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21: 시공간의 형이상학

강형구 2016. 4. 5. 06:49

 

21: 시공간의 형이상학

(Spacetime metaphysics)

 

21.1. 실체론적 시공간

   일반상대성이론(GTR)의 시공간에서 기하는 변동가능하며 물질적 사물들의 존재 여부 및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GTR의 시공간은 뉴턴 시공간처럼 절대적인 것은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GTR의 시공간은 실체론적일까 관계론적일까? 아인슈타인은 이 물음에 대해 실체론적 관점을 지지했다. 이에는 이유가 있었다. 편평한 공간 내에 비유클리드적인 구형 영역이 있을 경우, 이 영역에서의 물체의 움직임을 공간에 의한 것이 아닌 물체들 사이의 관계로 설명하고자 하면 설명이 매우 복잡해진다.

  

   또한 GTR에 따르면, 질량이 밀집된 두 물체가 상호 회전할 때 시공간 곡률의 변화로 인해 주변 공간에 중력파가 퍼진다. 그리고 이 중력파는 다른 물질 대상들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중력파의 영향을 중력파가 아닌 사물들 사이의 힘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매우 복잡해질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설명을 제시하는 이론은 GTR과는 다른 유형의 이론이 될 것이다. 또한, GTR에서는 물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비어 있는 공간 영역의 기하 변동을 사용한다. , 시공간 다양체 자체가 물체 운동 설명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 따라서 만약 시공간 다양체 없이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쌍 블랙홀이 상호 회전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중력 에너지는 절반은 중력파를 발생시키는 데 쓰이고 절반은 두 블랙홀의 회전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데 쓰인다. 만약 GTR의 시공간에 실체론적인 특성이 없다면 이와 같은 중력 에너지를 설명하는 일 역시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이렇듯 GTR의 시공간이 실체론적임을 지지하는 여러 근거들이 있다.

 

21.2. 마흐의 원리

   마흐는 관성력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뉴턴이 했던 것처럼 절대 공간을 전제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관성 현상이 사물들 사이의 관계만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GTR은 마흐의 원리를 만족시킬까? 만약 만족시킨다면 GTR의 시공간을 관계론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흐의 원리는 두 가지 판본으로 정리될 수 있다.

  

  약한 형태의 마흐 원리(WMP): 시공간의 관성 구조는 모든 시공간에서의 질량-에너지 분포에 의해서 유일하게 결정된다.

  

   ② 강한 형태의 마흐 원리(SMP): 시공간의 모든 기하학적 특성들은 모든 시공간에서의 질량-에너지 분포에 의해 유일하게 결정된다.

  

   그런데, 만약 GTR이 강한 형태의 마흐 원리를 만족시킨다고 해도 시공간이 실체적이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공간 구조가 질량-에너지 분포에 의존한다고 해서 시공간 구조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동일한 물질 분포가 서로 다른 시공간 구조와 양립가능하므로, GTR은 두 가지 형태의 마흐 원리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특수상대성이론(STR)에서는 관성 경로와 비관성 경로가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 물질과 독립적으로 구분되므로 마흐의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GTR은 강한 형태의 마흐 원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동일한 물질 분포가 서로 다른 위상을 가진 시공간 속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엘리스(Ellis)는 비균일적이고 비등방적인 시공간을 이용해도 관측 결과들과 양립가능한 GTR의 모형을 구성할 수 있음을 보였다.

  

