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이야기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발췌

강형구 2017. 9. 11. 14:13

나폴레옹의 키는 결코 작지 않았다(높이, 길이, 깊이)

- 저격수의 망원 조준기와 항공기의 폭격 조준기에 들어가는 십자선(cross hair)에 사람의 실제 머리카락이 쓰인 것이다. (17)

- 인치는 엄지손가락 크기로 정의되었다. 엄지손가락 크기는 사람마다 달라서 단위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노르망디의 윌리엄 1(William the Conqueror, 1028? ~ 1087)1066년 잉글랜드 정복 후에 1인치를 보리알 세 톨을 줄지어 놓은 길이로 정했다. 이 결정은 에드워드 2(1284~1327)1324년에 반포한 법령으로 명문화되었다. 1324년 법령에 따르면 1인치는 마르고 둥근 보리알 세 톨을 세로로 잇대어 놓은길이다. (20)

- 스웨덴어로 인치는 툼(tum, 엄지손가락)이다. (23)

- 인도에서 쓰는 인치는 잉글랜드 인치의 1.32(3.35cm)에 달했다. 인도 인치는 왜 이렇게 길었을까? 가설은 두 가지다. 인도 사람들의 엄지가 유난히 컸거나, 인도 사람들은 인치를 보리알이 아닌 쌀알로 정의했거나. 두 번째 가설이 더 유력하다. (24)

- 중국판 인치라 할 수 있는 촌()은 엄지손가락 너비가 아니라 엄지손가락 첫마디의 길이를 기준으로 했고, 이는 잉글랜드 인치의 1.312(3.3cm)에 해당했다. 이렇듯 인치의 길이는 나라마다 제각각이었다. (24)

- 지역별 업종별로 수많은 단위가 어지럽게 쓰이며 만드는 온갖 부조리가 만연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혁명 세력은 국경을 넘어도 변하지 않는 통일된 도량형 기준을 세우고자 1799년 미터법을 제정했다. (25)

- 피트의 저주에 걸린 배. 바사 호 건조에 사용된 공구 중 일부가 배에 남아 있었는데 이를 조사한 결과 좌현을 맡은 스웨덴 작업자들은 그들 나라에서 1863년 이전에 쓰던 인치와 피트를 사용하고, 우현에 배정된 네덜란드 작업자들은 11스웨덴 인치가 될까 말까 한 암스테르담 피트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6)

- 알다시피 피트(feet)는 발뒤꿈치에서 발가락 끝까지를 기준으로 한 단위다. 1피트는 30.48cm에 해당하고, 1피트는 12인치이며, 1인치는 2.54cm에 해당한다고 국제적으로 합의된 것은 19597월이었다. 그 전까지는 혼돈이 지배했다... 역사적으로 피트의 길이는 주로 당대의 통치자나 군주의 발 길이를 기반으로 했다. (31)

- 1300년 경 에드워드 1(1239~1307)가 야드와 퍼치 위원회(Composition of Yards and Perches)를 소집해 보리알 세 톨의 길이를 1인치로, 서른여섯 톨의 길이를 피트로 재정립한다는 법령을 반포했다. (34)

- 하지만 1300년 경 에드워드 1세가 야드와 퍼치 위원회를 소집해 헨리 1세의 야드를 뒤엎고 보리알 세 톨을 연이어 놓은 길이를 1인치로, 12인치를 1피트로, 3피트를 1야드로, 5.5야드를 1퍼치로, 40×4퍼치를 1에이커로 정하는 법령을 반포했다. (39)

막대기로 지구의 크기를 재다(거리)

- 프랑스 제1공화정이 1799년에 10진법 미터법을 공표하자 다른 나라들도 앞 다투어 이를 도입했다. (48)

- 영국의 대표적 거리 단위 마일(mile)은 고대 로마의 브리튼 점령 때 처음 영국에 들어왔다. 앞서 말했듯 마일은 라틴어 밀레(mille, )에서 유래했다. 1밀레는 로마 군대가 1,000파수스(passus) 행군한 거리였다. (1파수스는 한쪽 다리를 뒤에서 앞으로 크게 휘둘러 딛는 간격이다.) 로마군은 미지의 지역을 행군할 때 장교 한 명이 파수스를 세는 임무를 맡아서 밀레 간격으로 막대기 표식을 땅에 박았고, 그날 행군의 끝 지점에는 출발 지점부터 총 밀레 수를 새긴 표석을 놓았다. 마일스톤(milestone, 이정표)은 이렇게 탄생했다. (59)

