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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음미하기, 과학을 이야기하기

나의 직책은 국립과학관의 연구원이다. 연구원이라면 연구를 하는 사람일 텐데, 나는 무슨 연구를 하고 있나? 나는 과학의 한 분과에 소속되어 연구하는 과학자는 아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을 음미하고,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나는 다양한 과학기술자료들을 수집하고, 이것들을 수장고 또는 연구실에 보관한다. 그 후 이것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혹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아낸다. 그 결과 중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내용들은 과학관에 전시한다. 그와 더불어 나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 중 일반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아이템들을 찾고 이를 대중들이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전시한다. 올해 나는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와 협업하여, 대구경북 산업과학기술사 및 주요인물에 대해서 연..

일상 이야기 2019.11.16

멍하게 있는 시간

2019년 10월 1일부터 두 개의 기획전시를 동시에 시작한 이후 나는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전시 시작하기 전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한동안 계속 주말에 회사에 나가 일을 했기 때문에, 11월 중순까지는 매주 월요일을 대체휴무일로 받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월요일 오전에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 나는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카페에서 나는 그냥 멍하게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테이블 위에 책 한 권, 노트 한 권, 커피 한 잔을 두고 마냥 생각에 잠겨 있다. 이 시간 동안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 한스 라이헨바흐의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 번역을 끝내고 난 뒤, 나는 이론물리학자 리 스몰린(Lee S..

일상 이야기 2019.10.20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한 사랑

조국 법무부장관의 딸의 대학 입학과 대학원 진학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진학하여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혀 예측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의류도매상인이었고 나의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두 분 다 공부하는 것에 큰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 이야기의 세계가 갖는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 소설들을 읽으며 책과 친해졌고, 이를 계기로 책들이 모여 있는 서점과 도서관에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책들과 만났다.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을 만난 곳도 서점과 도서관이었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놀기 위해 간 곳에서 책들..

일상 이야기 2019.09.14

'웨스트 월드' : 인공지능,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오랜 기간 동안 학습한다. 이 학습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치들이 사용된다. 우유병을 쥐고 우유를 빨거나, 블록으로 된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뽀로로 프로그램을 보거나, 엄마 혹은 세이펜이 들려주는 동화책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이는 자신이 비인간이 아닌 인간임을 조금씩 학습한다. 다채로운 색깔과 디자인을 가진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서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아이는 인간이라는 개념에 점점 더 친숙해진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주 친숙하고 당연하고 명백한 ‘인간’이 마치 공기처럼 아이의 온몸을 감싼다. 교과서, 각종 책과 미디어 속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 명백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불완전한 묘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일상 이야기 2019.07.15

국립대구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

2019년 7월 24일은 내가 국립대구과학관에 입사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다. 입사 이후 총 5개의 전시를 기획 및 운영했고, 저울 38점, 농기구 78점, 물리계측기기 292점 등 총 408점의 과학기술자료를 수증했다.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이 보유하고 있는 3개의 수장고 중 2개의 수장고에 이동식서가(모빌랙)를 설치하여 수장고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인과 산업인으로 경북대학교 수학과 기우항 명예교수, 자동차부품제조업체 경창산업 손기창 명예회장을 선정하여 이분들에 대한 조사연구를 실시했다. 현재 나는 가을 특별기획전 2개(계측영상장비 특별전, 화석 특별전)를 준비하고 있으며, 국립대구과학관의 과학기술자료 관리..

일상 이야기 2019.07.09

논문자격시험을 준비하며

나는 요즘 인식론, 언어철학, 과학철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인식론에 관한 논문들은 전체적으로 공부를 마쳤고 지금은 언어철학 논문들을 공부하고 있다. 5월까지 언어철학 공부를 마친 후 6~7월에 과학철학 관련 논문들을 공부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8월 초에 예정되어 있는 시험에 응시할 예정이지만 합격 여부는 불확실하다. 공부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8월 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는 내년 초에 예정된 시험에 다시 응시할 예정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내년에는 과학철학만을 다루는 다른 논문자격시험을 준비하여 응시할 계획이다. 나에게 박사학위란 지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인 계기다. 나는 학사, 석사, 박사학위 공부를 계속하여 꾸준히 연구 실적을 쌓아..

일상 이야기 2019.05.19

과학에 대해 말하는 사람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계기로 알프레드 에이어가 쓴 [언어, 논리, 진리]를 읽고 있다. 20세기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견해를 잘 드러내고 있는 고전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커다란 즐거움을 느낀다. 논리경험주의에 따르면 철학적 활동이란 기본적으로 분석 또는 명료화 하는 작업이다. 철학적 탐구만이 다룰 수 있는 별도의 영역, 예를 들어 형이상학적 실재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와 같은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입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나의 이러한 동의는 대부분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당시 과학고등학교의 교육 방식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수학과 과학 이론을 배우고 문제를 푸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했고, 수학과 과학 이론을 좀 더 풍..

일상 이야기 2019.04.30

욕심내지 않고 무심한 듯 해 나가는 것

나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퍽 무관심한 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정치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나는 정치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들 및 이들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판단을 갖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무엇인가 할 말이 생긴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정보와 판단이 내게 갖는 가치를 잘 느끼지 못하기에, 정치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들은 나를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나는 꼬박꼬박 선거에 참여하며 나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한다. 또한 누군가가 나의 정치적 견해를 물으면 나는 나의 입장을 정직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정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집중하고자 노력한다. 과학관의 직원이기 때문에 나는 매일 과학관에서 내가..

일상 이야기 2019.04.28

햇살 속에서 뛰노는 딸을 바라보며

태어난 지 28개월이 된 나의 딸은 이제 말을 곧잘 한다. 아이는 혼자 있을 때 가끔씩 스스로 문장을 지어서 말하며 논다. 아이는 말의 신비를 깨달은 것 같다. 아이는 아빠인 나에게 자신이 어떤 말을 하면 나의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나에게 원하는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아빠는 이쪽으로 들어오지 마.” 내가 아이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아이는 같은 문장을 거듭 말하다 짜증을 내며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는 어떤 문장을 말하고 난 뒤 곧바로 그 문장의 부정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는 엄마나 아빠가 “지윤아, 밥 먹으러 이리 와.”라고 하면, “지윤이는 밥 먹으러 안 갈 건데.”하면서 엄마와 아빠의 문장을 부정하며 우리의 의지를 따르지 않..

일상 이야기 2019.03.24

만남, 이야기, 내가 할 일

어제인 2019년 3월 15일에는 나에게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우선, 새벽 일찍 서울을 향해 출발하여 대학교에서 지도교수님을 만나 앞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일정에 대해 상의했다. 나는 솔직하게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뛰어난 학문적 업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그저 평균적인 수준의 논문을 쓰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나는 운 좋게도 나의 능력에 비해 과분한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나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조금씩..

일상 이야기 201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