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푸앵카레 규약주의의 논리적, 심리적, 경험적 성격

강형구 2015. 11. 21. 22:50

 

   유명한 과학자, 특히 수학자는 그가 하는 일에서 예술가와 같은 경험을 한다. 그의 기쁨은 그만큼 크고 본질적으로 그와 같은 것이다. -앙리 푸앵카레-

 

1. 여는 말 : 19세기 말 자연과학의 풍경

 

   19세기가 끝나갈 무렵의 자연과학의 상황은 매우 다채롭고 역동적이었다.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이 그의 저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1687년에 발표한 이후, 역학과 해석학은 서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수학과 물리학 사이의 상호작용은 복잡하면서도 필수적이다. 물리학적 직관이 수학의 개념들을 창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물리학적 직관 또한 수학적 개념들로 투영되었을 경우에만 논리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조작과 실험이 가능해진다. 기본적으로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데까르뜨(Rene Descartes), 뉴턴이 그 기틀을 닦은 고전역학의 세계관을 발판으로 발전하고 있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들에서 그 세계관으로 포섭할 수 없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움직임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우선 수학의 경우, 1820년 이래로 비유클리드 기하학 및 비가환 대수학이 발견된다. 유클리드가 그의 책 원론(Elements)을 썼던 당시부터 그의 다섯 번째 공리인 평행선 공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평행선 공리는 다른 네 개의 공리들에 비해서 직관적으로 단순하지도 않았고, 직선을 양쪽으로 끝없이 연장했을 때를 가정하는 일종의 무한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행선 공리를 다른 공리들로부터 도출해내려는 시도, 평행선 공리를 부정했을 경우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을 통해 평행선 공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 등은 결국 볼리야이(Bolyai), 로바체프스키(Lobachevsky), 가우스(Gauss) 등으로 하여금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그런데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은 단순히 수학의 한 정리를 발견한 차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수학적 기하학과 물리적 기하학은 하나였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우리가 인식하는 물리적 공간을 기술하는 데 있어 그 토대가 되는 유일한 기하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다양한 수학적 기하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적 기하학과 물리적 기하학의 단일성이 붕괴되었다. 이렇듯 수학적 기하학과 물리적 기하학이 구분된다면, 대체 우리가 지각하는 물리적 공간에 적용되는 올바른 기하학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무엇이 올바른 물리적 기하학인지를 과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수학을 비롯한 모든 정밀과학의 토대에 대한 철학적 의문들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기하학에서와 유사한 상황이 대략 비슷한 시기에 대수학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5차 이상의 방정식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을 탐구하면서 아벨과 갈루아가 수 체계의 대수적 구조 그 자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였고, 복소수가 평면에서의 벡터로 해석될 수 있으며 벡터가 물리 현상을 기술하는 데 아주 유용한 개념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벡터 연산을 포함하는 새로운 대수적 구조를 모색하려는 움직임 또한 일어났다. 이러한 시도의 결과로서 실수와 복소수를 포함하면서도 곱셈에 관한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사원수의 체계, 즉 비가환 대수학이 해밀턴에 의해 발명되고, 그 결과를 그라스만이 광범위하게 일반화하기에 이른다. 이제 대수학에서도 하나의 구조가 아닌 무수히 많은 대수학적 구조가 가능하게 되면서, 기하학에서와 유사한 의문들이 다시 제기된다. 이런 많은 대수적 구조의 존재론적 의의는 무엇인가? 이러한 구조들은 단지 수학적인 개념들의 조합일 뿐 물리적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라면, 이러한 구조들이 적용되는 물리적 현실이 분명히 존재하며, 다만 우리의 인식과 사고가 그러한 현실의 구조를 발견한 것일 뿐일까?

 

