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한스 라이헨바흐, [원자와 우주] 09: 빛의 물질적 특성

강형구 2016. 5. 25. 07:00

 

9. 빛의 물질적 특성

 

   지난 장에서 살펴보았듯 빛 파동의 전기적 본성을 증명하는 실험을 했던 하인리히 헤르츠는 1899년에 열린 자연과학자들의 하이델베르크 협의회에서 대담한 표현을 사용하며 강연을 했다. “빛이란 무엇인가? 영과 프레넬의 시대 이후 우리는 빛이 파동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빛 파동의 속도를 알며, 파장을 알며, 빛 파동이 횡파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빛 파동 운동의 기하학적 조건들에 대해 충분히 친숙해졌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의심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빛의 파동 개념을 논박하는 것은 물리학자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적으로 말해, 빛의 파동 이론은 확실하다.”

 

   지난 세기 말까지 물리학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빛의 파동 이론과 관련된 낙관주의는 위에서 인용된 헤르츠의 말 속에 매우 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던 빛의 이론적 개념에 대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는 한 세대의 연구자들이 가장 안전한 진리라고 여겼던 물리 이론이 어느 정도로 변화를 겪을 수 있는가에 관해 경고하는 하나의 예시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광학의 추가적인 발전에 의해서 뉴턴이 제시한 바 있었던 예전의 방출 이론으로 되돌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전진하는 연구는 문자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빛 이론이 다시 옛 방출 이론의 몇몇 특질들을 가정하게 되었다고 해도, 이와 동시에 이 이론은 결코 파동의 개념 역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이론에서는 빛의 파동 이론과 방출 이론을 좀 더 고차원적인 형태로 통합하고자 하는 대담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는 우리가 프톨레미의 세계관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세계관을 거쳐 아인슈타인의 세계관으로 정, 반, 합의 과정을 거쳐 발전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개념적 진보였다. 즉, 빛의 방출 이론으로부터 시작하여 빛의 파동 이론을 거쳐 빛의 양자 이론으로 진보한 것이다. 비록 우리는 헤겔과 달리 모든 역사적 발전 속에서 이러한 세 단계의 발전을 필연적인 것으로 볼 수 없을지라도,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심리학에 뿌리 깊게 기초해 있는 하나의 경향에 대한 증거를 발견한다. 이는 적어도 빈번하게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역사적 발전의 형식인 셈이다.

 

   빛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전환되었으며, 사실상 이는 지금까지 파동 이론이 겪어온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내딛어진 걸음이었다. 빛이 가진 전기적 본성에 대한 인식은 심오한 비(非)물질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는 에테르의 역학적 속성을 앗아가고 에테르를 일종의 비(非)물질적 유체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좀 더 최근의 발전은 빛의 물질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발전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해도 빛에 물질의 기본적 속성들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전은 새로운 양자 이론에 의해서 가장 잘 대변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발전이 양자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은 단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방사(radiation)를 다룬 방식이 이미 이러한 방향의 발전을 특징짓는 수용(adaptation)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발전 순서가 지금 우리가 추적해보고 있는 발전의 객관적 경로와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 이론의 최초 형식은 1900년에 발표된 반면, 현재 우리의 논의와 관련이 있는 아인슈타인의 논의는 1906년 이후에야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논의에서는 발전의 객관적 방향에 따라서 설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양자 이론의 결정적인 확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비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이른바 빛의 물질화 과정에 이르게 된 추론의 방법을 좀 더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물질이 그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속성이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이른바 관성(inertia)이라 불린다. 한 물체를 운동하게 만들려면 힘이 필요하고, 역으로 움직이고 있는 물체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 충돌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이 물체의 관성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무게(weight)인데, 물체의 질량은 무게를 통해 인지가능하다. 물체는 천체들이 생성하는 중력장에 의해 끌리며, 아래로 당겨지는 힘을 경험한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이러한 두 가지 속성들을 모두 갖고 있다고 가정한 후, 이 속성들의 효과들을 계산했다.

 

   새로운 방향의 탐구에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빛 파동이 고체와 충돌할 때 압력을 가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사 압력(radiation pressure)은 맥스웰-헤르츠의 파동 이론으로부터 계산될 수 있었고, 실험적으로도 매우 잘 관측되었다.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빛 광선이 떠도는 먼지의 미세 입자들 위에 쪼였을 때 미세 입자들이 빛에 의해서 어떻게 밀려나가는지를 분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먼지 입자들은 이러한 효과를 관측하기에 너무 크고 무겁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방사 압력에 대한 이와 같은 사실이, 빛은 물질을 닮았다는 중요한 귀결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챘다.

