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헴펠, [과학적 설명에서의 법칙과 그 역할]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5. 13. 05:53

 

헴펠, 과학적 설명에서의 법칙과 그 역할

 

과학적 설명에 있어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조건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주요한 목적들 중의 하나다. 우리는 과학적 설명의 특징(character)이 무엇이고 이 설명이 우리에게 어떤 통찰(insight)을 주는지 살펴보자. 과학적 설명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requirement)을 만족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설명적 유관성(explanatory relevance)’의 조건이다. 그 두 번째는 시험 가능성(testability)의 조건이다.

 

   무지개가 어떤 광학 법칙에 기초해서 어떤 특정한 상황일 때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물리 이론의 경우, 우리는 이 이론을 기초로 해서 다른 특정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에도 무지개가 발생할 것이라는 근거 있는 믿음을 갖게 된다. , 무지개를 설명하는 물리 이론은 설명적 유관성의 조건을 만족한다. 하지만 설명적 유관성의 조건은 합당한(adequate) 과학적 설명에 대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지는 못하다. 이에 우리는, 과학적 설명을 구성하는 진술이라면 경험적 시험이 가능해야 한다는 시험 가능성 조건을 덧붙여야 한다. 그런데 이 두 조건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약 어떤 설명이 설명적 유관성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그 설명은 시험 가능성 조건도 만족시킨다. 그러나 시험 가능성 조건을 만족시킨다고 해서 설명적 유관성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연역-법칙적 설명

 

   연역-법칙적 설명에서는 경험적 관계를 표현하는 보편 법칙(general laws)이 등장하고, 그 법칙들이 특정한 상황(particular circumstance)과 맞물려서 개별적인 사실들을 도출해낸다. 이 때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을 피설명 현상(explanadum phenomenon), 그 현상을 기술하는 문장(sentence)을 피설명 문장(explanadum sentence), 이 둘을 통틀어서 피설명항(explanadum)이라고 하자. 그리고 그 피설명항을 설명하는 기능을 하는 문장을 설명 문장 혹은 설명항(explanans)이라고 하자. 설명항은 보편 법칙들인

과 사전 조건들인

로 구성되며, 보편 법칙과 사전 조건들은 연역적으로 피설명 문장을 도출하게 된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설명 문장들 (Explanans sentences)

피설명 문장 (Explanadum sentence)

 

   연역-법칙적 설명은 가장 강한 의미에서 설명적 유관성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피설명항이 설명항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설명은 시험 가능성도 만족시키는데, 왜냐하면 이 설명은 특정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피설명항의 현상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함축(imply)하기 때문이다. 몇몇 과학적 설명은 위와 같은 연역-법칙적 모형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천왕성(Uranus)의 존재를 예측하고 그 존재를 확인한 르베리에(Leverrier)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경우에 연역-법칙적 설명은 축약된 형태(elliptical form)로 표현되는데, 이 경우에도 우리는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는 보편 법칙 및 사전 조건들을 가려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길에 소금을 뿌렸더니 서리가 내렸는데도 눈이 얼지 않았다.’는 문장은 은연중에 많은 사항들을 전제하고 있고, 이런 전제들을 분석해서 연역-법칙적 설명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다.

 

   과학적 설명에 있어 보편 법칙이 핵심적인 기능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보편 법칙을 찾은 다음에야 과학적 설명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개별 사실들을 관측함으로써 해당 현상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다. 원자 스펙트럼의 진동수에 대한 규칙을 발머가 먼저 찾고, 그 규칙에 대한 설명을 이후 보어가 자신의 원자 모형을 통해 해명한 것이 그 예다. 또한 설명해야 하는 현상 혹은 설명의 문제가 우리에게 주어질 경우, 문제 자체만으로는 어떤 발견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를 결정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르베리에는 수성의 근일점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상의 행성인 벌컨(Vulcan)의 존재를 예측했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수성의 근일점 운동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제시한 다음에야 해명될 수 있었다.

