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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 02

철학 역시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전문화된 학문 분과이며, 철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현대의 철학자들, 특히 20세기 이후 영미 분석철학자들이 내놓는 작업을 보면 아주 전문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는 내가 학창시절 철학에서 바라던 바와는 사뭇 달랐다. 과학도였던 나는 수학과 과학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철학을 찾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세기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를 들 수 있다. 표준적인 양자역학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인물들과 풍부한 대화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이 책은 플라톤이 쓴 [대화편] 이래의 전통을 따라 등장인물들 사이에서의 대화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

일상 이야기 2016.01.19

글 쓰는 사람 01

나의 기억으로는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 약 4,5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45년 광복 직후에 한반도 전체에 약 2,0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면, 남한만 따져도 총 인구 규모는 두 배가 넘도록 커진 셈이다. 나는 한반도 남단에 거주하는 4,500만 명 중의 한 명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의 한 조직에서 일하면서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이후인 1982년에 태어나 나의 아버지 세대에 비해 월등하게 풍부한 문화적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나는 서양식 교육제도 아래에서 초중등 교육과정을 거쳐 고등교육 과정을 마쳤다. 내가 거쳐 온 교육과정은 일반적인 성격이 강했다. 나는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시험문제를 푸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였지만,..

일상 이야기 2016.01.17

이런저런 생각들

오늘은 서울에 출장을 다녀왔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우리나라의 공공기관들은 경영실적평가를 받는다. 오늘 오후에 ’15년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보고서 작성에 관한 설명회가 서울지방조달청 3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나는 팀장님과 과장님을 모시고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혼자서 고속열차를 타고 동대구로 돌아왔다. 팀장님은 서울에 계신 부모님 집에 하룻밤 머무신다고 했다. 과장님은 아내와 아이가 서울에서 지내고 있어, 재단이 서울에서 대구로 이전한 이후 계속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계신다. 설명회가 끝나고 혼자서 동대구로 돌아오며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올해 나는 서른다섯이다. 직장생활 5년차다. 선배들이 많아서 대리(5급)에서 과장(4급)으로 승진하는데 꽤 시간이..

일상 이야기 2016.01.15

고수에 대하여

무술을 잘 하는 어떤 고수가 있다. 이 고수의 무공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거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불구로 만들어버리거나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고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수는 자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지금껏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승 밑에서 10년 동안 수련했고, 수련을 마친 다음에는 무인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는 다른 고수들을 찾아 무예를 겨루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힘겹게 고비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 더 강해졌다. 마침내 고수는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고수는 장군이 되거나 왕이 되지는 않았다. 남들 위에 올라서서 부리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그는 먹고 살아갈 방도를..

일상 이야기 2016.01.06

아버지와의 산행

어제는 오래간만에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했다. 어제 아버지와 나는 집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등산복을 입고 점심 도시락을 챙겨 범어사로 갔다. 우리는 부산 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범어사까지 올라간 후, 적당한 속도로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까지 걸어 올라갔다. 어린 시절부터 부산에서 살고 금정산 등산을 자주 다녀본 나였지만, 고당봉에 직접 오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맑고 따뜻해서 등산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우리는 오전 10시쯤 범어사에서 출발했고 고당봉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30분이었다. 고당봉에서 아버지와 나는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아마도 나와 아버지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와의 산행을 통해 조금씩 산을..

일상 이야기 2016.01.03

새해를 맞이하여

사실 내가 어제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제는 2015년이었고, 오늘은 2016년이다. 해가 바뀌었다. 아마도 좀 더 정확하게 비교하기 위해서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운전이다. 작년 1월에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 운전을 해서 출퇴근한다. 물론 나는 운전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은 적응과 학습의 동물이라 조금씩 운전에 익숙해지고 있다. 간혹 운전이 재미있을 때도 있다. 작년에는 평소에 서울에서 지내다가 주말마다 대구에 내려와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매일 대구에서 출퇴근하며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내와 나는 죽이 잘 맞는다. 아내는 나를 웃..

일상 이야기 2016.01.01

써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아내가 휴일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아내를 직장에 데려다주고 나는 동네에 있는 달성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공책에 글을 좀 쓰고 있으려니까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도서관을 나서 근처에 있는 현풍초등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씨가 사뭇 쌀쌀했다. 매주 누군가와 과학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다. 영화에 대해, 음식에 대해, 혹은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역시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참 좋은 일이 되리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학창시절에는 도서관에 나의 또래들이 많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많..

일상 이야기 2015.12.27

평가에 대한 단상

나의 개인적인 평가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 중에 ‘대호’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이 영화가 올해 나온 영화들 중 가장 뛰어난 영화들의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흥행 순위를 보면 ‘대호’는 12월 26일 현재 3위 안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히말라야’와 ‘대호’ 둘 다 관람한 주변 사람들에게 둘 중 어떤 영화가 더 괜찮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대호’가 더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물론 나는 여기서 소수의 사례들을 가지고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는 나의 개인적인 평가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엇갈리는 현상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는 어느 정..

일상 이야기 2015.12.26

행복한 삶에 대하여

아내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수술 이후에도 아내는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나는 종종 휴가를 써서 일찍 퇴근한 후 집에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리 둘이서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내와 함께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틈틈이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하거나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집 바닥을 닦는다. 아내는 나와 함께 있으면 마음의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오늘 오전 직장에서는 예전에 서울시 교육감으로 활동하셨던 문용린 선생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한 강연을 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용서하며 모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강연 내용에 많..

일상 이야기 2015.12.22

미셸 얀센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탐구] 요약

1. 들어가는 말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 이론은 등속 운동에 대한 갈릴레이-뉴턴 상대성원리를 역학에서 물리학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한 이론이었다. 2년 뒤인 1907년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모든 종류의 임의적 운동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운동이 상대적인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모든 운동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든 이론은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정확히 말해 새로운 중력이론이었다. 일반상대성은 실제로 그의 이론에서 완전히 구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등속운동과 비등속운동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국소적으로는 가속도의 효과와 중력의 효과를 구분할 ..

과학사 이야기 201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