 

   빛 광선이 물체에 부딪치며 물체에 추진력(impetus)을 제공하는 것처럼, 빛 광선은 자신이 방출되어 나온 물체에게 일종의 반동력(recoil)을 전달한다. 이는 포탄이 발사되었을 때 대포가 겪는 반동력과 비교될 만 하다. 다른 물체로부터 내던져진 물체에 의해서 반동력이 생성되더라도, 두 물체의 중력 중심이 갖는 운동은 이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역학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물체가 폭발에 의해서 서로 다른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고 해보자. 이 조각들은 아주 빠른 속도를 가진다. 더 가벼운 조각은 한쪽 편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더 무거운 조각은 다른 쪽으로 충분히 느린 속도로 움직이며, 그 까닭에 두 물체의 중력 중심은 더 무거운 조각 근처에 있다. 그런데 두 물체의 중력 중심의 움직임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에서의 움직임과 정확히 동일하다. 중력 중심과 관계되는 한 중력 중심은 두 물체가 전혀 분리되지 않았을 경우와 동일한 것이다. 뉴턴의 시대부터 역학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내부의 힘은 중력 중심의 운동 경로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빈 공간에서 하나의 물체를 생각하자. 이 물체는 빛 광선을 내뿜고 있다. 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이 물체는 반동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중력 중심의 보존 법칙이 유지된다면, 우리는 움직이는 빛 광선에 관성 질량을 부여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물체와 빛 광선” 계의 중력 질량은 더 이상 물체의 위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빛 광선의 관성 질량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빛 광선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므로 물체의 관성 질량이 갖는 변위를 정확하게 상쇄시키며, 따라서 중력 질량은 공간에서의 위치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빛 광선의 관성 질량은 클 수가 없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빛 광선은 물체에 비해서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포탄의 질량은 대포의 질량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대포는 포탄에 의해 생긴 반발력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아인슈타인은 빛 광선의 관성 질량이 빛의 에너지와 동일함을 계산했는데, 이는 빛의 속도의 제곱으로 나눈 양이었다. 빛의 속도가 매우 큰 숫자이기 때문에, 광선이 상대적으로 큰 에너지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빛 광선의 관성 질량은 아주 작게 된다.

 

   사실상 이와 같은 방사 이론의 피할 수 없는 귀결은 빛의 물질화 과정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광선에 부여되는 관성의 속성이 역학적 물질이 갖고 있는 관성 속성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광선의 압력은 투사체가 충돌할 때 생성되는 충격에 대응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비유를 좀 더 밀고나갔으며, 그 결과 빛이 갖는 무게 역시 연역해낼 수 있었다. 지난 5장에서 우리는 이미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추론을 개략적으로 살펴본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등가 원리로부터 중력장 아래에서의 빛의 휘어짐을 연역할 수 있었다. 사실 태양 근처에서 빛 광선의 경로가 갖는 곡률은, 중력장에 던져진 점 질량의 경로가 갖는 곡률과 다르지 않다. 이는 태양 근처에서 유성이 빨라지거나, 지구 위의 평행한 수도관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의 모양과 흡사하다. 만약 빛 광선이 무게를 갖고 있다면 이는 물질의 본질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개념들을 더 밀고 나가면, 우리는 광선이 아닌 다른 종류의 에너지 역시 관성과 무게를 가지며, 역학적 물질과 마찬가지로 실체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뒤에야 다룰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는 방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방사 이론에 등장하게 된 새로운 개념인 양자 개념으로 주의를 돌리겠다. 이 개념은 아인슈타인이 에너지가 관성 및 무게를 갖는다고 인식한 것보다 훨씬 더 빛의 물질화를 진전시켰다.

