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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래 교수님과의 만남

내가 처음 조인래 교수님을 만난 것은 2002년 가을학기(과학철학)였다. 나는 2001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장회익 교수님의 수업(물리학의 개념과 역사)은 2001년 1학기에, 구자현 교수님의 수업(과학사 개론)은 2001년 2학기에 수강한 바 있었다. 2002년 가을학기 과학철학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아직 철학과로 전공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교수님께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때도 교수님께서는 나의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곰곰이 생각하신 다음, 계속 그 관심을 이어가도록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조인래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삼아 학부 졸업 논문(2005년 2월 졸업)을 썼다. 그리고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으로 진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교수님께 말..

경험주의의 전통을 이을 뿐

철학 연구자로서 나는 경험주의의 전통을 잇고 있다. 경험주의는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경험주의는 지식 수립에 있어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와 같은 이성의 역할을 불필요하게 과도한 방식으로 해석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경계한다. 지식은 인간이 만들어낸 경탄할만한 발명품이지만, 그와 같은 발명품에 그것이 정당하게 가져야 할 해석보다 지나친 해석을 부여해서 그러한 해석 부여를 통해 지식에 과도하고 부당한 권위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철학 연구자가 반드시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가 될 필요는 없다. 즉, 어떤 사람이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 대학에서 교수로서 일하..

묘한 우연의 연속

돌아보면 내 삶은 ‘우연’과 ‘의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중학생 시절의 꿈도 게임 프로그래머였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보면 컴퓨터 속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을 시뮬레이션하고, 그 행성에서 탄생한 지적인 생명체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컴퓨터 속에 있는 가상의 존재임을 깨닫는 내용이 나오는데,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에 열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물리학자로 꿈을 바꿨고, 고등학교 때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만나 결국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수학, 물리학, 컴퓨터 등에 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만약 내가 대학 재학 중에 입대했거나, 대학을 졸업한 뒤 계속 인문대학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에서 입대했다면, 아마도 나는 군대에..

일상 이야기 2023.04.08

가사와 육아의 시간

어젯밤부터 둘째 아이에게 열이 있어, 오늘은 아내와 첫째(초등학교)와 셋째(어린이집)를 내보내고 둘째는 집에 데리고 있었다. 오전 틈틈이 노트북으로 일을 보고, 집 정리와 청소와 설거지를 했다. 점심때는 며칠 전 중국집에서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인 짬뽕 국물을 데워서 밥이랑 대충 먹고, 둘째에게는 밥과 김과 밑반찬을 차려주었다. 식사 후에는 빨래를 널고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 돌아오는 길에 첫째를 하교시켰다. 오후 5시쯤 셋째를 하원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대략 저물어갈 것이다. 집안일과 육아를 하다 보면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이제 4월이 되었으니 나의 육아휴직도 대략 3개월 남짓 남은 셈이다. 그동안 둘째, 셋째가 많이 컸다. 우리 집 쌍둥이들은 올해 6월이면 세 돌이 된다. 첫째도 입학한 ..

일상 이야기 2023.04.03

인공지능 시대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철학하기

최근 몇 개월 동안에 나는 자신의 비교 대상에 ‘인공지능’을 포함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과연 나는 몇몇 질문들에 대해 내가 인공지능보다 더 뛰어난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묻고, 특정한 텍스트를 내가 인공지능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있을지 묻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몇 회 거듭한 결과, 이런 질문을 하고 비교를 하는 것이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인공지능은 인간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인간은 본격적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인간이 하는 일을 상당 부분 인공지능이 대신 하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변할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인간답게 잘 살아갈 것인지의 문제다. 나는 박사..

과학철학자는 과학철학을 하는 것일 뿐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글의 주제는 이것이다. “Reconsidering Einstein’s Philosophy of Science : Or, Putting Einstein’s philosophy into the tradition of philosophy of science”. 내가 이런 대담한(?) 주제를 생각할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히 여러 아인슈타인 연구자들의 과학사적 연구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과학철학자들이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우상화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아인슈타인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를 일종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면서 과학철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초기 ..

글 쓰는 훈련

학위기에 보면 나의 전공은 ‘과학사 및 과학철학’이라고 쓰여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나의 전공은 ‘과학철학’이지만, 사실 과학사 없이 과학철학을 제대로 할 수는 없다. 여기서도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학에는 역사학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통찰이 있고, 이런 ‘역사적’ 통찰은 ‘철학적’ 통찰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과학철학은 과학사를 핵심적인 자원으로 삼아 ‘철학’을 하는 학문적 작업이다. 이러한 상황은 과학사에도 대칭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과학사 전체를 관통하여 역사 서술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한 철학적 관점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역사가 철학이 되지는 않는다. 역사에는 철학과는 차별화되는 고유의 서술 방식과 이에 수반되는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연구자인 내가 과학철학을 연구..

연구자의 삶

2023년 3월 기준으로 나는 박사학위(이학박사, 과학철학 전공)를 가지고 있으며 국립과학관의 선임연구원이자 국립대학교의 강사이다. 최근인 2월 말에 나는 2개의 철학 학술지에 학술논문을 새로 게재했다. 이렇듯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취득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로서의 기본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나 자신의 변화를 생각하면 박사학위는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조금씩 연구자가 되는 준비를 하게 되는 셈이다. 나 자신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연구자로서 정립하였으므로, 나는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연구자의 그것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다. 나는 10년 동안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직장인의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 직장인의 삶의 ..

마지막 졸업식

서울이 아닌 대구에 사는 나로서는 내 마지막 졸업식에 참석하는 일이 일종의 ‘업무’로 여겨졌다. 부모님과 가족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행 준비를 한 후 오전 9시쯤 서울로 출발했다. 부지런히 차를 운전하여 학교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조금 안 된 시각. 곧장 학과 행정실에 가서 학위기와 축하패를 받고 학위복 대여 신청 서류에 사인받은 후, 학교에 계신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논문을 한 부씩 드렸다. 마침 이날 연구실에 나와 있던 과학철학 전공자들에게도 인사와 함께 논문을 한 부씩 전달했다. 학위복을 대여해서 입은 후 신속하게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학위복을 반납하고 식당 ‘두레미담’에서 식사를 오후 2시 정도에 시작했으니, 내 마지막 졸업 절차를 대략 1시간 만에 간단하게 끝낸 셈이다. 오래간만에 ..

연구자로서의 마음가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거라 본다. 그러나 자신의 논문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갖은 고생을 하면서 쓴 논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준을 들이대면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논문이겠지만, 나 스스로 나의 학사 및 석사학위 논문을 생각하면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그간의 내 과학철학 연구를 집약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졸업이다. 신신애의 노랫말 중에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라는 말이 있다. 정확히 그 노랫말처럼, 내가 잘난 연구자든 못난 연구자든 상관없이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다. 내 논문이 좋은 논문이든 평범한 논문이든 상관없이, 이제 내가 연구자로서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