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20: 일반 상대성

강형구 2016. 4. 4. 06:49

 

20: 일반 상대성

(General relativity)

 

20.1. 특수상대성이론의 한계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STR)을 발표한 이후 10년간의 노력 끝에 일반상대성이론(GTR)을 완성했다. 이 이론은 우주의 거시적 규모 시공간 구조에 대해 우리가 가진 가장 최선의 이론으로 남아 있다. GTR은 시공간을 곡률이 변화하는 다양체로 보기 때문에 이는 시공간을 유클리드적인 것으로 보는 푸앵카레 규약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GTR이 실체론을 지지한다고 볼 상당한 근거가 있지만 이에 대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님도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STR은 관성운동과 가속운동의 차이를 설명하고 움직이는 물체의 동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을 조화롭게 통합했다. 그러나 STR은 중력 현상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뉴턴의 중력이론은 STR의 틀과 매끄럽게 조화되지 못하는데, 이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뉴턴의 중력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서로 분리되는 양으로 보는데 이는 STR과는 상충된다. 다시 말해, 길이 수축, 시간 지연, 동시성의 상대성 등 상대론적 효과는 뉴턴 이론과 상치된다. 둘째, 뉴턴 이론에서 중력은 일종의 원거리 원격작용이다. 그러나 STR은 인과적 전달이 유한한 속도로 전파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중력의 원격작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아인슈타인은 뉴턴 이론과 달리 힘 개념을 쓰지 않고 질량에 의해 유도된 시공간 곡률에 의해서 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20.2. 동등성(equivalence)

   1907년에 아인슈타인은 중력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자유 낙하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감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중력은 물체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힘이 아니기 때문에, 중력 아래에서 자유 낙하하는 물체들은 아무런 힘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물체들이 자유낙하 경로를 따라 움직이지 못하게 방해를 받게 되면 그때는 힘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은 STR에서 사용했던 상대성원리를 확장하고자 시도했다.

  

   STR에서는 물리학의 법칙이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했다. 만약 자유 낙하하는 기준계에서 중력의 효과가 사라진다면, 물리학의 법칙이 중력장에서 자유 낙하하는 기준계에서도 관성계와 같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은 관성계와 중력장에서 자유 낙하하는 기준계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원리를 동등성(등가) 원리라고 부른다. 중력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감지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밖을 볼 수 없는 상자 안에서 아래로 작용하는 힘을 느끼고 있다고 하자. 이때 당신은 아래로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상자에게 상자 위쪽으로 향하는 일정한 크기의 가속도가 가해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중력장 아래에 있는 것과 일정한 가속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국소적인 영역에서 중력효과와 가속효과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중력과 가속운동 사이에는 실제로 차이가 없고 그 둘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은 수년 동안의 노력 끝에 이러한 생각을 구현하는 이론을 개발해냈다.

 

20.3. 시공간의 곡률

   이제 중력이란 시공간 안에서 또는 시공간 너머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 그 자체의 구조 변화라는 생각이 어떻게 도출되는지를 살펴보자. 가속운동하고 있는 우주선 안에 빛이 투사되면 우주선의 관점에서 빛의 경로는 굽을 것이다. 그런데 가속도와 중력의 효과가 같다고 가정하면, 강한 중력 근처에서도 빛이 굽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 빛은 이 시공간의 구조를 구성하는 최단경로이다. 그런데 중력이 빛을 휘게 만든다면, 중력은 시공간 구조를 바꾼다고 볼 수 있다.

  

   가속도가 시공간을 굽게 만들 것임을 함축하는 또 다른 사고실험이 있다. 회전하는 원반을 생각해보자. 외부 관찰자의 관점에서는 원반의 반지름과 원주의 비율이 2π이다. 그러나 원반 끝에 있는 관찰자의 측정막대는 로렌츠 수축에 의해서 줄어들기 때문에 원주를 더 길게 측정하고, 결과적으로는 반지름과 원주의 비율이 2π보다 더 커진다. 또한 회전하는 원반의 관찰자가 측정하는 시간은 시간지연 효과에 의해 정지한 관찰자에 비해서 더 느리게 된다. 회전 역시 일종의 가속도이므로, 가속도 효과와 중력 효과가 동등하다는 동등성 원리를 적용하면, 중력 아래에서도 시공간이 굽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이란 다름 아닌 시공간의 굽음일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물질은 근처의 시공간을 휘게 하고, 이러한 휘어짐은 빛의 속도로 공간에 전파된다. 이제는 더 이상 뉴턴의 원격작용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시공간의 곡률은 인접한 공간으로 순차적으로 전파되며, 곡률의 세기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줄어든다. GTR에서 중력적인 인과관계는 원격적인 것이 아니라 국소적인 것으로 바뀐다. 또한 시공간의 구조도 정적인 것에서 역동적인 것으로 바뀐다.