 

   플랑크의 양자 이론은 방사선이 갖는 에너지의 내용에 관한 탐구들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만약 빛 광선이 텅 빈 공간에 닫혀 있고 이 공간을 둘러싼 벽들에 의해서 반사될 경우, 우리가 실험적이고 이론적인 고찰을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방사선들의 특성 있는(characteristic) 조합인 흑체 복사가 형성된다. 이러한 복사는 하나의 진동수 또는 파장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조합이라 부를 수 있다. 각각의 파장은 한정된 에너지의 양을 나타낸다. 서로 다른 진동수 사이에서의 에너지 분포는 임의적이지 않으며 특정한 법칙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법칙에 따르면 특정한 중간 진동수가 최대의 에너지를 갖는 반면, 더 크거나 더 작은 진동수는 중간 진동수의 최대 에너지보다도 점차적으로 더 작은 에너지를 갖는다. 이에 대한 친숙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전등의 필라멘트에 의해서 방출되는 빛 광선 역시 그와 같은 조합이다. 이 빛 조합에서 노랑 빛은 가장 큰 에너지를 가지며, 상대적으로 더 작거나 더 큰 진동수를 가지는 빨강 빛과 파랑 빛은 더 작은 에너지를 갖는다. 진동수가 중간 값으로부터 훨씬 더 멀어지면 해당 광선의 에너지는 측정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에너지 분포의 법칙은 하나의 곡선으로 시각화될 수 있으며, 이는 복사의 공식이라고 불린다(그림 14). 이 공식은 매우 정확하게 실험적으로 시험될 수 있다. 이러한 시험을 위해 우선 복사의 스펙트럼 분석에 의해서 여러 진동수의 파동들을 분리한 후, 각각의 파동이 전기 온도계에 생성하는 열의 양을 관측해서 이 파동이 갖는 에너지를 측정한다. 이러한 측정은 매우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에너지의 개별 분포는 필라멘트의 특정 온도, 즉 복사의 특정 온도에 대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높은 온도에서 에너지 곡선의 최댓값은 높은 진동수 즉 짧은 파장으로 옮겨간다. 물론 이때 각각의 파장이 갖는 에너지 역시 증가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복사 공식은 에너지를 진동수와 온도의 함수로 제시해야 하게 된다.

 

   파동 이론은 열 이론의 개념들을 사용하여 이러한 공식을 이론적으로 충분히 계산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얻어진 수학적 공식이 실험에서 얻은 곡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때 물리학자들은 이미 사용한 이론들을 적용해서 결과적으로 더 좋은 수학적 공식을 얻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 다른 방식의 접근이 계산과 관측 사이의 훌륭한 일치를 이끌어냈으며 이는 놀랄만한 일이었다. 여기서 아주 다른 방식의 접근이란 바로 에너지의 개념에 원자론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1900년에 이와 같은 개념을 최초로 발표한 사람은 베를린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였다. 처음에 플랑크는 복사의 원자론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물질적 실체와 영향을 주고받을 경우에는 항상 전기적 파동의 에너지가 원자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에 만족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음의 전기를 갖고 있는 가장 작은 입자인 전자가 진동할 경우, 전자라는 물질 구조는 빛을 방출하며 이 때 전자는 일정량의 에너지를 내보낸다. 이 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매우 제한된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하나의 단위, 둘의 단위 혹은 여러 단위들로(정수 단위로) 에너지를 내보낸다. 이러한 상황은 검은 표면에서 일어나는 빛의 흡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물체의 모든 입자들은 에너지 단위의 특정한 정수배의 에너지만을 흡수할 수 있으며, 에너지 단위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 이러한 에너지의 궁극적 단위, 에너지의 원자를 플랑크는 에너지 양자(energy quantum)이라고 불렀다. 이에 따라 이 이론 역시 양자 이론으로 불렸다.

 