   WMP(약한 형태의 마흐 원리)가 옳다면 두 개의 귀결이 뒤따른다. 첫째, 물질이 없는 우주에는 관성 구조도 없을 것이다. 둘째, 모든 물질들이 함께 회전한다고 가정한다면 아무런 효과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첫째 귀결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열린 GTR 우주에서는 물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공간 영역이 편평한 민코프스키 시공간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전혀 물질이 없는 우주 역시도 이러한 구조를 가질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민코프스키 시공간은 그 고유의 관성 구조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공간 곡률은 그 고유의 중력적인 자가 에너지를 가지므로, 아무런 물질 없이도 0이 아닌 곡률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둘째 귀결과 관련하여, 전체적인 회전을 가정하는 GTR 장방정식 풀이도 있다. 오즈밧(Oszvath)과 쉬킹(Schueking)의 장방정식 풀이에서는 공간적으로 닫혀 있고 균일하게 먼지로 가득 차 있는 회전하는 우주를 가정한다. 케르(Kerr)는 고립되어 회전하는 질량을, 괴델은 완벽한 유체로 가득차서 대칭적으로 회전하는 우주를 가정한다. 물론 마흐 원리를 가정하는 GTR 모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닫힌 프리드만 모형의 경우 관성 구조 및 계량 구조가 물질 분포에 의해서 유일하게 결정된다. 따라서 WMP를 만족한다. 프리드만 모형은 우리 우주를 잘 근사하는 모형이므로, 마흐의 입장이 완전히 포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GTR 그 자체의 비마흐적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그리고 프리드만 모형의 적용 영역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공간을 비실체적이고 관계론적인 것으로 보는 입장이 쉽게 지지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21.3. 구멍 논변

   GTR이 실체론과 부합한다고 보는 입장이 유망하기는 하지만, GTR의 형식론에는 실체론과 부합되지 않은 측면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른바 구멍 논변1913년 경 아인슈타인 자신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 연구자인 스테이철은 1980년대에 이 논변을 재발견해서 이 논변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주목하게 만들었다.

  

   GTR의 모형은 시공간 다양체 M, 계량 텐서 g, 변형력-에너지 텐서 T라는 성분을 갖는다. M은 특정한 위상적 속성을 갖는 점들의 집합이고, g는 점들 사이의 거리와 기하학적 관계를 구체화한다. T는 물질과 에너지 분포에 대한 근사적 표현이다. 만약 시공간이 실체라면 이 실체는 어떤 성분일까? M일까 M+g일까? 이어만(Earman)과 노튼(Norton)M만이 실체의 자격이 있다고 보아야 함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계량 텐서 g는 중력장을 통합하며, GTR에서 중력장은 에너지와 모멘텀을 갖기 때문에, 담는 용기(공간)라기보다는 담겨 있는 사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어만과 노튼은 단순한 다양체 M만을 시공간의 실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제 시공간이 점들의 다양체와 동일하다는 관점을 받아들이자. 이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GTR은 일반 공변성을 만족한다. , GTR에서 물리학의 법칙은 시공간의 점을 좌표화하는 기준계에 관계없이 동일하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공간 점들에 좌표를 부여할 수 있다. 일반 공변성은 시공간 이론이 가져야 하는 바람직한 특성이다. 일반 공변성을 만족시키는 GTR의 모형 [M, g, T]에 대해서는 미분동형사상을 적용할 수 있다. 미분동형사상이란 특정한 제약을 만족시키는 점들 사이의 치환이다. 미분동형사상 h를 적용한 새로운 모형 [M, h*g, h*T]은 원래의 모형과 관측적으로 동등하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미분동형사상은 다양체의 점들 위에 물질과 계량 장을 원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퍼트린다. 그리고 원래의 모형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미분동형사상을 적용할 수 있다.

  

   이제 이른바 구멍 미분동형사상을 생각해보자. 이 미분동형사상은 특정한 구형 영역에만 적용된다. 다른 영역에 있는 점들에는 이전과 동일한 물질들이 할당된다. 이전 모형과 이후 모형은 둘 다 구멍 밖의 계량 장과 물질 장에 대해서 합법적이므로, 여기서 일종의 미결정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미결정성 때문에, 구멍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완전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구멍 내부에서 무엇이 발생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전제는, 구멍 미분동형사상이 관측가능한 것들은 모두 결정적인 것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미분동형사상이 관측가능한 것들에 대한 결정가능성을 유지하므로, 이어만과 노튼이 보기에 이러한 미결정성은 물리학으로서의 GTR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형이상학이다. 만약 우리가 관측가능한 영역에서 두 우주가 동일하다면 두 우주는 물리적으로도(실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라이프니츠의 원리를 받아들이면, 미분동형사상으로부터 발생하는 미결정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다양체 실체론을 거부하고 라이프니츠 동등성을 받아들이면 미결정성은 제거된다.