   약간 그 성격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물리학에서도 그 기초를 뒤흔들 만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을 장 물리학(physics of fields)의 형성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뉴턴 역학에서의 힘 개념이 뉴턴 당대의 라이프니츠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물체가 상대의 질량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순간적으로 힘을 작용한다는 뉴턴의 중력 개념은,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에 의한 힘의 전달만을 운동의 토대로 받아들이던 많은 학자들로부터 신비적이고 미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뉴턴 자신이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의 역학은 그 미심쩍은 철학적 토대에도 불구하고 자연 현상들에 아주 성공적으로 적용되었으며, 그에 따라서 절대시간, 절대공간, 질점과 원격 힘을 토대로 하는 뉴턴 역학은 모든 과학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그 기초를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대의 전형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패러데이가 풍부한 물리학적 상상력과 직관을 통해 장의 개념을 물리학에 도입한 것, 그리고 그러한 장의 개념을 수학적 재능이 풍부하고 정규 교육을 충실히 이행했던 맥스웰이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것은, 과학적 발명에서 논리와 직관이 서로 얼마나 긴밀한 관련을 맺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자기 현상의 본질은 전자기장의 구조에 있으며, 그 장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구조를 형성하는지가 본질적인 문제이다. 질점(質點)과 힘의 역학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물질이 즉각적으로 힘을 작용할 수 있다면, 장의 역학에서는 한 물질이 그 주변 공간에 장을 형성하고 그 장의 구조가 점차 근처로 확산되면서 다른 물질에 물리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전자기학에서 근거한 이러한 장의 개념이 기존에 확립된 고전역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가 당시의 물리학자들을 사로잡은 중요한 문제였고, 꼭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이처럼 19세기 말에는 자연과학에 새롭고 다양한 개념과 경험들이 도입되어 탐구되고 있었으며, 학자들은 그 철학적 배경과 토대를 다시 확립하고 그것들을 통합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2. 보편학자로서의 앙리 푸앵카레 : 오해에 대한 해명

 

   푸앵카레는 대개 19세기 말의 위대한 만능 수학자로서 자주 언급된다. 그리고 과학철학의 분야에서는 소위 말하는 규약주의(conventionalism)를 철학적으로 주장한 학자로서 언급된다. 하지만 순수하게 수학사적인 측면에서 푸앵카레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규약주의라는 하나의 주제에 국한해서만 그를 이해하는 것은 둘 다 한계를 지닌다. 일반 상대성이론의 등장으로 인해 세계를 기술하는 데 유효한 물리적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닌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광범위하게 인정되면서, 어떤 기하학을 사용하는지는 그저 규약과 편리함의 문제일 뿐이며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가장 사용하기 편한 유클리드 기하학을 사용할 것이라는 푸앵카레의 주장은 그릇되었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평가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푸앵카레는 틀렸고 아인슈타인이 옳았다는 식의 이해는 분명 그릇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글들과 그에 대한 여러 전기들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지적 자극을 준 학자들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등이며 그 중에서도 상대성이론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인물은 흄과 마흐다. 그리고 그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로렌츠(Hendrik Lorentz)살아있는 예술작품이라 부르며 존경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인물들 가운데 푸앵카레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오류임이 분명하다. 수학과 물리학 및 과학 전반에 대해서 푸앵카레가 어떤 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그의 저서 과학과 가설,과학의 가치,과학의 방법,최후의 명상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저서에서는 단순히 그의 규약주의뿐만 아니라 당대의 수학과 물리학의 본질은 어떠하며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포괄적인 생각이 종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가 얼마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는지, 또한 그의 관심사가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었는지는 그의 책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1902년에 출간된 그의 과학과 가설중 관련되는 목차들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비유클리드 기하학(3), 공간과 기하학(4), 경험과 기하학(5), 상대적 운동과 절대적 운동(7), 물리학에서의 가설(9), 광학과 전기학(12), 전기역학(13). 그는 에른스트 마흐와 더불어서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으며, 인간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측정하고 인지하는지를 심리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세밀하게 분석해나간다. 또한 그는 과학적 법칙의 인식론적인 지위 및 과학에서의 가설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비록 아인슈타인만큼 대담하고 혁신적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상대성의 물리학에 가장 근접했고 그 물리학에 가장 적합한 철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학자는 마흐나 로렌츠가 아닌 푸앵카레였다.

 