  

   뉴턴 물리학에서는 오직 직선만을 관성궤도로 보았다. 그러나 중력이 별도의 힘이 아니라 시공간 구조의 굽은 정도라고 보게 되면, 중력장 아래에서의 자유낙하 경로 역시도 관성궤도로 볼 수 있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함으로써 그 주변을 움직이는 물체의 관성 경로, 즉 측지선을 변화시킨다. 질량이 커질수록 국소적인 측지선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직선과 벌어지는 격차는 점점 더 커진다.

 

20.4. 시공간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feeling the grip of spacetime)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떠받쳐지고 있다고 본다. 원래 우리는 자유낙하 경로에 따라 계속 움직여야 하는데, 지구의 표면이 우리의 관성 경로를 막으면서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 행성에 철수와 영희가 자석으로 된 스케이트를 타고 표면 위를 매끄럽게 이동하고 있다고 하자. 철수와 영희는 행성 위의 대원 위를 움직이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구형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거대한 평면 위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구 위에서 모든 대원들은 한 점에서 겹치므로, 철수와 영희는 자신들에게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짐을 알게 된다. 그래서 철수는 영희와 부딪치지 않고 영희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스케이트 날의 방향을 트는데, 이에 따라 철수는 영희쪽을 향한 내부적인 압력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철수는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관성 경로로부터 이탈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이 힘을 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만약 철수보다 질량이 큰 민수가 철수를 뒤따른다고 하자. 민수가 영희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수보다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질량에 관계없이 모든 물체들이 중력장 아래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관성 경로를 움직이므로, 상대적으로 중력은 질량이 클수록 더 커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편력인 중력은 질량에 비례해서 그 크기가 세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모든 물체들은 단지 자신이 따라야 하는 관성 경로를 움직일 뿐이다.

  

   굽은 것은 단순히 공간만이 아니라 시공간 다양체이므로, 질량 가까이에서는 시간 지연효과도 일어난다. 시공간 곡률이 커질수록 시계는 더욱 더 느리게 간다. 혹자는 뉴턴의 이론에서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공간 대신 굽은 공간을 도입하면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동일한 방향으로 공을 던지고 총을 쏘았다고 하자. 공과 총알의 궤적은 서로 다르다. 총알이 공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는 물체의 운동을 고려할 때 시간적인 요소 역시 포함시켜야만 함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시간요소를 고려한다면, 공과 총알의 궤적은 동일한 것이 된다. 둘 다 동일한 내재적 곡률을 갖는 곳에서 관성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물체들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 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임을 알 수 있다.

 

20.5. 증거

   아인슈타인의 GTR이 뉴턴의 중력 이론에 비해서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해줄 수 있는 경험적인 증거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경우 아인슈타인 이론과 뉴턴 이론은 동일한 경험적 예측력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이론을 구분할 수 있는 경험적 증거들은 존재한다.

  

   태양 주변을 도는 수성의 운동은 정확한 타원궤도 운동이 아니었다. 1회 회전을 끝내고 돌아온 지점이 원래의 출발점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뉴턴의 이론은 이러한 수성의 근일점 운동의 상당부분을 설명할 수 있었으나, 이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뉴턴 이론과 실제 관측의 차이는 100년 당 43호초였다. 그런데 1915년에 일반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이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을 통해 정확히 43호초의 차이를 예측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은 태양 주변에서 빛이 1.75호초 휘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 예측은 1919년의 일식을 계기로 영국 탐사대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GTR은 정확도에서만 뉴턴의 이론을 앞선 것이 아니었다. GTR은 회전하는 블랙홀, 중력 렌즈, 중력파 등 새로운 현상의 존재를 가정하고 입증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주가 실제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물론 GTR이 절대적으로 참인 이론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먼 훗날 이 이론이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더라도 중력 효과가 시공간 기하의 발현(manifestation)이라는 이 이론의 핵심적인 통찰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20.6. 중력장 방정식

