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방법론적 반증주의에서의 규약과 판단

강형구 2016. 5. 12. 06:30

 

방법론적 반증주의에서의 규약과 판단

 

   포퍼(Popper)는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한 기준으로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제시했다. 귀납에 대한 흄의 철저한 회의에서 밝혀졌듯 귀납의 타당성은 연역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후건 부정법을 이용해서 결론이 잘못되었을 경우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포퍼는 논리적으로 반증가능하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참일 수 없을 것 같은 낯선 추측들을 과감하게 제시하며, 그러한 추측이 이론을 반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반증가능한 예측들도 잘 견디는 이론을 좋은 과학적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포퍼에 의하면 가장 반증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가장 적극적으로 반증가능성을 무릅쓰는 이론이 가장 모범적인 과학 이론이다. 일식 때 항성의 빛이 휠 것임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러한 예측이 틀릴 경우 이론에 대한 포기마저 감수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모범적 과학 이론의 대표적 사례다. 반면 양립 불가능한 두 현상을 모두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그런 의미에서 반증가능하지 않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나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과학이라고 불릴 수 없다.

  

   문제는 어떤 이론을 위협하는 반증사례를 확인했을 경우, 해당 이론을 구제하기 위해서 임시방편적인 보조 가설을 도입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늘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빛의 전파 매질인 에테르(ether)의 존재 여부를 시험했던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이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했을 때, 로렌츠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이동할 경우 속도에 따라 이동 방향으로 물체의 길이가 수축한다는 보조 가설을 제시했다. 플로지스톤(phlogistion) 이론에 따르면 물체는 연소를 통해 플로지스톤을 방출하고 따라서 연소 이후의 물체의 무게는 줄어들어야 했지만 금속의 연소 실험 등을 통해 연소 이후 물체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 이 이론을 믿었던 화학자들은 플로지스톤이 음의 질량을 가진다는 보조 가설을 제시했다. 천체가 일정한 속도로 원형 궤도를 회전하는 톨레미의 체계에서는 행성들의 역행 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고, 따라서 톨레미 체계를 믿는 천문학자들은 원형 궤도를 회전하는 또 다른 궤도인 주전원을 도입해서 역행 운동을 설명했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규약주의를 논리적인 차원에서 반박할 수 없다. 포퍼 자신도 인정하고 있듯, 규약주의는 자기 충족적이고 옹호가능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규약주의자는 특정한 반증사례에 직면했을 경우, 우리가 해당 이론을 제대로 숙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거나, 이론에 임시방편적인 보조 가설을 도입하거나, 반증사례를 도출한 측정 장치 혹은 측정 과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옹호할 수 있다. 이러한 규약주의자의 입장에 대항하기 위해 포퍼는 논리가 아닌 방법을 도입한다. 규약주의를 겨냥한 포퍼의 방법론적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문제가 되는 이론의 반증가능성이나 시험가능성을 축소시키는 보조 가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추가적으로 도입되는 보조 가설은 반증가능성이나 시험가능성을 증가시켜야 한다. 이러한 방법론적 규칙은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참도 거짓도 아닌 규약이며, 이 규약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다름 아닌 우리의 판단(decision)에 달려 있다.

  

   규약과 판단은 포퍼의 기초적 진술(basic statements)’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한다. 특정 시공간 상에서 일어나는 관측 가능한 사건에 대한 진술인 기초적 진술은, 단칭 존재 진술의 형태를 띠며 한 이론의 반증가능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형식적인 기준 만으로는 어떤 진술이 기초적 진술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어떤 진술이 만족스럽고 충분하게 시험되었는지를 판단해야 하며, 이러한 판단은 기초적 진술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기초적 진술들은 일종의 규약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적 진술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목적 지향적인 행위의 일부분이며, 이러한 진술들을 받아들임에 있어 다양한 이론적 고려가 개입된다. 이렇듯 방법론적 규칙과 기초적 진술에서의 규약과 판단을 인정한다면, 포퍼의 주장하는 방법론적 반증주의와 규약주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포퍼는 기초적 진술들에만 규약과 판단을 허용함으로써 반증주의를 규약주의와 구분한다. 규약주의자와는 달리 방법론적 반증주의자는 모든 운동하는 물체는 운동 방향으로 일정한 방식으로 수축한다’, ‘모든 플로지스톤은 음의 질량을 갖는다등과 같은 보편적 진술을 규약 혹은 판단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법론적 반증주의자는 오직 경험적으로 관측 가능한 단칭 존재 명제만을 판단을 통해 규약으로서 받아들인다. 포퍼에 따르면 반증주의자는 어떤 이론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시험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적(aesthetic)이고 심리적인 이유로 특정 이론을 옹호하려는 규약주의자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다. 포퍼에게 아인슈타인, 라부아지에, 코페르니쿠스는 방법론적 반증주의자인 반면, 로렌츠, 프리스틀리, 티코는 규약주의자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 두 가지를 제기할 수 있다. 첫째, 규약주의에 대항하는 포퍼의 방법론적 규칙을 따른다고 해도, 어떤 보조 가설이 임시방편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그 가설이 반증가능성을 증가시키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물론 우리는 사후적 관점에서 로렌츠, 프리스틀리, 티코의 가설이 임시방편적이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아직 그 성공 여부를 아직 판단할 수 없는 과학 이론에 대해 평가하려고 할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현대 물리학의 고도로 전문적인 논의(끈 이론)를 생각해보자. 이 이론에서는 시간 차원을 제외하고 9차원이 등장하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일반적인 3차원 공간에 미시적인 6차원 공간(이른바 칼리비-야우 다양체)이 스며들어 있다. 과연 끈 이론에서 덧붙여진 이 6차원 공간은 임시방편적인 보조 가설인가 그렇지 않은가? 포퍼는 전문적인 물리학자들의 경우 이 가설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답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해 합의된 결론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둘째, 포퍼는 규약과 판단을 기초적 진술에만 한정시킴으로써 특정 이론의 반증가능성을 최대한 보장하려고 하지만 과연 그의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인가? 16세기 중반 이후 망원경과 현미경이 발명되고 이후 과학 기구들과 과학 이론이 병행해서 발전하면서, 과학에서의 기초적인 명제들 또한 매우 이론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우리는 분광기를 사용해서 한 원소의 스펙트럼을 확인하고, 전류계를 통해 전기 회로에 흐르는 전류를 측정한다. 이렇듯 이론적 요소가 포함된 기초적 진술들이 과학 이론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기초적 명제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만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결정한다고 해도 그 명제에 대한 부정적인 확인이 곧바로 해당 이론을 반증했다고 판단하기 힘들다. 기초적 명제 자체에 이론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그 명제와 관련되는 이론 사이의 관계와 그 명제를 확인했던 실험 절차의 정확성 등에 대해 합당하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론이 틀렸음을 보이기 위해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대담한 추측을 해야 하며, 이론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시방편적인 보조 가설을 덧붙이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포퍼의 합리적 제안은 많은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실천적인 지침(maxim)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공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이론의 평가에 대해서는 포퍼의 방법론적 반증주의가 결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 반증가능성이 포퍼의 생각만큼 명확하게 판단되고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은 그의 과학적 방법론이 지닌 중요한 한계임이 분명하다. 어떤 보조 가설이 임시방편적인지 그렇지를 판단할 수 있는 더 정밀한 방법론적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가? 한 이론의 특정한 기초적 진술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더 일반화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과학적 지식에 대해 방법론적 지침과 일반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그 자체로 불가능하지는 않는가? 이러한 의문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