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62

독립적이면서도 겸손한 삶

나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의 사람은 아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나이 때 다니던 대입 재수학원에는 과학고 자퇴생들의 반뿐만 아니라 국제고 자퇴생들의 반도 있었다. 당시 부산과학고와 부산국제고는 위치상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학생들도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보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검정고시에서 수석을 했다고 자랑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의 경우 검정고시 공부를 따로 한 것이 전혀 없이 시험을 치러 합격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범생, 전액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학점을 더 잘 받기 위해서 재수강을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정말로 우리 학과의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서관에 ..

일상 이야기 2023.11.04

삶을 위한 철학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체 철학을 왜 하는가? 왜 우리는 나 혹은 나 이외의 존재 혹은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의미를 밝히려고 하는가? 왜 우리는 굳이 지식 혹은 기술이 아닌 ‘지혜(sophia)’를 얻으려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퍽 단순하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철학이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 더 구체적으로 말해, 철학이 우리에게 먹을 것 혹은 입을 것을 주는가? 아니면 철학이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재화를 제공해 주는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만약 철학이라는 과목이 고등학교의 필수 과목이라면 철학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겠지만, 대부분 철학은 선..

실천과 멀리 있지 않은 철학

나는 최근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요즘은 많은 경우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의 철학, 빅데이터의 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반적인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으며 옳지도 않다고 본다. 대세는 세속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대세에는 대세가 되게 된 상당히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대세를 따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공부하며 나는 퍽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출간한 책인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이해와 활용]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천되는 학문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철학이란 무엇이고 빅데이터의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학철학이란 과학..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 구상

나는 현재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비판적 사고]와 [과학기술과 철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두 과목은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훌륭한 표준 교재를 갖고 있어 강의하기가 참 편리하다. 하지만 이 두 과목이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양 강의와 완전하게 합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대학생 수준의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를 별도로 구상하곤 한다. [과학사]의 표준 교재로는 임경순․정원의 “과학사의 이해”(다산, 2014)를 들 수 있다. 이 표준 교재를 적절히 15주 정도 분배하여 수업한다면 무난할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교재로 데이비드 린드버그의 “서양 과학의 기원들”이 있으며, 피터 보울러 등이 쓴 “현대 과학의 풍경”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사 전공자..

잘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

돌아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잘 해왔다기보다는 끈질기게 버텨왔다. 뭐든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는 오직 몇 가지를 계속 붙들고 끈질기게 그것을 계속 해 왔다. 왜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인 것인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도 그게 나다. 다시 말해,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다. 공격과 수비로 따지면 나는 늘 수비하는 사람이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수비만 하니까 급격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때로는 과감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갖고, 이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어야 한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너무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모두를 걸고 실패의 위험을 충분히 끌어안으며 과감하고..

주말만 되면 도지는 병

내가 지금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할 때 홍천도서관 근처에서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남자 중에 군대에 정말 가고 싶어 군 복무를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철학, 특히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고 집안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내게 철학 공부는 사치처럼 여겨졌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안식이었다. 군 복무는 내게 고통스러운 의무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만 기다렸다. 주말에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홍천도서관에서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 내 인생을 바꾼 기적이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내 블로그는 그다지 인기가 없..

즐겁게 해 나가는 것

일이 바빠도 짜증을 내지 않고 즐겁게 해 나가는 요령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다. 화내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약간만 더 수고하면 무난하게 풀리는 일들이 참 많다. 그 아주 짧은 순간을 지혜롭게 참아내면 이후 훨씬 더 긴 시간을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지금까지 제법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이런 점에 있어서 퍽 미숙한 것 같다. 여전히 일을 하며 가끔씩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은 나의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사실 나는 요즘 ‘더 바랄 게 없다’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고, 부모님과 장모님도 차를 운전하면 2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살고 계셔 필요할 때면 부담 없이 찾아뵐 수..

일상 이야기 2023.10.12

예배, 차례, 관용

추석 전 성묘를 하지 못해서 어제(10월 7일) 오전에 경상북도 성주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에 다녀왔다. 묘소 바로 아래에는 예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던, 이제는 큰아버지께서 관리하는 집이 있다. 그로부터 차를 타고 5분 정도 내려오면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작은 농막이 있다. 나는 아버지 농막에 들러 마른 멸치 조금과 소주 한 병을 챙겨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갔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소주를 참 좋아하셨다. 할머니께서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절을 하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에게서는 선비의 느낌이 났지만, 술과 육회를 좋아하셨고 욱하는 성미도 있으셨다. 할머니께서는 늘 부지런히 일하셔서 등이 구부러져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

일상 이야기 2023.10.08

글 쓰는 시간

나는 과학철학자일까? 박사학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물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껏 나름 고생을 해서 학위를 취득했지만, 나 자신이 확고한 과학철학자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다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명칭이 나에게는 더 편안하고 마음에 든다. 다만 나에게 제법 확실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나라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삶의 핵심적인 에너지원이다. 내가 글 쓰는 습관을 들인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일 일기쓰기를 의무적으로 시켰다! 약간 특이한 학교이긴 했다. 교실 바닥이 마루..

일상 이야기 2023.10.05

물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

의외로 사람들은 물을 쉽게 혹은 우습게 본다. 대개 “나를 물로 보나?”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나를 쉽게 혹은 우습게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물 흐르듯 살아라.”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물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나는 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는 물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필요한 만큼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을 선호한다. 삶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물의 흐름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우선 물에서 살기 위해서는 물에서 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마음대로 발버둥 친다고 해서 물에 뜰 수 있는..

일상 이야기 202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