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연구자의 삶

강형구 2023. 3. 7. 09:41

   2023년 3월 기준으로 나는 박사학위(이학박사, 과학철학 전공)를 가지고 있으며 국립과학관의 선임연구원이자 국립대학교의 강사이다. 최근인 2월 말에 나는 2개의 철학 학술지에 학술논문을 새로 게재했다. 이렇듯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취득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로서의 기본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나 자신의 변화를 생각하면 박사학위는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조금씩 연구자가 되는 준비를 하게 되는 셈이다.

 

   나 자신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연구자로서 정립하였으므로, 나는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연구자의 그것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다. 나는 10년 동안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직장인의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 직장인의 삶의 자세와 연구자의 삶의 자세는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의 경우, 직장 업무와 직장 내에서의 정치적 관계와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언제쯤 승진을 할지, 연봉은 얼마나 오를지,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 놀러 갈지가 중요하다.

 

   연구자의 삶의 자세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연구자에게는 올해 내가 무엇을 연구해서 어떤 성과를 낼지가 중요하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자들을 위한 어떤 지원 사업을 하는지, 국내의 다른 연구자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올해 중요한 국내외 학술대회에는 무엇이 있으며 나는 어떤 학술대회에 참석하면 좋을지를 고민한다. 또한 나는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을 나의 서재로 삼고, 서재에 연구자로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서재는 나의 연구실로서, 짧은 10분 동안이라도 컴퓨터를 켜서 나의 연구 활동을 한다. 그렇게 집안일을 하면서 조금씩 짬을 내어서 연구하는 것이다.

 

   확실히 아직 아이들의 나이가 어려 연구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부터 일상적으로 연구하는 습관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연구를 해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는 대개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공부했는데, 이런 습관도 조금씩 고쳐나가기로 했다. 연구자에게는 참고문헌들이 중요하고, 도서관이나 카페에는 그런 참고문헌을 모두 들고 나갈 수가 없다. 특정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도서관이나 카페에 나갈 수 있지만, 참고문헌을 근거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구실이나 서재가 좋다. 아직 나에게는 독립적인 연구실이 없으므로 집에서 서재가 그와 같은 연구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나는 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 신청을 준비한다. 연구계획서를 쓰면서 내가 아는 박사님들의 선행연구를 들여다본다. 나는 20세기 초에 상대성 이론이 등장한 이후 우리가 물리적 시간과 공간에 대해 갖게 된 관념을 연구한다. 나는 상대론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칸트의 인식론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이 일종의 인식 형식이라는 칸트의 관점은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시간과 공간 개념을 넘어서 인간의 지각 기관에 의한 시간 공간 경험을 탐구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공간 개념을 물리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헬름홀츠가 ‘칸트로 돌아가자!’라고 외쳤던 점을 기억해보라. 인식론자 헬름홀츠가 제시한 강체의 자유 운동 개념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적 탐구와 철학적 사유는 불가분의 관계로 서로 얽혀 있고, 나는 20세기 전반기라는 고유한 맥락 아래에서 진행된 그 복잡한 성찰을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는 연구자이다. 나의 연구는 선행연구를 참고하며, 앞으로 나 이후에 진행될 연구의 참고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연구 전통을 잇는다.