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욕심내지 않고 무심한 듯 해 나가는 것

강형구 2019. 4. 28. 22:19

 

   나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퍽 무관심한 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정치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나는 정치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들 및 이들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판단을 갖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무엇인가 할 말이 생긴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정보와 판단이 내게 갖는 가치를 잘 느끼지 못하기에, 정치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들은 나를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나는 꼬박꼬박 선거에 참여하며 나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한다. 또한 누군가가 나의 정치적 견해를 물으면 나는 나의 입장을 정직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정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집중하고자 노력한다. 과학관의 직원이기 때문에 나는 매일 과학관에서 내가 하는 일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충실하게 출퇴근하는 것은 기본이다. 업무 시간에는 딴 짓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나의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간다. 대부분의 경우 업무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하면 굳이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어제 일반 상대성 이론 검증 10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 강연을 했는데, 강연 준비를 위해 야근을 자주 하지 않았다. 업무 시간 틈틈이 책을 읽고 자료를 찾으며 강연 자료를 준비했다. 강연은 아주 재미있었다. 물론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했지만, 나는 일부러 억지로 쉽게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강연하는 사람이 재미를 느껴야 그 강연을 듣는 사람들도 강연자의 열정을 느낀다고 믿는다.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나는 논문자격시험 준비와 물리학 공부를 한다. 읽어야 하는 논문들을 천천히 읽으며 논문들의 내용을 요약정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KMOOC 사이트에 접속하여 내가 좋아하는 물리학 강의를 수강한다. 물론 나는 그런 와중에서도 설거지를 하고, 집 청소를 하며, 아이와 논다. 내 생각에 해야 하는 것들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어떻게든 그 일들을 조금씩 해나갈 수 있다. 해야 할 일들을 틈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게 되면, 생활을 위해 해야 하는 다른 일들도 같이 할 수 있다. 철학 논문들을 읽고 정리하는 것은 퍽 재미있다. 물리학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만큼 철학 역시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나에게는 글을 읽고 쓰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 운동을 하기는 하지만 대개 아파트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옷에도 관심이 없고, 시계에도 관심이 없고, 스포츠 경기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뭘 사 모으는 경우도 거의 없다. 책들에는 관심이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꼭 필요한 책들은 이미 거의 다 모았기 때문에 책을 거의 사지 않는다. 이제는 새롭게 책을 사기보다는 가급적이면 이미 모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들 위주로 다시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크게 욕심이 없어 음식을 위해서 돈을 많이 쓰지 않으며, 술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그저 나는 철학, 수학, 물리학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또한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지 잘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중학교 시절 이후로 내 주변에서 나보다 훨씬 잘 하는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내가 아주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나간다. 누가 나보다 더 잘 하는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계속 해나가다 보니 주변에서 나를 찾기도 한다. 책을 번역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강연을 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잘 하거나 아주 똑똑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계속 해 나가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을 입증하는 실제 사례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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