   위의 내용에는 다소의 수정이 필요하다. 플랑크는 처음부터 자연과학에 새로운 원자의 정의를 도입하게 하는 것이 에너지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로 그것은 에너지의 개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원자론적 구조를 갖고 있는 다른 개체였다. 이는 이른바 작용으로 불렸으며, 에너지와 시간의 곱으로 정의되었다. 사실 작용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일반인에게는 낯설게 여겨질 수 있다. 일반인은 어떻게 수리물리학자들이 오래된 개념들을 조합해서 인공적인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는 일반인을 도와줄 수 있다. 왜냐하면 수리물리학자의 축약된 언어는 오래된 개념들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학자에게는 이와 같이 설명하는 것이 더 복잡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에게 상황을 더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래된 개념들을 사용한 공식화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의 용어로 표현된 플랑크의 원리는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쉬운 다음과 같은 형태를 갖게 된다. 에너지 양자는 모든 경우에 동일하지 않고, 각각의 전기적 파동의 진동수에 따라서 달라진다. 에너지 양자는 진동수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따라서 짧은 파동의 경우에는 긴 파동에 비해 에너지 양자가 커진다. 그러나 각각의 파동은 고정된 크기를 갖고 있으므로, 각각의 파장은 에너지 양자의 정수배만으로 표현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플랑크는 그의 원리를 빛의 파동 이론과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식화했다. 그는 오직 진동하는 입자들의 에너지로 파동이 변환하는 것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양자의 개념은 빛 자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빛의 생성(generation)과 변환(transformation)에 대해서도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원자와 전자의 구조에 관련된 물질의 법칙들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양자의 발생은 다음과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되었다. 연속적인 파동 복사가 전자에 쪼여지고, 전자는 이로부터 정수 배의 에너지 단위에 이르게 될 때까지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흡수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전자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파동의 방출에 수반되는 과정 역시도 이와 대응되는 방식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좀머펠트의 계산은 이러한 개념이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전자가 파동 장으로부터 하나의 에너지 단위를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X선의 경우 파장이 짧기 때문에 에너지 양자는 더 커야 했고, 시간을 계산한 결과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뢴트겐선을 비롯한 모든 실험에서 에너지의 흡수는 수십 분의 일초처럼 짧은 시간 동안에 완결되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아인슈타인은 빛 파동에 바늘과 같은 구조를 부여한다는 대담한 생각을 떠올렸다. 빛의 기본 단위는 모든 측면으로 방사하는 것이 아니며, 탐조등과 유사하게 좁은 폭을 가진 빔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이러한 탐조등은 오직 짧은 순간만 방사하며 방사 이후에는 다시 꺼진다. 따라서 공간에 단일한 바늘 구조 파동이 움직일 경우, 이 파동의 에너지는 기초적인 양자 에너지와 동일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양자의 개념은 빛 파동 그 자체와 통합되었다. 물질이 아니라 전기적 파동이 양자와 같은 본성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고전적인 파동 이론으로부터의 결정적인 첫 번째 발자국이 내딛어졌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의 바늘 구조 방사는 뉴턴의 방출 이론으로 되돌아간 것과 유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이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 파동과 입자 이론을 종합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의 빛 원자는 파동의 특성을 갖고 있어서 뉴턴의 빛 입자와는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빛 양자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고전적인 파동 광학에 대한 날카로운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후자의 법칙들은 오직 근사적인 타당성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불에서 볼 수 있듯 모든 방향으로 방사하는 구형 파동은 예외적으로 많은 수의 탐조등이 모인 경우에만 일어나는 대량 효과가 된다. 이렇게 대량으로 파동이 모이기 때문에 모든 방향으로 방사하는 것처럼 보이며 균일한 구형 파동과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단일한 기본 파동인 빛 양자는 최근에 광자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 이름은 빛 양자에 대한 입자 해석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상과 같은 관점에 대한 입장을 이른바 광전효과에서 찾았다. 금속의 표면을 빛으로 쬐면 표면으로부터 전자들이 방출된다. 이 효과는 금속을 방전시키는 전기 불꽃에 대한 빛의 영향, 진폭관에서의 음극선 발생 등의 현상에서 인지되었다. 헤르츠가 발견한 이와 같은 광전효과에 대해서 레나르트가 탐구를 진행하였으며, 이 결과 빛은 이해하기 어려운 법칙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전자가 금속을 이탈할 수 있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작았으므로, 강력한 빛 광선을 쬐어 전자들을 금속으로부터 이탈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비록 금속을 이탈한 전자들의 수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탈 전자들의 속도는 변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다른 방법을 사용하니 전자 속도가 변했다. 짧은 파장을 가진 빛, 즉 파란 빛이나 자외선을 사용할 경우에는 금속으로부터 횔씬 빠른 전자들이 이탈했다. 뢴트겐선은 이에 관해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전기적 파동과 빛 파동의 기원에 대한 오래된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빛 양자를 받아들이면 이는 곧장 설명된다. 아인슈타인의 개념에 따르면 빛 양자가 금속의 전자에 쪼여지고 전자들을 방출시킨다. 짧은 파장을 가진 양자가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므로 이러한 양자의 충격이 더 크고, 양자와 충돌한 전자는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개념을 수학적으로 손쉽게 공식화할 수 있었다.