   우리에게 에를랑겐 프로그램(Erlangen Program)과 클라인 병으로 잘 알려져 있는 펠릭스 클라인(Felix Klein)은 자신을 리만의 정통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푸앵카레의 논문을 읽고 그와 서신을 교환하며 경쟁한 이후에 실질적으로 창조적인 수학자로서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리만과 그의 기하학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리만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발견한 것에서 더 나아가, 모든 종류의 기하학을 정의하고 분류할 수 있는 해석적인 토대를 세웠기 때문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그 자체보다는, 어떤 물리적 요구나 이론적인 필요에 의해서 특정한 성격의 기하학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할 때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틀과 도구가 더 본질적이다. 리만과 푸앵카레는 그런 틀과 도구를 발달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특히 푸앵카레는 현대 위상수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푸앵카레는 특수 상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 모두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후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특수 상대성이론이 탄생할 당시에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및 상대성의 원리에 대해 마흐, 푸앵카레 등이 집중적인 분석과 논의를 하고 있었다. 또한 푸앵카레와 로렌츠 사이에 교환된 서신을 살펴보면, 로렌츠가 자신의 변환식을 이끌어내는 데 푸앵카레와의 의견 교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수 상대성이론 발표 이후,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및 공간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기하학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푸앵카레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현재 몇몇 과학사가 및 과학철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진 상태다. 실제로 우리는 푸앵카레의 저작에서, 상대성원리를 유지하면서 그에 적합한 기하학(혹은 그 기하학에 적합한 계량metric을 표현하는 편미분방정식)을 어떤 방식으로 도출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푸앵카레의 풍부한 암시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푸앵카레의 규약주의가 당대의 철학적 사조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시 프랑스를 풍미하던 베르그송의 철학은 인간의 이성이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실재적인 모습을 특정한 방식으로 왜곡한다고 주장하면서 반주지주의적인 사조를 표방하고 있었다. 또한 몇몇 다른 학자들은, 과학에서의 법칙 또한 변화가능하며 과학적 법칙이나 원리 또한 인간이 세계를 다루는 데 유용하게 기능하는 편리한 도구일 뿐이라는 유명론적(唯名論的) 입장에서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푸앵카레는 이러한 반주지주의적이고 과학적 합리성의 위상을 위협하는 도전들에 맞서서 과학의 객관성을 옹호하려고 했다. 그의 규약주의가 과학의 객관성을 옹호하려 했던 하나의 방법이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푸앵카레 규약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그가 말하는 규약이라는 것이 어떤 사전적 논의를 근거로 표현된 것인지, 그의 규약이 정확히 어떠한 성격을 띠는지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푸앵카레 규약주의의 다채로운 측면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수학적 직관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는 푸앵카레가 수학과 물리학에 사용되는 연역적 논리의 본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확인해보고, 그 다음으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심리적경험적 접근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주장하는지를 살펴보겠다. 또한 푸앵카레의 규약주의가 어떤 점에서 유명론과 다를 수밖에 없는지를, 또한 과학에서의 규약이 이론 및 경험적인 요소와 어떤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했는지를 따져봄으로써 그의 규약주의가 충분한 논리적경험적심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음을 보이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규약주의가 갖는 한계를 다루되, 이후 그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 발전적으로 계승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3. 수학적 직관과 물리적 직관을 보증하는 두 방법 : 연역과 규약

 

   우리는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고, 모든 것들을 정의할 수도 없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정의할 것이며 무엇을 증명할 것인가를 우리의 직관으로부터 이끌어내야만 한다. -앙리 푸앵카레, 과학과 방법

 

