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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삶

강형구 2017. 8. 20. 18:24

   2017년의 여름도 어느덧 막바지를 지나고 있다. 나는 올해 여름에 지난 56개월 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대구과학관으로 직장을 옮긴 것이다. 국립대구과학관에서는 과학기술자료 수집보존연구를 위해서 나를 채용했다. 나는 나의 대학원 전공이 나의 취직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나에게 채용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나는 채용에 응시하여 최종 합격했다.

  

   나는 대학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않았다. 그저 중상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을 뿐이다. 나는 대학에서 중하 수준의 성적으로 졸업한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부터 계속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왔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 나는 공부를 그다지 잘 하지 못하고 조용하게 지내는 학생이었으며,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대입재수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할 때도 나는 학원 내에서 별 사건 없이 조용조용히 지내는 학생이었다. 나는 재수학원에서 남학생 사이에서든 여학생 사이에서든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것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공부하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사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그러한 일들이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지 않았으며, 그 일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저 계속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를 한 결과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도 수료했지만, 나는 내가 유명하고 뛰어난 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그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계속 공부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공부를 특별하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저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더 공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아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

 

   나는 36살의 기혼남이다. 나는 30대 중반을 넘어 40세를 바라보는 아저씨다. 나는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하고 직장에서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는 먹고 싶은 음식도, 사고 싶은 옷도 별로 없다. 집에는 예전에 사둔 옷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옷을 사지 않아도 되고, 내가 직장에서 버는 돈을 활용하여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직접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 의식주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니 세상을 살면서 크게 걱정할 일이 별로 없어졌다. 집에는 예전에 구해 둔 책들이 많이 꽂혀 있고 이 책들 중에는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 책들이 많다. 심심할 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집안 곳곳에 산적해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다.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20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나 역시 겪어보았다. 나는 군대에서 숱한 고통들을 겪었고, 취직을 준비할 때는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많이 빠졌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다.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며, 이미 30대 중반이 된 내가 다시 그 옛날의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 나는 지극히 단조롭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단계로 진입했고, 어쩌면 그것은 내가 오래 전부터 원해 온 일이기도 하다.

  

   더 이상 학위를 위해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으며, 더 이상 살 집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내 삶은 단조로워졌고 더 자유로워졌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이 단조로움과 자유로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