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새먼, [통계적 설명] 요약 정리

강형구 2015. 11. 5. 07:06

 

 

   칼 헴펠은 오펜하임과 쓴 고전적인 논문에서 한 현상에 대한 설명은 몇몇 설명항의 요소에 의해 피설명항이 예측될 것임을 납득시킬 수 있는 논증(argument)”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연역적 설명뿐만 아니라 귀납적 설명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설명항과 피설명항 사이에는 고도의 확률적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통계적 유관성이 있는 것일까? 나는 헴펠의 견해와는 달리 확률적 관계가 아닌 통계적 유관성이 있으며, 연역적 설명은 귀납적 설명의 특수하고 제한적인 경우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설명에 대한 헴펠의 견해

 

   과학적 설명에 대한 헴펠의 견해가 제시된 이후, 귀납적 증명의 구조 또한 연역적 증명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연역적 설명에서의 보편 법칙을 통계적 일반화로 교체하고 설명항과 피설명항 사이의 관계를 연역적 관계가 아닌 귀납적 관계로 바꾸면 귀납적 설명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두 설명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헴펠은 연역적 설명과 귀납적 설명 모두 총체적 증거의 조건(a requirement of total evidence)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역적 증명이 위의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귀납적 설명의 경우 이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 설명에 대한 헴펠의 견해를 정리해보자.

 

(연역적 설명)

모든 . (보편적 일반화)

.

────────

.

(귀납적 설명)

대부분의 . (통계적 일반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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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적 논증은 (연역적이든 귀납적이든) 올바른 논리적 형식을 띠어야 한다.

(2) 논증의 전제는 반드시 참이어야 한다.

(3) 전제들 중 적어도 하나는 (보편적이든 통계적이든) 법칙적 일반화이어야 한다.

(4) 총체적 증거의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위에서 제시된 조건들은 연역적 설명의 경우 자연스럽게 충족된다. 피설명항은 설명항으로부터 연역되기 때문이다. 귀납적 설명의 경우에도 특정한 개별 사건들과 특정한 통계적 법칙들이 주어져 있을 경우, 높은 논리적 확률 또는 귀납적 확률로 설명되어야 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임이 예측되기 때문에 위의 조건들에 잘 부합하는 것 같다.

 

2. 몇몇 반례들

 

   (5) 철수는 일주일 안으로 감기가 나을 것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는 비타민 C를 섭취 했고, 비타민 C를 섭취했을 경우 거의 대부분의 감기는 일주일 안으로 낫기 때문이다.

 

   (6) 철수는 그의 신경증적 증상이 상당히 누그러지는 것을 경험했다. 왜냐하면 그는 포괄적인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경증적 증상이 누그러지는 것을 경험했다.

 

   (7) 철수는 작년에 임신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아내의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했고 피임약을 꾸준 히 복용하는 모든 남자는 임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예들은 모두 헴펠이 제시한 조건을 만족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설명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비타민 C를 섭취하지 않아도 감기는 대개 일주일 안에 낫고, 정신분석 치료를 받지 않아도 신경증적 증상은 쉽게 누그러지며, 남자는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임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헴펠의 조건들은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일 뿐이며, 추가적인 조건들을 덧붙이면 된다고 대응할 수 있다. 실제로 헴펠은 최대 명세화(maximal specificity) 조건을 제시한 바 있지만, 이러한 조건을 덧붙인다고 해서 위와 같은 반례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해결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헴펠의 개념을 매우 근본적인 방식으로 변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예비적 분석

 

   위에서 살펴본 반례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피설명항이 설명항으로부터 (연역적 혹은 귀납적으로) 도출됨에도 불구하고 설명에 도입된 설명항이 피설명항과는 무관하다(irrelevant)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위의 예들에서 설명항은 피설명항의 초기 확률(prior probability)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설명적 논증은 설명항의 요소들에 비추어 볼 때 피설명항의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그 사건의 초기 확률보다 두드러지게(substantially) 증가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확률이란 무엇이며 초기 확률이란 무엇인가? 설명에 대한 논의를 더 진행시키기 전에 확률의 본성에 대한 여러 종류의 해석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해보자.

