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17: 제논과 연속체(2)

강형구 2016. 4. 1. 05:51

 

17: 제논과 연속체(2)

(Zeno and the continuum )

 

17.1. 날아가는 화살의 문제

   날아가는 화살을 생각해보자. 날아가는 순간순간마다 화살은 정지해 있다. 순간은 지속하지 않으므로 순간들의 합 역시 지속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날아가는 화살의 비행은 이러한 순간들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날아가는 화살의 비행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제논이 제시한 이른바 화살 운동의 역설이다. 화살의 역설은 시간과 공간이 이산적(discrete)이 아니라 연속적(continuous)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 대한 위협이 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날아가는 화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t 근방의 시간 및 위치를 통한 운동 설명>

  

   이 물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다. 시각 t에서 어떤 물체가 운동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t 근처의 순간에서 해당 물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의존한다. 만약 t 근처의 시각 t1t2에서 위치의 이동이 있다면 t에서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때, t1<t<t2) t1t2t와 무한히 가깝게 하면 t에서의 물체의 속도와 가속도를 미적분학을 사용하여 구할 수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시대 이후, 물리학과 응용수학에서는 시간에 대한 위치의 변화의 1차 미분계수로 물체의 속도를, 2차 미분계수로 물체의 가속도를 구하고 있다.

 

17.2. 내재적 속성으로서의 속도

   위 이론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시각 t에 물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순수하게 물체에 내재적인 속성이다. , 속도는 다른 시각에 그 물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와 관련이 없는 물체의 고유한 속성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생각해보자. 돌덩어리 R1은 지구로부터 달을 향해 점점 속도를 증가시키며 날아가고 있다. 반면 R1과 크기가 같은 R2는 지구 반대편의 달 표면 위에 놓여있다. R1이 달과 충돌하기 직전 순간만 보면 R1R2는 서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 R1은 운동하고 있고 R2는 멈춰서 있으므로, 둘 사이에는 내재적인 차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에 대해, 물체의 속도는 기준틀 상대적임을 주장하며 반박할 수 있다. 어떤 물체는 기준틀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고 정지하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운동에 내재적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체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미적분학으로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툴리(Tooley)는 역장(force field)의 중심으로부터 무리수 길이에 위치할 때는 사라지지만 유리수 길이에 위치할 때는 존재하게 되는 물체에 관한 가상적인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적분학 지지자들은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의 직관으로 볼 때는 여전히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른트체니우스(Arntzenius)는 다른 반론을 제시했다. 공간의 동일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개의 구체가 있는데, 하나는 좌측으로 움직이고 하나는 우측으로 움직인다. 해당 영역에 위치하는 그 순간만 보면 두 구체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두 구체의 운동 방향은 분명 다르다.

  

   엄격하게 말해, 고전물리학에서는 순간 속도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고전물리학에서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순간 속도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연장된 계의 위상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미래를 유발하는 과거의 모든 영향들이 현재에 반영되지 못한다. 이는 라플라스가 제시한 결정론적 관점과는 양립불가능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라플라스는 특정 시각 t에서 전지전능한 지성이 세계의 모든 힘과 모든 사물들의 위치를 알 경우, 이 지성에게 세계의 미래는 세계의 과거만큼이나 확실할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속도가 움직이는 물체의 순간적 상태에 내재적이지 않다면, 라플라스 식의 결정론은 유지되지 못한다. 그러나 속도의 본성 그 자체가 고전적 우주에서의 결정론을 배제한다는 결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다면, 미적분학을 기반으로 한 운동 설명은 운동에 대한 충분조건이 아닌 것 아닐까? 운동에는 시간에 따른 위치의 변화 이외의 또 다른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중세의 학자들은 움직이는 물체의 추동력으로 임페투스를 상정했는데, 근래의 학자들 역시 이와 비슷한 개념을 고안하고 있다. 로우에(Lowe)는 순간 속도를 물체가 갖는 방향 있는 경향성이라고 보았고, 툴리는 순간 속도가 질량 또는 전하량처럼 물질적 사물의 원초적 속성이라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원초적 속성을 도입하는 것은 기존의 미적분학 기반 운동이론과 동일한 경험적 귀결들을 갖게 되기 때문에, 오컴의 면도날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그 개념의 정의상 속도라는 속성에 우리에게 알려질 수 없는(inscrutable) 측면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17.3. 움직이는 행의 역설(“경기장(Stadium)” 역설)

