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실험철학 집중강의 결과보고(2009년)

강형구 2015. 9. 11. 09:09

20092BK 철학교육사업단 블록세미나

 

실험철학 집중강의 결과 보고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2005-20273 강형구(reductionist@hanmail.net)

 

 

   럿거스(Rutgers) 대학에 재직 중인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의 선봉(vanguard) 스테펀 스티치 교수(Pr. Stephen Stich)2009216일부터 4일에 걸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7315호에서 실험철학 집중강의를 실시했다. 20세기 이후 분석철학의 전통에서 이른바 인식적 직관(Epistemic Intuition)은 철학적 논증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해 왔지만, 기존의 직관과는 상치되는 결론을 도출한 게티어(Gettier)의 논문이 1963년 등장한 이후 과연 인식적 직관이 인식론에 대한 안정된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런 의문을 출발점으로 기존의 철학적 방법론과는 대비되는 실험(Experiment)'을 주된 방법으로 삼아, 철학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는 근래의 철학적 운동이 바로 실험철학이다.

 

   이번 집중강의는 그 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강연에 대한 스티치 교수의 넘치는 열정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통해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판단된다. 특히 스티치 교수는 강의 참석 의사가 있는 학생들이 미리 강연에 필요한 논문 자료를 럿거스 대학 홈페이지에 접속해 미리 읽어볼 수 있도록 하였고, 강의 2일 전에는 강연 시 사용할 파워포인트 자료를 미리 다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강의에 대한 큰 열의를 보여주었다. 한 강의 당 3시간(180) 가량이 소요되었고, 강의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스티치 교수의 설명 중간 중간에 학생 및 수강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이에 스티치 교수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강의 당 대략 2~4개의 논문 내용이 소화되었지만, 실제 강의에서는 논문들에 포함되지 않은 최신의 실험 자료가 포함되어 있어 그 흥미로움을 더해 주었다.

 

   1일차 강의에서는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 기존 인식론에서의 개념 분석적 전통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플라톤(Platon)에서부터 푸스트(Pust)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역사 전체에 걸쳐 인식적 직관이 철학적 논증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게티어의 논문이 제시된 이후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의 연구는 통속 심리학(Folk Psychology)에서 등장하는 믿음(beliefe), 바람(desire) 등의 개념이 허구적임을 강력하게 암시했고, 이를 발판으로 21세기 이래로 이른바 실험철학자들은 철학적 논증에서 직관을 사용하는 것이 믿을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는 바로 실험을 통해 밝혀진 인지적 다양성이었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배경 문화(Background Culture), 사회 경제적 지위(Social Economical Status), 기타 인식과 무관한 환경 조건에 따라 수렴하지 않는 인식적 직관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에 몇몇 철학자들은 실험철학의 실험 결과가 인식적 직관을 진정으로 반영하는지의 여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강의에서는 이에 대한 실험철학의 입장이 표명되었다.

 

   2일차 강의에서는 실험철학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철학자인 어니스트 소사(Ernest Sosa)의 반론과 이에 대한 실험철학 입장에서의 대응이 집중적으로 조명되었다. 소사는 실험철학의 실험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철학에서 사용되던 직관의 역할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사는 응답자의 배경지식이 서로 다르고 질문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실험에서 서로 다르게 응답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험철학자들은 소사의 그런 주장조차도 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한다고 대응한다. 또한 소사가 맥락에 따라 암암리에 애매성(ambiguity)이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해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기 때문에 소사는 이 이론 중 어떤 이론이 옳은지를 입증해야 할 부담을 갖게 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애매성을 주장하는 것은 설사 그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철학자들의 모든 논증에 애매성을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3일차 강의에서는 과연 철학에서 지시를 통한 논증(Argument from Reference)이 유효한지의 여부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크립키(Kripke)의 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언어철학에서는 프레게(Frege), (Searle) 등이 주장한 기술적 지시 이론(descriptive theory of reference)이 지배적이었지만, 크립키 이후 이른바 인과-역사적(causal-historical) 기술 이론이 지배적 역할을 한다. 문제는 크립키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주된 근거를 직관에 두었고(Gödel-Schmidt case) 그 직관을 철학자들이 실험적 근거 없이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데 있다. 여러 실험 결과 문화적 배경, 사회 경제적 지위 차이 등에 따라서 사람들이 지시에 대한 상반된 직관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런 실험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식적 직관을 옹호하려는 세 가지의 입장이 제시되고, 이에 대한 실험철학 입장에서의 반박이 차례로 제시되었다. 특히 원시 과학(Proto-Science)으로서의 지시 이론을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다음 강의까지 이어졌다.

 

   4일차 강의 초반에는 그 전 강의에서 끝맺지 못했던 지시 이론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었고, 이후 실험철학이 메타윤리학(meta-ethics)적으로 어떤 의의를 갖는지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기존의 규범적 윤리학은 인류 보편적인 윤리학적 지침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실험철학의 실험 결과 지역 문화에 따라서(demographic effect), 지문이 제시되는 순서에 따라서(order effect), 지문이 제시되는 방식에 따라서(framing effect), 지문과 무관한 요소들의 영향에 따라서(Irrelevant Environmental Factors effect) 사람들의 윤리적 직관이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몇몇 철학자들의 반론 및 수강자들의 질문이 검토되었고, 스티치 교수는 기존의 윤리학적 방법론이 실험철학의 결과를 수용할 경우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강의에 흥미로운 질문 및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실험 결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강의에 참석한 모두가 강의 내용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다.

 

   실험철학에 대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에서의 실험철학 강의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졌으며, 강의의 마무리 인사를 한 강진호 교수의 말처럼 이 강의에 참석한 모두는 스티치 교수의 철학 이론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강의에 대한 그의 강한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스티치 교수는 강연 이후에 별도로 참석자들을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 체류 기간 동안에 별도의 면담 시간을 통해 학생들과의 토론 시간을 가졌다. 청강생들이 자유롭게 참석했지만 이 강의는 2009년 봄 학기에 개설된 1학점 정규강의로, 수강을 신청한 학생들은 320일까지 스티치 교수의 전자메일로 5페이지 가량의 페이퍼를 제출해야 하며, 그 전까지는 전자메일을 통해 스티치 교수와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다.

 

 

 

실험철학강의결과보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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