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스크리븐, [설명, 예측, 법칙]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6. 13. 05:51

 

3. 1. 들어가는 말

 

   헴펠(Hempel)과 오펜하임(Oppenheim)은 과학적 설명에 대한 분석적인(analytical) 모형을 주장했다. 스크리븐은 이 모형이 어떤 측면에서 결함을 갖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제한적(restrictive)인지를 보이고, 더 나아가서는 설명과 이해(understanding)를 해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criteria)을 제시하려 한다.

 

3. 2. 과연 설명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인가?

 

   헴펠과 오펜하임은 과학적 설명이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물음을 생각해보자. “중성미자(neutrino)는 전하도 0이고 질량도 0인데 어떻게(how) 검출할 수(detect) 있지?” ‘어떻게(how)?’를 묻는 위의 물음 또한 충분히 과학적인 물음이고, 뿐만 아니라 과학적 설명은 무엇이(what)?”, “언제(when)?”, “둘 중에 어떤 것이(which)?” 등등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물음이 제기되지 않는 경우(강의를 할 때, 특정한 주장을 바로잡거나 지지할 때 등)에도 과학적 설명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는 문법적인(grammatical) 기준으로 과학적인 설명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이 기준은 너무나 불충분한(unsatisfactory) 기준이다.

 

3. 3. 과연 설명은 기술(description)’ 그 자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

 

   헴펠과 오펜하임은 과학적 설명이 현상을 단순히 기술하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주장하며, 그들이 생각할 때 제대로 된 과학적 설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례(수은 온도계의 수치가 상승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를 든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사례들 조차도 복잡한 기술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설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한 기술들이 언제(when), 어떻게(how) 설명으로서 받아들여지느냐다. 설명해야 할 현상이 있을 경우, 그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right) 기술들을 제시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설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적합한 기술인가? 설명하려고 하는 현상과 그 설명을 필요로 하는 사람() 사이에 있는 이해의 간극(gap)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적합한 기술이다. 적합한 기술을 통해 우리는 대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각각의 맥락(context)에 따라서 어떤 기술이 적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4. 과연 설명은 예측과 본질적으로(essentially) 유사(similar)’한가?

 

   헴펠과 오펜하임은 설명과 예측의 대칭성(symmetry), 혹은 본질적 유사성(essential similarity)을 주장한다. 이에 스크리븐은 다음의 단계들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3. 4. 1. 특정한 현상을 잘 예측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보기 힘든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제비가 낮게 날면 곧 비가 온다.’는 진술은 비가 온다라는 현상을 잘 예측하지만 그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라 보기 힘들다.

 

   3. 4. 2. 예측은 그 본성상(intrinsically) 미래 시제의 기술이다. 설명 또한 일종의 기술이지만 설명과 예측은 시제라는 측면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예측의 내용(content)이 설명의 내용과 논리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너무 과도한(extraordinary) 주장이다. 흔히 예측과 설명은 그 근거(grounds)가 무엇인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단순한 상관관계(correlation)을 통해서도 예측은 가능하지만 설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3. 4. 3. 시간 순서대로 정렬(temporally ordered)되어 있지 않고 사건들이 서로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까닭에 특정한 예측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우리가 충분히 정당한 설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 이론(theory)이나 기제(mechanism) 혹은 증명(proof)을 설명하는 경우 우리는 굳이 예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왜 이 맥락 속에서 설명을 필요한 것일까?’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설명을 필요로 하고, 따라서 설명이해는 서로 상당히 유사하며 그러한 유사성에 비한다면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사소하다.

 

   3. 4. 4. 우리는 법칙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법칙에 대한 설명은 법칙에 대한 예측인가? 그런데 법칙을 예측한다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법칙의 설명에 대응되는 짝을 법칙의 예측에서 찾을 수 없다. , 법칙을 설명하는 것은 법칙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헴펠과 오펜하임은 일반적인 법칙으로부터 특정한 법칙을 논리적으로 도출함으로써(더 보편적인 뉴턴의 운동 법칙으로부터 냉각 법칙을 도출하는 것처럼) 해당 법칙을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A이면 B이고 B이면 C이므로 A이면 C이다라고 했을 경우, 우리는 AC를 예측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AC의 참됨은 동시적(simultaneous)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논리적 도출이 특정 법칙을 예측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법칙이란 많은 수의 사건들을 일반화시킨 것인 반면, ‘법칙을 예측하는 것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수행한 실험의 결과들에 대해서 예측하는 것이라고 대응할 수 있다. 이런 대응은 예측(prediction)에 후측(postdiction, retrodiction) 또한 포함하도록 개념을 확장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지질학(geology)의 경우에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추측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개념을 확장하게 되면 법칙을 예측한다는 것은 예측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앞서의 논의에서 우리는 예측이 일종의 기술으로서 그 본질이 미래 시제에 있다고 했는데, 확장된 개념의 예측은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모두 적용되기 때문이다.