   제논의 운동 역설 중 마지막 역설은 이른바 움직이는 행의 역설이다. 세계의 칸으로 구성된 세 개의 행이 있다. A는 가장 위에서 정지해 있다. BA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CB 아래에서 왼쪽으로 움직인다. 단계1에서 세 개의 행은 엇물려 있으나, 단계2에서 세 개의 행은 서로 정확하게 포개진다. 제논은 단계1에서 C1A2, B3과 일렬로 늘어섰다가 단계2에서는 A1, B1과 일렬로 늘어서는 것에 주목한다. C1은 같은 시간 동안 A의 입장에서 A2A1을 거쳤지만, B의 입장에서는 B3B1을 거쳤기 때문이다. 제논은 이 같은 상황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CA에 대한 상대속도와 B에 대한 상대속도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이를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설을 통해 제논은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이 아닌 이산성을 논박하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제논은 시간과 공간은 무한히 분할가능하지 않고 일정한 원자 단위를 갖는다고 보는 관점을 비판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관점에서 앞선 상황이 왜 문제가 되는지 다시 살펴보자. 단계별로 분할 불가능한 단위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보자. C1A2A1을 지나친 반면, B3B1을 지나쳤으므로 중간의 B2는 건너뛰게 된 셈이다. 만약 이런 결론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단계1과 단계2 사이에 또 다른 순간이 있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 시간은 이산적이지 않다.

  

   이에 대해, 시공간의 이산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C1B2를 지나치지 않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반직관적이기는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위슬리 새먼의 경우, 공간이 이산적이라면 그러한 종류의 비직관적인 스쳐지나감이 일반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단위 시간당 2개의 공간 단위를 움직이거나, 단위 시간 2개 당 1개의 공간 단위를 움직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역시도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으며, 다양한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

  

   <타일 채우기의 문제>

  

   하지만 헤르만 바일은 그의 책 [수학과 과학의 철학]에서 공간의 이산성을 가정하면 역설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산적인 공간에서는 길이를 단위 공간을 통과한 숫자로 측정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가로 5칸 세로 5칸의 직각삼각형의 빗변 역시 5칸이기 때문에, 빗변의 길이는 밑변, 높이의 길이와 같아진다. 그런데 유클리드 평면에서의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르면 a2+b2=c2이므로 빗변의 길이가 더 길어야 하고, 따라서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단위 공간의 크기를 더 작게 만들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 벤데겜(Van Bendegem)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산적 공간에서 길이는 일정 정도의 두께를 가진다. 그래서 길이의 크기는 해당 길이 직사각형이 포함하는 단위 공간들의 수로 측정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빗변 직사각형이 포함하는 단위 공간들이 밑변이나 높이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 반 벤데겜이 제시한 해결책의 문제는 이것이 일반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다.

  

   피터 포레스트(Peter Forest)는 이산적 공간을 직사각형 또는 다른 종류의 정규적 형태의 타일들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대신 포레스트는 이산적 공간을 인접한 점들이 이루는 사슬 관계로 본떴다. 이 경우, 미시적 거리는 비유클리드적인 특성을 갖지만 거시적 규모에서는 유클리드 공간과 근사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산적 공간을 타일로 채워진 것처럼 표현하는 것의 또 다른 단점은 이 표현에서는 선호되는 특정한 방향(상하좌우)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클리드 공간은 등방성을 갖는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비주기적인 타일 채우기(펜로즈 타일 채우기와 같이)로 공간을 표상할 수 있다. 아니면 포레스트처럼 공간 원자를 특정한 형태를 가지 않는 것으로 보고, 미소적 차원에서는 비등방적이지만 거시 기하학적 극한에서는 등방성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

 

17.4. 우리의 시공간이 이산적일 수 있을까?

   시공간의 이산성은 표준적인 견해(연속체)와는 상반되기는 하지만, 제논이 제시한 이분법 역설과 다수성 역설을 잘 해결해준다는 장점을 갖는다. 또한 이산적 시공간은 칸토어의 연속체와는 달리 내재적인 계량 속성을 갖는다는 장점도 갖는다. 시공간 단위의 개수를 셈으로써 시간과 거리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공간의 이산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이산성이 오직 미시적 차원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에서는 세계의 사물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뉴턴 이론에서의 시공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의 시공간은 연속적이다. 양자역학에서도 각운동량이나 전하량 같은 물리량은 이산적이지만 시공간은 연속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양자중력이론의 몇몇 판본에서는 일반상대론의 연속적 시공간 대신 이산적 시공간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끈 이론은 여전히 연속적 시공간을 가정하고 있으므로, 어느쪽이 옳고 어느쪽이 그르다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7.5. 표준적 연속체의 근본적 문제들과 추가적인 수수께끼들

   시공간은 차원 없는 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점들이 실수와도 같이 비가산적인 연속체를 이룬다는 것이 표준적인 견해이다. 이 표준적 견해에 대해서 오랫동한 꾸준히 일부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해왔다.

