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재야 학자로서 사는 것 03

강형구 2016. 6. 6. 10:25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중고등학교 격인 김나지움을 중퇴하고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대학 졸업 후 조교 자리를 얻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은 대학 친구인 마르셀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스위스 특허청에서 일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세상을 놀라게 한 여러 논문들을 발표했다. 나 역시 부산과학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치러 국립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학사 및 석사 학위 후 나는 공개채용시험을 거쳐 한국장학재단이라는 국가 장학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학창시절부터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즐겨 읽으며 삶의 지침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지만, 나를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아인슈타인에게는 그 자신의 역할이 있었고, 나에게는 내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의 전공은 과학사·과학철학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분리시켜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대학원 협동과정 안에서 세부 전공이 나뉘기는 한다. 서양과학사, 동양과학사, 한국과학사, 과학기술학, 과학철학 등과 같이 세부 전공이 나뉜다. 비록 나는 과학철학을 세부 전공으로 하였지만 과학사통론 1, 2 수업을 수강했고 과학사 논문자격시험도 치른 바가 있다.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서양과학의 역사 전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한 과학철학 전공자는 학부 교양수준의 서양과학사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의 소양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양과학사, 한국과학사까지 가르치는 것은 아직까지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쯤 지나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과학철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책들은 과학철학이라는 분과 학문의 변천사에 초점을 맞춰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과학사와 연결해서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고전물리학적 세계상, 전자기 현상과 빛 현상에 대한 탐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에 따른 새로운 세계상의 등장,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온 철학적 함축 등. 헴펠의 [자연과학철학]은 고전적인 책이지만 학생들에게 과학철학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고,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수학, 물리학, 생물학으로 범주를 크게 나누고, 각각의 범주에 속하는 입문 서적을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수학은 이브즈의 [수학의 기초와 기본 개념], 물리학은 라이헨바흐의 [원자와 우주]를 사용하면 적절할 것이고, 생물학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시 재야 학자로서의 삶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아인슈타인처럼 물리학자가 될 수는 없다.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 만약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아마도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나는 재야 학자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대학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만약 전쟁이 벌어지는 등 사회에 큰 혼란이 와서 대학의 교원들이 많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아마도 나는 나의 학위를 공식적인 증명으로 삼고 나의 지식을 간접적인 증명으로 삼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어떤 일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서 나는 내가 꾸준히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요리사도 있고 운동선수도 있고 노래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다. 비록 내가 지금은 공공기관의 행정업무에 종사하고 있지만, 위급한 경우에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재야 학자라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역할이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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