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22: 끈 이론

강형구 2016. 4. 6. 07:08

 

22: 끈 이론

(Strings)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물리학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식적인 관점에 상반되는 결론을 이끌어냈음을 살펴보았다. STR은 시간과 공간을 통합했고 절대적 동시성을 폐기했다. GTR은 굽은 시공간을 도입했다. 역행인과, 다중우주, 순간적인 원격작용을 도입하는 양자역학의 해석도 있다. 양자역학과 GTR을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 중 정준 양자 중력이론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보았다.

  

   양자역학과 GTR을 통합하고자 하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시도가 바로 끈 이론이다. 정준 양자 중력이론이 시간에 대한 큰 함축을 가졌다면 끈 이론은 공간에 대한 큰 함축을 가진다. 끈 이론이 맞다면 우리는 3차원이 아니라 9차원 또는 10차원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셈이 된다. 끈 이론은 발전 초기 단계에 있고 끈이 존재한다는 경험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끈 이론은 모든 것의 이론으로서 가장 유망하며, 공간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22.1. 보다 높은 차원에 대하여

   끈 이론은 어떤 근거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차원이 9 또는 10차원이라고 하는 것일까? 숨겨진 차원의 증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단순한 2차원 세계의 예를 들어보자.

  

   3차원의 물리적 사물들을 포함하고 있는 2차원 세계가 있다. 3차원 사물들은 균일하고, 안정되어 있으며, 움직일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는 고정된 고체들이다. 2차원 세계 거주자들은 2차원만 감각할 수 있으므로, 3차원 사물들의 본성은 이들로부터 가려져 있다. 정육면체가 2차원 세계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평면과 이루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방향에 따라 정사각형, 평행사변형, 삼각형, 직선이 될 수 있다.

  

   이제 2차원 생명체들이 3차원 사물들에 대한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3차원 물체들은 다른 물체들과 달리 옮기는 데 더 큰 노력이 든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물질의 구성 성분 차이에 근거해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추가적인 차원을 도입해서 이를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정사각형을 직사각형 쪽으로 밀었을 때 두 도형이 접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사각형이 밀려나고, 직사각형이 밀려나면서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하자.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차원을 도입할 필요가 생긴다. 3차원 사물들로 인한 현상들을 3차원을 도입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동역학이 등장한다면, 이 동역학은 방법론적인 근거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 예는 n차원에 감각이 국한된 생명체가 n+1차원의 사물들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간은 어떨까? 공간 역시도 겉보기보다 높은 차원을 가지게 될 수 있을까? 2차원 과학자는 실제로 자신들이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미지의 역장(force field)에 사로잡혀 있어서 2차원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역장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가정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

  

   그러나 2차원 과학자들이 미시적인 측정 도구를 개발하여,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3차원에서의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 미시적 차원에서 물체들이 갖는 에너지가 기존 이론의 계산 결과보다 더 적고, 이는 물체들이 3차원 공간에서도 요동치기 때문인 것이 밝혀진 것이다. 실제로 끈 이론가들이 추가적인 공간적 차원을 가정하게 된 것 역시 비슷한 이유들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22.2. 칼루차-클라인 이론

   앞서 살펴본 논리와 비슷한 논리로 추가적인 차원을 도입하는 이론이 칼루차에 의해 1919년에 도입되었고, 클라인은 이 이론을 1926년에 발전시켰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3+1차원에서 형식화되었지만 더 높은 차원으로도 확장될 수 있었는데, 칼루차는 4+1차원으로 이론을 확장하여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5차원 방정식이 전자기장에 대한 맥스웰 방정식을 포함하고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어쩌면 중력과 전자기력 모두 공간적인 교란의 일종인지도 몰랐다. , 중력은 3차원 공간의 교란이고, 전자기력은 4차원 공간의 교란이라는 생각이 등장했다.

