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글리모어, [연역적 방법] 요약 정리

강형구 2015. 11. 21. 22:04


   카르납(Carnap)은 가설들이 입증되었는지(confirmed)의 여부 혹은 가설들이 충분히 의미 있는지의 여부를, 가설들로부터 관찰 가능한 주장을 이끌어내는 것을 통해 판가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따라 등장한 문제는, 부분적인 증거가 이론 전체의 일부분과 어떤 유관한 관계를 맺는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헴펠(Hempel)이 제시한 역 귀결조건(converse consequence condition)을 생각해보자. 이 조건에 따르면, 증거 e가 가설 g를 입증하고 가설 h가 논리적으로 g를 도출할 수 있는 경우, 증거 e는 가설 h 또한 입증한다. 입증과 관련된 헴펠의 또 다른 원리에 따르면, 만약 eh를 입증하면 eh의 모든 귀결을 입증한다. 이 둘을 엮어보면, 특정한 진술을 입증하는 어떠한 증거도 모든 진술들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이상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e g (입증)

만약 h g 라면, e h (역 귀결조건)

만약 h q 라면, e q (그런데 논리학에 따르면, h h & a & b, ..로 무한히 가능하다)

따라서, e q

 

   헴펠의 특수 귀결조건(special consequence condition)도 문제가 된다. 특수 귀결 조건이란, 만약 e가 가설 h를 입증할 경우 eh의 어떠한 논리적 귀결(예를 들어 h & q & r...)에 대해서도 입증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슈타르크 효과(Stark Effect)가 양자역학을 입증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양자역학과 전혀 무관한 진술 또한 입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문제는 관찰 결과가 이론적으로 도출된 진술과 합치할 경우 이론의 어떤 부분을 입증하는지, 합치하지 않을 경우 이론의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있다.

 

   또한 가설-연역적 방법은 이른바 -오컴화(deoccamization)의 문제를 낳는다. T(P)를 어떤 관찰 보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론적 용어 P를 포함하는 이론이라고 하자. 이 때 이 이론 T 안에서 P가 등장할 경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새로운 이론적 술어를 덧붙여서 이 P를 대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P(w)가 나올 때마다 Q(w)R(w)S(w)로 대체하거나 Q(w)S(w)로 대체한다고 해도 새로운 이론 T*T와 동일한 경험적 귀결을 갖게 된다. 추가적으로 적절한 제한 조건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가설-연역적 방법은 이와 같은 반-오컴화 된 이론을 허용하게 되고 이는 우리의 직관적 판단과 실제 과학 둘 다에 들어맞지 않는다.

  

   가설-연역적 방법의 가장 큰 난점은 증거의 유관성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에이어(Ayer)는 초기에 하나의 문장이 경험적 중요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문장이 다른 보조가설(subsidiary hypothesis)들과 결합해서 관찰 가능한 문장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논리적 참이 아닌 모든 문장들이 경험적 중요성을 갖도록 만든다. 이런 반론에 대응하여 에이어는 다음과 같은 좀 더 정교한 기준(criterion)을 제시한다. S(and) 관찰 진술들이 또 다른 관찰 진술을 도출하는 경우 S는 직접적으로 입증 가능하며, S 또는(either) 기존의 관찰 진술들(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입증 가능한)이 또 다른 관찰 진술을 도출했을 경우 S는 간접적으로 입증 가능하다. 이에 앨론조 처치(Alonzo Church)는 에이어의 새 기준에 들어맞으면서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세 관찰 진술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칼 포퍼(Karl Popper)는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포퍼는 과학적 담론을 비과학적 담론과 구분 짓기(demarcation) 위해서 과학적 담론은 반증(falsification)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퍼에 의하면 존재 양화사를 포함하는 문장은 반증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비과학적이다. 그렇다면 물리학에서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진술, 모든 인과적 과정에는 상한 속도(limiting velocity)가 있다(빛의 속도 c)”에 대해서 포퍼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이에 포퍼는 해당되는 이론 그 자체가 반증 가능한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반증 가능한 이론이 존재 양화사가 포함된 진술을 갖고 있어도 괜찮다고 답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비슷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만약 하나의 증거를 통해 이론이 반증된다면, 그 복잡한 이론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가설들 중 대체 어떤 가설을 부정한 것일까?