 

보편 법칙과 우연적 일반화를 구분하는 문제

 

   법칙은 연역-법칙적 설명에 있어서 핵심적인(essential) 역할을 한다. 이 때 법칙은 보편 형식의 진술(statements of universal form)이라는 기본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진술은 서로 다른 경험적 현상들 혹은 경험적 현상의 서로 다른 측면들이 한결같은 관계(uniform connection)를 맺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식의 진술이 참이라는 근거들이 있을 경우에 우리는 이 진술을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참이라는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 갈릴레오의 법칙이나 케플러의 법칙은 법칙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뉴턴의 운동 법칙에 비한다면 이들의 법칙은 단지 근사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약간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이러한 법칙들 또한 법칙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런데 보편 형식의 진술들을 모두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이 상자에 들어 있는 모든 돌들은 철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라는 진술도 법칙일까? 우리는 이 진술이 보편 형식을 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편 형식의 진술이어야 한다는 것은 법칙에 대한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다.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우리는 어떤 조건을 통해 법칙인 진술과 법칙이 아닌 진술을 구분할 수 있을까?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이 이 문제에 대해 그럴듯한 해결을 제시했다. 굿맨에 의하면 법칙은 반사실적 조건문(counterfactual conditionals)을 만족시키지만 우연적 일반화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반사실적 조건문이란 만약 A인 경우라면 B가 될 것이다와 같은 형식의 진술을 말한다. 또한 우연적 일반화는 반사실적 조건문과 유사한 가정법적(subjunctive) 조건문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어떤 보편 법칙이 유한한 수의 사례를 일반화한 것인지 무한한 수의 사례를 일반화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전자는 우연적 일반화이고 후자는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기준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편 법칙은 여러 사례들의 연언(conjunction)과 논리적으로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진술과 관련되는 개별 사례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특정한 보편 형식의 진술을 법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와 반지름이 같고 질량이 두 배인 천체에서 물체의 자유낙하는

의 관계를 따를 것이다.”라는 진술은 이런 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확률적 설명이란?

 

   철수가 홍역(measle)에 걸렸다. 마침 며칠 전 철수의 남동생이 홍역에 심하게 앓았고, 따라서 철수는 동생으로부터 홍역을 옮았기 때문에 홍역에 걸렸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홍역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홍역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 철수가 홍역에 걸린 이유를 설명한 과정에서 사용한 추론은 연역적인 것이 아니다. 참인 전제에서 연역적인 추론을 적용한다면 그 결론은 당연히 참일 수밖에 없지만, 위의 경우에서 우리가 얻은 결론은 연역적인 확실성만큼의 확실성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다만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높은 확률로”, “거의 확실하게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귀납적 설명을 통해 우리는 설명항에 담긴 정보로부터 피설명항이 높은(high) 확률로, 실제적인(practical) 확률로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확률적 설명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적 유관성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통계적 확률과 확률 법칙

 

   우리는 “1000개의 공(그 중 600개가 흰 공이다)이 들어 있는 항아리에서 공을 꺼냈을 때 흰 공이 나올 확률이 0.6이다.”,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이 0.5이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1이 나올 확률이 1/6이다.”와 같은 표현들을 자주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런 확률 진술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진술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는 간단하게 모든 가능한 선택지들 가운데서 해당되는 선택지가 차지하는 비율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만약 항아리에 들어 있는 1000개의 공들 중에서 600개의 공이 (의도적으로) 윗부분에 놓여 있다면, 그 항아리에서 공을 꺼냈을 때 흰 공을 나올 확률은 더 높아진다. 이 때 우리는 가능한 선택지들은 서로 같은 확률(equipossible 또는 equiprobable)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다시 서로 같은 확률을 갖는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맞이한다. 항아리에 들어있는 공을 뽑는 것과 같은 아주 단순한 경우에야 서로 같은 확률이 무엇인지를 쉽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복잡 다양한 과학적 현상들 모두에 대해서 선택지 사이의 동일한 확률을 부여하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확률 진술에 대한 다른 가능한 해석이 바로 상대 빈도(relative frequency) 해석이다. 이 해석에서는 아주 많은 수의 시행을 직접 해보고 그 결과 값을 가지고 해당되는 선택지의 확률을 부여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무작위적인 실험 R을 충분히 수행한 후 결과 O가 발생하는 상대 빈도를 갖고 결과 O의 확률을 정한다. 물론 우리는 서로 같은 확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고 그것을 발견법적인 도구로서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우리의 추측은 실제로 문제가 되는 그 현상이 발생하는 상대 빈도에 관한 경험 자료들을 통해 늘 수정되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확률 법칙이 표현하는 확률이란 상대 빈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 빈도라는 개념으로부터는 정확한 확률값을 결정할 수 없지 않은가? 1000번 던진 결과와 1001번 던진 결과가 같다고 보장할 수 없지 않는가? 하지만 시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상대 빈도가 특정한 값에 안정적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서술상의 편의를 위해 수학적 용어를 도입하자면, 상대 빈도의 확률이란 수행의 횟수가 무한대가 될 때 수렴하는 일정한 값을 말한다.