  

   또한 칼루차는 3+1차원 시공간 다양체의 각 점들에 작은 원들이 부착되어 있고, 이 원들에 추가적인 하나의 공간 차원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시공간을 움직이는 전자는 추가적인 차원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자유롭게 점유할 수 있다. , 전자는 이동하면서 원 위에서의 위치를 변화시킨다. 그런데 추가 차원의 원은 플랑크 상수 정도의 크기인 10-33승 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이므로 현대의 가속기 시설로도 이를 감지해낼 수 없다.

  

   그러나 칼루차-클라인 이론은 곧 난관에 부딪쳤다. 이 이론은 전자의 질량-전하 비율을 예측했는데, 예측값이 관측값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추가로 더 높은 차원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칼루차-클라인 이론이 제시된 지 50년 정도 지난 후에 다시 물리학계에 등장했다.

 

22.3. 표준 모형

   19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입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은 모든 실험결과들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수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과도 일관적이었다. 표준 이론은 양자장이론으로 형식화되었다.

  

   세계에는 4가지의 서로 다른 근본적인 상호작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력이 그것이다. 중력, 전자기력과 달리 약력과 강력은 원자핵 내부와 같은 짧은 거리에서 작용한다. 1970년대 초에 와인버그-살람의 전자약력 이론은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했고, 1973년 제시된 양자색역학은 강력 상호작용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이후 전자약력 이론과 양자색역학이 결합해서 약력, 강력, 전자기력이라는 세 가지 상호작용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표준 모형이다.

  

   표준 모형에서는 세 가지 유형의 입자들이 등장한다. 첫째 유형의 입자인 쿼크는 결합해서 양자, 중성자 등 질량이 큰 입자들을 만든다. 둘째 유형의 입자인 렙톤에는 전자와 뮤온이 포함된다. 셋째 유형의 입자인 힘 전달 입자에는 강력의 글루온, 전자기력의 광자, 약력의 약한 게이지 보손이 포함된다. 이후 세 가지 상호작용을 더 근본적인 상호작용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대통합이론(GUT)을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났다.

  

   하지만 중력을 통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양자장이론의 틀에 중력을 통합시키려는 표준 모형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중력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중력자에 양자장이론의 표준 규칙을 적용하면 이상한 결과가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중력자가 접근하면 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무한대로 커졌다. 또한 중력자가 등장하는 사례에서는 무한대의 양들을 제거하는 기존의 기법들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또한, 양자이론의 근본 원리인 불확정성원리가 진공에 적용될 경우, 불확정성으로부터 생기는 요동이 시공간의 기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 시공간의 기하와 위상이 극적으로 변동하여 작은 웜홀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위와 같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귀결들로 인해서 GTR과 양자장이론을 통합하는 것이 매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22.4. 끈 이론

   현대의 끈 이론은 칼루차-클라인 이론의 계승자이며, 1970년대 및 1980년대 초반에 현대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표준 모형에서는 다양한 점 입자들이 속도, 위치, 질량, 전하량, 스핀 등과 같은 다양한 속성들을 가진다. 이에 반해 끈 이론에서는 오직 하나의 근본적인 개체인 만을 가정한다. 끈은 점이 아니라 1차원의 선분이며, 10-33승 센티미터의 짧은 길이를 갖는다. 끈은 열려 있을 수도 있고 고리처럼 닫혀 있을 수도 있다. 열려 있을 때 끈은 그 흔적으로 시공간에 세계 면을 남기고, 닫혀 있을 때는 세계 원통을 남긴다.

  

   끈들은 서로 결합하거나 분리하는 등과 같이 서로 상호작용한다. 또한 끈은 진동을 한다. 끈이 공명하며 진동하는 형태에 따라서 관련된 입자들의 속성들이 나타난다. 끈의 공명 유형에 따라 끈은 전자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광자 또는 뉴트리노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끈의 진폭이 크고 파장이 짧을수록 에너지가 커지며,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라 질량과 에너지는 동등하므로, 질량이 큰 입자가 된다. 이와 유사하게, 끈의 진동 형태를 통해서 입자가 갖는 다른 특성들인 스핀, , 전하량 등도 설명가능하다.

