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18: 특수 상대성

강형구 2016. 4. 2. 05:23

 

18: 특수 상대성

(Special relativity)

 

18.1. 시간, 공간, 아인슈타인

   이제는 좀 더 최근의 과학적 발전이 시간과 공간에 관련하여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시세계에 관한 가장 성공적인 이론인 양자역학과 거시세계에 대한 성공적인 이론인 상대성이론은 아직까지 서로 조화되지 못했다. 또한 상대성과 양자이론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최근 발전을 탐구하는 것은 시공간에 대해 살펴보는 우리에게 잠정적으로나마 최상의 지침을 줄 것이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는 거시세계에 관한 이론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표준적인 해석에 따르면 특수 상대성이론은 다음과 같은 함축들을 갖는다.

  

   ① 쌍둥이 중 한 명은 지구에 남아 있고 다른 한 명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멀리 여행을 갔다 올 경우, 지구에 남아 있던 A는 여행을 다녀온 B에 비해 더 나이를 먹어 있다.

   ② 시간과 공간은 상호 독립적이지 않고 아인슈타인(민코프스키) 시공간으로 통합된다. 시공간은 서로 다른 기준틀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 간격 및 공간 간격으로 분해될 수 있다.

   ③ 두 사건의 동시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어떤 기준틀에서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시간의 본성에 대해서 의미 있는 함축을 갖는다. 이러한 함축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고, 이번 장에서는 특수 상대성이론의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18.2. 광속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은 다음과 같은 2개의 단순한 원리들을 토대로 구성된다.

  

   ① 상대성 공준: 자연의 법칙들은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하므로, 어떤 실험으로도 관성계가 정지하고 있는지 등속운동 하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빛 공준: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인 c는 상수이며, 이는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하게 관측된다.

  

   상대성 공준은 앞서 살펴본 갈릴레이 등가성에 대한 좀 더 강력한 공식화이다. 이 공준은 절대속도의 측정이 불가능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19세기의 전자기학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60년대에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은 관측 가능한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4개의 방정식을 발표했다. 그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결합하여 전자기파가 생성됨을 증명했는데, 이 파의 속도는 실험에 의해 측정된 빛의 속도와 일치했다. 만약 빛이 파동이라면 빛의 매개체가 있어야 했다. 빛은 물, 유리 같은 물질 뿐만 아니라 텅 빈 우주공간 역시 통과했으므로, 빛의 매질은 눈에 보이지 않게 공간 및 모든 물질들에 퍼져 있는 무엇인가로 생각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매질을 에테르(aether)라고 불렀다.

  

   빛의 매질인 에테르가 추정된 이후, 에테르의 특성을 연구하는 에테르 물리학이 등장했다. 에테르는 다른 물체들에게 마찰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다른 물체들로부터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강체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에테르의 운동 상태는 절대적인 정지 상태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에테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절대운동을 탐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만약 빛이 전자기파라면 전자기파의 속도는 매질에 따라서는 달라지지만 해당하는 파의 근원이 움직이는 것과는 무관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빛의 매질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다면 빛의 속도는 진공에서와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빛의 매질에서 운동하고 있고 빛 또한 우리와 동일한 방향으로 운동한다면, 빛의 속도는 c보다 더 느리게 측정될 것이다.

  

   1881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앨버트 마이컬슨은 지구가 태양 주변을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빛이 서로 직각인 경로를 통해서 움직이면 두 움직임의 속도 및 위상의 차이가 발생하여 간섭무늬가 생성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험을 정밀하게 되풀이해도 빛의 속도 차이는 탐지되지가 않았다. , 빛의 속도는 관측계에의 운동 상태와는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것이다.

 

18.3. 보정(compensation)인가 혁명인가?

   빛의 이와 같은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피츠제럴드와 로렌츠는 보정 이론을 제시했다. 보정 이론에 따르면, 어떤 계가 빛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실제로 빛의 속도는 느려지지만, 해당 계의 측정 기구도 줄어들고 시계도 느려지기 때문에 그러한 속도의 변화를 측정할 수 없게 된다. 로렌츠는 측정 기구와 시계의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정확한 공식들을 제시했다.

  

   로렌츠와 피츠제럴드의 이론에서 빛의 속도는 달라지지만 자연은 관측자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도록 감춘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로렌츠피츠제럴드 이론에서와 동일한 변환식을 사용했지만 에테르 및 절대운동 개념을 거부함으로써 모든 관성계를 동등하게 만들고 자연을 더 단순하게 보았다. 상대적으로 등속운동 하는 AB가 있다고 하자. AB를 볼 때, B의 시계는 느려지고 B의 측정도구 길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A에서와 마찬가지로 B에서도 빛의 속도는 동일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B 역시 A를 보며 정확하게 동일하게 판단한다. , 두 계는 완벽하게 서로 동등하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뉴턴의 절대 시공간을 폐기한 대신 빛의 속도라는 새로운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양을 도입했다. 이 불변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은 체계적으로 변화해야 했고, 이 변화를 기술하는 것이 로렌츠 변환식이었다.