 

   이제 이러한 사실들 때문에 과학 이론이 어떤 놀랄만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자. 최초에는 아무도 파동 개념 그 자체를 공격하고자 하지 않았다. 사실 빛 파동 그 자체가 양자의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질을 대상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실험에서 빛과의 상호작용만을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법칙이 빛 자체에 양자 개념을 도입함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음을 확인했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확정을 믿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체적인 발전 과정은 모든 물리적 지식이 얻어지는 방식을 가장 아름답게 예시한다. 작은 차원의 세계에 대한 가정들이 어떻게 큰 차원에서의 법칙들에 이르게 하는가를 계산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가정들 자체를 시험하고 간접적으로나마 입증한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은 직접적인 증명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에 대한 직접적인 증명은 이후의 발전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단일한 빛 양자가 먼지 입자나 생명체의 세포처럼 현미경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측 가능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지각 능력은 그것이 가능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빛 양자에 대한 연구는 먼지나 생물학적 세포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작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단일한 양자가 유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효과들에 대해서 탐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효과들을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빛 양자에 대한 직접적인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증명에서는 반동력 효과가 사용된다. 빛 양자를 방출하는 전자는 이러한 반동력의 영향을 받는다. 포탄을 발사하는 대포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보자. 포탄을 앞쪽 방향으로 발사하면 대포에는 뒤쪽 방향으로의 반동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대포가 동시에 양 방향으로 발사되면, 두 개의 반동력은 서로를 상쇄하며 대포는 정지한 상태로 남겨질 것이다. 이와 동일한 상황이 전자가 빛을 방출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만약 빛이 전자로부터 탐조등 불빛처럼 방출된다면 전자는 반동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빛이 구형파의 형식으로 방출된다면 반동력은 중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반동력이 모든 방향으로 균일하게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직접적인 실험을 통해 전자의 이러한 반동력을 탐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로부터 빛 양자의 바늘과 같은 특성이 증명될 것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실험을 한 사람은 미국 물리학자 컴프턴이었다. 그는 이른바 2차 뢴트겐 방사를 이용했다. 만약 우리가 어떤 물체에 X선을 쬐면 그 물체는 다른 X선을 방사하고, 이렇게 방사된 X선을 2차 X선이라 부른다. 만약 2차 광선이 바늘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면, 2차 광선을 방출하는 전자에게 작용하는 반동력이 탐지되어야만 한다. 컴프턴은 이러한 효과가 잘 드러나는 조건 속에서 뢴트겐선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왜냐하면 뢴트겐선은 짧은 파동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강력한 에너지 양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컴프턴이 수행한 최초의 기초 실험(1922년)은 여전히 간접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실험은 단일한 양자의 작용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양자들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실험적 발견에 근거한 이론적 계산을 통해서만 전자의 바늘 구조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컴프턴은 2차 광선의 파장을 탐구했다. 2차 뢴트겐 방사와 동일한 현상을 빛이 거울로부터 튕겨나가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에도 거울 표면에 있는 원자가 빛의 쬐임을 받아 새로운 광선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이때 반사되는 광선이 갖는 명확한 방향은 보강(reinforcement)과 간섭만으로 결정된다.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2차 광선이 원리의 광선과 동일한 파장을 가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컴프턴은 2차 방사가 원래의 광선보다 더 긴 파장을 가짐으로써 더 적은 에너지를 갖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에너지 손실을 전자가 빛 양자를 방출할 때 경험하는 반동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추론이 옳은지의 여부는 오직 정량적인 계산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었고, 이 계산에서 한 방향(unilateral) 반동력이 특성 요소로 도입되었다. 순수하게 정성적으로 볼 때, 에너지 손실은 다른 종류의 손실에 의해서 설명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관측된 파장의 차이가 단순한 역학적 고려에 근거하여 계산한 전자의 한 방향 반동력과 훌륭하게 일치했고, 이는 단숨에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컴프턴 효과가 방사의 바늘 구조 특성에 대한 증명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효과가 더 긴 파동에 대해서도 존재하긴 하지만, 빛 양자가 작기 때문에 이 효과가 식별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덧붙여야겠다. 그렇다면, 엄밀하게 말해 일반적인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 광선은 원래 광선에 비해 아주 조금 스펙트럼의 빨강색 쪽으로 이동하지만, 우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후(1925) 컴프턴은 방사의 바늘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증명으로 간주될 수 있는 실험을 했다. 