  

   표준 모형이 다양한 입자들과 그 속성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못했던 반면, 끈 이론에서는 끈의 진동 형태를 통해서 입자 및 그 속성들을 설명해낸다. 무엇보다도 끈 이론의 강점은 특정한 하나의 공명 유형을 통해 표준 모형이 중력자에 부여하는 속성들을 정확하게 생성해내는데 있다. 끈 이론에서 중력자는 끈이 갖는 기초적인 진동 양상으로 나타나며, 끈 이론에서는 양자장이론에서 보았던 문제적인 무한대의 값들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이는 끈 이론에서의 끈이 점이 아니라 연장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끈은 놀라운 속성들을 갖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끈의 길이는 10-33승 센티미터 정도로 대단히 작다. 이는 만약 원자가 우주 전체의 크기로 커진다고 해고 끈은 집 한 채의 크기밖에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끈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감지하는 것은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끈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끈의 내적 긴장이 강력함을 의미한다. 계산에 따르면 이 내적 긴장은 1039승 톤 정도이며, 이를 플랑크 긴장이라고 부른다.

  

   끈이 너무 작기 때문에 미시영역에 대해 끈 이론이 내놓는 예측을 직접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끈 이론의 비판자들은 끈 이론이 물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끈 이론가들은 다소 낙관적이다. 끈 이론은 아직 발전 초기단계에 있으며, 이론이 더 잘 이해되면 경험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또한 끈 이론의 예측 중에서 일반 입자가 초대칭적인 짝 입자를 갖는다는 예측은 조만간 시험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끈 이론은 미시영역에 대한 훌륭한 설명을 제공하므로 귀추적으로(abductively)’ 정당화된다고 볼 수도 있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끈 이론이 양자 중력이론에 이르는 가장 전망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끈 이론이 공간의 본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22.5. 칼라비-야우 공간

   끈 이론의 방정식은 음의 확률을 갖는 예측을 도출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었다. 끈 이론가들은 음의 확률이 끈이 진동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방향들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끈이 3차원 공간 방향으로만 진동할 수 있다면 음의 확률은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4차원, 5차원 공간을 도입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9차원 공간을 도입하면 음의 확률이 제거됨이 발견되었다. 끈의 크기 자체가 매우 작기 때문에, 추가적인 6차원의 공간은 오직 플랑크 크기 영역에만 국한되었다.

  

   끈 이론은 추가적인 6차원 공간을 도입함으로써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입자들과 모든 상호작용들을 설명할 수 있는 통합적인 틀을 제시했다. 추가적인 6차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압축될 수 있고, 각각의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6차원 다양체가 대응된다. 끈 이론가들은 추가적인 6차원이 칼라비-야우 다양체라는 특정한 종류의 공간으로 압축되어야 올바른 결과값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불행히도 칼라비-야우 다양체는 그 자체로 수천 가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형태가 꼭 들어맞는 형태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또한 끈 이론에서는 양자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간의 위상 변화가 가능함이 1990년대에 이르러 증명되었다. , 칼라비-야우 다양체 내에서 급격한 물리적 귀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특정 종류의 위상 변환이 일어날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끈 이론에 이르면 공간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이전까지 공간은 모든 물리적 사물들이 존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사물들의 가능한 움직임을 제한하고, 관성 운동과 비관성 운동을 구분하는 기준 역할을 했다. 끈 이론에서는 이에 더해 공간이 물질적 사물들이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있는 속성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한다. 끈이 공간을 통과할 때 어떤 종류의 압축된 칼라비-야우 공간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끈의 진동 유형이 달라지고, 따라서 끈의 물리적 속성들도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이는 추가적인 차원의 기하가 일상의 거시공간 3차원에서 관측되는 물리적 속성인 질량, 전하량 같은 근본적인 속성을 결정함을 의미한다(브라이언 그린, 1999).