- 엘리자베스 1세가 1593도량형 법령(Weights and Measures Act)’을 제정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모든 척도는 보리알 세 톨이 1인치라는 고래(古來)의 개념에 기초한다는 전제하에 12인치를 1피트로, 3피트를 1야드로 정했다. 이로써 1마일은 1,609m(5,280피트)가 되었다. (61)

- 1668년 미터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이 있었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철학자 존 윌킨스(John Wilkins, 1614~1672)였다. 윌킨스는 반주기(흔들리는 진자추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1초인 진자막대의 길이를 표준 단위로 삼자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의 주장을 지지했다. (67)

- 1889,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미터 원기가 사실은 200μm(밀리미터의 5분의 1) 모자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8)

마리 앙투아네트와 C(넓이, 부피)

- 하이드는 가족을 뜻하는 앵글로색슨어에서 왔고, 따라서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땅 크기를 의미했다. (79)

- 파인트의 최초 정의는 액체 32모금이었다. 16모금 컵(cup), 32모금 파인트(pint), 256모금 갤런(Gallon). (83)

- 1901년 제3차 국제 도량형 총회... 총회는 10cm 정육면체 개념을 버리고, 정확히 1기압과 3.98에서 측정한 최대 밀도 상태의 순수한 증류수 1kg이 차지하는 부피를 1리터로 다시 정의했다... 이후 1964년 제12차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리터의 정의가 또다시 바뀌어서 1790년대의 10cm 정육면체 개념으로 회귀했다. (88)

영혼에도 무게가 있을까(무게, 배수량, 밀도)

- 그램. 유럽에 그램(gram)이란 용어가 처음 출현한 것은 기원후 400년경이었다. 그 무렵에 발행된 작가 미상의 가요 도량형 노래에 처음으로 언급된다. 프랑스에서는 중세 때 처음 쓰였다. 고대 그리스의 오볼로스(obolos)에 기반한 무게를 표기하는 용도였다. 오볼로스는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 얇은 침인데 길이는 짧은 못만 했다. 이것이 통화 단위이자 무게 단위로 쓰였다. (112)

- 시민혁명에 따른 사회 격변이 한창이던 179547, 프랑스는 그램을 진공 상태에서 측정한 최대 밀도의 순수한 물 1cm3의 무게로 재정의했다. 물은 얼음이었다가 막 녹은 시점에서 밀도가 가장 높은데, 1795년 당시에는 이 때의 물 온도를 4로 생각했다. 현재는 물의 밀도가 가장 높아지는 온도를 더욱 정밀하게 3.984로 잡는다. (112)

- 킬로그램은 그램에 1,000을 곱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탄생했다. 문제는 킬로그램을 질량의 표준 단위로 정하고 킬로그램 원기를 제작할 때였다. 킬로그램 원기는 백금 90%와 이리듐 10%의 합금으로 만들었다. 애초 1795년에 그램을 정의할 때 있었던 온도 상의 미세한 오차 때문에 결과적으로 25ppm 모자라는 킬로그램 원기가 나왔다. 쉽게 설명하면 1kg에서 마른 쌀알 한 톨 정도의 무게가 모자랐다. (112)

- 옛날에 유럽에서 곡식 낱알을 무게 측정의 기본 단위로 쓴 것처럼, 동방에서도 극도로 가벼우면서도 무게가 일정한 캐롭(carob)이라는 콩과 식물의 씨앗을 미량 표시용 단위로 썼다. 아라비아에서는 이것을 키라트(qirat)로 불렀다. (122)

2월이 이틀을 뺏긴 사건(날짜와 달력)

- 달력은 종교의식 거행 시점과 임차료 지불 일자를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에서 발생하고 진화했다. (132)

- 바빌로니아인의 업적은 위대했다. 일단 1년을 12달로 나눠서 훗날의 12개월짜리 태양력 개발에 기여했다. 일주일이 일곱 날이 된 것도, 우리가 지금의 시분 구성을 가지게 된 것도 바빌로니아의 공이다. (133)

GPS의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시간과 시계)

귀뚜라미가 온도를 알려주다(온도)

다가오는 푸른 별, 멀어지는 붉은 별(소리와 빛)

유쾌하고 위험한 판도라의 단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