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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다 타다히코 지음, [별걸 다 재는 단위 이야기] 발췌

- 하지만 단위는 인류의 역사와 과학 지식을 밑거름 삼아 많은 과학자의 연구로 탄생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입니다. (5쪽) ① 프랑스혁명이 준 선물, 미터 - ‘척(尺)’은 본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쫙 벌린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였습니다. (20쪽) - 1791년 프랑스 정치가 탈레랑의 제안으로 “적도에서 프랑스 파리를 거쳐 북극점까지 이르는 거리(프랑스 자오선)를 1000만분의 1로 나눈 값”을 미터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20쪽) - 프랑스 천문학자 들랑브르와 메셍은 파리를 지나는 지구 자오선을 측정할 원정대를 꾸렸습니다... 측량 작업은 6년이나 걸렸습니다... 결국, 1799년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를 1000만 분의 1로 줄인 ‘1m 원기’를 만들었습니다. (21쪽) - 프랑스는 1799..

과학관 이야기 2017.09.11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발췌

① 나폴레옹의 키는 결코 작지 않았다(높이, 길이, 깊이) - 저격수의 망원 조준기와 항공기의 폭격 조준기에 들어가는 십자선(cross hair)에 사람의 실제 머리카락이 쓰인 것이다. (17쪽) - 인치는 엄지손가락 크기로 정의되었다. 엄지손가락 크기는 사람마다 달라서 단위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노르망디의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 1028? ~ 1087)는 1066년 잉글랜드 정복 후에 1인치를 보리알 세 톨을 줄지어 놓은 길이로 정했다. 이 결정은 에드워드 2세(1284~1327)가 1324년에 반포한 법령으로 명문화되었다. 1324년 법령에 따르면 1인치는 ‘마르고 둥근 보리알 세 톨을 세로로 잇대어 놓은’ 길이다. (20쪽) - 스웨덴어로 인치는 툼(tum, 엄지손가..

과학관 이야기 2017.09.11

이종봉 지음, [한국 도량형사] 발췌

① 제1장: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도량형 (1) 머리말 - 도량형度量衡의 도는 길이, 양은 물건의 부피, 형은 물건의 무게 등을 측정하는 도구 혹은 수단을 의미하므로 물건의 가치와 교환이 이루어졌을 어느 시기부터 사용되었다. (11쪽) - 고구려는 연구자의 관점에 각각 한척(22~23cm)과 고구려척(35.051cm)을 사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2쪽) - 통일신라시대의 척... 석굴암의 건축에 당대척(29.7cm)을 사용하였다 (13쪽) - 백제는 부여 군수리폐사지․익산 미륵사지석탑․왕궁리석탑 등을 측정하여 분석하여 볼 때 고구려척(동위척 약 35cm 전후)을 사용하였다고 파악 (14쪽) - 양제에 대한 연구는 신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신라의 양기는 통일신라 이후의 1/3이었으며, 그 근간은..

과학관 이야기 2017.09.05

히로세 다치시게 지음, [질량의 기원] 발췌

① 1장: 현대에 있어서의 만리장성 - 이 설명에 따르면 물질의 질량은 처음부터 물질에 갖추어진 것이 아니고, 우주 초기에 진공 속에 나타난 힉스라 부르는 소립자에 의해서 초래된 것이라 한다. (12쪽) - 그런데 질량을 단순히 물질의 양이라 생각하면, 그것은 보통 ‘무게’로 측정할 수 있다. 결국 질량과 무게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고 물질이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무게가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상식이다. 확실히 종이, 나무, 금속, 물, 유리 등, 주변을 둘러보아도 무게가 없는 물질은 어디에도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먼 옛날부터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는 것의 올바름을 인식해 왔다. (12쪽) -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현대물리학의 최신 이론이 이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학관 이야기 2017.09.05