   수학과 물리학은 둘 다 정밀과학에 속하며, 그 두 과학의 발전이 자연과학 전체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19세기 말에 이르러 수학과 물리학에서 기존의 통념과는 상반되는 혁신적인 발견과 발명이 이루어지면서, 푸앵카레 같은 철학적 관심사를 가진 과학자들은 수학과 물리학의 인식론적인 토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그것을 해명하려고 시도했다. 만약 수학이 엄격하게 연역적인 논리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작업이라면, 그것은 결국 동어반복(tautology)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만약 수학적 작업 전체가 동어반복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수학의 창조성을 풍부하게 하고 또한 그러한 창조성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것일까? 이와 유사한 물음이 물리학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 자연과학 중에서도 물리학은, 비록 수학에 비해서는 확실성에 대한 보장이 다소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아주 성공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물리학이 이토록 성공적일 수 있는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진정한 수학적 추론은 실질적인 귀납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그것이 물리적인 귀납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고 하더라도, 개별 사례로부터 보편적인 결론을 도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수학적 추론의 이 러한 성질을 부정하고 수학적 귀납을 논리 규칙으로 환원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였으며, 다만 초 심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스스로를 힘겹게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푸앵카레는 수학적 추론의 본질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수학적 추론이 동어반복적이지 않은 까닭은 수학이 수학적 귀납법의 원리를 사용하여 개별적인 사실들에서 일반적인 수학적 법칙을 증명할 수 있다는 데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수학적 귀납법의 원리 그 자체를 우리가 인정하는 한 우리의 수학적 증명은 순수하게 연역적이라는 것이고, 수학적 귀납법의 원리는 경험이나 논리를 통해 증명될 수 없으며 다만 우리의 직관에 명백하게 부합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개별적인 수학적 사례들에서 일반적인 수학적 법칙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러셀이나 힐베르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몇몇 공리들과 논리적 규칙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다. 개별 사례들에서 일반적 법칙을 추측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이다. 직관에 근거한 추측이 이루어진 후에야 우리는 수학적 귀납법이라는 원리를 통해 그 추측에 대한 연역적 증명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 많은 길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우리들이 멀리서도 목적을 바라볼 수 있는 천부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 천부의 능력, 그것이 바로 직관인 것이 다. 직관은 탐구자가 길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것이며, 또한 탐구자의 뒤를 이어 그가 발견한 것을 공부 하려는 사람이 탐구자가 왜 그 길을 택하였는가를 알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로 직관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푸앵카레의 의견을 수용하여 수학에서의 증명은 단지 직관이 추측한 것을 증명하는 기능을 할 따름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렇다면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직관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수학적 명제를 추측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을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첫째로는 푸앵카레 자신이 스스로의 수학적 작업 과정의 심리적인 측면에 대해 서술한 내용을 참조할 수 있으며, 둘째로는 푸앵카레가 큰 기여를 한 위상수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수학적 직관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의 수학자 자크 아다마르(Hadamard)는 그의 저서 수학에서의 발명의 심리학(1975)에서, 수학적 창조 과정이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탐구를 수행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여러 수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하고 인터뷰도 실시하였는데, 당대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던 푸앵카레도 당연히 그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었다. 조사결과 푸앵카레의 가장 혁신적인 수학적 착상은 특정한 문제에 대한 정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서 떠오른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서 의식적인 생각을 중지하고 다른 일을 하는 순간에 불현듯 우연하게 떠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한 푸앵카레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 후 나는 광산학교가 주최한 지질학회 참석차 당시에 살던 곳인 캉을 떠났다. 여행길에 오른 탓에 나 는 나의 수학 연구를 잊어버렸다. 우리 일행은 쿠탕스에 도착하여 자동차로 갈아타기 전에 잠시 쉬었다. 그리고 내가 자동차에 오르던 순간, 그전에 나는 이 생각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도, 내가 푹스 함수를 정의하기 위해서 사용한 변환들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변환들과 동일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증명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일행과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확신을 가졌다. 캉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여유시간을 이용 하여 그 결론을 내게 만족스러울 만큼 증명했다.

 

   하지만 해당 주제에 대한 적합한 수학적 직관은 아무런 노력 없이 단순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합한 수학적 직관을 얻는 방법을 완전하게 명료화하고 그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해당되는 주제에 대한 의식적이고 집중적인 노력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그러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 때의 의식적이고 집중적인 노력이란, 단순히 그 분야의 개념들만 파고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푸앵카레 본인이 몸소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광학, 전기학, 전신, 모세관 현상, 탄성, 열역학, 전위이론, 양자이론, 상대성이론, 우주진화론 같은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다양한 주제들을 아우르면서도 다음과 같은 충고를 잊지 않았다.

 

   수학의 앞날을 내다보는 참된 방법은 그 역사와 현재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푸앵카레는 물리학에 대해서도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직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학에서 수학적 명제들의 참됨을 수학적 귀납이라는 증명의 도구가 연역적으로 보장해주었다면, 물리학에서 직관에 근거한 추측의 옳고 그름을 보장하는 것은 규약과 경험,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규약과 경험의 상호작용이다. 당대를 풍미하던 반주지주의적인 철학과 유명론의 철학은, 물리학은 단지 규약에 의하여 성립되며 그 외관상의 확실성은 단지 이 규약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고, 푸앵카레는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물리학에서의 규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더 상세하게 논의한다. 비록 물리학에서 규약적 성격을 띤 명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물리학에서의 규약은 특정한 방식으로 경험과 상호작용하며 그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에 대한 푸앵카레의 설명을 들어보자.