   실제로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장방정식은 매우 복잡하며, 미분기하학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방정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양들은 특정한 기준좌표계에 대해 독립적이다. 텐서 형식으로 쓰면 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G=8πT. 아인슈타인 텐서 G는 계량 형식으로 시공간 곡률을 기술한다. 변형력-에너지 텐서 T는 동일한 시공간 영역의 질량-에너지 및 운동량의 밀도, 압력, 분포를 기술한다. 간결하게 표현하면, [시공간 곡률]=8π[질량-에너지 및 운동량 밀도]이다.

  

   이 방정식을 통해 시공간의 내재적 기하학과 시공간의 질량-에너지 분포 사이에는 법칙적인 관계가 맺어진다. 물리학자들은 대개 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기 위해 이를 매우 단순화하는 가정들을 사용한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시공간 곡률과 물질 분포 사이의 체계적 관계를 제시해준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음을 기술하는 것은 아니다. 인과적 관계 문제에 있어서 GTR은 중립적 혹은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7. 상대론적 우주론

   우주의 실제 기하학 문제로 들어가면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 자체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된다. 우주의 물질 분포와 시공간 구조는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일한 물질 분포가 서로 다른 곡률과 위상을 가진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특정한 경계 조건들(우주의 유한함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어떤 경계 조건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시공간의 기하가 달라진다. 물질 분포와 시공간 기하가 아인슈타인 중력장 방정식과 합치하는 가능한 우주를 GTR의 모형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모형들의 수는 원리적으로 볼 때 무한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이러한 모형들 중에서 우리 우주와 가장 잘 들어맞는 모형이 무엇인지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블랙홀>

  

   1916년에 슈바르츠쉴트(Schwarzschild)는 구형 별 주변의 시공간 휘어짐을 모형화하고자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이용했다. 풀이 결과, 질량의 집중이 임계치를 넘을 경우 시공간의 변형이 극심해져 빛조차도 이를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질량의 집중을 다름 아닌 블랙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1930년에 찬드라세카(Chandrasekhar)는 특정 질량 이상을 갖는 별이 핵연료를 소진한 이후 블랙홀로 붕괴될 것임을 보였다.

  

   블랙홀 안으로 들어간 물질은 어떻게 될까? 어느 시점에서는 더 이상 압축되지 않게 될까 아니면 특이점이 생성될 때까지 계속 붕괴할까? 1964년에 펜로즈(Penroze)가 특이점 정리를 발표한 이후, 물리학자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물질은 우주로부터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간의 형태>

  

   상대론적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균일하고(homogeneous) 등방적(isotropic)이라고 가정한다. 이를 우주론적 원리라고 부른다. 수백 또는 수천 광년의 크기 기준으로 보면 물질 분포는 통계적으로 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배경복사 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온도는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우주론적 원리의 균일성, 등방성을 지지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우주원리가 옳다면 물질 분포는 균일하며 시공간은 일정한 평균 곡률을 가져야 한다. 이 일정한 곡률은 양수, 음수 또는 0 중에 하나이며 다른 선택지는 없다.

  

   아인슈타인이 중력장 방정식을 도출했던 당시에는 우주가 정적일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중력장 방정식에 따르면 중력 효과 때문에 전체적으로 우주가 수축되어야 했으므로,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끌어당김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반발력의 근원이 되는 하나의 상수인 우주상수를 방정식에 추가했다. 그 결과 도출된 아인슈타인의 1917년 논문에서 그는 우주가 균일하게 양의 곡률을 갖고 있으며 닫혀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우주론 모형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우주상수 Λ는 임시방편적인 성격이 강했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반발력의 세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진다는 비표준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벨기에의 르메트르, 러시아의 프리드만은 GTR 방정식에 대한 비정적인 해를 발견했다. 이 모형들 중 일부는 우주가 팽창한다고 보았고, 일부는 우주가 수축한다고 보았다. 또한 르메르트는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우주 모형 역시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임을 보일 수 있었다. 1929년에 천문학자 허블은 먼 은하들의 적색편이 현상을 근거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팽창 모형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중력장 방정식에 우주상수를 추가했던 것을 아주 큰 실수라고 인정했다.

