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변화는 생각보다 느림

강형구 2023. 4. 28. 15:14

   우리가 생각하는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보다 느릴 수 있다. 혹은,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의 구조와 우리가 생각을 통해 그리는 변화의 구조는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중요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중요한 변화에 대해, 그 변화를 예상하고 추측했던 각종 담론과 실제로 일어난 변화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다.

 

   세탁 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사람이 직접 세탁했다. 오늘날 세탁을 직접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공부할 때는 영어 단어를 모를 때 두꺼운 영어 사전을 뒤적이며 직접 그 뜻을 찾았다. 오늘날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멍청이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세탁이라는 특정한 행위의 핵심, 영어 단어 검색이라는 행위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중심 행위자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아마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의 삶의 양상을 크게 변화시킬 것은 분명하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를 상용화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인간 삶의 양상이 얼마나 달랐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러나 전화 없이 우편으로 서신을 주고받을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언어를 통한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두 시대의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만큼의 주체성과 행위성을 가진 인공지능의 물질적 구현물이 우리 사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등록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사회의 주인공은 인간이며 인공지능은 그 보조의 역할을 할 것이다. 원자폭탄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라.

 

   ‘철학적 활동’이라는 독특한 활동을 하는 인간 개체인 나로서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주의 깊게 지켜보되 그것에 대해 너무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마도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주 구체적인 방식의 질문, 즉 대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떠한 유료 과업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소지가 있을 때 그 과업을 수행한 비용의 단가를 유지해야 하는지 삭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초래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 등과 같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친숙하고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공지능이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를 아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실제적인 속도 및 양상과 그 변화에 대한 학술적인 담론이 그리는 속도 및 양상 사이에 제법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논의하는 주제를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설정해서 세부적인 논의를 하거나, 실제로 인공지능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와 함께 좀 더 구체적인 발전 양상에 대해 논의하는 게 좋겠다.

 

   나는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가 우리의 생각 속 혹은 우리의 담론 속 변화에 비해서 느리리라 예측하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를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가 원래 하기로 했고 실제로도 해야 하는 일들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니까 나와 직접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은 이상, 나는 그냥 원래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신의 담론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뿐이다. 몇 년 전에 메타버스에 관한 담론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가 지금은 퍽 잠잠해진 것처럼, 실제의 인공지능 발전과는 별도로 인공지능에 관한 ‘담론’ 그 자체가 어떤 부침을 보여줄지 좀 더 지켜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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