 

   ...요약해서 말하면 학자가 사실에 대하여 만들어 내는 것은 다만 이것을 진술하는 말에 불과하다. 학 자가 사실을 예측할 때는 이 언어를 사용하며, 그리고 이것을 말하고 이것을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그 예언은 아무런 애매함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이 예측을 한번 발표하면, 그것이 실 현되는가 아닌가는 분명히 그가 지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푸앵카레에 따르면 물리학에서의 규약은 일반적인 의미의 규약처럼 언제든지 편의에 따라 임의로 수정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서 애매함 없이 명료하게 정의해 놓았을 경우, 그 규약을 사용하여 경험을 예측한 결과를 우리 스스로 통제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만약 그 규약을 사용한 예측이 실패했을 경우, 우리는 다른 실험 결과들을 참조하고 숙고한 후에 좀더 그럴싸한 새로운 규약과 새로운 예측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한 규약과 예측은 우리의 직관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푸앵카레로부터 직접 들어보자.

 

   ...하나의 법칙이 경험에 의하여 충분히 확인되었을 때, 우리는 이에 대하여 두 가지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즉 첫째는, 우리가 법칙을 뒤섞인 채로 놓아두는 것이다. 그 경우에 법칙은 끊임없이 검사를 받으 며, 그 결과 틀림없이 그 법칙은 단지 근사적인 데 지나지 못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둘째, 우리는 규약에 의하여 그 명제가 확실히 참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법칙을 원칙으로 높일 수 있다... 이미 결정 (決定)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원칙은 이미 경험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이것은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 니고 편리이기 때문이다.

 

   푸앵카레의 책 과학의 가치1905년에 출판된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푸앵카레의 생각은 이후 아인슈타인과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연스럽게 논리실증주의 혹은 논리경험주의의 사조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처럼 푸앵카레가 말하는 규약은 굉장히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음과 같은 일련의 의문을 제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이러한 의문들은 곧 과학철학의 중심 주제가 된다. 과학에서의 규약은 경험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어야만 그 의미의 애매함을 제거할 수 있는가? 혹은, 규약을 경험과 대비시키는 데 있어서 애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가능한 규약들 중에서 어떠한 규약을 선택해야 하는가? 우리가 규약들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가?

 

   푸앵카레는 직관을 정당화하는 연역과 규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직관은 단지 인간이라는 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었다. 물론 푸앵카레는 인간의 직관이 절대적인 보편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논리가 아닌 우리의 직관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직관이 외부의 실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준다고 믿었다. , 푸앵카레는 온건한 실재론자였다. 그는 자신의 실재론적 입장을 철학적으로 논증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수학과 물리학을 넘나드는 온갖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룸으로써 그것을 실질적으로 증명해냈다. 푸앵카레가 자신의 실재론적 입장을 표명한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연역과 규약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마무리하자.

 

   ...많은 사람은 과학에서의 규약의 뜻을 과대시하여 법칙, 즉 과학적 사실 그 자체까지도 학자들이 만들 어 낸 것으로 믿기 쉽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유명론의 방향으로 기운 것을 말한다. 과학적 법칙은 결코 인위적인 창조물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연적이 아니라고 증명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 연이라고 할 만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실재라는 것은 철저히 생각할 때 많은 사유자에 공통이고, 또 모든 사유자에 공통일 수밖에 없 는 것이다. 이 공통되는 것은 나중에 알 수 있듯이 수학적 법칙에 의하여 나타난 조화에 지나지 않는다...

 

   ...질서있는 집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경험된 감각에 대응되는 것이 아니면 객관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

 

   ...과학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관계의 시스템이다...

 

   ...유일한 객관적 실재는 사물의 관계이고, 세계의 조화는 이로부터 생긴다. 이 관계와 조화라는 것은 이 것을 생각하고, 감지하는 정신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 되고 또 장래에도 공통될 것이므로 객관적인 것이다...

 

4.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및 상대성원리 : 경험적심리적 접근

 

   푸앵카레가 쓴 네 권의 저서들에는 확연한 일관성이 있다. 푸앵카레는 그의 전 저작에서 물리학에서의 상대성의 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리학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어떤 측면이 규약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한다. 실제로 푸앵카레는 적어도 특수 상대성이론에는 철학적으로나 수학적으로나 거의 도달해 있었으며, 결정적인 목표점으로부터 겨우 한 발짝 떨어져 있었을 뿐이다. 더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가 아인슈타인 못지않게 상대성의 원리 및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이 어떤 근거를 가지는지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아인슈타인 또한 뉴턴과 마찬가지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면, 그 거인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푸앵카레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선 공간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자. 푸앵카레는 우리가 어떻게 공간이라는 개념을 형성하게 되는지를 심리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고찰한다. 그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생명체로서 지각하는 공간을 기하학적 공간과는 구분하며 표상적 공간이라고 부르는데, 표상적 공간은 시각적촉각적운동감각적 공간을 포함한다. 우리가 공간을 3차원이라고 상정하는 이유는 2차원인 시각적촉각적 공간과 1차원인 운동감각적 공간이 서로 되기 때문이며, 이러한 표상적 공간을 기하학적 공간과 매개하는 데 있어서 유일하게 정해지는 단 하나의 방식은 없다. 그에 따르면 동일한 경험적 대상을 유클리드 공간의 법칙과도 연결시킬 수 있고 그에 못지않게 비유클리드 공간의 법칙과도 연결시킬 수 있으므로,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기하학의 공리는 선험적이지도 않고 종합적이지도 않은 일종의 규약인 것이다.