 

21.4. 계량 본질주의

   표준적인 GTR 형식이론을 유지하면서도 구멍 논변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어만과 노튼은 GTR과 시공간 실체론을 동시에 견지하고자 하면 다양체 실체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 GTR의 구성 성분인 M, g, T 중에 오직 M만이 실체론적 시공간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동일한 시공간 점들에 서로 다른 계량 속성 및 질량-에너지가 부여될 수 있고, 구멍 논변에서의 미결정성이 발생한다. 이와 달리, 실체론적 시공간이 계량에 의해 구조화된 시공간 점들이라고 보는 관점을 계량 본질주의라고 한다.

  

   계량 본질주의에서는 시공간을 구체적인 시공간 조직을 갖고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계량 본질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구멍 논변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미결정성의 문제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 계량 본질주의에서는 우리의 시공간이 거시적 관점에서 4차원이지만, 점들의 집합이 시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점들로 구성된 다양체 M 위에 계량 장인 g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본다. 가속도, 관성 운동, 빛의 전파와 같은 물리적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다양체가 아니라 GTR 시공간의 계량 장이기 때문이다.

  

   이어만과 노튼은 계량 장이 에너지와 모멘텀을 가지기 때문에, 실체로서의 시공간에 계량 장을 포함시키게 되면 시공간과 시공간 안의 내용물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시공간이 그 고유의 인과적 힘을 갖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시공간의 실체로서의 성격은 더 분명해진다. 이어만과 노튼은 GTR에서의 계량이 물질과 에너지 분포에 영향을 받는 역동적인 것임을 지적하고, 상대론적 시공간의 본질적인 측면은 그것의 불변서이어야 하므로, 계량이 시공간의 본질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어만과 노튼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시공간의 위상적 속성들 역시 불변하지 않으므로 본질적인 측면이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단순한 점 실체론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GTR4차원적 틀에서는 점들이 시간 속에서 지속되지 않는 순간적인 존재들로 바뀌므로, 이러한 일시적인 존재인 점들이 갖는 본질적인 속성이 계량적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진다. 계량 본질주의를 받아들여서 점들이 점들 사이의 관계 및 물질적 과정들에 의해 개체화된다고 보면, 모든 관측적으로 동일한 체계는 물리적으로도 동일한 것이 된다. 계량 본질주의를 받아들이면, 점들이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에서 동일한 시공간에 물질적 대상들이 사라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분포할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계량 본질주의는 견지할 만한 실체론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입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시공간 점들은 다양체 실체론에서 갖고 있었던 존재론적 자율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뉴턴 역시도 일종의 계량 본질주의 관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공간은 서로 다른 물리적 기하를 가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기하학적 단일론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계량 본질주의에서는 자연스럽게 기하학적 다원론을 수용해야 하게 된다. 기하학적 다원론이란, 단일한 시공간이 동시에 서로 다른 기하를 가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21.5. 해묵은(시대착오적인) 논쟁인가?

   최근 리나시빅츠(Rynasiewicz)GTR에서 시공간이 특정한 물리적 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더 이상 실체론자와 관계론자 사이의 논쟁이 분명한 의미를 갖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 과학에서의 발전에 따라서 실체론-관계론 논쟁은 그 본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리나시빅츠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요약해보자.

  

   로렌츠의 에테르는 뉴턴 절대 공간의 후계자라고 볼 수 있다. 에테르가 뉴턴 절대 공간과 다른 점은 모든 점에서 전자기장이 특정한 값을 갖는다는 것이다. 에테르는 그 구조에 의해 관성 운동과 비관성 운동을 구분해준다. GTR의 시공간은 로렌츠의 에테르와 유사하다. 이 시공간이 더 이상 절대 정지의 상태에 있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시공간은 관성 운동과 비관성 운동을 구분해주고 물리적 속성들 역시 갖기 때문이다. 대신 더 이상 뉴턴과 데카르트의 시대처럼 공간과 물질이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고전적인 실체론-관계론 논쟁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고전적인 논쟁 구도를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문제에는 물리학자들 자신 역시 관여했다. 특히 GTR과 관련하여, 물리학자들은 GTR 시공간의 어떤 부분이 실체론적인 공간인지를, 어떤 부분이 뉴턴의 절대 공간과 대응하는지를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계량 장이 실체론적 공간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계량 장이 없는 공간은 상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기장이 없는 공간은 충분히 상상될 수 있다. 계량 장의 특성인 아핀 구조, 원뿔 구조, 공변 미분이 없다면 다른 종류의 장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기술할 수 없을 것이다.