 

 

22.6. (brane)과 덩이(bulk)

   1990년대 초에 물리학자들은 1차원의 끈뿐만 아니라 2차원의 막, 3차원의 막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2차원 막은 에너지가 막의 넓이에 비례하고, 3차원 막은 에너지가 막의 부피에 비례한다. 이는 그 이상의 고차원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1995년에 에드워드 위튼은 5개 판본의 끈 이론들이 좀 더 기초적인 단일 이론인 M-이론의 표현이 될 수 있음을 보였다. M-이론에서는 10개의 공간 차원을 가정하는데, 여기서 10번째 공간 차원은 압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장되어(퍼져) 있다. 10번째 차원을 덩이(bulk)라 부르며, 덩이는 자신보다 낮은 차원의 막들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낮은 차원의 막 중 9차원의 막이 있는데, 9차원의 막 중에서 6차원이 압축되어 있고 3차원은 공간적으로 연장되어 있는 막 세계가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닮은 세계를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막 세계 모형은 중력의 약함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주 유용한 모형이다. 중력은 강력에 비해서 10-39승 정도로 약하다. 전자기력에 비해서는 10-37승 정도로 약한 셈이다. 이러한 힘의 세기 차이는 모든 힘들을 하나의 단일한 이론틀 내에서 통합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가 된다. 끈 이론에서 중력자 이외의 다른 입자들은 두 개의 끝을 가진 열린 끈이고 막의 표면에 단단히 결속되어 있어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덩이로 쉽게 이동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중력자는 닫힌 끈이고 다른 입자들과 달리 덩이로의 이동이 자유롭다. , 높은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중력의 상대적 약함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막 세계 모형은 공간에 대한 실체론적 개념과 관계론적 개념 사이의 논쟁에 특정한 함축을 갖는다. 만약 우리의 4차원 시공간이 3차원 막이 시간을 거쳐 온 역사라고 간주된다면, 4차원 시공간은 전자나 쿼크의 실재성과 동등한 수준의 실재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그린). ,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실체론적 성격이 분명해진다.

  

   표준적인 빅뱅 우주모형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130~140억 년 전에 시작했다. 무한대의 압력과 밀도를 갖는 최초의 특이점으로부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후 우주는 급격한 팽창을 겪었다. 그런데 빅뱅 우주모형이 답하지 못하는 물음들이 있다. 최초 특이점에 포함된 질량-에너지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슈타인하르트(Steinhardt)와 튜록(Turok)에 의해 개발된 대안적인 주기(cyclic) 모형은 우주의 구조에 대한 특정한 가설로부터 출발한다. 우주는 두 개의 무한한 3차원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두 개의 막은 서로 약간 떨어져 있다. 각각의 막은 사이 공간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막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막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력은 약해지며,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인력은 급격하게 커진다. 두 막이 충돌하면 거대한 양의 질량-에너지가 생성되며, 이에 따라 두 개의 막은 서로 멀어진다. 각각의 충돌은 빅뱅과 대응하며, 충돌은 수 조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주기 모형에서는 단일한 특이점으로부터 빅뱅이 시작하지 않는다. 막끼리 충돌하면 무한한 공간 전체가 에너지로 가득 차서 태양 표면의 온도보다 1015승배 더 큰 온도에 도달하므로, 이전 우주가 갖고 있던 구조들이 지워진다. 각각의 빅뱅 때마다 양자 불확정성으로 인해 막 표면에 소규모의 불규칙성이 발생하며, 이에 따라 물질이 중력에 의해 응집하고 은하를 생성한다.