 

   진술

은 무작위적 실험 R을 충분히 많이 했을 경우 결과 O가 나올 확률이 r로 수렴함을 의미한다. 진술

'은 진술 K에 포함되어 있는 증거들을 토대로 가설 Hr이라는 정도로 지지됨을 뜻하고, 이 경우의 확률은 귀납적(logical or inductive)' 확률이며 이는 전자인 통계적(statistical) 확률과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두 종류의 확률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확률 모두 0에서 1 사이의 값을 갖는다. (

,

) 만약

가 상호간 배타적이고

가 논리적으로 배타적이라면,

=

이고

=

이다. 또한

이고

이다.

 

   위와 같은 유사성을 토대로, 통계적 확률 진술의 형태를 띠는 과학적 가설은 실험이 충분히 진행되었을 때 관련된 결과가 보여주는 상대 빈도를 근거로 시험할 수 있다. 그 결과 상대 빈도가 가설의 확률과 거의 일치한다면 그 가설은 입증(confirmation)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확률적 진술이 연역적인 의미에서 완전히 입증되거나 반증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백조는 희다.’와 같은 진술의 경우 희지 않은 백조가 한 마리라도 발견될 경우 그 진술은 반증되지만, ‘결과 R이 나올 확률이 0.15이다.’라는 진술의 경우에는 1000번을 시행한 결과 상대 빈도가 정확히 0.15가 되지 않아도 그 진술이 반증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로, 1000번을 시행해서 정확히 0.15라는 상대 빈도가 측정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확률 진술이 완전히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상 확률에 대한 오차의 범위 또한 논리적인 의미에서 분석할 수 있다. 만약 각각의 시행이 독립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수학적 분석의 방법을 사용해서 n회 시행했을 때 특정한 결과를 얻을 확률에 대한 오차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를 연역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0회 시행했을 경우 해당 결과의 확률이 0.1250.175 사이에 있을 확률이 0.976이다’, ‘10000회 시행했을 경우 해당 확률이 0.140.16 사이에 있을 확률이 0.995이다등과 같이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분석에 의거해서, 만약 충분한 시행을 했을 경우 관측된 상대 빈도가 가설의 확률인 0.15에 비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 우리는 그 가설이 실질적으로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관측된 빈도와 가설의 예상 확률이 얼마나 일치할 경우 가설을 받아들일지, 얼마나 차이가 날 경우 가설을 포기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기준을 엄격하게(stringency) 제시할지 아니면 다소 느슨하게 제시할지는 일종의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는 다양한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며, 최근 확률과 통계에 대한 수학적 이론을 기초로 해서 발전된 통계적 시험과 결정 이론에서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자연과학에서 중요한 법칙들과 이론적 원리들 중 많은 것들이 통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방사성 원소의 반감기에 대한 법칙, 기체 분자 이론에서의 분자들의 운동을 서술하는 법칙 등을 들 수 있겠다. 이에 혹자는 모든 자연 법칙들이 통계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릇된 주장이다. 보편 법칙과 통계적 법칙 사이에는 그 두 법칙의 논리적 성격의 차이를 반영하는 형식적인 차이가 있다. 보편 법칙의 경우,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상관없이 가능한 모든 사건에 대해서 진술하며, 그러한 특성 때문에 보편 법칙은 설명력(explanatory power)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보편적 진술은 통계적 진술이 만족시키지 못하는 반사실적 조건문 또한 만족시킨다.

 

확률적 설명의 귀납적 성격

 

1에 가깝다.

R의 한 사례이다.

════════════ [아주 높은 확률로]

0의 한 사례이다.

 

   확률적 설명은 대개 위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피설명항이 아주 높은 확률로 도출된다고 할 때의 확률은 설명항이 주어졌을 때 피설명항이 갖게 되는 신뢰도(credibility)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단순한 경우

의 값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고, 그러한 경우 피설명항의 신뢰도와

이 같은 값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따라서 단순한 경우에 대한 확률적 설명을 다시 형식적으로 표현해보면,

 

= r

R의 한 사례이다.

════════════ [r]

0의 한 사례이다.

 

  

   물론 설명항이 복잡할(complex) 경우 위와 같이 특정한 확률을 부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들을 야기하고, 여전히 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만약 확률적 설명에 대한 논의를 위와 같이 단순한 경우로 한정한다면, 연역-법칙적 설명과 확률적 설명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법칙임을 알 수 있게 된다. , 연역-법칙적 설명은 보편 법칙을 통해 연역적으로 포섭(subsumption)되며 확률적 설명은 확률적 법칙을 통해 귀납적으로 포섭된다. 확률적 법칙은 그 특성상 설명하고자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배제(preclude)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 법칙은 현상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해당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압도적으로 큰 경우 그 현상이 실제적으로 확실하게(practical certainty)” 일어난다고 의미 있게 서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