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만남, 이야기, 내가 할 일

강형구 2019. 3. 16. 23:10

 

   어제인 2019315일에는 나에게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우선, 새벽 일찍 서울을 향해 출발하여 대학교에서 지도교수님을 만나 앞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일정에 대해 상의했다. 나는 솔직하게 나의 박사학위 논문이 뛰어난 학문적 업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그저 평균적인 수준의 논문을 쓰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나는 운 좋게도 나의 능력에 비해 과분한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나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조금씩 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학부 시절 라이헨바흐의 1920년 저작을 중심으로 졸업논문을 썼고, 대학원에서는 라이헨바흐의 1924년 저작을 중심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박사학위 논문은 라이헨바흐가 1920~1938년 사이에 쓴 저작들을 중심으로 쓸 것이고, 이 논문은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것을 종합하는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연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관성 있게 진전되어 나가는 것에서 만족을 느낀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해서 세계적인 학자로서 인정받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그런 수준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을 찾아뵌 다음에는 곧바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예전에 서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여겨졌다. 알고 보니 이 박물관은 2005년에 개관했다고 한다. 2005년이면 내가 학부를 졸업하고 난 후 육군 장교로서 군 생활을 하던 시점이다. 박물관 인근에는 예쁜 한복을 차려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박물관 안에서는 한문으로 된 문서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금의 나는 한글에 익숙해져 있고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한글로 표현한다. 하지만 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한문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나는 오래된 문서들을 보며 한문으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를 잠시 상상해보았다.

  

   내가 국립고궁박물관을 방문한 이유는 박물관 지하1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자격루 때문이었다. 스스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시계인 자격루는 조선 세종 시대 때 만들어진 작품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국립대구과학관에서는 이 자동시계 자격루를 과학관 전시품으로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나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격루 복원에 참여했던 담당 학예사 선생님을 찾아뵙고 어떻게 과학관에 이 자격루를 복원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러 간 것이었다. 학예사 선생님을 만나 뵙기 전에 미리 전시실에 가서 복원된 자격루를 살펴보았다. 일정한 속도로 물을 위에서 아래로 흘려보내고, 물이 차오름에 따라서 시각을 정확하게 알리도록 장치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담당 학예사님을 만나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계공학이 아닌 민속학 전공자인 선생님께서 자격루를 복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격루 복원의 성공에는 주물 장인, 대목 장인, 정밀 기계 장인 분들의 결정적인 도움이 있었다고 했다. 자격루를 전공한 학자들의 학문적인 논의만으로는 결코 제대로 된 복원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겨우 겨우 오후 5시에 서울역에서 김천구미역으로 향하는 KTX 열차표를 예매했다. 그 후 서울역 지하도에서 걷고 있는데, 미국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카르납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선생님께서는 친히 나를 기차까지 배웅해주셨다. 물론 우리는 헤어지기 전까지 카르납과 라이헨바흐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었고, 이는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