 

   (1) 논리적 해석: 확률 혹은 확증의 정도는 가설과 증거 사이의 논리적 관계이다. 귀납 논리에서는 연역 논리에서처럼 전제로부터 결론이 연역적으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에, 귀납 논리 그 자체와는 무관하지만 귀납 논리를 적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론적 규칙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확증 정도 진술 문장(degree of confirmation statements)은 분석적(analytic)이다. 논리적 해석에 따르면 설명항과 피설명항 사이에는 헴펠적인 의미에서의 논증적 관계가 아니라 확증의 정도가 있을 뿐이며 이는 선험적(a priori, 혹은 분석적)이다. 논리적 해석에 의하면 확증 정도 진술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가 임의적이며 자유롭지만, 과학적 설명에서의 초기 확률은 선험적(혹은 분석적)이지 않으며 특정한 개별 정보나 조사 결과에 의해 어떤 확률 선정이 더 적합한지 드러나게 마련이다.

 

   (2) 주관적 혹은 개인적 해석: 확률이란 단순하고 질서정연한 의견이다. 얼마만큼의 질서정연함이 필요한지는 확률의 수학적 연산(calculus)으로 얻을 수 있다. 이 해석은 우리가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을 때 우리의 믿음의 정도 혹은 견해가 어떻게 수정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확률에 대한 이런 방식의 해석은 과학적 설명에 상당한 정도로 주관성을 도입하지만, 이러한 주관성이 확률에 대한 설명이나 과학적 설명을 해명하는 데 있어서의 결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3) 빈도 해석: 확률이란 무한히 반복되는 사건의 계열들 속에서 한 특성(attribute)이 발생하는 상대 빈도의 극한값이다. 문제는 우리가 충분한 혹은 무한히 많은 사례들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단일 사건에 대해 확률을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확률에 대한 빈도 해석이 단일 사건 문제를 잘 처리할 경우, 이 해석은 과학적 설명을 해명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단일 사건을 어떻게 확률의 빈도 해석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따진다.

 

   (4) 경향성(propensity) 해석: 이 해석은 최근에 활발히 논의되는 해석으로서 근본적인 측면에서 빈도 해석과 아주 유사하다.

 

4. 단일 사건의 경우

 

   라이헨바흐(Reichenbach)나 벤(Venn) 같은 빈도론자들은 준거 집합(reference)을 도입하고, 준거 집합으로부터 문제가 되는 단일 사건에 확률값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단일 사건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 방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일 사건에 준거 집합을 도입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특정한 특성이 발생할 확률값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공이 들어 있는 통 두 개가 있고, 왼쪽 통에는 붉은색 공만 들어 있으며 오른쪽 통에는 같은 수의 붉은색, 흰색, 푸른색 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준거 집합 A는 오른쪽 통에서 임의로 공 하나를 뽑고, 뽑은 공은 다시 통에 넣고 다시 무작위로 흔들어 놓는 과정이다. 준거 집합 A'는 왼쪽 통과 오른쪽 통을 번갈아가면서 뽑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준거 집합을 선택하는 것이 단일 사건에 확률을 부여하는 데 적합할까? 우리는 적합한 준거 집합을 선택하는 방법을 확립해야만 한다.

 

   라이헨바흐는 준거 집합을 선택하는 것은 이론적인 고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실용적인 고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신뢰성과 정확성의 실용적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준거 집합의 협소성(narrowness)이 어느 범위까지 통계적 신뢰성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준거 집합은 주어진 사례들을 통해 특정한 귀납적 추론의 옳고 그름 여부를 가릴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해야 하면서도, 문제가 되는 상황과 관련이 없어질 만큼 지나치게 그 범위가 넓어져서는 안 된다. 이 때 통계적 유관성(statistical relevance)의 개념이 중요해진다. 통계적으로 유관한 범위에서 준거 집합을 협소화시켜야 한다. 특정한 준거 집합이 주어졌을 경우, 우리는 통계적 유관성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그 집합을 더 세분화(subdivide)시키고 그렇게 좀 더 규모가 좁혀진 집합을 준거 집합으로 선정해야 한다.