  

   1930년대 말이 되면 상대론적 우주론은 안정화 단계에 이른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팽창하는 우주를 받아들이고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들은 우주의 나이, 팽창 속도, 우주의 곡률, 우주의 열림 혹은 닫힘 여부 등과 같은 문제들을 탐구했다. 만약 우주의 밀도가 임계치 Ω를 넘으면 다시 수축할 것이었고, Ω보다 작으면 끝없이 팽창할 것이었다. 그런데 우주의 발광물질 질량을 추정한 결과, 이 질량이 임계밀도의 1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우주 모형들로는 닫힌 프리드만 모형, 열린 프리드만 모형, 아인슈타인-드지터 모형이 있었다. 닫힌 프리드만 모형에서는 양의 시공간 곡률을, 열린 프리드만 모형에서는 음의 시공간 곡률을 갖는다. 아인슈타인-드지터 모형은 편평하고 열린 시공간을 주장하며 이 모형에서 우주의 팽창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진다. 르메르트 모형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진다고 본다.

  

   <암흑 물질>

  

   2001년에 발진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에 의해 획득된 우주배경복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주의 평균 곡률은 양 또는 음이 아닌 0임이 2006년에 밝혀졌다. 이는 Ω=1임을 의미했다. Ω=1은 이른바 인플레이션 모형과 들어맞는다. 이 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아주 작아 균일한 영역에서부터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팽창했기 때문에, 에너지는 우주 전체에 매끄럽고 균일하게 퍼져 있으며 우주의 곡률 역시도 0에 가깝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별, 은하계, 가스구름 등 관찰가능한 발광물질들의 에너지 밀도만 따질 경우 Ω의 값은 1이 아니라 0.005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점에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암흑의 물질 또는 에너지를 상정할 필요가 생긴다.

  

   암흑 물질의 존재는 은하성단에 대한 프리츠 즈위키의 1933년 연구를 통해 이미 드러난 바 있었다. 개별 은하들의 도플러 효과를 측정한 즈위키는 성단이 가시적인 별들의 질량보다 훨씬 더 많은 질량을 가져야 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시적인 별들은 전체 질량의 10퍼센트만을 갖고 있었다. 암흑 물질의 존재는 1975년 경 회전하는 은하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본격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 밀집된 질량 주변을 회전하는 천체의 경우, 중심의 질량이 클수록 빨리 회전하고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회전 속도가 느려진다. 그런데 은하계의 바깥쪽에 있는 별들의 회전 속도가 중심에 있는 별들의 회전 속도가 비슷한 것이 알려졌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은하계 중심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구형의 층을 이루고 있다고 추측하게 되었다. 우리 은하계의 질량 90퍼센트 정도가 암흑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암흑 물질의 층은 은하계 중심으로부터 50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은하계 이외의 다른 나선형 은하계도 우리 은하계와 비슷한 비율로 암흑 물질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크기가 큰 타원 은하계도 상당한 양의 암흑 물질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제 두 가지의 물음이 제기된다. 첫째, 암흑 물질은 무엇인가? 이것의 본성과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둘째, 우주의 기하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암흑 물질이 있는가? 첫째 물음에 대해, 암흑 물질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중입자 물질(baryonic matter) 중에서 발광하지 않는 물질이라 할 수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 물질을 MACHOS (Massive Compact Halo Objects)라고 부른다. 그런데 MACHOS가 우주의 모든 질량-에너지의 5퍼센트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론가들은 중입자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차가운 암흑 물질(Cold Dark Matter)이 나머지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본다.

  

   <암흑 에너지>

  

