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수피, [핸슨의 귀추적 방법] 요약 정리

강형구 2015. 11. 21. 22:12

 

  

   핸슨(N. R. Hanson)에 의하면 이제까지의 과학철학자들은 법칙, 가설, 이론들이 초기에 시험적으로 제시될 때의 추론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새로운 자료를 발견한 경우 과학자들은 그에 관련한 개념적 유형(conceptual pattern)에 잘 들어맞는 설명(explanation)을 찾으려 한다.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자료들을 개념적으로 조직화한 후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럴싸한 가설들을 귀추적으로(retroductively) 추론하는 과정을 통해서 발견된다.

 

   요한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와 티코 브라헤(Tycho Brahe)가 함께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그 순간 케플러는 태양이 고정되어 있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브라헤는 지구가 고정되어 있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케플러와 브라헤는 같은 것을 보고(seeing) 있는 것일까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또 다른 비슷한 예로, 보는 시각에 따라 펠리칸(pelican)으로 보이기도 하고 영양(antelope)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림을 생각해보자. 중요한 것은 위의 예들의 경우 우리가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지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는 광학적 혹은 감각적 자료가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화해서 지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각 자료 x를 지각할 경우, 우리는 우리가 각자 x에 대한 어떤 이론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다른 것을 본다. 본다는 것은 이론이 적재된(theory-laden) 행위다. 무엇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는 것은 항상 그것을 설명하는 특정한 문장을 끌고 들어온다는 것을 고려할 때, 본다는 것에는 언어적인 혹은 명제적인 요소(component)가 포함되어 있다.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가 동사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듯, 본다는 것은 언어적인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볼 때에도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특정한 사실을 몇몇 용어를 사용해서 서술할 경우, 서술할 때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해당 용어의 의미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특정한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 물리학의 경우,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들에 따라 특정한 사실을 볼 수 있는지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인과(causality)의 경우에도 위의 논의를 적용해보자. 인과에 대한 적합한 설명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현상(혹은 사건) x에 대한 원인을 찾는 가장 주된 이유는 x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x가 아닌 y, z와도 잘 맞물리는 개념의 유형(pattern) 속으로 x를 끌어들여 올 수 있을 경우에만 우리는 x에 대해서 설명했다고 할 수 있다. 핸슨은 용어들의 의미가 그것들이 속하는 개념적 유형 속에서 하나의 기능(function)으로 작용한다는 의미 의존성(meaning dependence)을 원리로서(doctrine) 주장한다. 하나의 이론을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share a theory) 것은 특정한 내적 관계를 서술하는 법칙 문장들을 수용하는 것이지만, 해당 이론을 공통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 이론을 구성하는 문장들의 인식적 지위(epistemic status)에 대해서 서로 일치된 의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나의 현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했을 경우 혹은 하나의 문제를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했을 경우에도 개념을 조직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두 방식은 이후의 탐구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기존의 개념적 유형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 관계(meaning relation)는 새로운 현상과 용어를 포섭하는 데 일종의 선험적인 기능을 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관계들은 맥락 의존적인 선험성(context-dependent a priori)을 지닌다. 더 나아가 한 단어가 이론 적재적인지의 여부는 맥락(context)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의 단어는 맥락에 따라 관찰 자료로서의 기능을 할 수도 있고 이론적 용어로서의 기능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단어의 의미는 맥락 의존적이다. 과학에서의 모든 관측이 언어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한 이들에는 이론이 적재되어 있다. 따라서 주어진 맥락에서 x를 본다는 것은, 주어진 맥락 속의 개념적 유형이 결정짓는 모든 관계들 속에 x가 지시하는 대상이 포섭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적 설명과 방법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던 실증주의자들은 과학 철학의 영역이 정당화의 맥락에만 제한되어야 하며 발견의 맥락은 심리학이나 역사학의 영역이라고 주장했고, 핸슨은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낙관적인 관점에서 이른바 과학적 발견의 논리(logic of discovery)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핸슨이 주장하는 발견의 논리 혹은 귀추적 추론(retroductive reasoning)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핸슨은 퍼스(Peirce)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의 두 가지를 구분한다.

 

   (1) 가설 H를 받아들이는 이유들

   (2) 최초로 가설 H를 제시하게끔 하는 이유들

 

   (2)번은 가설 H가 추측으로서 그럴듯한 유형이라고 판단하는 것에 대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좀 더 분명하게 구분 짓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좀 더 세밀하게 정의를 해 보자.

 

   (1‘) 세부적으로 구체화된 개별적 가설 H를 받아들이는 이유들

   (2‘) 성공적인 가설 H가 이후 어떤 구체적인 주장을 할 것인지와는 무관하게, 가설 H는 다른 유형(type)이 아닌 특정한 유형의 가설이 되어야 한다고 제시하는(suggesting) 이유들

 

   케플러는 자신의 책 세계의 조화(Harmonices Mundi)에서 목성(Jupiter)의 궤도 유형 또한 원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화성(Mars)은 전통적으로 전형적인 행성이라고 여겨졌고 화성의 궤도가 타원형이기 때문에 다른 행성들의 궤도 또한 원형이 아니라고 추론하는 것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들이 이 가설을 정당화(establish)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가설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이유는 유비적(analogical)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이 논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가설이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가설에 대한 논증이 유비 혹은 형식상의 대칭성에 대한 인식(recognition)에 근거해 있는 경우에 그러하다. 핸슨은 귀추적 추론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놀랍고 충격적인 현상들 을 발견했다.

   (2) 그러나 특정한 유형에 포함되는 가설 H을 받아들인다면, 현상 는 예외적인 것 이 아닌 것이 된다. 이 현상들은 H와 같은 가설에 의하면 당연한 일들이 되어버리고 그런 의미에서 가설 H에 의해 설명된다.

   (3) 따라서 H와 같은 유형의 가설을 수립(elaborating)할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설은 현상 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현상을 기존의 개념 유형에 포섭시키기 위해서는 그 유형이 확장(augment)되거나 변형(alter)되어야 한다. 그러한 확장이나 변화는 기존의 유형과 조화되어야(compatible) 하고,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유형에 의해 제한된다. 만약 기존의 유형이 대칭성(symmetry) 같은 특정 전제들을 포함하고 있다면 확장 혹은 변화의 가능 폭은 굉장히 제한된다. 새로운 현상을 기존의 유형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기존 유형에 포함되어 있는 관계를 수정해야 하는데, 이 때 어떤 관계를 수정해야 하는지는 해당 관계의 인식적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결론적으로, 핸슨에 따르면 우리의 과학적 세계관은 이론 의존적이며 우리는 특정한 개념적 유형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귀추적 추론에 대한 핸슨의 이러한 분석은 관찰의 이론 적재성과 의미 의존성이라는 원리에 근거한다. 문제는 핸슨이 과학적 이론화 과정 혹은 과학적 관찰 과정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이른바 발견의 논리는 수립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고, 과학적 이론화를 분석하려는 핸슨 식의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운지의 여부는 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090227귀추적방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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