 

   우리가 라는 특정한 대상 혹은 사건을 다룬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이 라는 특성을 가지는 확률을 결정하고자 한다. 자신이 포함되는 준거 집합 가 주어졌을 경우, 는 준거 집합 를 기준으로 일 확률을 뜻한다. 한 집합의 부분 집합들이 상호 배타적이고(교집합이 없고) 합했을 경우 전체 집합을 구성할 경우, 그 부분 집합들 각각을 그 집합의 분할(partition)이라고 하자. 특성 에 의해 그런 분할이 이루어졌을 경우 준거 집합 로 분할된다. 이 때 인 경우에만 특성 는 특성 와 통계적으로 유관하다.

 

   이제 폰 미제스(Von Mises)가 고안한 개념인 분할 선택(place selection)을 도입하자. 해당 준거 집합이 있을 때 특정한 특성을 기준으로 그 준거 집합을 분리시켜서, 그 분리로 인해 우리가 문제 삼는 특성이 발생할 확률이 영향을 받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통에서 공을 뽑는다는 준거 집합이 있을 경우 두 번째 뽑기 다음 세 번째 뽑기’, ‘ 가 소수(prime number)일 경우 번째 뽑기’, ‘빨간 공이 나온 이후의 뽑기’, ‘왼손으로 뽑기’, ‘날씨가 흐린 날 뽑기등은 분할 선택의 예다. ‘빨간 공 뽑기는 그 선택에 우리가 알고자 하는 특성의 의미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분할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준거 집합에 대한 분할 선택이 그 준거 집합에 대해 통계적으로 무관할 경우, 그 분할 선택으로 결정된 부분 집합과 전체 집합이 해당 특성을 보일 확률은 동일하다. 준거 집합 에서의 분할 선택의 기준이 되는 모든 특성이 특성 와 통계적으로 무관할 경우, 에 대한 균질 준거 집합(homogeneous reference class)이라 한다. 해당되는 단일 사건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균질 준거 집합을 선택하는 것, 이것을 준거 집합 선택 규칙(reference class rule)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주어진 특성과 관계되는 성질들을 완전히 모르는 경우, 해당 준거 집합이 균질한지 아닌지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해당 준거 집합이 균질하지 않음이 의심되고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통계적으로 유관한 분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을 경우, 그 준거 집합을 인식적으로 균질적인(epistemological homogeneous) 집합이라고 부르자. 해당 준거 집합이 균질하지 않음을 알고 있으며 통계적으로 유관한 분할을 할 수 있는 특성들 또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이유에서 해당 집합을 균질적인 것으로 처리해야만 할 경우, 그 준거 집합을 실질적으로 균질적인(practically homogeneous) 집합이라고 부르자. 우리는 단일 사건을 인식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균질적인 준거 집합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하며, 따라서 준거 집합 선택 규칙은 단일 사건에 대한 확률을 적용하는 방법론적 규칙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든 인 경우, 혹은 어떤 가 아닌 경우 에 대한 균질 준거 집합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꼭 위의 두 가지 경우에만 가 균질 준거 집합인 것은 아니다. 확률에 대한 빈도 해석에 의하면 가 아닌 의 원소가 있을 경우에도 는 균질 준거 집합일 수 있다. 주어진 집합에서 문제가 되는 특성과 관련한 균질 준거 집합을 제시하는 것은 피설명항을 귀납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능을 한다. , 준거 집합의 균질성은 과학적 설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통계적으로 무관한 분할 선택을 통해 준거 집합을 분할해서는 안 된다. 이 기준은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사례들에서의 특성들(감기가 걸렸을 때 비타민 C를 섭취하는 것 등)으로 준거 집합을 분할하는 것을 방지한다.