   이제 두 번째의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WMAP의 우주배경복사 측정 결과에 따르면, CDM은 임계 질량의 22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며 일반적인 물질은 4퍼센트만 차지할 뿐이다. 그러면 나머지 74퍼센트는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거리에 있는 은하계들을 천문학적으로 관측하면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우주의 팽창 속도가 일정했는지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선 우리가 관측하는 은하계들이 우리로부터 정확히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은하계에 있는 IA 유형의 초신성은 그 밝기가 매우 밝고 늘 동일한 밝기를 유지하기 때문에, 해당 은하계가 우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관측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동일한 세기를 보여야 할 IA 유형의 초신성의 경우, 멀리 있는 은하계일수록 그 세기가 규칙적으로 흐려졌다. 이는 우주의 팽창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우주 팽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면, 이러한 가속도의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반발력 또는 반중력적인 효과는 모든 공간에 균일하게 퍼져야 하며, 공간이 팽창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이 줄어들지 않아야 했다. 이 지점에서 천문학자들은 다시금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 Λ를 떠올렸다. Λ는 아인슈타인의 실수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선견지명이었다는 견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압력은 계의 총 에너지 밀도를 구성하는 성분들 중 하나이다. 압력 중에서 음의 압력은 내적 긴장의 형태, 즉 반발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상수는 시공간의 결에 부드럽게 퍼져 있는 긴장으로서 중력에 대한 반발력이며, 따라서 우주 전체의 질량-에너지 총량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주상수의 반발력은 임계 밀도의 74퍼센트를 충분히 채운다. 따라서 암흑 에너지는 우주의 편평함뿐만 아니라 우주의 팽창 가속도 역시 설명할 수 있다.

  

   4퍼센트의 중입자 물질, 22퍼센트의 CDM, 74퍼센트의 암흑 에너지로 우주가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모형이 빅뱅 우주론의 조화(concordance) 모형이다. 그리고 이 모형이 오늘날의 우주론에 있어 표준 모형이다. 이 표준 모형의 문제점은 이 모형의 기반이 되는 이론이나 관측 자료가 튼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암흑 에너지를 양자이론과 조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양자역학의 진공에너지는 요구되는 에너지보다 10120제곱 배나 더 크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물리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중력 이론인 GTR이 폐기되거나 수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로 나선은하의 회전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밀그롬(Milgrom)1983년에 수정된 뉴턴 동역학(Modified Newtonian Dynamics, MOND)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서는 물체의 가속도가 기준치를 넘을 때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물체의 가속도가 기준치를 넘지 않으면 중력은 거리에 반비례한다. 실제로 MOND에서는 질량 중심에서의 거리와 무관하게 물체들의 속력이 일정해진다는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만약 MOND가 기술하는 것과 같이 중력이 작동한다면 굳이 암흑 물질을 도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2004년 경이 되면 수정된 뉴턴 동역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다. 베켄슈타인은 상대론적인 판본인 TeVeS(Tensor-Vector-Scalar) 중력 이론을 제시했고, 이 이론은 은하성단에서 비롯된 렌즈 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모펫의 MOG(Modified Gravity) 이론 역시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은하의 회전 궤적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된 중력 이론들 역시 GTR이 설명할 수 있었던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인 2008년에 제시된 제안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국소적인 물질 밀도가 비전형적으로 낮은 우주 진공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고 가정할 경우, 굳이 팽창의 가속을 가정하지 않아도 관측 증거들을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가 300년 동안 유지해 온 코페르니쿠스의 원리, 즉 우주에서의 우리의 위치가 특별하지 않다는 원리가 위배되고, 지구에서의 국소적인 측정이 전 우주에 적용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생긴다.

  

   <위상학적 주제들>

  

   앞서 살펴본 우주론적 모형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 모형들의 시공간이 모두 평면처럼 단순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중력장 방정식은 시공간의 연결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므로, 우리 우주가 다중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중 연결 우주의 가장 단순한 경우에 대해서 살펴보자. 다중 연결 우주는 아주 작은 영역만이 실재하는 우주다. 다른 영역들은 다중 연결된 시공간 다양체를 통해 통과한 실제 우주의 유령 상(ghost image)들로 채워져 있다.

  

   만약 다중 연결 우주가 옳다면, 우리는 정밀한 망원경을 통해 다중 연결된 시공간 다양체에서 오는 우리 태양계의 과거를 담은 유령 상을 관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군의 학자들은 다중 연결된 우주의 흔적들을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주의 위상적인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사실 다중 연결 우주 개념은 1900년 경에 슈바르츠쉴트가 이미 제시한 바 있었다. 그는 겉보기에 우주가 무한하게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유한한 육면체 안에 우주가 있으며, 공간이 다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이동하면 다시 공간의 반대편으로 이동하게 되는 가능성을 생각했다. 동일한 우주가 무한히 계속 반복되는 세계, 그러나 이러한 반복은 일종의 허상(illusion)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고 슈바르츠쉴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