  

   <조밀성과 연속성>

  

   차원 없는 이산적인 점들이 모인다고 해서 진정한 연속체가 구성될 수 있을까? 푸앵카레 역시 연속체는 구성원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밀접한 연관(connection)을 필요로 하는데, 서로 외적인 것들의 집합체는 이러한 연관을 갖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괴델, 바일, 브렌타노, 퍼스와 같은 학자들 역시 연속체 개념이 갖는 통합성, 결속력을 연속체의 수학적 정의가 만족시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연속체의 조밀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두 점 사이도 또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밀성이 연속체를 촘촘히 채워주기는 하지만 특정한 두 점을 긴밀하게 연결시켜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조밀성 개념으로는 우리의 감각 경험이 제공하는 통합된 공간, 통일된 연속체의 개념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다수성과 실체>

  

   제논의 다수성 역설은 다음과 같았다. 연장된 선 또는 부피가 어떻게 차원 없는 성분들의 합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비가산적인 무한 집합을 다룰 때에는 일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현대 측도 이론)을 사용해야 한다고 대응할 수 있다. 측도 이론을 사용하면 차원 없는 점들로 구성된 연속체에 0이 아닌 양의 측도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륀바움). 그러나 이러한 대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 있다. 그륀바움처럼 측도 이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해도 이는 오직 수학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물질 사물들이 차원 없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관점과 달리, 현대 물리학은 물질들이 기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닌 시공간이다. 만약 우리가 시공간에 대한 실체론적 관점을 견지한다면, 여전히 공간이 어떻게 차원 없는 점들로 구성되는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륀바움에 대한 비판 역시 유효하다. 반대로 시공간에 대한 관계론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연속체 문제에 대한 그륀바움의 수학적 해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시공간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유용한 허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분할과 접촉>

  

   0에서 1 사이의 실수 구간을 분할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 구간을 점 P로 똑같이 분할해서 그 결과 P1, P2로 분할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점 PP1, P2 가운데 어떤 부분에 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다. , PP1에도, P2에도 속할 수 있다. 또한, PP1 또는 P2에 속하게 되면 둘 중 하나는 닫힌구간이 되고 다른 하나는 열린구간이 되며 P1P2 사이의 정확한 대칭성 역시 깨지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시공간 연속체의 표준모형을 물리적 실재에 적용해도 문제는 발생한다. 직육면체의 공간을 평면 P로 나누었다고 생각하자. 나뉜 공간 P1P2 중 하나는 닫혀있고 하나는 열려있다. 그러나 과연 P1P2 사이에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표준적인 입장에 따르면 두 개의 물질적인 사물들은 결코 접촉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물의 겉면을 구성하는 층 사이에는, 연속체의 조밀성으로 인해서 항상 다른 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물이 충분히 가까워지면 겉면 층을 공유하게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상호침투 또는 겹침인 것이지, 이를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접촉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측도와 관계된 수수께끼들>

  

   측도의 역설 또는 타르스키-바나흐 역설은 다음과 같다. 구형의 공간을 여러 조각들로 나눈 후, 이 조각들을 재배열해서 두 개의 새로운 구를 만들었을 때, 새로 만들어진 구는 원래의 구와 정확하게 동일한 크기를 갖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칸토어의 연속체 이론에서 그 어떤 길이의 실수 구간도 직선, 평면, 공간과 동일한 기수의 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타르스키-바나흐 증명에서는 공간을 무한히 비가산적으로 잘게 나누지 않고 유한한 수로 나눔으로써, 그리고 이때 나누어진 공간이 무한하게 복잡해서 측정이 불가능하도록 만듦으로써 이러한 역설을 성립시켰다.

  

   연속체에 대한 표준적인 관점이 이렇듯 여러 가지의 문제점들을 갖고 있기에, 학자들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어떤 학자들은 좀 더 많은 점들을 추가시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다른 학자들은 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자 했다.