 

10. 확률 증가 개념을 배제한 설명

 

   대부분의 경우 균질한 준거 집합을 선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진 후에는 해당 특성이 일어날 확률을 초기 확률보다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기 확률(prior weight)과 이후 확률(a posterior weight)의 사이의 관계가 줄어들 수도 있으며 두 확률 사이의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작업 또한 과학적 설명이라고 불릴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변형된 두 개의 동전이 있는데, 하나는 앞이 나올 확률이 0.9이고 다른 하나는 앞이 나올 확률이 0.1이다. 두 동전을 동등하게 던질 경우 앞이 나올 확률은 0.5가 된다. 만약 동전을 던져서 앞이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문제의 준거 집합을 두 개의 균질 준거 집합으로 구분한다면 (앞이 나올 확률이 0.9인 동전과 0.1인 동전) 확률이 0.5에서 0.9로 늘어나기도 하고 0.5에서 0.1로 줄어들기도 한다. 확률이 0.9인 동전을 던졌을 경우에는 앞이 나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확률이 0.1의 동전을 던져서 앞이 나왔을 경우에는 준거 집합을 제시한 이후의 확률이 0.5에서 0.1로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준거 집합 제시는 과학적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아주 일어나기 힘들 것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경우, 그것이 명확히 정의된 빈도(그 빈도의 수치가 작음에도 불구하고)에 의해 발생했음을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 설명의 자격을 가진다고 생각된다. 결정론적 관점에서는 이런 견해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결정론적 관점을 옹호할 경우에는 확률이 줄어드는 현상을 단지 현재 우리의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이 부족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물리학(반감기가 45억년인 우라늄 238 원자와 반감기가 초인 폴로늄 214 원자가 합성된 경우의 문제)과 철학의 발전에 비추어 볼 때 결정론은 더 이상 선험적인 원리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준거 집합 이후 제시된 특성 발생 확률이 꼭 증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설명의 핵심은 비균질적인 준거 집합에서 통계적으로 유관한 균질적 부분 준거 집합을 구분해냈다는 것에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과학적 설명이란 어떤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확신을 주기 위한 논증이 아니라 해당 사건의 발생과 관계있는 요소들을 종합하려는(assemble) 시도인 것이다. 과학적 설명이 제시된 이후 사전 초기 확률과 이후 확률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 주장 또한 간단한 반례(앞이 나올 확률이 0.9, 0.1, 0.5인 세 동전을 던질 경우)를 통해 반박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비균질적인 준거 집합에서 균질적인 부분 준거 집합을 구분한 것만으로도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11. 새로운 설명의 이론적 기반(paradigms)

 

   특정한 고립계에서는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발생한다. 차가운 물이 담긴 보온병에서 얼음이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확률도 완전히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낮은 확률의 사건들은 늘 특정한 방식으로 외부계와 상호작용함으로써 발생한다. 외부계와 상호작용 한 후의 준거 집합이 비균질적이고 작용 이전의 준거 집합이 균질적임을 감안한다면, 외부계와 상호작용 한 후의 비균질적인 준거 집합에서 낮은 상태의 엔트로피를 가질 확률보다 상호작용 이전의 집합에서 낮은 상태의 엔트로피를 가질 확률이 판이하게 높게 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낮은 상태의 엔트로피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를 전체계로 보았을 경우 우주에는 매우 다양한 부속계(branch systems)들이 있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았을 경우 초기의 단일 부속계가 낮은 엔트로피를 가질 확률이 높다. 외부와 상호작용을 하고 난 후 여러 부속계들이 하나의 닺힌 계가 되었을 경우 낮은 엔트로피를 가질 확률이 높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시간적 계열(ensemble)은 비균질적 준거 집합인 반면 공간(space)은 균질적 준거 집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속계들은 제한된 시간 동안 고립계일 수 있지만, 그 계들이 계속 고립된 채로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부속계가 고립계에서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닫힌계로 편입됨에 따라, 이 계의 엔트로피 상태는 낮아졌다가 높은 상태로 바뀌며 이렇게 엔트로피 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시간적 관계인 이전과 이후에 대한 좌표적 정의(coordinating definition)로 생각할 수 있다. 라이헨바흐에 의하면 부속계가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어떤 현상이 생성되는 것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는 인과적 설명의 본질적인 성격을 반영한다. 이상과 같은 논의를 통해 인과적 설명은 시간 비대칭적(temporal asymmetry)임을 알 수 있다. 위의 결론은 본질적으로 미시통계적 고찰을 통해 도출되었지만, 거시통계적 사건들도 미시통계적 사건과 유사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양한 거시적 규모의 사건들을 고찰할 경우에도, 균질적 준거 집합은 대개 이후가 아닌 이전 상태의 용어들을 통해 표현됨을 알 수 있다.

