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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관점의 장점과 위험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정동욱 역)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개념들을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두 저서 사이의 관계는 더욱 각별하게 여겨진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체계는 헬레니즘 시대에 등장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전통을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그에 비견될 정도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천문학 체계였다. 비록 천문학 외적인 요소들이 상당 부분 개입하고 그런 외적 요소들이 천문학 체계 자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천문학 체계가 존재했고 그 체계가 세계에 대한 관측 자료들과 잘 들어맞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문학은 고도로 정교화 된 개념 체계였고, 하나의 장대한 전통을 이루고 있었다..

일상 이야기 2016.05.22

독서하는 시간

요즘에는 라이헨바흐의 [원자와 우주] 번역을 끝내고 난 후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여유 시간에 번역 대신 독서를 한다. 피터 고드프리스미스가 지은 [이론과 실재]를 읽었고, 신광복·천현득 선배가 지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지금은 토머스 쿤이 지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정동욱 선배 번역)을 읽고 있다. [이론과 실재]는 실재론적 경험주의(혹은 경험주의적 실재론)를 옹호하는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번역된 문장들이 깔끔하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어 다소 아쉬웠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는 과학방법론과 과학적 설명에 대한 기존의 과학철학적 논의를 아주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일상 이야기 2016.05.20

한스 라이헨바흐, [원자와 우주] 06: 빛의 광선적 특성

Ⅱ. 빛과 방사 6. 빛의 광선적 특성 과학적 탐구는 항상 일상생활의 견해들 및 물음들과는 특정한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 매 순간 해야만 했던 일들은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일들을 문제로서가 아니라 궁극적인 사실들로 받아들이며, 과학의 임무란 모든 다른 현상들을 이러한 가장 단순한 사실들로 환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물이 축축한 것, 빛이 밝고 색깔을 띠며 사물들에 그림자를 형성하는 것 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들이다. 우리가 이러한 가장 단순한 사실들을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 사실들을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과학적 비판 정신이 어느 정도 성숙해야만 한다...

서울 출장을 다녀오며

오늘 나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관하는 공공기관 성과관리 세미나 참석차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 여의도에는 한국을 움직이는 굵직한 기관들이 밀집해 있어, 여의도에 도착하니 대구에서 생활하는 나로서는 우리 사회의 심장부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했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동의했고, 국가의 주요 기능들이 수도권에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서울은 다른 지역과는 크게 차별화되어 있다. 서울에 온 내가 스스로를 중앙이 아닌 지방 시민이라고 강하게 의식하는 것을 봐도 그러하다. 한 나라의 수도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기..

과학관 이야기 2016.05.13

헴펠, [과학적 설명에서의 법칙과 그 역할] 요약 정리

헴펠, 「과학적 설명에서의 법칙과 그 역할」 과학적 설명에 있어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조건 물리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주요한 목적들 중의 하나다. 우리는 과학적 설명의 특징(character)이 무엇이고 이 설명이 우리에게 어떤 통찰(insight)을 주는지 살펴보자. 과학적 설명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requirement)을 만족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설명적 유관성(explanatory relevance)’의 조건이다. 그 두 번째는 ‘시험 가능성(testability)의 조건’이다. 무지개가 어떤 광학 법칙에 기초해서 어떤 특정한 상황일 때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물리 이론의 경우, 우리는 이 이론을 기초로 해서 다른 특정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에도 무지개가 발생할 ..

방법론적 반증주의에서의 규약과 판단

방법론적 반증주의에서의 규약과 판단 포퍼(Popper)는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한 기준으로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제시했다. 귀납에 대한 흄의 철저한 회의에서 밝혀졌듯 귀납의 타당성은 연역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후건 부정법을 이용해서 결론이 잘못되었을 경우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포퍼는 논리적으로 반증가능하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참일 수 없을 것 같은 낯선 추측들을 과감하게 제시하며, 그러한 추측이 이론을 반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반증가능한 예측들도 잘 견디는 이론을 ‘좋은 과학적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포퍼에 의하면 가장 반증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가장 적극적으로 반증가능성을 무릅쓰는 이론이 가장 모범적인 과..

한스 라이헨바흐, [원자와 우주] 05: 천체역학

5. 천체역학 운동의 상대성 개념을 끝까지 발전시키면 중력 이론이 도출된다는 것을 지난 장에서 살펴보았다. 운동의 상대성을 단순한 시각적 경험 너머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이러한 기초해 있다. 순수한 운동학적 기술을 넘어서 자연의 객관적 현상에 대한 진정한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기술은 톨레미적인 기술보다 더 “참된” 이론, 실재에 더 잘 부합하는 이론으로 간주되었다. 태양의 움직임은 그저 겉보기에만 그러한 것으로서 우리의 감각을 기만하며,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지구라는 관점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논증들이 뉴턴의 이론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뉴턴의 이론은 우주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관점에 대한 동역학적 정당화를 제공해주었다. 뉴턴은 세계에 대한 코페르니..

영남일보 하프마라톤 참가 후기

오늘 아침 8시부터 대구 스타디움에서 영남일보 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나는 오전 6시쯤 집에서 출발해 7시 반쯤 대구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직장 동료들은 이미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었다. 우리는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었다. 8시가 되자 21킬로미터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대회 시작 전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록에 대한 욕심은 처음부터 갖지 않았다. 임신을 한 아내를 돌보며 틈틈이 번역을 하느라 마라톤 연습이 많이 부족했고, 최대로 많이 달린 거리가 11km였다.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상, 포기할 수는 없었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으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직장 동료들을 볼 수 있었지만 시간이 ..

일상 이야기 2016.05.08

아버지, 조카 건호, 아버지가 되는 일

얼마 전 아버지께서 내시경으로 위암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셨다. 올해 3월쯤 아버지께서 위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평소에 너무나 건강하게 생활하셨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외과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을 때 우리는 위의 3분의 1 가량을 절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아주 초기인 위암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과 의사에게도 진료를 의뢰해보았다. 다행히 위암이 위벽 안쪽까지 전이되지는 않아 위 점막만 절제해도 되는 상황이었고, 이는 내시경으로도 충분히 수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끝났고, 수술 후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식사도 문제없이 잘 하고 계신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5월 6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아내와 나는 부모님이 ..

일상 이야기 2016.05.07

'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의 과학철학과 STS

‘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의 과학철학과 STS 1. 여는 말 : ‘논리경험주의 운동’의 시민과학적 성격 나치가 독일의 정치를 잠식하기 전, 독일의 한 방송국에서 대중들을 위한 교양과학 라디오 방송 강의를 했던 논리경험주의자가 있었다. 이 강의에서는 원자 수준의 미시세계로부터 우주라는 거시세계까지 20세기의 과학이 보여주는 세계상을 교양 있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대중들로부터 제법 인기를 얻은 이 강의의 강연록은 강의가 끝난 이후 종합·편집되어 『원자와 우주(Atom and Cosmos)』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 학자였던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라..

과학사 이야기 201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