로버트 크리스 지음, [측정의 역사] 발췌

① 머리말 - 하지만 척도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조물주는 자도, 저울도 창조하지 않았다. (9쪽) - 척도는 자의적이다. (9쪽) - 근대 과학의 태동기인 1600년대와 1700년대에 프랑스 과학자들이 보편적 측정 체계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목표는 모든 나라에 자기네 체계를 보급하는 것, 그리고 자연의 불변 속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다. (10쪽) - 현재, 자연 현상에서 도출되지 않은 기본 척도는 질량뿐이다. (10쪽) ② 1장: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 사물의 양을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모르는 사물(모래 위의 낯선 발자국)의 속성을 아는 사물(자기 발)의 동일한 속성과 비교하는 것이다. (14쪽) - 최초의 측정 도구는 인체였다. (14쪽) - 척도의 요건:..

과학관 이야기 2017.09.05

다시 철학을 공부한다면

철학이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나는 학창시절 철학을 접하고 철학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기로 선택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똑똑한 결정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만약 나에게 다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철학을 전공으로 삼기보다는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을 전공으로 삼겠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철학은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 공부할 것이다. 철학이 곧 개별과학의 역할을 했던 시대가 있긴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나의 자연과학적 재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라는 사람은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이..

일상 이야기 2017.08.27

노직, [지식과 회의주의(1981)](03)

Ⅱ. 회의주의 지식에 관한 회의주의자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적게 알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거나, 어쨌든 이러한 입장이 지식에 대한 믿음보다 덜 합리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철학의 역사는 회의주의자를 논박하고자 하는 서로 다른 많은 시도들을 보여준다. 이 시도들에서는 회의주의자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거나, 회의주의자가 지식에 대항하여 논증을 할 때 특정한 지식을 전제하므로 자가당착적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른 시도들에서는 회의주의를 수용하는 것이 비합리적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회의주의자의 모든 전제들이 참일 가능성보다는 그의 극단적인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거나, 혹은 믿음에 대한 합리성은 반-회의적인 방식으로 진행해나가는 절차만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비..

단조로운 삶

2017년의 여름도 어느덧 막바지를 지나고 있다. 나는 올해 여름에 지난 5년 6개월 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대구과학관으로 직장을 옮긴 것이다. 국립대구과학관에서는 과학기술자료 수집보존연구를 위해서 나를 채용했다. 나는 나의 대학원 전공이 나의 취직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나에게 채용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나는 채용에 응시하여 최종 합격했다. 나는 대학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않았다. 그저 중상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을 뿐이다. 나는 대학에서 중하 수준의 성적으로 졸업한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부..

카테고리 없음 2017.08.20

멍청하고 우직한 자

돌이켜보면 나는 세상을 살아오며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온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나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만큼만 하는 것”이었다. 다만 나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지 별 생각 없이 우직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우직함으로 나는 운동을 했고, 책을 읽었고, 각종 문제를 풀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나았던 것이 있었다면 이는 이러한 나의 우직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삶에 대한 내 고유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나의 초중등교육 교육비를 아꼈다. 나는 학원에 많이 다니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을 했다. 만약 나의 초중등교육 교육비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다면, 아마도 내가 소비한 ..

일상 이야기 2017.08.15

단순해진 삶

국립대구과학관으로 직장을 옮긴 이후 나의 삶은 아주 단순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파트 운동센터에 가거나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아침식사를 한 후 과학관으로 출근한다. 8시 30분에 출발해도 충분히 여유 있게 과학관에 도착한다. 과학관에서는 근무를 하다가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고, 과학관 근처를 산책할 수 있다. 과학관에 관람하러 온 부모님들과 아이들을 보는 것 역시 내게는 큰 즐거움이다. 과학관에서 과학관 직원들을 위해 유료로 제공하고 있는 점심식사도 만족스럽다. 저녁 6시가 되어 업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여유 있는 저녁시간을 즐길 수 있다. 설혹 야근을 한다고 해도, 집이 직장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한 ..

일상 이야기 2017.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