 

   설명의 본질은 비균질적 준거 집합에서 통계적으로 유관한 분할 절차를 거쳐 균질적 준거 집합을 추려내는 것이며, 이러한 절차를 거친 후 도출되는 해당 사건의 이후 확률이 과학적 설명력을 갖게 된다는 우리의 주장은 거시적 물리계와 미시적 물리계 모두에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설명의 핵심은 기존의 준거 집합을 분할하기 위해 통계적으로 유관한 요소들을 도입하는 것이다.

 

12. 설명의 시간 비대칭성

 

   11절에서 살펴본 거시계와 미시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들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시간 비대칭성(temporal asymmetry)이다. 우리가 지금껏 전개해 왔던 논의가 이런 시간 비대칭성을 얼마나 잘 설명해내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햇빛 좋은 날 높이가 일정한 깃대(flagpole)가 하나 서 있고 그에 따라 깃대의 그림자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깃대의 높이를 통해서 깃대의 그림자를 추론할 수 있는 것처럼 깃대의 그림자를 통해서도 깃대의 높이를 추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깃대와 깃대의 그림자가 동시적으로 생성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시간에 따라 물리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면 이 사례에서 시간적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태양으로부터 광자가 방출되어 깃대 근처에 도착하고, 광자들 중 일부는 깃대에 흡수되고 일부는 흡수되지 않은 채 깃대를 지나쳐 지면을 밝힌다. 지면 중 일부가 어두운 까닭은 광자가 깃대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깃대의 그림자가 깃대의 높이를 이끌어낸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은, 이전과 이후라는 시간적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인과적 과정(causal process)이 있기 때문이다.

 

   논증의 개념이 아닌 유관성의 개념으로 위와 같은 경우를 분석하기 위해서 좀 더 단순화된 사례들을 다루어보자. 우리는 원인의 경우 결과에 대한 선별(차폐, screening off)이 가능한 반면 결과는 원인을 선별(차폐)하지 못함을 보이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극장에는 두 사람만 있다고 가정하자. 즉 주연 여자배우와 주연 남자배우가 있다. 를 일반적인 준거 집합인 평범한 날들(days)이라고 하고, 을 주연 남자배우가 아플 경우 을 주연 여자배우가 아플 경우라고 하자. 주연 배우들 두 명이 먹은 음식이 상했을 경우는 이며, 공연이 취소될 경우를 라고 한다.

 

   배우들이 둘 다 아플 확률이 배우들 각각이 독립적으로 아플 확률보다 높을 것을 인정한다면

의 관계가 성립하고, 상한 음식을 먹는 것과 배우 둘이 함께 아픈 것 사이에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의 관계가 성립한다. 과연 를 선별(차폐)하는 것일까? 배우 둘 다 아프면서도 공연이 취소되지 않을 수 있고, 둘 다 아프지 않으면서도 공연이 취소될 수 있다. 음식이 상했을 경우 배우들이 아플 확률은 공연의 취소 여부와 관계없으므로 이 성립한다. 이에 따라 이다. 이는 를 선별(차폐)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가 의 상황을 조성하여 실험하고, 이 확률을 과 비교했을 때 두 확률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이 된다. 이를 통해 를 선별(차폐)하고 그 역은 성립하지 않음을 보였으므로, 준거 집합을 분할하는 데 있어서 는 사용 가능하고 는 그렇지 않다.

