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과학에 대해 말하는 사람

강형구 2019. 4. 30. 20:20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계기로 알프레드 에이어가 쓴 [언어, 논리, 진리]를 읽고 있다. 20세기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견해를 잘 드러내고 있는 고전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커다란 즐거움을 느낀다. 논리경험주의에 따르면 철학적 활동이란 기본적으로 분석 또는 명료화 하는 작업이다. 철학적 탐구만이 다룰 수 있는 별도의 영역, 예를 들어 형이상학적 실재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와 같은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적 입장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나의 이러한 동의는 대부분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당시 과학고등학교의 교육 방식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수학과 과학 이론을 배우고 문제를 푸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했고, 수학과 과학 이론을 좀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에 관한 여러 책들을 찾아서 읽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하게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수학과 과학에 대해 계속 생각했고, 책들을 통해 수학과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읽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 수업에서 나오는 내용들, 교과서 안에 있는 내용들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수학과 과학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많은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주된 목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나의 목표는 문제 해결이 아니다. 나의 목표는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학과 과학의 특정한 내용들을 서술하는 것이다. , 수학과 과학에 관한 좀 더 재미있는, 혹은 좀 더 깊이 있는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어쩌면 작가들의 평가 기준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 수학과 과학을 얼마나 깊이 있고 이해할 수 있게 서술했는지를 토대로 그 사람의 역량을 평가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수학 혹은 과학의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나는 수학자 혹은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한다.

  

   나는 수학과 과학에 대해 생각하는 일, 이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쓰는 일에서 지치지 않는다. 나는 꾸준하게 고대 그리스의 수학과 과학, 중세의 과학, 르네상스의 과학, 근대의 과학, 현대의 과학 등에 대해서 생각을 거듭하고 말을 거듭하며 서술을 거듭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스스로의 이해가 깊어지면 그것에서 만족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은 과학자나 과학교육자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나는 수학과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관점에서, 다시 말해 제3자의 관점에서 수학과 과학을 평가하거나 재단하려는 논의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이에 반해, 나는 수학과 과학의 범주 안에서 이것들의 의미를 살피고 이것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다시 서술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수학에 대한 철학 혹은 과학에 대한 철학은, 수학과 과학 안에서 이것의 내용들을 다시 새로운 방법으로 말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수리철학 혹은 과학철학은 수학자나 과학자가 충분히 할 수 있고 이들이 직접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활동이다. 실제로 프레게, 러셀, 힐베르트 같은 수학자들은 직접 수리철학을 했고,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같은 물리학자들은 직접 물리철학을 했다. 그리고 이들의 철학적 활동은 기존의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거나 다시 서술함으로써 수학과 과학의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철학적 활동에 과학관의 연구원인 나 역시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과학관 연구원의 중요한 역할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학과 과학에 대해 계속 읽고 생각하며 그 생각들을 전시와 강연 등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