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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

내가 과학철학에서의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구분을 배운 것이 대학 시절이니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 맥락 구분의 근거가 되는 책이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인데, 나는 어제 이 책의 초벌 번역을 끝냈다. 번역을 끝낸 후 나는 분명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구분이 이 책에서 나오긴 하지만(아주 초반부에) 그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좀 더 포괄적인 맥락에서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중요성을 오늘날의 과학철학계에서 얼마나 높이 평가할까? 라이헨바흐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 과학철학계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내가 열심히 라이헨바흐를 연구하고 그 성과를 발표한다고 해서 이러한..

일상 이야기 2023.05.21

젤다의 전설 : 모형화된 자연 세계에서 놀기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로 플레이할 수 있는 “젤다의 전설 : 왕국의 눈물”이 2023년 5월 12일에 출시되었다. “더 위쳐 3”, “어쌔신 크리드” 2, 3, 4편을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는 내가 다시 “젤다의 전설”을 플레이하게 되었다. 기존에 플레이하던 “어쌔신 크리드”를 잠시 멈춘 것이다. 확실히 “젤다의 전설”은 아주 훌륭한 게임이다. 예를 들어, 나는 “위쳐”와 “어쌔신 크리드”로 인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은 없다. 그러나 “젤다의 전설”은 다르다. 전작인 “야생의 숨결”을 할 때도 하다 보니까 새벽이었고, 이번 “왕국의 눈물” 또한 마찬가지다. 그만큼 “젤다의 전설”은 최소한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그리고 있는 자연의 세계가 매우 경이롭다. 실제 우리..

일상 이야기 2023.05.16

하고 또 하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하고 또 하면서 잘하게 된다. 잘하게 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10번 한 후에 잘하게 되는 사람(A)이 있는가 하면, 100번 한 후에 비로소 잘하게 되는 사람(B)이 있다. B의 입장에서는 A가 너무 부럽고 왜 자신이 A보다 못하는 것인지 원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잘하게 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 그것이 어떤 절대적인 특성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일(T)을 정말 하고 싶다면, B는 A와는 상관없이 그 일을 100번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나는 어떤 일을 100번 한 후에 잘하게 되는 유형의 사람, 즉 A가 아닌 B 유형의 사람이다. 지금까지 나는 살아오면서 A 유형의 사람들을 충분히 봐 왔다...

일상 이야기 2023.05.12

Philosophy First

내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다. 철학은 근본적이면서도 멋진 학문이다. 물론 철학만을 전공하거나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해도 되고 그런 형식적인 전공에 매이고 싶지 않다면 철학 말고 다른 것을 따로 공부하고 익히면 된다. 철학을 밑천으로 삼아 영화를 찍어도 음악을 만들어도 행정이나 법을 공부해도 된다. 계속 철학을 공부해서 철학으로 살아가려면 철학만 공부해도 되지만 사실 다른 학문이나 삶의 여러 측면을 두루 고찰하지 않는 철학이라면 그다지 흥미로울 것 같지 않다. 철학으로 살아가려고 해도 다른 학문 혹은 세계의 여러 모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나는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

변화는 생각보다 느림

우리가 생각하는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보다 느릴 수 있다. 혹은,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의 구조와 우리가 생각을 통해 그리는 변화의 구조는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중요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중요한 변화에 대해, 그 변화를 예상하고 추측했던 각종 담론과 실제로 일어난 변화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다. 세탁 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사람이 직접 세탁했다. 오늘날 세탁을 직접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공부할 때는 영어 단어를 모를 때 두꺼운 영어 사전을 뒤적이며 직접 그 뜻을 찾았다. 오늘날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멍청이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세탁이라는 특정한 행위의 핵심, 영어 단어 검색이라는 행위의 핵심은 변하지 ..

일상 이야기 2023.04.28

주말 드라마의 즐거움

나는 평소에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고, 최근에는 넷플릭스도 끊어서 보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오래전부터 즐겨 보는 것은 KBS2 방송국의 주말 드라마다. KBS2의 주말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뭔지 모르게 일상생활이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나는 막장 드라마, 과격한 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그런 드라마를 보려 하지 않는다. 사실 막장과 같은 일들, 과격한 일들은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은 실제의 삶에서 대면하고 이겨내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뉴스와 KBS2의 주말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다. 극단적이고 과격한 우익과 좌익은 모두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 어중간하고 평범한 삶에 대한 로망과 같은 게 오래전부터..

일상 이야기 2023.04.23

조인래 교수님과의 만남

내가 처음 조인래 교수님을 만난 것은 2002년 가을학기(과학철학)였다. 나는 2001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장회익 교수님의 수업(물리학의 개념과 역사)은 2001년 1학기에, 구자현 교수님의 수업(과학사 개론)은 2001년 2학기에 수강한 바 있었다. 2002년 가을학기 과학철학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아직 철학과로 전공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교수님께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때도 교수님께서는 나의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곰곰이 생각하신 다음, 계속 그 관심을 이어가도록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조인래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삼아 학부 졸업 논문(2005년 2월 졸업)을 썼다. 그리고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으로 진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교수님께 말..

경험주의의 전통을 이을 뿐

철학 연구자로서 나는 경험주의의 전통을 잇고 있다. 경험주의는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경험주의는 지식 수립에 있어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와 같은 이성의 역할을 불필요하게 과도한 방식으로 해석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경계한다. 지식은 인간이 만들어낸 경탄할만한 발명품이지만, 그와 같은 발명품에 그것이 정당하게 가져야 할 해석보다 지나친 해석을 부여해서 그러한 해석 부여를 통해 지식에 과도하고 부당한 권위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철학 연구자가 반드시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가 될 필요는 없다. 즉, 어떤 사람이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 대학에서 교수로서 일하..

묘한 우연의 연속

돌아보면 내 삶은 ‘우연’과 ‘의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중학생 시절의 꿈도 게임 프로그래머였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보면 컴퓨터 속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을 시뮬레이션하고, 그 행성에서 탄생한 지적인 생명체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컴퓨터 속에 있는 가상의 존재임을 깨닫는 내용이 나오는데,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에 열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물리학자로 꿈을 바꿨고, 고등학교 때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만나 결국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수학, 물리학, 컴퓨터 등에 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만약 내가 대학 재학 중에 입대했거나, 대학을 졸업한 뒤 계속 인문대학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에서 입대했다면, 아마도 나는 군대에..

일상 이야기 2023.04.08

가사와 육아의 시간

어젯밤부터 둘째 아이에게 열이 있어, 오늘은 아내와 첫째(초등학교)와 셋째(어린이집)를 내보내고 둘째는 집에 데리고 있었다. 오전 틈틈이 노트북으로 일을 보고, 집 정리와 청소와 설거지를 했다. 점심때는 며칠 전 중국집에서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인 짬뽕 국물을 데워서 밥이랑 대충 먹고, 둘째에게는 밥과 김과 밑반찬을 차려주었다. 식사 후에는 빨래를 널고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 돌아오는 길에 첫째를 하교시켰다. 오후 5시쯤 셋째를 하원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대략 저물어갈 것이다. 집안일과 육아를 하다 보면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이제 4월이 되었으니 나의 육아휴직도 대략 3개월 남짓 남은 셈이다. 그동안 둘째, 셋째가 많이 컸다. 우리 집 쌍둥이들은 올해 6월이면 세 돌이 된다. 첫째도 입학한 ..

일상 이야기 2023.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