 

17.6. 더 많은 점들을 추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퍼스는 연속체가 칸토어가 제시한 실수의 기수 C보다 더 큰 기수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는 진정한 연속체는 최대로 많은 점들을 갖는다고 주장했고, 이를 절대 무한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런 많은 점들이 합쳐지면 점들은 개체성을 잃고 진정한 연속체를 구성하게 된다고 보았다. 퍼스는 진정한 연속체의 평면을 선분 L로 나누면, 선분 L로 나누어진 평면의 선분 부분이 자체적으로 분열해서 새로운 선을 만들고, 이에 따라 닫힌 평면 L1L2가 새롭게 생성된다고 보았다.

  

   1960년대에 비표준 해석학을 발전시킨 로빈슨은 19세기에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에 의해 불필요하다고 간주되었던 무한소의 개념을 부활시켰다. 여기서 무한소는 초실수선에서 실수들 사이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다. 맥로린과 밀러는 비표준해석학이 제논의 역설을 좀 더 직관적으로 해결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분법 역설에서 제논은 실수점 R*와 무한소점 I*를 통과해야 한다. 이 때 제논은 마지막 실수점 R*를 지나서 무한소의 영역에 들어간 후, 최종적으로 도착점에 도달하게 된다. 무한소 영역에서 제논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착점에 도달할 수 있고 이는 문제가 안 된다. 왜냐하면 무한소 영역에서의 운동은 결코 측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화살의 역설 역시 해결될 수 있다. 화살은 실수점 R*에서는 움직이지 않지만 무한소 영역에서는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로린과 밀러의 해결책에 대한 비판도 있다. 알퍼와 브릿저는 맥로린과 밀러가 유한한 단계라는 표현을 그릇되게 사용했다고 보았다. 그들이 사용한 개념 유한함은 실수 및 그 이상의 숫자들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유한하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알퍼와 브릿저가 보기에 맥로린과 밀러는 해결해야 하는 원래 문제를 다른 문제로 바꿔치기 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여전히 무한소의 영역에서 제논이 어떻게 도착점에 도달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맥로린과 밀러는 검증주의(verificationism)에 의존하고 있다. 이때 검증주의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첫째, 무한소 영역에서의 운동은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 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무한소 영역에서의 운동은 경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이 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실은 존재한다. 첫 번째 검증주의의 경우, 이는 세계에 존재론적인 미결정성을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검증주의에 대한 대안인 표준적인 견해가 존재하는 상황이므로, 존재론적 미결정성 도입은 과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불가피하게 존재론적 미결정성을 도입했던 양자역학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두 번째 검증주의의 경우, 존재론적인 미결정성을 도입하지는 않지만 무한소 영역에서 어떻게 사물의 운동을 설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게 된다.

 

17.7. 근본적인 요소로서의 연장 도입

   근본적인 차원에서 점들에 호소하지 않는 물리적 기하학을 고안하는 대안이 형이상학적으로 더 전망이 있을 수 있다. 퍼스가 제시한 대안에 따르면, 선은 아무리 잘게 잘라도 선으로 남고, 면은 아무리 잘게 잘라도 면으로 남는다고 볼 수 있다. , 아무리 잘게 잘라도 잘린 부분은 여전히 연장을 갖고 있게 되는 셈이다.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연장된 것을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도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본질적으로 연장된 연속체는 무한한 정도의 복잡성을 갖게 된다. 연속체의 그 어떤 부분도 분할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시공간에 대한 연속적 관점과 이산적 관점 모두에 대한 상대적인 강점을 갖는다. 우선, 이산적 관점에서는 분리된 공간 부분들을 통합시키는 별도의 기능이 필요하지만, 대안적인 관점에서는 부분들이 중첩되어 있거나 더 큰 부분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자체적으로 통합한다고 볼 수 있다. 최신의 용어로 말해, 연속체는 원자 없는 점토(gunk)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퍼스, 화이트헤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화이트헤드는 점성 공간에서 줄어드는 원을 통해 점을 정의함으로써 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고, 이러한 그의 관점을 후대의 학자들이 발전시켰다.

  

   하지만 점성 공간에 대해서도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우선, 점토 중에서도 다른 점토들에 비해 더 세밀하게 분할되는 형태의 점토인 -점토가 가정되어야 할 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점성 공간의 이론이 점 개념을 사용하는 기존의 물리 이론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점성을 띤 시공간 관점을 채택하면 제논이 제시한 다수성의 역설, 화살의 운동 역설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제논의 이분법 역설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점성 시공간에서도 공간은 무한히 분할가능하므로, 유한한 단계에서 제논이 도착점에 도달하는 것을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되고 있다.

  

   아직까지 모든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연속체 이론이 제시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다양한 방향으로의 탐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