 

   우리의 물리적 공간이 표상적 공간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은 가상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만일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들의 신체와 측정의 기계도 모두 함께 공간의 다른 영역으로 옮겨졌다고 하자. 또 이들 간의 거리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들은 다른 영역으로 옮겨졌 음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지금도 지구의 운동에 의하여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상이 모두 동일한 비례로 커졌 다고 하고 우리들의 측정 기계도 마찬가지로 커진다면 우리들은 또한 그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 고 보면 우리들은 대상인 공간에서의 절대적 위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고찰을 인간의 감각기관과 측정도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상대성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면, 푸앵카레는 이와 구분되는 물리적 상대성에 대해서도 논한다.

 

   세계가 돌아가고 있는 법칙을 생각하여 보자. 우리는 이들을 미분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이 직교 좌표를 다른 좌표형식으로 바꾸어도 축이 고정되어 있기만 하면 이들의 방정식은 본 질적으로는 같아진다. 또 시간의 원점을 바꾸고, 고정된 직교축을 운동하는 직교축으로 바꾸어도, 다만 이 운동이 등속 직선적인 운동이기만 하면 방정식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공간의 심리적 상대성으로 인하여 기계가 측정할 수 있는 것 외에는 관측할 수 없다..

   세계의 여러 부분은 연대적(連帶的)이지만 그것은 거리가 아주 커질 때 부분은 얼마든지 작아지고 그 작용은 사람이 무시할 정도로 미약한 것이 된다...

   현재 우리의 작은 세계가 서로 다른 것으로부터 멀어져 가도 그 원리는 역시 참이라고 생각하고 또 우리는 그것이 우주의 정확한 방정식에 대해서도 참이라고 규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규약은 언제까 지나 결함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서로 떨어진 두 세계는 마치 서로 의존하지 않는 것 같은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푸앵카레에 의하면 세계가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부분적인 관측계의 독립성이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심리적 상대성원리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고유의 감각기관과 측정 기계를 사용해서 공간을 측정해야만 하고, 따라서 자연법칙을 서술할 때 관측계 상호간의 차이에 상관없이 자연법칙이 동등하게 표현될 수 있음을 원리로서 상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리적 상대성인데, 이러한 물리적 상대성은 심리적 상대성과 달리 실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지만, 두 계 사이의 거리를 증가시킬 경우 두 계 사이의 상호작용이 점차로 줄어든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잘 입증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믿을 만한 원리이다.

 