 

   이와 유사한 논의를 깃대에 적용시켜보자. 를 일반적인 준거 집합이라고 하자. 편의상 깃대가 위와 아래 두 부분으로 나뉜다고 가정하자. 그 두 부분이 공간에서 위치를 잡을 경우에 깃대가 자리를 잡는다. 윗부분을 올바로 위치시키는 것을 아랫부분을 올바로 위치시키는 것을 라 하고, 깃대 제작자가 깃대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알맞게 만드는 것을 이라 하자. 는 깃대의 그림자 전체가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위와 아래 두 부분을 알맞게 맞추어야만 깃대가 만들어지고, 대부분의 경우 깃대 제작자가 두 부분을 알맞게 맞추었기 때문에 깃대가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다. 우리는 임을 알기 때문에 을 통해 일반적인 준거 집합 을 유관한 방식으로 분할할 수 있다. 깃대의 그림자 생성 여부는 위에서 언급된 사항들과 상관없으므로 이다. 그런데 그림자는 다른 요소들을 통해 쉽게 영향 받으므로 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를 선별(차폐)하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음을 보였다.

 

13. 과학적 설명의 본질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집합 에 속하는 가 왜 성질 를 갖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우리는 속성 에 대해 균질한 방식으로 준거 집합 를 분할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아야 하며, 각각의 분할을 했을 경우 의 확률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알아내어야 한다. 또한 각각의 분할은 반드시 대상 혹은 사물 를 포함해야 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좀 더 형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때, 은 속성 에 대한 의 균질적 분할이며,

일 경우에만 이고 이다.

 

 

 

   위의 형식화에 대해 몇 가지 일반적인 설명을 덧붙이자. (1) 위에서 제시된 설명은 법칙적(nomological)이다. 빈도 해석에 의하면 확률 진술은 통계적으로 일반화 된 진술이며, 모든 설명은 그러한 일반적 진술을 적어도 하나 이상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위의 관점에서 볼 경우 연역-법칙적 설명은 통계적 설명의 하나의 특수한 경우가 된다. 왜냐하면 연역-법칙적 설명은 인 경우로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설명은 에 대해 균질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통계적 일반화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3) 또한 위에서 제시된 설명을 통해 설명과 예측의 대칭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모델은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의 사건이 얼마만큼의 신빙성을 가지고 발생할 것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4) 우리는 준거 집합을 분할한 결과가 균질적인 부분 집합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균질성과 인식론적 균질성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몇몇 이들은 좀 더 엄격한 구분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실질적 균질성 대신 인식론적 균질성으로 설명을 특성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5) 본 논문에서는 단일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지만, 단일 사건과 복수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두드러지는 차이는 없다. (6) 헴펠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보편적 혹은 통계적 일반화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7) 우리의 설명을 통해 헴펠이 언급했던 통계적 설명의 비연결성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14. 결론

 

   이상과 같은 나의 논의에서 불완전한 측면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내가 제시한 설명 모형이 유일한 방식의 설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론적 설명은 나의 모형과는 매우 다른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나는 굿맨의 초랑 문제(grue-bleen problem)로부터 비롯된 유사-법칙적 진술에 대한 논의를 전개시키지는 않았다. 셋째로 나는 통계적 유관성과 선별(차폐)의 개념으로 인과의 문제를 분석하려고 시도했지만, 인과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과를 해명하는 문제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하는 것은 확률은 빈도의 극한값이라는 관점에서 위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며, 나의 논의는 확률에 대한 다른 해석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090130통계적설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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