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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필요한 일

나는 요즘 영국의 철학자 배리 데인턴(Barry Dainton)이 쓴 [시간과 공간(Time and Space)]이라는 책을 매주 한 장씩 요약정리하고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이런 요약정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박사과정 수료를 위해 추가로 6학점을 더 수강해야 하기 때문에, 매주 책의 일정한 분량을 요약정리하고 이 내용을 토대로 교수님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의 일이 끝나고 남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러한 요약정리를 위해 쓴다. 현재 이 책의 절반쯤 진도가 나갔다. 12월까지는 책 전체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2월까지 또 다른 책을 한 권 더 읽고 정리하면 박사과정 학점 이수는 끝날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2월 이후에는 이와 같은 요약정리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일상 이야기 2015.10.25

만족과 여유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게 좋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옷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후줄근하게 입고 다녔다.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될 법도 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에서 나는 그저 편한 옷차림으로 생활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세련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는 법이 없다. 왜 그럴까 잠시 생각을 해보아도 별다른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가보지. 화려하고 멋진 옷을 사는 게 내게 만족을 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수수한 옷을 사는 게 나는 더 좋다. 비싸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는 게 내게 만족을 줄까? 아니다. 나는 양이 많..

일상 이야기 2015.10.24

번역에 대한 단상

나는 영어를 뛰어나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주로 나는 영어를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문법능력이나 어휘능력의 측면에서 볼 때 나보다 영어를 잘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철학과 과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식견을 갖추고 있다. 특히 과학철학의 한 사조인 논리경험주의에 대해서는 배경지식도 많이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도 역시 깊은 편이다. 따라서 적어도 논리경험주의에 관한 영어책들을 한글로 옮기는 것에서 나는 강점을 갖고 있다. 글을 읽는 것은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그런데 번역이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글쓰기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 번역은 진도 역시 늦은 작업이다. 다른 나라 ..

일상 이야기 2015.10.16

역사교과서에 대한 단상

내 기억에는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의 다음과 같은 시작 문구가 남아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자주독립을...” 초등학교 1학년 때 혹은 2학년 때 나는 교과서의 맨 앞에 있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려고 애썼다. 아마도 당시 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외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리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으레 그러하듯, 나 역시 학교 선생님의 말을 별 생각 없이 충실하게 따랐다. 몇 년이 지나자 국민교육헌장은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는 국민교육헌장과 비슷하면서도 덜 급진적인 변화를 겪은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다. 내가 기억하는 초기의 국기에 대한 경례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

일상 이야기 2015.10.13

창조적인 시간

‘생산적인 시간’이라고 제목을 붙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창조적인 시간’으로 글의 제목을 결정했다. ‘창조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생산적’이라는 표현이 좀 더 일반적이고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창조적일 수 있다. 나는 어떤 시간이 ‘창조적’인지를 평가하는 기본적인 기준이 그 시간을 보내는 개인의 느낌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창조적’이라고 느낀다면 그 시간은 나에게 창조적이다. 만약 당신이 아무런 일 없이 그저 의자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보내는 시간을 ‘창조적’이라고 느낀다면, 그 시간 역시 당신에게 창조적이다. 나는 종종 나를 지구 위에서 서식하고 있는 한 마리의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지구 위에는 인간이라는..

일상 이야기 2015.10.11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에 대하여

내가 과학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들어갔을 무렵, 과학철학 학계에서는 논리경험주의를 이미 한물 지나간 철학 사조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논리경험주의는 어떤 특성을 갖는 서양의 철학사조일까? 왜 한국에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일까? 만약 한국에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 있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를 연구하고자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논리경험주의는 20세기 초기에 서유럽에서 등장한 서양철학의 한 사조였다. 고대에서부터 17세기까지 서양의 자연과학은 서양의 철학과 불가분..

라이헨바흐의 [상대성 이론과 선험적 지식] 소개

① 이 책의 저자 라이헨바흐는 어떤 사람인가? ☞ 대학에서 공학, 수학, 물리학, 철학을 공부한 20세기 초반의 독일철학자다. 물리학에 적용되는 수학적 확률 개념을 주제로 삼아, 수학 교수와 철학 교수의 공동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신회사에서 근무했으며, 대학에서 공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자연과학, 공학, 철학을 두루 공부한 철학자였다. ② 19세기에 유럽을 풍미했던 칸트의 자연철학이란 어떠한 것인가? ☞ 칸트는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간의 직관 형식 및 특정한 범주들(질, 양, 관계, 양태)을 통해 사물들을 받아들인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칸트는 감각 경험을 정돈하는 특정한 원리들이 인간에게 있어, 이 원리들을 토대로 모든 감각들을 질서 짓는다고 ..

라이헨바흐의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 소개

(01) 이 책의 저자인 한스 라이헨바흐는 누구인가? → 한스 라이헨바흐는 20세기 전반기에 활발히 활동한 과학철학자다.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통계역학과 같은 현대 물리학 이론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02) 왜 철학자가 과학이론을 분석하는가? → 19세기 중엽 이후 과학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면서, 전문적인 과학적 탐구 활동에 비과학자인 일반인이 개입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일반인 역시 세계의 작동방식과 구조를 설명하는 과학이론에 관심을 갖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한다. 철학자는 그 특유의 분석 방법을 통해, 당대의 과학이론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다. (03) 과학이론에 대한 설명은 그 이론을 만든 장본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

산문의 감성

텔레비전을 틀면 짧은 분량의 뉴스들이 끊임없이 흐른다. 인터넷 포털이나 SNS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러 종류의 단편적인 글들이 산재해 있다. 그 짧은 정보들 속에 의식을 섞으며 나의 정보 또한 중간 중간에 끼워 넣으면, 나의 삶 역시 짧고 단편적인 것으로 변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편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길고, 순간순간 우리에게 나타나는 감정들과 생각들은 풍부한 뉘앙스를 갖고 있다. 요즘은 긴 산문을 읽으면, 산문의 정서 혹은 산문의 감성이 옛 시대 인간 문화의 흔적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감성이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키워왔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전화밖에 없던 어린 시절,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할 일이 없을 때 집에 ..

일상 이야기 2015.09.20

실험철학 집중강의 결과보고(2009년)

2009년 2월 BK 철학교육사업단 블록세미나 실험철학 집중강의 결과 보고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2005-20273 강형구(reductionist@hanmail.net) 럿거스(Rutgers) 대학에 재직 중인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의 선봉(vanguard) 스테펀 스티치 교수(Pr. Stephen Stich)가 2009년 2월 16일부터 4일에 걸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7동 315호에서 실험철학 집중강의를 실시했다. 20세기 이후 분석철학의 전통에서 이른바 인식적 직관(Epistemic Intuition)은 철학적 논증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해 왔지만, 기존의 직관과는 상치되는 결론을 도출한 게티어(Gettier)의 논문이 1963년 등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