 

   포퍼는 하나의 가설 이외의 모든 조건이 같은 두 이론이 있을 경우, 첫 번째 이론은 만족시키지만 두 번째 이론은 만족시키지 못하는 실험을 시행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첫 번째 이론이 더 선호할 만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좀 더 형식화해보자. T는 이론,

는 관찰 진술들이다(이 때

). 문장 S, A, B는 다음 조건을 만족시킨다고 하자.

 

  

1. T S & A

2. T이면() 모든

에 대하여

를 만족시킨다.

3. S & B이면() 모든

에 대하여

를 만족시키고, S & B는 정합적이다(consistent).

4. B이면() A이다.

5.

이면

이다. (여기서 는 논리적 함축 관계를 의미한다)

만약

가 옳다고 밝혀지면 이는 S & B에 대한 중요한 지지가 되고 A는 포기된다.

 

   하지만 이 기준에 의해 이론 TA가 포기된다면 T에 포함되는 대부분의 정리들은 포기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C T로부터는 어떤

도 도출되지 않는 T의 정리 C가 있다고 하자. 이 때 SC T라고 하자. 이 때 TS & C와 논리적으로 동등하며, S & C는 조건 12를 만족시킨다. BC &

& &

이라 하면 조건 3, 4, 5가 만족된다. 따라서

C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C는 포기되어야 한다. 이 결과는 개별적인 부정적 증거는 해당 이론에 포함된 하나의 가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론 전체에 대한 것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증거적 유관성이 이론에 상대화된다면 가설-연역적 방법은 설득력을 가지게 될까? 이론 T에 대해 증거 I & J가 가설 h를 입증한다면, T & I & h J이지만 T & I J는 아니라고 하자. 이 조건에 따라서도 이론과는 상관없는 연언(conjunction)을 임의로 덧붙일 수 있고(h 대신 h & r), 증거가 복잡하게 구성된 이론의 어떤 부분을 입증하는지를 분명하게 해주지 못한다. 만약 h가 이론 T의 논리적 귀결이라면 어떤 증거도 T에 대해 가설 h를 입증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증거가 이론 T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론 T의 부분이론 T*에 대해서 h를 입증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hT의 귀결이고 hI J를 도출하지는 않을 경우, 우리는 I & T & h J이면 I & JT*에 대해 h를 입증하는 부분이론 T*를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다. 더 나아가, 만약 h TI J를 도출하지 않을 경우 T* & hT와 논리적으로 동등하도록 T*를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증거가 특정 부분이론이 포함하는 대부분의 가설을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이끈다.

 

   가설 h에 부가적인 제한 조건을 덧붙임으로써 위와 같은 난점을 극복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i) h & T는 일관적이고, (ii) h & T e, (iii) T e일 때 e는 이론 T에 대해 가설 h를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 h p & q, () p h, () q h, () p & T e인 문장 pq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 e h임을 쉽게 보일 수 있고, 따라서 위의 조건들은 증거 e 그 자체보다 논리적으로 더 강한 입증의 조건을 제시하지는 못함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서 지금까지 제시된 논의를 생각해보자.

 

C : 행성들은 서로 겹치지 않는 닫힌 궤도 위에서 태양 주위를 돈다.

: 케플러의 행성 운동 제 1법칙(타원 궤도의 법칙)

: 케플러의 행성 운동 제 2법칙(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 케플러의 행성 운동 제 3법칙(조화의 법칙)

T : C &

&

&

O : 단일 행성 M에 위치에 대한 관찰 보고

 

   O가 이론과 일관된다고 해서 이론 TO를 도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T는 조건문의 형식으로 O의 귀결들을 도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 조건문의 전제로 행성의 위치 정보 몇몇이 주어지면 이에 따라 O에서 보고된 위치를 그 결과로 도출하게 된다. 이 조건문을 O'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O'을 통해 이론의 어떤 부분이 시험되는 것인가? 과학사적인 사실을 비추어 볼 때 O'