   우리가 절대적인 공간을 상정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하게, 우리는 또한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것도 상정할 수 없다. 우리는 두 개의 시간의 길이가 같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는 없고, 다만 시간의 길이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전제할 경우에 그 길이를 비교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물리적 세계에는 소위 말하는 완벽한 측정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자를 사용하든, 전자기적인 기구를 사용하든 그러한 도구들에는 필연적으로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측정도구의 완전무결함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시간 측정의 임의성은 소멸하지 않는다. 우리가 측정도구를 사용해서 시간을 측정할 때의 전제란 바로 두 개의 동일한 원인이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물리적 현실세계에서는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결과를 낳고, 동시에 그러한 원인의 각각이 결과에 미치는 것을 분별할 어떠한 수단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과학의 분야들, 특히 천문학에서 사용되는 시간 측정을 분석한 후 푸앵카레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나는 동시라는 것과 두 개의 시간에 대한 상등 개념에는 모두 어떠한 직관도 갖지 못한다고 본다. 우 리가 이에 대하여 직관을 갖는 것처럼 믿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보편타당한 규칙이 아 니고 각각 특수한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작은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두 사건의 동시 또는 계속 생겨 나는 순서, 그리고 두 개의 시간의 길이의 상등은 자연법칙의 표현이 가능한 한 간단하게 정의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규칙, 정의는 단지 무의식적인 편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푸앵카레가 말하는 편의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문자 그대로 자유롭게 설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현재 갖추고 있는 역학의 법칙, 각종 천문학상 실험의 결과, 이론적인 단순함, 직관적인 확신 등이 어우러져서 얻어지는 규약이다. 이와 관련하여 푸앵카레는 수리물리학에서의 각종 원리(원칙)들을 분석하면서 그 중 어떤 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 타당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또한 어떤 것이 여전히 유효하며 확고부동하게 여겨지는지를 논한다. 이러한 논의는 수리물리학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또한 현재 어떤 실험적 근거들로 인해 물리학의 원리들이 위기에 처했는지를 알아야만 의미 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떠나 순수한 논리적철학적 관점에서는 물리학적 규약의 타당함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이상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자. 푸앵카레는 수학과 물리학 모두에 핵심적인 것은 직관이며, 그것은 인간의 심리적 속성 및 경험적 지식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으며 형성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감각 기관과 경험을 통해서 시간 및 공간을 인지할 수 있고, 그러한 인지에 덧붙여 우리는 이지적인(이성적인) 능력을 활용하여 시간 및 공간에 대한 규약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인간의 인지과정과 무관한 절대적인 시간공간 개념은 의미가 없어진다. 규약을 추측하는 것은 직관의 능력인데, 이때의 직관이란 신비스럽고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실험적 지식들에서 보편적이고 단순한 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간의 힘이다. 이러한 직관은 수학에서는 연역적 증명으로 그 타당성이 시험되고, 물리학에서는 경험을 토대로 그 적합성 여부가 결정된다. 상대성원리는 세계에 대한 인간 지각의 한계로 인해 심리적인 측면에서 자연스럽지만, 물리적인 관점에서도 현재까지 잘 적용되어왔으며 그런 의미에서 믿을 만한 원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5. 규약의 의미를 밝히되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 규약주의

 

   푸앵카레가 과학적 인식에서 규약의 역할이 핵심적임을 밝힌 것은 과학적 지식의 인식적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푸앵카레는 수학과 물리학의 여러 분야 및 생리학과 심리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이런 넓은 관심사와 배경 지식을 토대로 과학적 지식의 본성을 논했다. 기하학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살펴보더라도, 이는 수학물리학생물학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주제임이 분명하다. 푸앵카레와 같은 다방면에 능통한 학자만이 이 주제를 제대로 탐구할 수 있었으며, 또한 이는 과학적 주제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광범위한 지적 배경을 필요로 함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수학의 분야에서 푸앵카레는 러셀의 논리주의와 힐베르트의 형식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수학의 공리들 또한 규약이라고 주장했는데, 물론 이 때의 규약은 수학적 직관에서 비롯되며 반드시 수학적 귀납의 원리라는 연역적인 방법에 의해서 보장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푸앵카레의 생각은 브라우베르(Brouwer)와 바일(Weyl) 등 직관주의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직관에 근거한 그의 수학적 스타일은 그를 리만의 후계자이자 현대 위상수학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되게끔 하였으며, 현대 수학이 직관적인 방법인 기하학적 방법을 도입해서 각종 문제를 풀이할 수 있게 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했다. 이는 수학과 물리학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재개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리학적 측면과 인식론적 측면에서 푸앵카레의 규약주의가 가지는 의의는 그 한계와 구분되지 않는다. 푸앵카레는 우리가 물리적 시공을 서술하는 데 사용하는 기하학이 결코 경험으로써 입증되거나 반증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유클리드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세계를 서술하는 타당한 기하학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또한 그는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 및 물리학에서의 상대성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그의 저작들에서 누차 강조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수학적으로 참임을 확인했음에도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그 사실을 숨겼던 가우스와 비슷하게, 상대성이론을 향한 그의 마지막 한 걸음을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에테르(ether)와 유클리드 공간의 절대성에 대한 그 자신의 오랜 통념이었는지도 모른다.