그는 전자와 빛 양자 사이의 충돌 과정을 직접적으로 촬영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림 15에서 SP는 등불로부터 생성된 빛 광선의 방향을 나타내는데, 이 광선은 P에 있는 전자로 쪼여진다. 전자는 광선으로부터 PR 방향으로의 충격을 받는다. 이와 동시에 광선에 의해 유도된 전자가 PQ 방향으로 2차 광선을 방출하는데, 이 방출은 PT 방향으로 전자의 반동력을 일으킨다. 이러한 두 개의 충격이 결합해서 PU 방향으로 합성된 충격을 낳고, 기존의 전자는 이 방향으로 운동한다. 컴프턴은 윌슨의 방법(202쪽을 보라)을 사용하여 경로 PU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에서 2차 빛 양자의 경로 PQ는 선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많은 경우에 이 경로는 인지될 수 있다. 사실 2차 광선은 Q에 있는 다른 전자와 부딪쳐 이 전자를 움직이게 한다. 이로부터 비롯된 경로 QV가 윌슨의 방법에 의해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사진에서 2차 빛 양자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2차 전자 움직임의 시작점인 Q만 찾아 P와 Q를 연결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사진은 2차 광선의 한 방향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게 된다. 이는 2차 전자가 방출된 컴프턴의 모든 검광판에서 반동력 PU의 방향이 2차 광선의 특정한 하나의 방향 PQ와 대응한다는 것에서부터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따라 오늘날 우리는 사진 기법을 통해서 광선의 바늘과 같은 특성에 대한 직접적인 증명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빛의 광선 구조에 대해 물리학자들이 알고 있는 많은 입증들 중 가장 중요한 것만을 선택해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실험적 탐구 결과에 따라, 이제는 더 이상 방사가 양자의 본성을 갖고 있으며 빛 양자는 바늘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와 같은 물질화의 과정은 빛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전면적으로(thorough-going) 변환시켰다. 하위헌스, 프레넬, 맥스웰, 헤르츠가 제시했던 순수한 파동 이론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빛은 기본적인 충돌 과정을 의심의 여지없이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뉴턴의 빛 입자와 유사하다. 더욱 더 낯선 것은 이에 따라 귀결되는 개념적인 상황이다. 빛 양자의 발견으로 인해 우리가 파동 이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간섭 현상처럼 빛이 파동의 특성을 가져야 함을 요구하는 현상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더 이상 그 자체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컴프턴 반동력 현상을 그 원형으로 삼는, 입자와 같은 성격을 갖는 빛 양자의 존재를 나타내는 두 번째 부류의 현상들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동 이론은 첫 번째 부류의 현상들에 의해 지지되는 반면, 입자 이론은 두 번째 부류의 현상들에 의해서 지지된다. 문제는 동일한 기초 개념들을 가지고 두 가지 복잡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통일된 이론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설명은 단일한 빛 양자의 파동적 특성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많은 간섭 실험들에서 빛 광선은 서로 구분되는 경로들을 통과하고, 이 경로들은 완전히 구분되는 빛 양자들에 의해서 경유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실험들은 단일한 빛 양자의 파동적 특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빛 양자로 구성된 파동들 상호간에는 그 어떤 질서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두 개의 빛 양자가 만났을 때 마루와 골이 만났지만, 이러한 일치가 영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아 빛의 소멸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간섭 현상에서 관측될 수도 있다. 간섭이란 균일하게 움직여서 상호간에 질서 관계가 성립하는 광선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이 때 광선들 사이에는 질서 관계가 성립하여 광선들의 마루와 골이 일정하게 대응하므로, 앞서와 같은 비규칙적으로 흩어진 파동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인리히 헤르츠가 빛의 파동 이론에 부여했던 “인간적으로 말했을 때의 확실성”과 관련해서, 우리가 이 장에서 살펴보았던 양자 이론의 물질화 과정의 영향은 빛 파동이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정보를 우리에게 남겨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파동을 생각하는 방식은 더 이상 프레넬이나 맥스웰의 고전적인 개념들로는 주어질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종류의 동등한 사실, 즉 빛은 고전적인 파동 이론가들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입자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인간적으로 말했을 때의 확실성”을 갖게 되었다. 과학적 광학과 빛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주 다른 종류의 발전이 이러한 방법을 찾기 위해 필요했다. 물질 이론은 우리에게 빛 이론의 물질화 과정이 유발했던 모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문제의 진정한 어려움은 빛이 물질이라는 사실에 놓여 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의 어려움은 물질에 대한 우리의 개념들이 너무 단순하다는 사실, 즉 우리의 개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차원의 개념들만을 이용하여 배타적인 방식으로 고안되었다는 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파동 광학과 양자 이론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의 핵심을 이룬다. 1부의 마지막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물질에 대해 논하는 2부에서 제시될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물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사고한 이후에야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