,

와 관계되지만

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이를 가설-연역적 방법이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O'

에 대한 입증이 되려면 T &

O'을 도출하고 T 혼자서는 O'을 이끌어내지 못해야 하지만, (그 정의에 있어) TO'을 도출한다. 하지만 이런 응답은

,

에도 적용되므로 다른 대답을 찾아보자. C &

&

O'을 도출하지만 C &

은 도출하지 못한다고 답변한다고 해보자. 하지만

를 포함하고

을 포함하지 않으면서 O'을 도출하는 T의 부분이론이 존재하고,

만을 포함하면서도 O'을 도출하는 T의 부분이론 또한 존재하며, 케플러의 법칙을 하나도 포함하지 않으면서 O'을 도출하는(O' 그 자체를 부분이론으로 가지고 있는) T의 부분이론 또한 존재한다. 문제는 공리 체계로부터 주어진 증거를 이끌어내는 데 해당되는 가설이 필수적으로 사용됨을 보이는 것이지만, 어떤 공리 체계가 더 자연스러운지 따지는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문제가 된다.

 

   헴펠 또한 증거의 중요성에 대해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대신 그는 관찰 문장들과 이론적 맥락(theoretical context) 사이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헴펠에 의하면 여러 다른 보조 가설들과 결합했을 경우에만 특정한 관측 가능 현상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도출해 낼 수 있지만, 하나의 이론 체계에서 특정한 문장을 고립시켜서 떼어낼 수는 없으므로 입증을 상대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헴펠은 한 이론이 설명과 예측의 능력을 지니는지, 단순한지, 경험적 증거를 통해 얼마만큼 입증되었는지의 여부를 통해서 해당 이론을 평가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굿맨이 단순성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아주 나쁜 이론 또한 명확하고 정확하게 형식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단순성 또한 좋은 기준이라 보기 힘들다.

 

   카르납(Carnap)은 좀 더 엄밀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경험적 중요성의 기준을 만족시키려는 마지막 시도를 했다. 이를 살펴보자. 아래에서

는 이론언어,

는 관찰언어,

는 이론적 어휘,

는 관찰적 어휘, T는 이론, C는 대응규칙을 뜻한다.

 

  

D1. 다음의 경우 용어 m

,

, T에 대해 용어 집합 K에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K의 용어들은

에 속하며, m

에 속하지만 K에 속하지는 않으며,

의 문장

,

의 문 장

가 아래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a)

m을 유일한 기술적 용어로서 포함한다.

(b)

의 기술적 용어들은 K에 속한다.

(c) 연언

TC은 일관적이다(논리적으로 거짓이 아니다).

(d)

TC

(e)

TC

이지는 않다.

  

D2. 다음의 경우 하나의 용어는

,

, T, C에 대해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에 포함되는 용어들의 계열 M이 있고, M의 최종 원소인 mM에 포함된 각각의 원소들이

,

, T, C에 비추어 볼 때 해당 용어에 선행하는 용어들의 집합에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카르납의 기준은 여러 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인 경우로, 이론 T를 논리적으로 충분히 강하게(strong) 만들 경우 그 이론의 어떤 용어도 중요성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이에 대해 카르납은 이론은 그 전체적인 측면에서 시험되고 입증되고 반증된다는 급진적인 전체론(holism)을 주장했지만, 이러한 급진적 전체론은 가장 정교한 이론과 너무나 뻔한 과학적 주장 둘 모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굿맨(Goodman)은 원초적 술어들의 사용 횟수와 그 술어들의 대칭적 성질을 이용해서 1차 술어 공리들의 집합을 평가하는 단순성 척도를 제시했다. 그러나 굿맨의 척도가 인과적 근거 혹은 이론의 정보적 성격과 어떤 명백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세부적인 논증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증거적 유관성에 대한 설명, 즉 이론과 증거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설-연역적 방법과는 다른 방식의 작업이 필요하다.

 

 

 

090215가설연역적방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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