 

   푸앵카레는 물리학에서의 각종 원리들과 규약들이 왜 타당한지, 어떤 의미에서 만족스러운지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적 논의를 전개하지는 못했다. 비록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및 상대성원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물리학 자체를 개혁하였지만, 그 또한 푸앵카레처럼 자신이 사용한 방법과 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인 논의를 하지는 않았다. 푸앵카레의 규약주의와 상대성이론의 성공에 깊은 자극을 받고 이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시작한 학자들은 모리츠 슐릭(Moritz Schlick),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등 논리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의 창시자들이었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이 인식론적으로 타당한 명제의 조건을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과 흄(Hume)의 철학으로부터 이끌어냈다는 주장은 사소한 것이거나 혹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영감은 분명 현대 물리학과 현대 수학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들의 인식론은 이러한 정밀과학들이 제기하는 경험직관논리 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다.

 

   푸앵카레의 문제의식이 논리경험주의자들에 의해서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슐릭과 라이헨바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승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물리학의 이론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승인되고 정당화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푸앵카레가 말했듯 상대성원리나 시간의 측정, 공간의 기하학이 일종의 규약이라면, 대체 무슨 이유로 상대성이론이 성공을 거두면서 기존의 역학을 대체할 수 있었을까? 슐릭은 푸앵카레의 규약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중에서 더 나은 물리이론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서 탐구했고, 라이헨바흐는 신칸트주의적 입장에서 어떻게 기존의 규약과는 다른 새로운 규약이 경험적 입증을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했다.

 

   물론 논리경험주의의 등장과 부흥에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과학 이론이 그 정당성을 얻는 인식론적 구조에 대한 정밀한 논의는 푸앵카레, 마흐, 아인슈타인, 슐릭, 라이헨바흐, 카르납(Carnap), 브릿지먼(Bridgman), 헴펠(Hempel)로 이어지는 계열의 학자들이 주도했다고 보아야 한다.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이 물리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수학적이었지 물리학적이지는 않았다. 현대철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철학의 언어적 전회는 논리주의적인 수리철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직관주의적인 수리철학과 새로운 물리학의 발전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논리경험주의의 초기 면모를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6. 맺는 말 : 앙리 푸앵카레 - 현대 과학적 인식론의 선구자

 

   이 짧은 에세이의 목적은 과학에 대한 푸앵카레 사상의 풍부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심오한 면모를 밝히는 것이었다. 수학사가이자 응용수학자였던 모리스 클라인이 자신의 책에서 한탄한 바 있듯이, 현대의 수학과 물리학과 철학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각 분야가 너무 세밀하고 전문적으로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러한 분야들 간의 간-학문적인(inter-disciplinary) 탐구가 굳이 필요하겠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학과 수학, 물리학의 역사를 살펴볼 경우 의외로 결론은 분명해진다. 플라톤(Platon) 이래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진정 위대한 철학자는 과학자였으며 그 역 또한 성립한다. 특히 우리가 살펴본 푸앵카레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비가환 대수학, 군론과 연계한 물리적 기하학의 해석, 위상수학, 천체역학,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및 상대성원리에 대한 논의, 수학과 물리학에서 직관과 규약과 연역의 역할에 대한 논의 등 푸앵카레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그의 관심은 다양하고도 깊었다. 그가 자신의 과학적 경력 말미에 철학적 사상을 모아 출판한 것은 인식론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록 그가 전문적인 철학자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19세기 이래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식론자는 철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라는 우스갯소리를 다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푸앵카레는 아마도 그의 시대에서 가장 첨단의 과학적 인식론을 주장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수학 분야에서만 그의 업적이 재조명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의 업적은 철학사와 물리학사 모두에서 다시금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그의 규약주의는 다양한 방향으로의 발전가능성을 담고 있었지만, 상대성이론의 성공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 바로 물리적 기하학에서의 규약의 기능이다. 과연 물리적 기하학에서의 이론적, 규약적, 경험적 요소들은 서로 어떻게 관련을 맺는가? 왜 우리는 물리세계를 서술하는 공간으로서 유클리드 기하학보다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더 선호하는가? 우리가 물리적 기하학의 규약적 성격을 인정한다고 할 때, 가능한 다수의 물리적 기하학들 중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는 우리에게 선택을 지도해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인식론적인 지침이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편리함이라는 이유 때문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선택할 것이라는 푸앵카레의 예측은 그릇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의 예측은 이후 물리적 기하학의 규약주의에 관한 더 심도 있는 철학적 논의가 진행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러한 철학적 논의가 어떤 방향과 깊이를 가지고 과학적 인식의 본질을 파헤쳐나갔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후 우리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푸앵카레 규약주의.pdf

 

 

푸앵카레 규약주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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