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국립대구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

강형구 2019. 7. 9. 22:47

 

   2019724일은 내가 국립대구과학관에 입사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다. 입사 이후 총 5개의 전시를 기획 및 운영했고, 저울 38, 농기구 78, 물리계측기기 292점 등 총 408점의 과학기술자료를 수증했다.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이 보유하고 있는 3개의 수장고 중 2개의 수장고에 이동식서가(모빌랙)를 설치하여 수장고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인과 산업인으로 경북대학교 수학과 기우항 명예교수, 자동차부품제조업체 경창산업 손기창 명예회장을 선정하여 이분들에 대한 조사연구를 실시했다.

  

   현재 나는 가을 특별기획전 2(계측영상장비 특별전, 화석 특별전)를 준비하고 있으며, 국립대구과학관의 과학기술자료 관리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수장고 운영관리 체제를 개선하고, 국립중앙과학관이 개발한 과학기술자료 표준관리시스템을 국립대구과학관에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작년에 이어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와 연계하여 경북대학교 수학 연구의 전통, 대구경북 자동차부품산업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구경북 산업과학기술인 4명을 선정하여 이들에 대한 조사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국립대구과학관 야외 과학마당에 조선 시대의 자동시계인 자격루를 과학관 전시품으로 만들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만약 내가 직장에서 30년 동안 일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56개월을 한국장학재단에서 일했고 지난 2년을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했다. 특별한 변동이 없다면 아마도 나는 남은 226개월 동안 과학관에서 계속 일하게 될 것이고, 만약 65세까지 정년이 연장된다면 남은 276개월 동안 과학관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나는 전시를 기획 및 운영할 것이며, 과학에 관련된 전시품들을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것이며, 대구경북지역의 과학기술자료를 수집, 조사, 연구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철학을 가르칠 수 있고, 과학에 관련된 책들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다.

  

   나는 약간 독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했지만 과학자는 아니다. 나는 과학자들처럼 일선 현장에서 과학 연구 또는 과학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학을 좋아하며, 과학을 즐겨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로(전시, 강연 등) 하는 것을 나의 업으로 삼고 있다. 어쩌면 나를 과학 소통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이와 동시에 대학에 소속된 과학사학자도 아니고 과학철학자도 아니다. 나의 고객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 아니라 과학관을 찾는 일반인들이다. 일반인들 중에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도 있겠지만 그 범위는 좀 더 넓다.

  

   과학관 연구원이자 학예사라는 나의 정체성은 내가 하는 많은 활동들에 투사된다. 예를 들어 나는 논리경험주의자 한스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자 한다. 왜 논리경험주의인가? 그것은 논리경험주의가 20세기 초의 자연과학(특히 수학과 물리학)을 비판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철학적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비판적인 이해란 교양 있는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지 소수의 전문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때의 비판적인 이해란 정확하고 명료한 이해이지 오직 이해를 위해 단순화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비판적인 이해가 필요할까? 그것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 역시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얻기 위해 자연과학의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음미하는 것은 아마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과학을 대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일 것이다. 내가 논리경험주의 더 넓은 범위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역시 비슷하다. 나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이 말해주는 자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적 성과들의 의미를 음미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과학자들의 저작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나는 과학철학이 과학에 대한 좀 더 고차원적인 담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철학이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자연에 대한 지식을 고찰하고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이자 창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인 나의 정체성과도 연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