  

   주기 우주 모형은 비교적 새로울 뿐만 아니라 공간에 빅뱅 이론과는 다른 역할을 부여한다. 이 모형에서 공간은 사물들을 담는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들을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 주기 우주 모형을 경험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표준 모형에서는 우주 팽창이 너무 과격해서 이에 따라 특정 종류의 중력파가 발생하지만, 주기 모형에서의 팽창은 표준 모형만큼 과격하지 않아서 중력파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중력파를 탐지할 수 있는 기법이 개발된다면, 두 모형 중 어떤 모형이 옳은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22.7. 시공간의 시초(shards)

   끈 이론에서는 시공간 다양체를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하지만, 실제로는 끈들이 조직되고 일관된 진동을 해야만 시공간이 구현된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 끈으로부터 시공간이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과 같은 끈 이론가들은 시간과 공간이 없는 형태에서 끈들이 시공간을 구성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학사적으로 볼 때 물질의 기본 구성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이 풍성한 결실을 맺었던 것처럼, 공간 역시도 더 기본적인 성분들로부터 구성되었다는 생각은 가치 있을 수 있다. 그 성분은 끈이 될 수도 있고, M-이론의 기초 요소인 0차원 막이 될 수도 있으며, 고리 양자 중력 이론에서의 얽힌 스핀 연결망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시공간 자체가 기초 성분들의 구성물일 때 어떻게 이 성분들이 시공간 없이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연결의 문제). 아마도 시공간의 시초 성분들 사이에는 처음부터 특정한 관계가 수립이 되어 있고, 이 관계가 점차적으로 확장되어 간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관계론적 세계와 실체론적 세계의 중간에 있는 세계인 그물망(mesh) 세계를 생각해보자. 그물망 내부는 진공에 의해 격리되어 있고, 각각의 격자 크기는 가장 작은 입자보다도 작다. 따라서 입자들은 늘 그물망 내부인 진공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지만, 입자들의 운동은 그물코에 의해서 제약된다. 또한 입자들의 운동은 그물코를 연속적으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물코 격자들 사이를 띄엄띄엄 움직인다. 하지만 격자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이러한 불연속성은 경험적으로 감지될 수 없다. 이러한 그물망 세계는 관계론적 요소(진공에 의한 분리)를 갖고 있긴 하지만 다분히 실체론적이다. 또한 이러한 그물망 세계가 점차적으로 성장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그물망 모형의 공간 개념은 고리 양자 중력이론에서의 공간 개념과 닮아 있다. 로저 펜로즈가 제시한 양자 중력이론에서는 서로 교차하는 흐름선들의 닫힌 고리들이 연결망을 이루며 진화해나간다. 이러한 스핀 연결망은 이산적이지만 연결망 단위가 매우 작다. 가장 작은 영역은 10-66승 제곱센티미터이고, 가장 작은 부피는 10-99승 세제곱센티미터이다. 고리와 선들이 교차하고 결합하는 방식이 플랑크 크기 수준에서의 공간 기하를 결정한다. 연결망이 끊임없이 그 구조를 변화시키므로 공간의 기하 역시도 계속 변화해나간다.

  

   스몰린은 언젠가 고리 양자 중력이론과 끝 이론이 통합될 것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공간은 고리들의 연결망에 의해 짜여 진다. 그리고 끈은 이러한 짜임 속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무늬라고 볼 수 있다. 미시적으로 보면 실들의 짜임만이 드러나지만, 이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짜임을 통해 형성된 무늬가 드러나고 이 무늬가 바로 끈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몰린은 끈 이론이 스핀 연결망을 사용하는 좀 더 근본적인 이론에 대한 근사임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

  

   스몰린이 제시하는 이론에서 공간은 다분히 관계론적이다. 스핀 연결망 구조는 역동적이며 기하 구조 역시 진화하고, 구조의 진화는 다른 부분들과의 관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론에서의 시공간이 실체론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입장을 초-실체론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 입장에서는 시공간이 물리적 실재의 유일한 구성 성분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