  

   시간이 지연되고 길이가 수축하는 상대론적인 효과는 물체의 운동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경우에만 드러난다. 그래서 일상적인 경우에는 이를 잘 실감할 수 없다. 그러나 대기 속의 뮤온이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대기권을 통과해 지구 표면에 도착하는 현상 및 정밀한 원자시계를 통한 실험 등은 특수 상대성이론적인 효과가 실제로 발생함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물체의 속도가 커질수록 물체의 관성질량 역시 커져서, 물체를 빛의 속도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에너지가 필요함을 보였다. 이는 물체가 결코 빛의 속도에 다다를 수 없음을 의미했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면 지구에서 볼 때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데 수백 만 년이 필요한 거리도 물체 입장에서는 수십 년 만에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를 빛의 속도로 끌어올리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문제가 된다.

 

18.4. 동시성

   이제 시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의의를 갖는 동시성의 상대성에 대해 검토해보자. 우리는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제시된 아인슈타인 자신의 추론을 따라가 보겠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어떻게 동시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는지의 물음을 제기했다.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점 X, Y가 있고 우리는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고 하자. 만약 우리가 X, Y 사이의 중간점에 있고, XY에서 출발한 두 불빛이 우리에게 동시에 도착한다면, 우리는 두 불빛이 일어난 사건이 XY에서 동시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여기서 불빛은 일종의 신호다. 신호를 통해서만 동시성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두 점에 놓여 있는 시계들을 동기화시킬 수도 있다. 두 점의 정 가운데에서 빛을 사용해서 시계들을 동기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두 점에서의 시계들을 동기화시키면, 그 점들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점들의 시계도 동기화시킬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보여주었던 것은, 이렇게 동기화되었던 점들 중에서 특정한 점이 등속도로 움직일 경우, 움직이는 점의 계와 정지해 있는 점의 계 사이에서 동시성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A는 기차선로 밖에 있고 O는 기차 안의 중앙에 있다고 하자.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AO의 위치는 동일하다. 그런데 기차 양 끝에서 불빛이 번쩍하자마자 기차는 0.6c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A에게는 양 끝에서 출발한 불빛이 동시에 도착하므로 A는 두 사건이 동시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반면 O는 기차가 움직이는 방향에서 오는 불빛이 뒤에서 보는 불빛보다 더 일찍 도착하는 것으로 관측하기 때문에, 앞의 불빛이 뒤의 불빛보다 먼저 발생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상대성 공준에 의해 모든 관성계들은 서로 동등하므로, 위의 상황에서 AO는 둘 다 동등하게 옳은 판단을 하고 있다. , 어떤 두 사건이 동시적 혹은 비동시적인지에 대한 판단이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할 수는 없다. 동시성은 각각의 관성계에 상대화된다.

  

   동시성의 상대성에서 광속 불변의 공준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빛의 속도는 빛 근원의 운동 상태와는 무관하게 동일하다는 전제를 이용해서 동시성이 상대적이라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빛의 속도가 빛 근원의 운동 상태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한다면, 서로 상대적으로 등속 운동하는 두 좌표계에서 사건들이 갖는 동시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수 상대성이론의 영역에서 동시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기준틀 상대적이다. 따라서 어떤 두 사건이 실제로 동시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물음은 의미가 없어진다.

 

18.5. 민코프스키 시공간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는 1908년의 강의에서, 실험물리학의 토대 위에서 별개의 시간과 공간이 아닌 시공간의 통합체가 독립적인 실재성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특수 상대성이론에서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양이 아니며, 다른 양으로 절대적인 양이 대체된다.

  