  

   실체론-관계론 논쟁이 의미가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만약 GTR과 양자이론이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거시적 시공간 관계가 미시 개체들의 상호 관계의 산물임이 밝혀진다면, 이는 관계론을 입장하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1.6. GTR과 시간

   이제 시간의 본성에 대해서 GTR이 갖는 함축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GTR에서는 전체적인 관성계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국소적인 관성계만 존재한다. 동시성이 국소적으로 상대화되므로, GTR은 시간의 블록 이론과 양립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GTR은 시간의 역동적 이론과도 양립가능하다. 몇몇 GTR 모형에서의 다양체는 서로 겹치지 않는 여러 겹들로 온전히 분할될 수 있다. 이 겹들은 시간 같은 측지선과 수직이다. 이 겹들을 초평면이라 보면 이 겹들에 있는 모든 점들은 서로 동시적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건들에 우주 전체적인 시간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모형에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는 생성의 물결이 있다. 이 우주는 등방적이고 균일하며, 프리드만의 모형 역시 이러한 우주에 속한다.

  

   역동주의자, 역동적 현재주의자, 성장하는 블록 이론가 모두 GTR에 근거해야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우주에서 전 우주에 적용되는 동시성 평면을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 객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GTR에 대해 괴델이 제시한 모형을 살펴보자. 이 모형에는 전체적인 시간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갖는 시간 같은 경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경로들을 따라가다 보면 거의 동일한 시작점으로 되돌아온다. 이러한 경로들을 닫힌 시간 곡선, CTC(Closed Time-like Curves)라고 부른다. CTC 경로를 이동하면 원래 시작했던 시간과 장소로 돌아오게 되므로, 이는 일종의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CTC가 등장하는 모형의 물질 분포는 우리 우주의 물질 분포와는 상이하다. 그러나 인공적인 수단을 사용해서 CTC를 만들 수는 있다. 티플러에 따르면 아주 농도가 큰 물질로 채워진 원통을 빠르게 회전시키면 역방향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유한한 길이의 원통으로도 이러한 시간여행이 가능할 지는 확실치 않으므로, 티플러의 시간여행 기계를 실제로는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괴델 본인은 CTC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만으로도 블록 이론 관점을 지지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실제 우리 우주에서 절대적인 시간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CTC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절대적 시간 자체가 물질과 운동이 세계에 배열되어 있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역동주의자는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괴델 우주 모형과 같은 물질 및 운동 분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단순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괴델의 논변이 그리 쉽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CTC가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면, CTC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과거와 미래는 실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동주의자들은 CTC가 우리 우주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일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특정한 경계 조건을 부여해야만 GTR의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CTC의 존재를 제한하는 물리적인 근거가 발견된 것은 아니므로, 아직까지는 형이상학적인 입장에 근거한 경계 조건 부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괴델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객관적인 시간 흐름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이고자 했는데, 이 논증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자.

  

   ① 우리와 비슷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우주가 하나 있다고 하자.

  

   ② 이 우주를 괴델 세계라 하자. 이 괴델 세계에 사는 생물들이 갖는 시간에 대한 직접적 경험은 우리의 경험과 같다.

  

   ③ 객관적인 시간 흐름이 없는 우주에서도 우리와 같이 시간에 대한 직접적 경험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④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 경험은 우리 우주에 객관적인 시간 흐름이 있는 것에 대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⑤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 경험은 우리 우주에 객관적인 시간 흐름이 있다고 가정하게 해주는 유일한 근거다.

  

   ⑥ 괴델 세계에 객관적 시간 흐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 우주에 객관적 시간 흐름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근거가 없다.

  

   단계 5를 받아들이지 않는 역동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내용 비대칭성, 인과적 고려 등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객관적 시간 흐름을 정의하고자 한다. 또한, 다른 이들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역동적 시간으로부터 비롯됨을 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