된 입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위대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진 에너지 보존의 정리였는데, 이 원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열의 운동학 이론에 도입되어 이 이론이 수용되게 하는 근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오늘날 총체적인 자연 현상에 일반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에너지 보존 법칙은, 처음에는 오직 역학의 영역에만 적용되는 법칙으로 생각되었다. 열 현상에도 타당하다는 것이 인지되면서 이 법칙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로베르트 마이어에 의해서 이러한 타당성이 확립되었는데, 마이어는 열이 역학적 일로 변환될 수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환에는 수치적 연관도 있었으며, 특정한 양의 열은 항상 특정한 양의 역학적 일을 생성했다. 이것이 바로 마이어의 발견이 갖는 결정적인 의미였다. 이제 열과 일의 동일함은 근본적인 수치적 관계에 의해서 지지된다. 열은 특별한 형태의 일로 인지되었고, 다른 특수한 형태의 일인 역학적 일로 변환 가능했다. 비록 이러한 변환이 다소 신비로운 특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운동학 이론은 이러한 변환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아주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열은 역학적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열과 역학적 일이 동일하다는 것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다. 열이란 분자들의 무질서한 운동, 수백만의 작은 분자들 사이의 격렬한 충돌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일의 양이다. 다른 한편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역학적 일이란 물체 전체의 한 방향 운동에 포함되어 있는 에너지이며, 이때 분자들은 단일하고 결합된 힘으로 하나의 방향으로 동일하게 움직인다. 이제 일이 열로 변환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변환은 질서 있는 운동이 무질서한 운동으로 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입자들과 입자들 사이의 충돌이 에너지를 분배하는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원리의 이와 같은 명료화는 운동학 이론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논증을 제공하였으며, 지금껏 열의 역학적 이론으로 불리어왔다.

  

   둘째로, 열에 관련되어 아주 기본적인 또 다른 사실 역시 운동학 이론에 의해 설명되었다. 이른바 열역학의 첫째 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 이외에도 열역학의 둘째 법칙이 제시되었는데, 이 둘째 법칙은 물리적 과정이 일어나는 방향에 대한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방향 있는 과정과 방향 없는 과정을 구분한다. 모든 순수한 역학적 과정들은 가역적이기 때문에 방향이 없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당구공이 충돌하는 과정은 역행될 수 있다. 두 당구공의 충돌 경로 끝에 두 공을 다시 두고, 충돌 경로 마지막에서 두 공이 가지고 있었던 동일한 속력 및 정확하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열 현상을 포함한 모든 과정들은 비가역적이고 일정한 방향을 갖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한 가장 단순한 예는 열이 따뜻한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 옮겨가는 것이다. 두 물체가 접촉했을 때 차가운 물체에서 따뜻한 물체로 일정량의 열이 옮겨져, 차가운 물체는 더 차가워지고 따뜻한 물체는 더 따뜻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뜨거운 구리 조각을 차가운 물속에 넣었을 때, 구리는 조금 더 뜨거워지고 물은 조금 더 차가워지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와 같은 과정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뜨거운 물체에 공급되는 에너지의 양은 차가운 물질에서 추출된 에너지의 양과 정확히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우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실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친숙해서, 우리에게 방금 기술된 사례는 거의 생각하지도 못하는 경우로 여겨진다. 비록 이 사례가 사고의 법칙들에 의해서는 배제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드러난 자연 법칙을 물리학에서는 열역학의 제2법칙으로 공식화했다. 이 법칙을 정확하게 진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개념들이 좀 더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이자. 우리는 차가운 물체에서 따뜻한 물체로 열이 이동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회적인 경로를 통해서 이와 같은 결과를 성취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에서 증기는 섭씨 100도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를 갖는다. 만약 우리가 증기 기관으로 전기 발전기를 구동하여 등불의 필라멘트를 통해 생성된 전류를 보낸다면, 필라멘트는 섭씨 2,000도에 가까운 온도를 갖게 되며, 이는 원인이 되는 증기의 온도보다 훨씬 높은 온도이다. 고작 섭씨 100도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를 갖는 증기 에너지의 일부분이 2,000도의 필라멘트가 갖는 열에너지로 변화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기술된 변환은 좀 더 포괄적인 변환 과정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며, 이러한 포괄적인 변환 과정에는 더 많은 양의 열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열의 전체 양을 고려한다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열이 흐르면서 열이 줄어듦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연관을 좀 더 정확하게 공식화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은 엔트로피의 개념을 고안했으며, 만약 우리가 열적 과정에 포함된 모든 물체들을 고려할 경우에 모든 열적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점차적으로 증가해야만 한다는 법칙을 제시했다. 열역학의 제2법칙은 이와 같은 수학적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공급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며, “균일화의 특성을 나타내는 양 혹은 균일화의 정도에 대한 조건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우 제2법칙은 관련된 열의 양이 점차적으로 균일화되는 방향으로 열적 과정이 진행됨을 의미하게 된다.