 

   법칙을 예측하는 것은 법칙을 발견(discovery)하는 것일까?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사건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개념 또한 부적절하다.

 

  

   3. 4. 5. 철골(girder)의 약화(fatigue) 때문에 다리가 붕괴된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때 우리는 특정한 시기에 다리가 붕괴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자료들을 완벽하게 갖출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하중이 일정값 이상이 되면 다리가 붕괴될 것이다와 같은 조건적(conditional) 예측을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설명과 예측 사이에 특정한 상관성(correlation)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둘 사이의 대칭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조건적 예측이 양적(quantitative) 충분조건을 요구하는 반면, 설명은 질적(qualitative) 필요조건에 대한 주장을 통해서도 지지될 수 있다. 예측은 어떤 것이 언제일어날 것인지, ‘어떤 것이 특정한 시기에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하는 반면, 인과적 설명은 무엇 때문에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성립한다. “A 또는 B 또는 C라는 이유 때문에 D라는 결과가 발생했다. 그런데 A도 아니고 B도 아니다. 따라서 C이다.”와 같은 설명도 충분히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측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갖추지 않은 경우에도 설명이 성립한다.

 

   3. 4. 6. 헴펠과 오펜하임은 인과 법칙들

과 특정한 사전 조건들

이 연계되어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 X(특정한 상태들의 집합

)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다리 붕괴 사례의 경우에 적용하면, 시험하고자 하는 표본의 성질들(

)과 붕괴를 유발시키는 환경 조건들(

)이 결합해서 현상 X(붕괴 직전의 다리의 구조design와 상태들의 집합

)를 도출하게 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전 조건들이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을 반드시 도출하지 않는 경우에도 설명은 충분히 성립한다.

중의 하나가 X라는 현상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추정될 때, 사전 조건들

을 배제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그 현상의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헴펠과 오펜하임의 조건은 너무 엄격하며, 그들의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에만 예측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많은 경우 예측을 할 수 없게 된다. 설명과 예측의 대칭성은 그들이 설명에 대해 제시하는 4가지 조건에 덧붙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3. 4. 7. 헴펠과 오펜하임은 설명항의 진술들이 참일 조건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피설명항은 반드시 참이 된다. 이것이 그들이 설명과 예측의 대칭성 혹은 동일성을 주장하는 하나의 중요한 근거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굳이 참이 될 것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많은 예측(날씨에 대한 예측, 경마장에서 어떤 말이 이길 것인지에 대한 예측 등) 하고, 이미 벌어진 현상 X에 대해 사후적인 설명으로서의 예측을 하는 경우도 많다. 또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미 벌어진 상황과 완전히 똑같은 조건을 그대로 재현하기조차 힘들다.

 

 

3. 5. 과연 설명은 참인 진술들의 집합인가?

 

   우리는 미래와 과거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소설 속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설명 중에는 참이 아니며 참일 필요도 없는 경우도 많다. 또한 우리는 어떤 현상에 대한 점성술가의 설명 또한 일종의 설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설명이 반드시 참인 진술들의 집합일 필요는 없다. 헴펠과 오펜하임의 논의는 설명이 아니라 올바른(correct) 설명'에 대한 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적인 경우 우리는 분석적(analytic) 관점에서 설명에 접근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참된 것을 알기 위해(means of access to the truth) 설명을 필요로 한다. 물론 우리가 많은 설명들 중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한 설명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가장 잘 입증된(confirmed) 설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헴펠과 오펜하임이 기술적 언어(descriptive language)를 전제하고 설명에 대해 분석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반드시 언어를 통해서만 설명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어떤 일을 직접 행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으며, 이 때 언어가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언어는 본질적이 아닌 부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과학적 설명이 일상적인 설명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닌 일종의 정제된(refined) 설명이라면, 설명에 있어 본질적인 것은 이해(understanding)이며 이 때 언어는 우리의 이해를 공유할 때 사용되는 부수적이고(accessory) 유효한(useful)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설명에는 귀납적 추론가능성(inductive inferribility)만 포함되어도 충분하며, 연역가능성은 설명에 있어 꼭 필요하지도 않고 너무나 엄격한(restrictive) 기준이다.