   뉴턴 시공간에서는 두 점 사이의 시간과 공간 간격이 관측계에 관계없이 불변한다. 뿐만 아니라 뉴턴 시공간은 아핀 구조를 갖는데, 어떤 선이 갖는 곡률도 관측계에 관계없이 같다. 뉴턴 시공간에서는 절대 정지와 절대 운동이 잘 정의되며, 등속 운동과 가속 운동도 구분된다. 신 뉴턴적 시공간에서는 아핀 구조 및 등속 운동과 가속 운동의 구별이 유지된다.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 사이의 거리 간격이 유지되고, 동시적이지 않은 사건들은 불변하는 시간 간격에 의해 분리된다. 신 뉴턴적 시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에서 점들 사이의 거리 간격이 소멸되므로, 절대 정지와 절대 운동이 구분되지 않는다. 신 뉴턴적 시공간에서는 절대 속도가 정의되지 않으므로, 빛의 속도가 일정함을 주장하는 상대론적 시공간은 신 뉴턴적 시공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코프스키는 진공에서 빛 줄기가 그리는 경로를 따라 시공간을 구성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에테르가 폐기된 이후에는 오직 시공간만이 빛의 경로를 제약하거나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민코프스키 시공간의 불변하는 측면을 빛 원뿔 구조라고 부른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는 빛의 속도 뿐만 아니라 시공간 간격도 불변량이다. 시공간 간격은 시간과 공간의 혼합체로, I2=d2-c2t2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d는 사건들 사이의 공간 간격이며 t는 시간 간격이고 c는 빛의 속도다. 기준틀에 따라서 관찰자들의 공간 간격과 시간 간격이 달라지지만, 시공간 간격은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하게 유지된다.

  

   하나의 빛 근원에서 빛이 방출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빛은 구형으로 공간에 퍼질 것이며, 그 구는 시간에 따라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편의상 공간을 2차원으로 간주하면, 시간 축을 따라 시각 t를 기준으로 점점 작아졌다가 커지는 일련의 원들을 상정할 수 있는데, 이를 연결하여 빛 원뿔이라고 한다. 빛 원뿔의 주요한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① 원뿔 표면에 있는 점들은 진공에서 움직이는 빛줄기들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빛처럼연결되어 있다고 부른다. 이러한 점 사건들 사이의 시공간 간격은 0이다.

   ② 빛 원뿔 바깥에 있는 영역을 절대적인 다른 영역(elsewhere)”이라 부르며, 이 영역에 있는 점들은 빛보다 빠른 신호를 통해서만 연결된다. 이 점 사건들은 공간처럼 분리되어 있다고 부른다. 점 사건들 사이의 시공간 간격은 양이다.

   ③ 빛 원뿔 안에 있는 영역을 절대적 과거 혹은 절대적 미래라고 부른다. 이 영역 안에 있는 점 사건들은 빛보다 느린 신호로도 연결될 수 있으며, “시간처럼연결되어 있다고 부른다. 점 사건들 사이의 시공간 간격은 음이다.

   ④ 공간처럼 분리된 사건들에는, 이 사건들이 동시적이게끔 해서 오직 사건들의 공간 좌표만 서로 다르게 만들어주는 관성계가 적어도 하나 존재한다.

   ⑤ 시간처럼 연결된 사건들에는, 이 사건들이 동일한 공간 좌표를 가지게 하고 오직 발생한 시각만 다르게 만들어주는 관성계가 적어도 하나 존재한다.

   ⑥ 그 어떤 물리적 영향력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고 가정하면, 시간처럼 연결된 사건들은 인과적으로 관련될 수 있지만 공간처럼 분리된 사건들 사이에는 인과적인 관련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민코프스키 시공간은 우주의 인과 구조를 구현한다고 할 수 있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만 동시성을 상대화한다. 동시성의 상대화는 공간처럼 분리된 사건들 사이에만 적용된다. 시간처럼 연결된 사건들은 모든 관성계에서 비동시적이다. 원뿔 내부에 있는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는, 비록 시간적 간격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좌표계에서 동일하다.

  

   원점 O를 기준으로 해서 빛 원뿔 바깥 영역을 나누는 평면들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 평면들을 동시성 초평면이라고 부른다. 동일한 초평면에 속한 점들은 특정한 관성계에 대해 서로 동시적이다. 이러한 초평면들의 수는 무수히 많기 때문에, 원뿔 바깥의 임의의 두 점을 잡아도 두 점을 동시적으로 만들어 주는 초평면 및 이에 대한 관성계가 존재한다.

  

   빛 원뿔 도식은 원뿔 밖 영역이 원뿔 안 영역과 대등한 크기를 갖는 것처럼 보이게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빛 원뿔 바깥에 있어서 시간 순서가 상대화될 수 있는 사건 점들이 원뿔 내부의 점들에 비해 얼마나 많은지는 해당 시공간의 나이, 형태, 크기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경우에는 상당한 양의 점 사건들이 원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위치해서 고정된 시간 순서를 가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동시성의 상대성은 아주 미미한 효과만을 미칠 뿐이다. 일반적인 크기의 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사이에서 미결정성(동시성의 상대성)의 크기는 수백 만 분의 1초 정도이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공간 사이에서는 수천 분의 1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체의 형태나 지속 시간은 더 이상 불변하는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기준계에 상대적인 속성이 된다. 그렇다고 이러한 상대화가 단순한 광학적 효과로서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거나 형태가 변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쌍둥이 우주비행사는 더 젊은 상태로 돌아오고 우주선은 변화된 형태로 공간의 영역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