  

   이 법칙은 열에 대한 운동학 이론을 사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열 이론가들이 경험적 고찰을 통해서 발전시킨 것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비엔나의 물리학자인 볼츠만이 이 법칙에 대한 운동학 이론적인 해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해석은 우리가 앞서 서술했던 관계들을 놀라울 정도로 명료화시켰다. 볼츠만은 따뜻한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의 열 이동을 하나의 혼합 과정으로 생각했다. 주어진 온도에 있는 한 물체에서 개별적인 분자들 각각의 속도가 균일하게 퍼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보자. 이후 움직이는 분자들은 서로 천천히 혹은 급격하게 섞이게 되고, 이제 분자들의 특정한 평균 속도가 온도의 측도로 간주된다. 이는 따뜻한 물질에서의 평균 속도가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다른 온도를 갖는 물질을 가져오면, 두 물질에 포함된 분자들이 서로 충돌할 것이다. 각각의 단일한 충돌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들이 열려 있다. 느린 분자가 따른 분자와 만나서 자신의 속도를 빠른 분자에게 내어준 후, 빠른 속도의 분자는 더 빨리 움직이게 될 수도 있다. 이는 가끔씩 당구공들 사이의 충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충돌은 드물게 일어난다. 좀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충돌 유형은 속도들의 상쇄가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분자들의 속도가 평균적으로 상쇄되는 것을 통해서 열의 균일화가 일어날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의 위대한 의의는 이것이 제2법칙을 통계적 법칙으로 변환하는 데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제2법칙은 평균 법칙에 지나지 않으며 대량의 과정에 대해서만 타당하다. 따라서 이 법칙은 단일한 발생을 기술하는 자연의 다른 법칙들과는 동일한 수준에 놓일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설명은 이제 큰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더 이상 이 법칙은 엄격한 타당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직 평균의 법칙만을 다를 경우 정확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종류의 기체가 언젠가는 자발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기는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이다. 오직 통계적 법칙의 의미에서만 이러한 혼합 기체가 유지되는 것이 요구되지만, 정확한 법칙의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방의 모든 산소 분자들이 언젠가 한 쪽으로 옮겨가고 모든 질소 분자들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질소 분자들이 있는 쪽에서 질식하거나, 산소 분자들이 있는 쪽에서 불에 타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망이 아주 불쾌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운 좋게도 이러한 경우의 가능성이 대단히 낮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을 뿐이다. 어쨌든 우리는 일상 속에서 확실성에 대해 아주 정확한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만약 특정한 위험 발생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면, 우리는 대개 이러한 낮은 가능성마저도 부정하고 이 위험 발생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기차를 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통계적 수치는 매년 기차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모든 기차 여행에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이 적게나마 존재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을 건너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통계는 길거리 교통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모든 집 지붕에 있는 타일이 언제라도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하며,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고찰이 우리에게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당화되지 않는 낙관적 입장을 갖고 세계로 나아가며, 가능성이 낮은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지지 않을 것을 믿는다. 따라서 동일한 낙관적 입장을 가지고 우리는 열역학의 제2법칙을 믿을 수 있다.

  

   볼츠만의 이론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론적 개념에 심오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정밀 자연과학에서 이 이론에 의해 처음으로 통계적 법칙이 엄격한 법칙을 대체하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이미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는 열의 운동학 이론에 의해서 자연 법칙의 문제 전체에 구멍이 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후의 논의에서 우리는 이 개념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고 이 개념이 갖는 근본적인 의의에 대해서 탐구해 볼 것이다. 실제로 이 개념은 물리학의 최신 국면 속에서 점점 더 이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를 잠시 미뤄두고, 열의 운동학 이론이 원자론적 가설에 높은 정도의 안전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하자.

  

   예전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졌던 에너지 보존 및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운동학 이론 및 원자론적 가설에 의해서 실제로 이해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으로 이러한 성공에 의해서 원자 이론은 가능한 가장 강력하게 정당화되었다. 이제 원자 이론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자연의 기초 법칙들에 관한 설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증명은 원자 이론의 증거가 갖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특성이다. 원자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간접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 만약 우리가 입자들의 효과만을 관측할 수 있고, 이 효과는 거시적인 규모를 갖고 있어 우리가 물질의 입자 구조까지는 인지할 수 없다고 하자. 이 경우, 이러한 효과의 설명 가능성만이, 좀 더 정밀한 관측이 현상의 원자적 특성을 드러낼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증명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분명 방법론적으로 허용가능하고 과학적으로 수용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지점에서 이미 상대방에게 공격의 지점을 제공했다는 점을 우리는 이해했다. 상대방은 이러한 추론에 대해 그릇된 철학적 해석을 하고, 이러한 추론을 진정한 증명으로 인지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3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그 전에 우선 우리는 동일한 증명 방법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영역인 화학의 영역에서 사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