 

3. 6. 과연 설명은 설명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기술을 포함하고 있는가?

 

   설명과 예측이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대체 설명의 구조는 무엇인가? 예측이란 적절한 미래 시제를 띤 선언적(declarative) 진술(예를 들어 “C로 인해 X가 될 것이다”, “X일 것이다)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설명이란 설명되어져야 하는 것의 이유(cause)라고 생각되는 사건(event) 혹은 상태에(state) 대한 기술인 것으로 생각된다. 특별히 모호한 상황이 아닌 경우, 설명은 설명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기술을 포함하지 않는다.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phenomena), 그 현상에 대한 기술(description), 그 현상에 대한 설명(explanation) 세 가지를 부주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헴펠과 오펜하임은 현상 X가 연역적 논증의 구조 속에서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현상이지 진술이 아니다. 헴펠과 오펜하임은 우리가 왜 연역가능성(deducibility)을 좋은 설명에서의 유일한 논리적 관계로 전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대답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설명력을 갖는 기술(explanatory description)이 있고, 어떤 것을 설명하는 데 있어 어떤 특수한 기술이 사용되는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설명의 완전성(completeness)와 관련된다.

 

 

3. 7. 헴펠 & 오펜하임 모형의 문제들(요약)

 

이 모형은 설명, 설명에 대한 근거, 예측, 설명되어야 할 현상, 그 현상에 대한 기술 사이의 구분을 하지 못한다.

 

  

이 모형은 너무 엄격해서(too restrictive) 과학적 설명의 많은 예들을 배제시킨다.

 

  

이 모형은 너무 포괄적이어서(too inclusive) 전혀 설명력이 없는 설명들 또한 설명 속에 포함시킨다.

 

  

이 모형에 따르면 원인(cause), 법칙(law), 확률(probability) 등을 납득하기 힘든(unsound) 의미를 갖게 된다.

 

  

이 모형은 과학적 설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맥락, 판단, 이해)를 무시한다(leave out).

 

4. 0. 근본적인 주제들

 

4. 1. 설명과 설명에 대한 근거들 사이의 구분

 

   설명에는 그 설명에 대한 근거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 그에 반해 연역적 모형은 설명이 설명에 대한 근거를 포함하기를 요구한다. 완벽하게 적절한 설명이 옳지 않은 이유로 거부되는 경우도 있으며, 주어진 맥락(context)을 떠나서는 그 어떤 설명도 완전히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정당화라는 것은 특정한 의문이나 불만에 대응해서 생기는 것인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의문들은 무수히 많기 때문에, 설명을 어떤 단일한 방법으로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박한 판단이다. 법칙(law)이나 자료(data)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러한 의문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연역(deduction)은 단지 의문의 근거를 옮기는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더구나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우리가 반드시 어떤 법칙(뉴턴의 운동 법칙)을 도입할 필요는 없다. 설명을 할 당시에는 법칙을 도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다른 맥락적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설명인지를 식별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에 해당되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설명이 틀렸을 경우 그것을 옳지 않은(incorrect) 혹은 부정확한(inappropriate) 설명이라고, 현상 사이의 인과적 관계가 포함되지 않은 경우 불완전한(incomplete) 혹은 불충분한(inadequate) 설명이라고, 내용은 충분하지만 주어진 맥락에 맞지 않는 설명을 관련없는(irrelevant) 혹은 부적절한(improper, inappropriate) 설명이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이제 처음 설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참(truth)을 정당화하는 근거(justifying grounds), 두 번째 설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역할(role)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세 번째 설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유형(type)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어떠한 설명도 참(truth), 역할(role), 유형(type)이라는 맥락 속에서 평가된다.

 

4. 2. 설명에 있어서의 완전함(completeness)

 

   설명의 완전함은 주어진 맥락에 의존한다. 하나의 설명이 제시되어야 할 경우, 우리는 어떤 근거와 방식으로 제시된 설명이 완전한 설명인지를 자동적으로(automatically) 알 수 있지만, 오직 보편 진술로부터의 연역만이 완전한 설명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경우 한 설명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지, 어떤 경우 한 설명이 완전하다고 판단하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