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웨스트 월드' : 인공지능,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강형구 2019. 7. 15. 19:39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오랜 기간 동안 학습한다. 이 학습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치들이 사용된다. 우유병을 쥐고 우유를 빨거나, 블록으로 된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뽀로로 프로그램을 보거나, 엄마 혹은 세이펜이 들려주는 동화책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이는 자신이 비인간이 아닌 인간임을 조금씩 학습한다. 다채로운 색깔과 디자인을 가진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서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아이는 인간이라는 개념에 점점 더 친숙해진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주 친숙하고 당연하고 명백한 인간이 마치 공기처럼 아이의 온몸을 감싼다. 교과서, 각종 책과 미디어 속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 명백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불완전한 묘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인간이라는 개념과 존재가 명백하고 또렷하며 인간이 아닌 것들과 구분된다고 느낀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부모님의 자식, 남자 혹은 여자, 어떤 학교 몇 학년 몇 반 몇 번, 키 얼마에 몸무게 얼마, 성적은 어느 정도, 취미는 무엇, 특기는 무엇, 좋아하는 작가 혹은 배우 혹은 음악은 무엇... 이런 추상화되고 객관화된 정보들이 과연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줄까? 오히려 내게 가장 생생한 것은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물들의 형태와 색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 복잡하고 불규칙적으로 떠도는 머릿속 생각들, 어떤 사물 혹은 사람을 대하거나 생각할 때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들이다. 역설적으로 나는 내가 어떻게 이 모든 생생한 것들을 지각하고 의식하는지, 어떻게 내가 이 모든 생각들을 떠올리는지 알지 못한다. 나에게 직관적으로 가장 섬세하고 생생한 것이 나의 앎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이를 망각하기 위해 내게 친숙한 이야기 속에서 단순화된 나를 찾고 위안을 얻는다.

  

   추상화되고 언어화된 나, 어쩌면 이것은 기계와 다름이 없다. 복잡하지만 이미 짜여 있는 각본, 약간의 불확실성이 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는 패턴 속에서 나는 라는 인물을 연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이 이런 추상화와 언어화로 포섭되지는 않는다. 어떤 순간에 대한 나의 기억이 갖고 있는 강렬한 행복과 고통, 맹목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열정과 집착, 너무나 비합리적인 완고함이 내 속 어디엔가 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이 아닌 우연적 사건들이 나의 신체에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새긴 개별적인 흔적들은 나에게는 늘 되돌아오는 강박, 고통, 행복,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나를 나이게끔 만들고 나로 하여금 나의 삶을 살게 만든다. 경험을 통해 개체화된 기억과 감정이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것은 이성이다.

  

   나는 처음에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과 명백하게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침팬지와 닮았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인간은 기계와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인간의 창조물을 통해서 자신을 조금씩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신화, 예술, 과학은 모두 인간의 창조물 아니었던가. 이 창조물을 창으로 삼아 우리는 조금씩 더 정교하게 세계를 이해해왔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마저도 이해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모방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탄생한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과학은 인간이 바라보는 세계를 향한 것이었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거울을 향한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래되고 원초적인 욕망은 이제 과학의 영역에까지 다다랐다.

  

   ‘웨스트 월드가 말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인공지능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것은 인간 신체의 구성 성분이나 이성적 능력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인간에게 개체화되어 있는 고유한 기억과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